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 1470호 - 2024.08.20~2024.08.27.
가혹하게 더웠던 24년 8월 말, <씨네21>에 소개된 영화들은 한결같이 외계인에 공격(에일리언 로물루스) 받는 청춘들, '한국이 싫어서' 떠난 청춘들, 토네이도 같은 자연재해와 맞닥트린 청춘들을 다룬다.
1. Opening
이번 호 오프닝의 편집장 글은 그 어느때보다 비장하다. '2024년, 헬조선의 지옥불은 점점 가열차게 타오르는 중이다. 탈출하느냐 버티느냐를 두고 고민하던 목소리가 엊그제 같은데, 빠른 속도로 망가지고 있는 세상은 양자택일을 고민할 시간조차 앗아가버린다.' 편집장은 '현실이 지옥이라면, 아니 지옥일수록 뭐라도 해야 한다.' '절망적인 현실일수록 스스로 두발로 서야 한다'라고 목소리에 힘을 준다.
이 글이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가 망가지고 있다는 감각을 이렇게까지 분명하게 느낀 적도 없는 요즘이다. 어떻게 해도 바뀔 것 같지 않다는 예감이 우리를 더 힘들게 한다. 이럴 때 일수록 지치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편집장은 '한창 유행 중인 러키비키 원영적 사고'는 '암담한 현실을 버티고 숨 쉴 방법에 대한 답변', 다시 말해 정신승리, 현실도피의 징후라 말하지만, 도리어 근거없는 낙관과 희망이 필요한 시대다. 무슨일이 있어도 우리는 웃고 살아야 내일을 도모할 수 있다.
2. <한국이 싫어서>의 세 배우, 고아성, 주종혁, 김우겸
포스팅을 쓰고 있는 시점에 영화는 벌써 극장에서 내려와 넷플릭스로 볼 수 있다. 고아성 배우는 주인공 계나와의 공통점으로 '현금흐름성 행복'을 추구한다는 점을 꼽았다. 어렸을 때부터 이 배우는 주체성 강하고 독립적인 캐릭터와 잘 맞았다. 팬들이 가장 사랑하는 고아성의 작품(?)은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나와 김현철의 <왜 그래>를 불렀던 장면이 아닐까 싶다. 주종혁 배우는 처음 볼 때 비호감인데 갈수록 호감으로 바뀌는 캐릭터에 어울린다. 김우겸은 미지의 배우다. <한국이 싫어서>에서 계나의 오랜 남친 지명을 연기했다. 단편부터 치면 데뷔 10년이 지났다는데 그의 얼굴을 잘 기억해 두자.
3. 에이리언 : 로물루스
시리즈의 일곱 번째 작품 <에이리언 : 로물루스>는 1편과 2편 사이의 시간대를 다룬다. 노예처럼 노동을 강요받던 여섯 청춘은 탈출을 위해 버려진 함선에 올라탄다. <이블 데드>, <맨 인 더 다크>를 연출한 감독 페데 알바레스는 80년대 슬래셔 영화들처럼 20대 젊은이들이 마주한 뜻밖의 재앙으로 스토리를 풀어간다. 감독은 이전 영화에서도 '전문가 동료간의 정서적 유대와 반복이 존재했지만, 가족 또는 소꿉친구 관계에서 끌어낼 수 있는 드라마의 깊이와 비교할 수 없다. 누군가가 다치거나 낙오되었을 때 그저 눈을 돌리고 앞으로 나아갈 수만은 없는 것'이라 밝힌다.
주인공 레인 역을 맡은 케일리 스페이니는 인터뷰에서 선구자적 여성 캐릭터 리플리를 연기한 시고니 위버에게 존경을 표했는데, 위버의 연기 장면을 하나하나 해부하듯 연구를 했다고 한다. 박평식 평론가는 별점 세 개 반을 주며 '멋진 계승과 변용으로 시리즈의 동메달'이라 말한다.
4. 개봉작
<필사의 추격>은 <악마들>(2022년)의 김재훈 감독, 박성웅, 곽시양, 윤경호 주연의 코믹 추격극이다. 제주도를 배경으로 외국인 부동산 취득, 무분별한 개발 문제를 건드렸지만 '느슨한 캐릭터 설정, 미비한 개연성'이 영화의 속도를 늦춘다. 여름시즌 끝물에 개봉 열차에 탑승했지만, 전국 관객 12만 명 동원에 그쳤다.
<늘봄가든>은 프로듀서 구태진의 감독 입봉작으로 대한민국 3대 흉가로 거론되는 제천의 늘봄갈비 괴담에서 출발했다. 여름 시즌을 노린 호러 영화로 사회문제와 공포를 섞었으나 최헌수 객원기자는 '섬뜩함보다 피로감'이 든다고 평했다. 그래도 <필사의 추격>의 세 배 가까운 38만명 관객을 동원했다.
8월 4째주는 극장 개봉작에 비해 OTT 공개작이 아주 화려하다. 24년 설날 개봉을 노렸다가 OTT로 선회한 황정민, 염정아 주연의 <크로스>가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찾아왔다. 김소미 기자는 '킬링타임 영화와 졸작'사이라 평했지만, 공개 3일 만에 글로벌 톱 10 영화(비영어) 부문 1위를 차지했다. 디즈니 플러스의 <폭군>은 박훈정 감독의 '마녀' 시리즈와 세계관을 공유하는 작품이다. 박훈정 감독에 대해선 비판과 찬사가 공존한다. 정재현 기자는 '일관적 취향에 관해 변명하지 않고 오히려 깊이 탐구하길 택한 연출자 겸 작가의 태도가 흥미'롭다고 호의적인 평가를 내린다. <낙원의 밤>의 차승원, <귀공자>의 김선호, 김강우 등 박훈정 사단이라 불러도 좋을 배우들의 존재감은 압도적이다.
