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보다 나은 속편은 없다고 했다. <캐논 볼>1편은 최저 수준에 가까운 영화라, 조금만 더 노력했으면 이 공식을 깰 수 있었다. 하지만 제작진은 1편의 공식을 게으르게 반복하며, 기어코 최악의 영화를 만들게 되니, 평론가 로저 이버트는 "관객의 지적 수준을 시험하는 심각한 모욕"이라 분노를 터트렸다. 만장일치에 가까운 악평 세례에도 불구하고 <캐논 볼 2>는 손익분기점을 돌파하며 손해 보지 않는 장사를 했다.
<캐논 볼 2>는 여러 죄를 범했는데, 첫째 관객을 기만했고, 둘째 제작자에게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을 만들 여지를 제공했으며, 셋째, 그것도 모자라 바다 건너 홍콩의 감독 왕정(王晶 / Wong Jing)을 비롯, 여러 제작자에게 스타들을 모아 짧은 시간에 영화를 완성하면 돈을 벌 수 있다 하는 나쁜 선례를 만들었다.
1. 게으른 짓
지난번 대회에서 우승을 놓친 '아랍 왕자' 쉬이크 압둘 벤 팔라펠(제이미 파 / Jamie Farr)은 아버지인 팔라펠 왕(리카르도 몬탈반 / Ricardo Montalban)으로부터 가문의 수치라 질책을 듣는다. 반드시 우승하라는 아버지의 명령에 아들이 올해는 경주가 없다고 호소하자, 아버지 왈, ‘네가 직접 캐논볼 대회의 주최자가 돼라’ 일갈하니 <캐논볼 2>의 막이 열린다.
오프닝 크레디트가 올라가면, 신나는 주제음악에 맞춰, 람보르기니와 경찰차가 쭉 뻗은 고속도로 위를 달리니, 이 장면은 헬기에서 찍은 것으로 이때만큼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시야가 트이며 심장이 두근댄다. 그러나 이후 영화에 두 번 다시 이런 순간은 찾아오지 않는다.
<캐논볼 2>에 독창적인 것은 하나도 없다. 오프닝 크레디트 시퀀스는 <캐논 볼>1편의 오프닝을 복사하여 붙여 넣기 한 것이다. 명색이 자동차 경주 영화니까 자동차 질주 장면은 멋지게 찍어야 하는 것이 의무일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장면이 1편과 비슷한 앵글의 컷이며, 그마저도 얼마 되지 않는다. 레이싱 장면에 집중하기보다 농담 따먹기 하는 배우 얼굴 비추기에 여념이 없다.
2. 나쁜 짓
<캐논 볼>1편은 올스타 캐스팅으로 재미를 봤다. 반면 2편은 올스타 캐스팅이 전부인 영화다. 1편에 이어 J.J.(버트 레이놀스 / Burt Reynolds), 빅터 프린짐(돔 드루이즈 / Dom DeLuise), 제이미 블레이크(딘 마틴 / Dean Martin), 모리스 펜더바움(새미 데이비스 Jr. / Sammy Davis Jr.), 쉬이크(제이미 파), 재키(성룡 - 成龍 / Jackie Chan), 닥터 반 헬싱(잭 엘람 / Jack Elam)이 출연하는데 똑같은 캐릭터, 똑같은 의상을 입고 나와 1편보다 훨씬 더 영혼 없는 연기를 한다.
이 영화에는 무수히 많은 카메오가 나온다. 할리우드의 전설,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가 그중 가장 빅 네임이다. 나머지는 해외 관객이 알아보기 힘든, 미국의 중견 코미디언, 유명 스포츠 선수들로 채웠다. 우리로 치면 남철, 남성남, 배일집, 한무 같은 연기자를 잔뜩 모아 한 장면씩 출연시킨 격이라 생각하면 된다. 전체 제작비의 절반을 배우 출연료로 쓴 <캐논 볼 2>는 보여줄 게 카메오뿐이라 배우들 얼굴 클로즈업을 자주 사용한다. 영화의 대부분이 쇼트-역쇼트의 지루한 반복이다. 영화가 아니라 TV 드라마, 혹은 스틸 사진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007 패러디도 1편에 이어 계속 등장한다. <나를 사랑한 스파이>, <문레이커>에 나와 강한 인상을 남긴 '죠스' 리처드 킬(Richard Kill)이 성룡의 파트너로 나오고, <여왕폐하대작전>에서 브로펠트를 연기했던 '코작' 텔리 사바라스(Telly Savalas)가 메인 악당으로 등장한다.
1편의 악당은 캐논볼 경주를 중단시키려 했던 NGO의 대변인이었다. 2편은 마피아들이다. <대부>를 패러디하여 '대부' 돈 카넬로니의 아들 돈돈 카넬로니(찰스 넬슨 레일리 / Charles Nelson Reilly)가 빚을 갚기 위해 아랍 거부 쉬이크를 납치 시도를 하며 소동이 벌어진다. '돈돈 카넬로니'라는 작명부터 어처구니가 없다. 개그캐로 등장시킨 오랑우탄 역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더티 파이터>에서 가져온 것이다.
