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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우삼10

영화의 맨살 - 하스미 시게히코(蓮寶重彦) 영화비평선 - 11부 국경과 시간을 넘어 영화를 만나다 3부 이동하는 영화들 영화 시민권자 하스미 시게히코는 스위스, 홍콩, 마드리드, 한국의 광주에 출몰하여 그곳의 역사와 영화를 사유한다. 타국에서 미래의 거장과 만나는 운명적인 일도 경험하고, 현재의 거장과 대화를 나누며 그가 만들고자 했지만 아직 만들지 못한 영화를 상상한다. 영화는 국경과 시간을 넘어 영화를 생각하는 여러 사람들과 링크를 만든다. 1) 알프스 남쪽 사면의 마조레 호반에 남쪽의 영화도시가 출현한다(1983년) 일종의 기행문이면서 모험담이다. 하스미 시게히코는 스위스 로잔에서 기차를 타고 로카르노로 향한다. 여행의 목적은 제36회 로카르도 영화제 참석이다. 혼자만의 여행은 로카르노에 도착하자마자 시끌벅적한 파티 모임으로 변한다. 세계 각국에서 온 영화인들은 로카르노에서 잠깐의 친구를 만든다.. 2023. 10. 4.
제패(除覇 / Fist to Fist) 1973년 - 오우삼, 원화평, 그리고 성룡의 교차점 8~90년대 홍콩영화의 위대함을 전 세계에 알린 세 명의 영화인이 신인 시절에 한 영화에서 만난 적이 있다. 이소룡 신드롬과 더불어 우후죽순 쏟아졌던 저예산 쿵후액션 중 하나인 는 원화평이 무술연출, 오우삼이 조감독, 그리고 성룡이 단역과 스턴트맨으로 참여했다. 영화 자체는 당시 유행하던 스파게티 웨스턴을 쿵후 액션 장르로 번안한 수준이다. 저예산이라 로케이션 분량이 대부분이고, 촬영과 미술 등도 평이하다. 그런데 스토리와 인물의 감정은 엄청 비장하여 여기서 나오는 언밸런스가 묘한 매력을 주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재앙과 같은 영화지만 70년대 쿵후액션영화를 좋아하거나, 오우삼-원화평-성룡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꽤 흥미로운 영화가 될 것이다. 영화가 반환점을 돌고 나면 나머지는 싸움과 싸움과 싸움.. 2023. 8. 22.
연경인(年輕人 / Young People) 1972년 - 2부 땀 흘리는 남자들 은 세 개의 하이라이트 시퀀스(초반부 적룡의 농구경기 - 중반부 진관태의 무술시합 - 라스트 강대위의 카트 레이싱)를 배치한 다음 그 사이를 말이 되도록 스토리로 연결한다. 성룡의 1982년작 가 럭비 시합, 축구 시합, 라스트 고수와의 쿵후대결, 이렇게 세 개의 액션 세트피스를 중심으로 영화를 만든 것과 비슷하다. 스포츠와 액션을 즐기며 땀 흘리는 젊은 남자들이 이 영화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청춘영화하면 이성 간의 로맨스가 필수이지 않은가? 에도 멜로가 등장은 한다. 그런데 장철(張徹) 감독은 이것을 희한하게 피해간다. 강대위는 여자의 구애를 거절하고 혼자 있길 원하고, 진관태와 적룡은 한 명의 여자를 두고 다투다 결국엔 여자를 버리고 둘이 친구가 되는 쪽을 택한다. 서구 평론가들이 장.. 2023. 7. 10.
수호전(水滸傳 / The Water Magin) 1972년 - 1부 TVB 무협 드라마의 조상 스튜디오는 항상 큰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한다.지금부터 50여년 전 홍콩의 쇼브라더스가 그랬다. 무협소설의 원류이자 동북아시아에 사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고전 프로젝트를 스튜디오의 에이스격인 장철 감독에게 맡긴다. 장철 감독은 지금 소개하는 , , 로 이어지는 트릴로지로 완성한다. 쇼브라더스는 전속 계약으로 강대위(姜大衛 / David Chiang Da Wie), 적룡(狄龍 / Ti Lung)같은 아이돌 스타는 물론 곡봉(谷峰 / Ku Feng) 같은 베테랑 배우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여기에 숙련된 스태프와 청수만에 위치한 대형 스튜디오를 갖고 있었으니 무협 서사극을 만드는 데 있어 최적의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쇼 브라더스는 이후에도 김용의 '영웅문' 연작 등 무협소설의 프랜차이즈화를 꾸준히 시.. 2023. 6. 8.
오우삼(吳宇森 / John Woo Yu-Sen) - 3부 젊은 날의 방황 대략 1970년에서 1972년까지 오우삼은 장철 감독 연출부에 속해 있었다. 이 시기 장철 감독은 동시에 3~4편을 연출하는 아주 바쁜 스케쥴을 소화하고 있었다. 동세대 다른 감독들이 대학에서 영화 연출 공부를 했다면, 오우삼의 학교는 장철 감독의 현장이 아니었을까. 오우삼이 조연출로 정식 크레디트를 받은 작품은 , (1972년), (1972년), (1972년), 그리고 (1973년), 이렇게 4편이다. 시네필 모임 장철 감독과의 인연을 설명하려면 다시 씨네필 모임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 오우삼은 문화 활동가들이 운영하는 비인가 기관에서 하는 연기, 영화 이론 수업을 들었다. 여기서 영화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이들과 교류를 가지면서 함께 영화를 보고, 토론하고, 더 나아가 실험 단편 영화를 찍었다. 당시 .. 2023. 6. 5.
