스턴트맨(The Fall Guy) 2024년 - 1부 이 남자의 사랑법(리뷰편)
콜트 시버스(라이언 고슬링 / Ryan Gosling 분)는 특 A급 스턴트맨이다. 슈퍼스타 톰 라이더(에런 테일러 존슨 / Aaron Taylor-Johnson)의 전담 대역으로 그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콜트는 영화의 신(神)으로부터 총애를 받고 있다고 믿었다. 운명의 여인 '카메라 오퍼레이터' 조디 모레노(에밀리 블런트 / Emily Blunt 분)를 만나 사랑을 키운 곳도 영화 촬영장이었다. 콜트에게 영화는 '행복'의 동의어나 다름없었다.
불행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한 번의 스턴트 사고로 모든 것을 잃는다. 부서진 허리는 산산조각 난 자신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의기소침해진 콜트는 조디와의 연락마저 스스로 차단하고 칩거한다. 그로부터 1년 뒤, 콜트는 후회와 자책 속에 하루를 보낸다.
그러다 프로듀서 게일(한나 와딩햄 / Hannah Waddingham)에게 복귀 제안을 받게 되는데... 새로 들어가는 영화는 조디의 감독 입봉작! 콜트는 용기를 내어 촬영이 진행되고 있는 시드니행 비행기 표를 끊는다. 과연 콜트는 무너진 자신감과 사랑을 되찾을 수 있을까?
1. 상남자
스턴트맨은 스타를 대신해 위험한 장면을 연기한다. 사람들은 스턴트맨의 노고에 무관심하다. 억울할 법도 하지만 그게 바로 스턴트맨이라는 직업의 본령이다. 영화 <스턴트맨>은 스턴트맨의 직업윤리를 사랑에 대입한다.
신인 감독 조디는 대형 프로젝트를 맡아 악전고투 중이다. 무비 스타와 프로듀서는 영화를 망가트릴 사고를 저지른 뒤 감독에게 뒷수습을 떠 넘긴다. 스튜디오는 예산이 초과 여부를 매의 눈으로 감시한다. 다시 현장에 돌아온 콜트는 조디와 조디의 영화를 지키려고 위험을 감수한다.
조디는 콜트가 자신을 위해 어떤 희생을 치르고 있는지 모른다. 본심과 달리 오해가 쌓이고, 콜트는 변명 대신 기꺼이 미움받는 쪽을 택한다. 필 콜린스의 <Against All Odds>가 흐르는 가운데, 조디와 콜트가 엇갈리는 장면은 <스턴트맨>의 최고 명장면이다.
영화 속 남성 영웅은 예로부터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헌신했다. 여기에 인정 욕구나 호구 잡힌다는 마음은 들어설 수 없다. <타이타닉>의 디카프리오는 케이트 윈슬렛을 위해 죽음을 택했고, <첩혈쌍웅>의 주윤발 역시 연인의 시력을 되찾아 주기 위해 모든 것을 던진다. <스턴트맨>의 콜트는 낭만 영웅의 계보를 잇는다.
2.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 지
영화 <스턴트맨>은 여러 장르가 섞여있다. <존 윅>, <데드풀>의 감독 데이비드 리치(David Leitch)는 한 시퀀스 안에서도 장르 변화를 시도한다. 코미디 위에 액션, 멜로, 스릴러를 조합한다. 그중 궁합이 잘 맞는 장르는 멜로다.
주인공 콜트가 차에서 테일러 스위프트의 <All Too Well>를 듣다 눈물 흘리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이 노래의 가사는 연인과의 행복했던 과거를 곱씹는 내용이다. 노래가 흐르면 조디와 콜트의 행복했던 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회한에 젖은 콜트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는데, 음악이 뚝 끊기면서 한심하게 바라보는 조디의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웃음 지뢰는 곳곳에 매설되어 있다. 조디가 콜트에 대한 응징으로 스턴트 장면을 수차례 반복 시키는 시퀀스는 이 영화의 유머 포인트를 정확히 보여준다.
콜트는 감독 조디의 지시에 따라 폭발과 함께 튕겨져 암벽과 충돌하는 장면을 계속 반복한다. 현장 스태프들은 조디의 이런 행동이 사적 감정에서 기인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어느새 촬영장은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으로 변해, 조디와 콜트 중 누구에게 귀책사유가 있는지 따지는 열띤 토론의 장으로 변한다. 급기야 외계인 탈을 쓴 단역배우가 자기의 경험 - 아내의 여동생과 사랑에 빠진 - 을 고백하기에 이른다.
2. I'm OK
<스턴트맨>은 당연하게도 스턴트맨에 대한 영화다. 스턴트맨 출신인 데이비드 리치(David Leitch)는 직간접적으로 자신이 참여한 작품들 <웰컴 투 더 정글>, <아토믹 블론드>, <노바디>, <본 얼터메이텀> 등의 스턴트 장면을 오프닝에 배치해 스턴트맨에게 헌사를 바친다.
