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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연경인(年輕人 / Young People) 1972년 - 2부 땀 흘리는 남자들

by homeostasis 2023.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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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경인>은 세 개의 하이라이트 시퀀스(초반부 적룡의 농구경기 - 중반부 진관태의 무술시합 - 라스트 강대위의 카트 레이싱)를 배치한 다음 그 사이를 말이 되도록 스토리로 연결한다. 성룡의 1982년작 <용소야>가 럭비 시합, 축구 시합, 라스트 고수와의 쿵후대결, 이렇게 세 개의 액션 세트피스를 중심으로 영화를 만든 것과 비슷하다. 스포츠와 액션을 즐기며 땀 흘리는 젊은 남자들이 이 영화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청춘영화하면 이성 간의 로맨스가 필수이지 않은가? <연경인>에도 멜로가 등장은 한다. 그런데 장철(張徹) 감독은 이것을 희한하게 피해간다. 강대위는 여자의 구애를 거절하고 혼자 있길 원하고, 진관태와 적룡은 한 명의 여자를 두고 다투다 결국엔 여자를 버리고 둘이 친구가 되는 쪽을 택한다. 서구 평론가들이 장철 감독의 영화에서 괜히 동성애 코드를 읽어내는 게 아니다. 나는 장철 감독이 동성애를 표현했다기보다 여자를 남자의 부속품 정도로 생각하는 가부장적인 편견이 발현된 결과라 생각한다.

어린 가수

젊은 대학생들의 이야기에서 엇갈리는 사랑의 작대기, 삼각관계, 멜로코드가 빠질 수 없다. 신입회원이자 순수의 상징, 통통튀는 여학생 진미령(陳美齡 / Agnes Chan Mei Ling)은 강대위에게 그만 마음을 뺏겨 졸졸 따라다닌다. 거리에서 강대위와 진미령이 한참을 숨바꼭질을 하듯 쫓고 쫓기는 시퀀스가 한참 이어진다. 카메라가 롱쇼트로 걸어가는 강대위의 뒷모습을 롱쇼트로 잡다 휙 뒤돌아보는 순간 줌인, 혹은 컷을 바꿔 강대위의 얼굴을 가까이 잡는데 이때마다 강대위는 기가 막히게 멋진 표정과 포즈로 매력을 발산한다. 강대위는 진미령에게 어떤 관심도 없다. 대신 같은 음악써클의 라락림(羅樂林 / Law Lok Lam)이 진미령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둘을 연결시켜 주려 한다. 

진미령의 앨범 커버

누군가의 전성기

처음 시작은 야구부였는데...갑자기 적룡과 친구들은 농구시합에 출전한다. 농구 경기를 영화로 연출하는 게 보통 까다로운 일이 아니다. 장철 감독은 제대로 하기보다 시늉 정도 내는 것에 그친다. 여기에 큰 야심은 없다. 선수들을 뛰게 하고 그걸 카메라로 찍는 정도? 선수와 선수 간에 호흡을 주고받는, 타이트한 컷이 거의 없다. 풀 쇼트로 길게 찍거나, 득점 장면만 반복해서 보여준다. 촬영의 기교보다 배우들을 빡세게 굴렸다는 뜻이다. 경기 진행 과정은 중계 캐스터를 등장시켜 해결한다. 편리하지만 게으른 방식이다.

적룡의 검(劍)팀은 독수리(鷹)팀을 상대로 경기를 펼치는데, 검팀의 주득점원은 적룡이다. 아니 적룡 외에 팀 내 다른 선수가 득점하는 경우가 전무하다. 적룡의 드리블은 선수라 보기에 무리가 있는 수준임에도 슛 장면은 꽤나 그럴듯하다. 관중석에는 음악 동아리와 무술반 전원이 경기를 보고 있고, 진의령은 옆에 현 남자친구 진관태가 앉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룡을 열렬히 응원한다. 거의 속옷이라도 벗어 던질 기세다. 경기 후반전, 검팀이 큰 점수로 앞서 있던 차에 독수리팀이 에이스 적룡을 타이트하게 수비하다 파울을 범한다. 이 파울로 적룡은 더 이상 경기를 뛸 수 없을 정도의 부상을 입고, 이 틈을 타 독수리팀은 역전에 성공하고 20점까지 점수 차이를 벌린다. 이때 진관태가 대학팀의 승리를 위해 대승적 결단을 내리는데, 라커룸을 직접 찾아가 적룡의 다친 무릎을 접골술로 치료해 준다. 다시 경기에 투입된 적룡은 경공(輕功)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기예를 선보이며 승리를 차지한다. 적룡은 우승 트로피 뿐 아니라 아름다운 진의령의 마음까지 얻는다.