마영정(馬永貞 / The Boxer from Shantung) 1972년 - 3부 상해의 토니 몬타나 진관태는 자신의 첫 번째 주연작 에서 생애 다시없을 명연기를 선보였다. 장철 감독은 그토록 애지중지한 강대위와 적룡 대신 진관태를 주연으로 기용한 것을 내심 흐뭇해했을 것이다. 강대위와 적룡은 누가 봐도 얼굴에 주연배우라고 쓰여있다. 귀공자 다운 품위가 있고 무엇보다 아름답다. 반면 진관태는 거친 땀냄새가 난다. 적룡과 쇼브라더스 신인배우 양성소 '남국실험극단(南國實驗劇團)' 1969년도 동기생인 진관태는 적룡이 무비스타가 되는 동안 전문 무술 연기자 혹은 단역을 전전해야 했다. 진관태는 가진 것이라고 두 주먹과 자존심 밖에 없는 마영정이란 캐릭터를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마영정의 상승 욕구를 온몸으로 표현한다. 클라이맥스 결투 장면에서 진관태가 뿜어내는 광기는 50년이 지난 지금에도 화면에서 살아 .. 2023. 5. 28.
마영정(馬永貞 / The Boxer from Shantung) 1972년 - 2부 신분상승의 사다리 담사처럼 되고 싶은 욕망이 마영정을 상해 암흑가의 세력 갈등 한가운데로 데려간다. 위험이 닥치면 피해야 정상인데 마영정은 되려 그 앞으로 달려간다. 돌파하거나 나가떨어지거나 둘 중 하나, 모 아니면 도인 행보가 얼마나 지속가능한 것일까. 그걸 알기에 더 크게 불타오르는 삶. 그게 마영정이 가는 길이다. 다관(茶館) 상해 암흑가는 늙은이 양쌍(강남 / 姜南 / Chiang Nan)과 젊은 담사가 자웅을 겨루는 중이다. 양쌍에게는 사패왕이라 불리는 네 명의 수족들이 있는데, 그중 범하근(풍의 / 馮毅 / Fung Ngai), 장금발(곡봉 / 谷峰 / Ku Feng), 이재춘(전청 / 田靑 / Tin Ching) 3인을 보내 담사 구역의 찻집을 뺏으려 한다. 담사 때문에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마영정은 우연.. 2023. 5. 28.
마영정(馬永貞 / The Boxer from Shantung) 1972년 - 1부 어느 산동 청년의 비극 대도시 상해의 가장 미천한 자리에 있던 남자 마영정이 싸움 실력 하나로 모두가 우러러보는 사림이 된다. 장르의 법칙은 정상에 오른 마영정에게 비참한 추락을 준비하게 되니, 18분가량 지속되는 클라이맥스 액션 장면은 제우스의 형벌을 받아 영원히 고통받는 프로메테우스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끔찍하다. 결국 은 할리우드 갱스터 장르를 20세기 초 상해로 가져온 영화다. 기초 정보 은 1972년 2월 11일 개봉했다. 장철(張徹 / Chang Cheh)과 포학례(鮑學禮 / Pao Hsueh Li)가 공동으로 연출했다. 시나리오는 이례적으로 장철 본인이 예광(倪匡 / Ni Kuang)과 함께 작업했다. 대규모 액션장면 때문인지 쇼브라더스 1진 무술감독 당가(唐佳 / Tong Kai)와 유가량, 유가량의 동생 유가영.. 2023. 5. 28.
오우삼(吳宇森 / John Woo Yu-Sen) : 2부 빈민가 소년, 열혈 씨네필이 되다 오우삼은 교회가 지원하는 학교를 다녔다. 빈민가 공동주택에서 살던 오우삼에게 교회와 학교는 큰 의미로 다가왔다. 그는 평소 아버지처럼 따르던 신부님에게 성직자의 길을 걷고 싶다 고백했다. 그러자 신부님이 '너의 영혼은 성직자가 되기에 너무 자유분방하다'며 예술가가 되길 권했다고 한다. 젊은 시네필 16살 때 아버지가 사망하자, 오우삼은 영화에 더욱 깊이 빠져든다. 그 무렵(1966년부터 1969년 사이) 유럽의 68 혁명의 영향을 받아 홍콩의 젊은이들도 식민지 정부에 반대하며 거리로 나갔다. 시위와 파업이 끊이질 않았고, 이들 중 상당수는 모택동에 경도되어 있었다. 그러나 근본 원인은 식민지 정부의 무능, 부패, 불안한 치안, 극심한 빈부 격차에서 비롯됐다. 영국 정부가 홍콩의 중국 조기 이양을 검토했을.. 2023.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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