영화에는 스턴트 장면들이 차고 넘친다. 다양한 유형 - 맨손 격투, 자동차 추격전, 자동차 점프, 자동차에 부딪히는 연기, 와이어 등의 여러 스턴트를 보여주고, 이런 액션 장면이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가도 엿볼 수 있다. 예컨대 촬영장에서 탈 것(자동차, 오토바이 등등)을 관리하는 스태프가 스턴트맨이라면 질색을 한다든지, 장면의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스턴트맨은 무조건 괜찮다는 오케이 사인을 보낸다는 등의 묘사는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만 알 수 있는 디테일이다.
개인적으로는 쓰레기 수거차로 멜버른 시내를 누비며 벌이는 액션 장면이 가장 즐거웠다. 마치 서부영화의 열차 강도 장면의 다양한 시추에이션을 쓰레기 수거차로 컨버전해 할 수 있는 모든 액션을 다 시도한다. 80년대 인기 TV 쇼 <마이애미 바이스>의 팬이라면 모터보트 추격전이 인상에 남을 것 같다. 물보라를 가르며 보트가 달리는 장면에서 TV 드라마의 주제음악이 흐르는 데 소름이 쭈뼛 섰다.
정작 영화 클라이맥스의 대형 스턴트 장면은 규모와 난이도에 비해 임팩트가 적다. 이 시퀀스의 야심과 의도 자체는 이해할 수 있지만, 데이비드 리치와 채드 스타헬스키(Chad Stahelski) - <존 윅> 시리즈의 연출자 - 가 공동 설립한 스턴트 회사 '87 Eleven'의 프로모션 영상 같다.
3. 배우들
이 영화에는 무수히 많은 스턴트가 등장한다. 일단 스턴트 배우들에게 경의를 보낸다.
주연배우 라이언 고슬링과 에밀리 블런트는 각자 최선, 최고의 연기를 펼쳤다. 라이언 고슬링은 주어진 범위 안에서 최대한의 스턴트 연기를 했다. 그뿐인가. 코미디면 코미디, 액션이면 액션, 진지할 땐 또 진지한 모습으로 영화의 중심축 역할을 훌륭히 완수했다.
평소 카리스마 강한 이미지로 유명한 에밀리 블런트는 <스턴트맨>에서 마음만 먹으면 맥 라이언만큼 귀여운 로코 여신이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영화의 유머 상당 부분은 에밀리 블런트에게 지분을 돌려야 할 것이다.
애런 테일러 존슨은 밥맛 없는 스타를 신들린 듯 연기한다. 그가 참조한 레퍼런스가 누구였는지 궁금하다. 반면 '쌍년' 캐릭터를 연기한 한나 와딩햄은 아쉽다. 그녀는 성실히 악역을 소화했지만, 애정하는 <테드 레소>의 구단주 역할에 비해 한계가 뚜렷한 캐릭터가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
4. 스턴트 보다 더 관심 있는 것은?
화려하고 야심 찬 스턴트 시퀀스가 가득 하지만, <스턴트맨>에서 정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데이비드 리치의, 좋게 말해 실험정신, 혹은 영화 가지고 장난친 장면들이다.
가장 두드러진 게 편집 쪽이다. 예컨대교차 편집은 같은 시각, 다른 장소에 있는 두 사건을 번갈아 보여줄 때 사용한다. 이 영화는 서로 다른 시간대에 있는 두 사건을 교차시켜 관객의 착각을 유도한다. 전화 통화 장면에 주로 사용되는 화면 분할도 굉장히 독특하게 구사한다. 왼쪽 화면과 오른쪽 화면의 인물들 시선을 보통의 영화와 다르게 배치하고, 혹은 왼쪽 화면과 오른 쪽 화면을 아예 장르가 다른 것처럼 서로 어긋나게 찍어 병치한다.
그 외에 템포 조절(느리게 진행하다 갑자기 빠르게, 혹은 그 반대로), 숏 - 리버스 숏의 사용, 롱 테이크, 시퀀스와 시퀀스 간의 연결 방식 등에서 다른 영화에서 좀처럼 하지 않은 시도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여기서 분명 드러나는 것, 새 장난감을 손에 쥔 아이와 같은 감독의 호기심이다. 이런 도전이 관객의 몰입에 방해를 준 것도 사실이지만, 리치 감독은 멈추질 않는다.
영화 초반, 감독 조디가 슛 직전에 스태프들의 질문 공세에 시달리는 장면이 있다. 각 파트의 스태프들이 온갖 걸 - 엑스트라의 의상, 폭약의 강도, 작은 소품의 디자인 하나까지 컨펌받으러 모인다. 가히 분열증에 걸릴만한 상황이다. 아무리 준비를 했다고 해도 수많은 사람들이 팀으로 작업하는 게 영화이고, 현장은 예상치 못한 돌발변수로 가득하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멘털이 터질 것이다.
이런 일의 연속이 감독의 직무임을 감수하고, 그와 동시에 남들이 하지 않는 실험까지 한다는 것은 보통 강심장이 아니고서야 가당키나 할까. 그가 액션 영화 전문이라는 업계의 고정관념을 넘어 좀 더 멀리 갈 수 있는 연출자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