&lt;연경인&gt;에서 농구 시합 중인 적룡

불타는 여름

적룡은 힘들 때 도움을 줬던 진관태를 은인으로 보답하긴커녕 진의령을 앞세워 잘난 척하기 바쁘다. 여자친구의 변심에도 진관태는 아랑곳 없이 무술 시합 준비에만 열중한다. 한편 음악 동아리의 우마는 야구부와 무술반 친구들이 부럽다. 그도 땀 흘리며 열혈청년으로 거듭나 대회에서 우승을 하여 아름다운 여인을 쟁취(?)하고 싶다. 무술반을 기웃거리던 우마는 놀림감이 되고, 괜히 공연 연습에 매진하던 음악 동아리 친구들에게 화를 낸다. 강대위는 짜증 가득한 우마의 속마음을 간파, 남자 단원들만 불러 자기 집으로 데려간다.

강대위의 집은 실내 무술 수련장을 여러 개 갖춘 대저택이었다. 강대위는 친구들에게 수련장을 내주고 무술을 가르쳐 준다. 사실 강대위는 홍콩의 이름난 무도가의 아들이었다. 부자이기도 해서 십여 명의 동아리 부원 식사와 맥주를 무제한 제공하며 이들의 수련을 돕는다. 강대위야 말로 장철이 생각하는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임이 분명히 드러난다. 땀 흘리는 남학생들에게만 관심을 기울이는 사이 여학생들은 병풍 같은 존재로 전락한다. 장철 감독에겐 성차별이 부끄럽지 않고 당연하다. 이때는 그런 시대였다.

12번의 시합

진관태가 참여한 무술시합은 총 12번을 싸워 이겨야 우승 트로피를 거머쥘 수 있다. 무술 시합 장면은 농구 시퀀스에 비해 훨씬 더 잘 만들어 졌다. 쇼 브라더스 스태프들이 계속 반복해 오던 것이니 당연한 결과다. 토너먼트는 가볍게 통과한다. 이번에도 관객석에 음악동아리, 야구부원들이 모두 총출동했는데, 양복과 선글라스로 멋을 낸 적룡 옆에 진의령이 앉아있다. 결승전에서 진관태는 상대인 왕청(王靑 / Wong Ching)에게 고전한다. 왕청의 무술을 자세히 관찰한 강대위는 그를 이길 수 있는 파훼법을 생각해 내 진관태에게 알려준다. 진관태는 덕분에 왕청을 꺾고 우승을 차지하고 진의령은 또다시 적룡을 버리고 진관태의 품에 안긴다.

우정은 남자에게 허락된 것!

진관태와 적룡은 진의령 때문에 결국 난투극을 벌이게 된다. 진의령은 자기 때문에 두 남자가 싸우는 게 무섭지만 한편으론 즐겁다. 강대위는 둘이 싸운다는 소식을 듣고 음악 동아리 남자들을 이끌고 이 난투극에 개입한다. 음악동아리 남자들은 그동안의 수련으로 실력이 늘어 무력으로 싸움을 멈추게 하는데 성공한다. 싸움을 통해 강대위와 적룡, 그리고 진관태는 서로에게 끈끈한 정을 느끼게 된다. 이 싸움을 계기로 진의령은 두 명의 남자에게 모두 버림을 받는다. 장철 감독은 대놓고 사람 대신 그 사람이 가진 타이틀을 사랑하는 진의령을 비웃는다.

드디어 맺어진 세 남자의 우정은 카트 레이스 시퀀스에 절정을 이룬다. 보기 드물게 쇼 브라더스 스튜디오를 벗어나 야외 로케이션으로 찍힌 이 장면은 <연경인>의 클라이막스이기도 하다. 강대위의 라이벌은 작년 우승자와 싱가포르에서 온 카레이싱 선수. 진관태와 적룡은 강대위를 반드시 우승자로 만들자 결의를 하고, 시합 도중 이 라이벌을 각자 한 명씩 맡아 자폭 레이싱을 펼친다. 덕분에 강대위는 1등으로 결승점을 통과한다. 진의령은 제 버릇 못 고치고 이번엔 우승자 강대위의 품에 안기려고 달려드는데, 강대위는 그녀 대신 친구들과 얼싸안으며 일침을 가한다.

카트 레이스 우승 뒤 강대위에게 달려드는 진의령

축제

영화의 마지막은 음악 동아리의 대학 축제 공연이 차지한다. 첫 부분과 마찬가지로 강대위의 드럼 솔로를 시작으로 공중에서 순백의 옷을 입고 노래하는 진미령의 퍼포먼스, 그리고 세 주인공 강대위, 적룡, 진관태가 덤블링 등 아크로배틱 한 무술 곡예를 펼치며 끝을 맺는다. 강대위가 드럼칠 때 옆에서 북을 치는 남자들 중에 부성(傅聲 / Alexander Fu Sheung)의 모습도 보인다. <연경인>은 멋진 남자와 예쁜 여자들이 나와 뮤지컬과 액션을 보여주는 쇼브라더즈 제공의 엔터테인먼트인 동시에 쇼 브라더스 훈련반 배우들의 실습 작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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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경인(年輕人 / Young People) 1972년 - 1부 대학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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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우삼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따라 가려면 <연경인> 리뷰 1부를 확인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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