영화의 스턴트 장면 대부분은 돈돈의 부하들이 쉬이크를 납치하려는 시도에서 나온다. 차 범퍼 앞에 집게를 달아 쉬이크가 탄 롤스로이스 뒤꽁무니를 붙잡아 멈추게 하고, 헬기에 강력 자석을 부착해 달리는 차를 끌어올리는 시도를 한다. '루니 툰'이 볼만했던 것은 이 멍청한 행동의 주체가 만화 캐릭터였기 때문인데, <캐논볼 2>에선 나이 든 이탈리아계 중년 배우들이 이 짓을 하니 웃음보다 애처롭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3. 대차대조표
<캐논볼 2>로 가장 덕 본 배우가 누굴까? 나는 영화 안팎에서 황제 대접을 받은 프랭크 시나트라를 꼽겠다. 그는 하루 촬영으로 3만 불을 받았다. 그리고 전액을 자선단체에 기부했다. 프랭크 시나트라의 출연은 '랫팩' 멤버 딘 마틴과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의 제안으로 성사됐다. 출연한 다른 배우들이 프랭크 시나트라를 만나려고 촬영장에 모여들었는데, '황제' 시나트라는 일찍 현장에 나와 장면을 먼저 찍고 철수해 버렸다. 그가 나오는 분량은 '전화 통화 장면'처럼 모두 혼자 연기한 것으로, 버트 레이놀스와 주고받는 대사도 나중에 편집으로 붙여 완성했다.
가장 손해를 본 배우는 버트 레이놀스다. 그는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반까지 엄청난 인기로 팬들을 구름처럼 몰고 다녔다. 그런데 할 니드햄과 멍청한 카 스턴트 영화를 연달아 찍으며 커리어가 곤두박질쳤다. <캐논볼 2>는 팬들의 관용심마저 박살 냈다. 팬클럽 회원들은 앞으로 그의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지 않겠다고 공식 성명을 내기도 한다.
성룡은 이득을 봤다. NG 장면의 아이디어를 얻었고, 무엇보다 2편에선 일본인 행세를 하지 않는다. 버트 레이놀스와 함께, 잠깐이지만 액션을 주고받기도 하니 '세계적인 무비스타와 어께를 나란히' 한 격이다. 또한 <캐논볼 2로 성룡은 미쓰비시 자동차와 오랜 기간 파트너십을 구축하게 된다. 2편 제안을 거절한 로저 무어도 이득을 봤다 할 수 있다. 1편 출연 때문에 007 제작사 이온 프로덕션의 알버트 브로콜리가 불같이 화를 냈다는 소문이 파다했는데, 결국 2편에 복귀하지 않음으로써 명예를 지켰다.
그리고 셜리 맥클레인!!! <애정의 조건>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바로 그 해, 한없이 가벼운 <캐논볼 2>에 출연해 한없이 가벼운 역할을 아무렇지 않게 해낸다. 1편에서 파라 포셋이 맡았던, 버트 레이놀스의 연애상대 역을 하는데, 파라 포셋이 글래머러스한 몸매에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 하는 순진한 표정으로 어필한다면, 셜리 맥클레인은 수녀인 척하는 뮤지컬 배우를 연기하며 노련한 섹시미가 무엇인지 가르쳐 준다. <캐논볼 2>의 출연배우들 중 유일하게 출연료 이상의 연기를 해 냈다.
4. 영화 정보
<캐논볼 2>는 북미 기준 1984년 6월 29일에 개봉했다. 감독은 전편에 이어할 니드햄(Hal Needham)이 맡았는데, 이번엔 각본 크레디트도 받았다. 제작은 알버트 S. 루디(Albert S. Ruddy), 홍콩 골든 하베스트의 추문회(鄒文懷 / Raymond Chow), 안드레 모건(Andre Morgan)이 담당했다. 제작비는 약 2천만 불로 추정되는데, 이중 절반에 가까운 9백만 불이 배우 출연료로 지급됐으니, 카 스턴트 장면이 1편에 비해 빈약한 게 이 애가 된다. 1편의 배급을 맡은 20세기 폭스가 2편을 포기하면서 워너 브라더스가 배급권을 넘겨받았다.
원래 버트 레이놀스의 상대역으로 <미녀 삼총사>의 재클린 스미스(Jaclyn Smith)가 첫 번째 옵션이었다. 할 니드햄의 버트 레이놀스와 돔 드루이즈의 애드리브를 장려하는 연출 방식에 부담을 갖고 출연을 고사했다.
오프닝 주말에 박스오피스 10위를 차지했고, 전체 수입은 1편의 절반 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해외 사전 판매로 이를 벌충하고도 남았다. 일본에서는 1984년 외국영화 전체 흥행 2위에 올랐다. 3위가 성룡의 <프로젝트 A>였다. 이 당시 성룡의 티켓파워가 일본에서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알 수 있다.
Chronicle - 캐논볼 프랜차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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