5. 듀나(Djuna), 데뷔 30주년!!
1994년 PC 통신을 주무대로 2024년까지 120여편의 저서, 영화평론 활동을 해온 미스터리 토끼, 듀나가 데뷔 30주년을 맞이했다. 한국 대중문화에 그가 끼친 영향은 가볍지가 않다. 씨네21은 듀나의 그간의 활동을 되짚어 보는 특집 기사를 준비했다.
강은교 문화연구자는 듀나가 지난 30년간 꾸준히 '우주전쟁, 외계인 침공 같은 전형적인 SF 소재를 우리에게 익숙한 한국의 구체적인 풍경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냈음을 높이 평가하며 'SF 장르의 재료와 한국의 맥락을 성공적으로 결합해 낸' 작가라 지적 - 예컨대 <대리전>(2006년)의 경우 외계 종족 간의 우주전쟁을 그리는 데 배경이 경기도 부천 - 한다. 듀나의 영화평론은 장르 영화를 다룰 때 해당 영화가 큰 계보 안에서 어느 자리에 위치하고 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대중문화의 역사는 소수의 명작만이 아니라 다수의 범작과 망작을 이루어져 있으며, 이들 모두가 장르의 다양성을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듀나에게 있어 범작과 망작을 포함한 모든 작품들은 장르의 다양성을 만들어가는 토대인 셈'이다.
김소미 기자는 '이것이 듀나 스타일'이란 제목으로 그의 소설, 비평을 잇는 핵심 키워드를 요약 설명한다. 링커 바이러스가 퍼진 세계를 공유한 작품들이 여럿 등장하고, 냉소적 유머, 영화평을 쓰는 방식들을 소개한다. 이다혜 기자는 '언제나 그렇듯' 듀나와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여기서 듀나는 '폐인이 되기 싫어 계속 일을 하고 글을 썼다.'라고 여러 번 쓴다. 다시 한번 느끼지만 사람은 고민이 아니라 행동으로 자신을 남긴다.
6. 트위스터스
임수연 기자는 '이과 감성'이란 타이틀의 칼럼에서 <트위스터스> 속 과학적 설정을 풀이한다. '도로시'라는 감지기를 직접 토네이도 안에 집어넣는다는 발상은 그만큼 작고 가벼운 센서를 만들어 낼 수 없어 불가능하다. 하지만 고흡수성 수지로 비구름의 수분을 빨아들인다는 원리만은 가능하다. '무엇보다 <트위스터스>는 기후변화 이후 예측불가능한 토네이도 재해를 이해시키고, 재난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를 논하기 위해 지구과학 지식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똑똑하게 윤리적인 영화'라 주장한다.
씨네21은 <트위스터스> 홍보를 위해 방한한 정이삭 감독과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엄태화 감독의 대담도 실었다. 두 감독 모두 독립영화로 주목받은 다음 대형 프로젝트를 연출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트위스터스>와 <콘크리트 유토피아> 둘 다 재난영화이기도 하다. 둘 다 조용하고 튀지 않는 성품인지 대담 내용이 막 재미있거나 하진 않다. 다만 정이삭 감독이 <트위스터스>를 재난영화인 동시에 일종의 괴수물이라 생각했고 연출했다는 대목이 인상 깊었다. 핵실험으로 괴수가 된 <고질라>처럼 토네이도 또한 인간이 그 예측불가능성을 확대하는 데 일조를 했다.
7. 비평
송형국 평론가는 최근 한국상업영화 서사를 두 개의 경향으로 분류한다. 하나는 <범죄도시>처럼 대세, 강자를 따르는 심리의 밴드웨건 효과(Band Wagon Effect), 또 다른 하나는 약자를 응원하는 언더도그 효과(Underdog Effect)다. 후자의 대표적인 영화가 <명랑>, <서울의 봄>, <모가디슈>, <비공식작전>, <내부자들> 같은 작품인데, 여기서 특이한 것은 이순신 장군, 이태신 장군, 혹은 검사 등 고위급 공무원들(필자는 이를 '고위 공직 열세 서사'라 칭함)이 약자의 위치에서 강자와 대립한다는 데 있다. 밴드웨건, 언더도그 경향 모두 '국가의 부재'에 대한 불안감, '사회의 주류 기득권 혹은 신자유주의 시스템이 나의 문제를 중요하게 다뤄줄 것이라는 기대가 체념 단계에 이르렀고, 그에 따른 배제의 공포가 역력한 사회의 징후'라고 본다. 지금의 내란 정국을 보면 확실히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박홍렬 촬영감독은 요즘 영화에 블랙의 계조(밝기의 단계)가 사라진 이유를 설명한다. 검다고 다 검은 게 아니다. 다양한 검은색이 존재하는데 촬영현장에 모니터가 적극 도입되면서부터 '어둠의 다양성' 대신 밝고 선명한 것들에만 집중하게 되었고, 글로벌 OTT에서 내세운 HDR 기술(선명도를 높이는 과정에서 블랙을 하나의 덩어리로 만들어 다른 색을 보다 돋보이게 함)이 계조를 없애는 기폭제가 되었다는 설명이다. 어둠, 블랙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장소는 태블릿, 휴대폰 기기가 아닌 극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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