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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도성타왕(龍的傳人 / Legend of the Dragon) 1990년 - 3부 비범한 주인공

by homeostasis 2023. 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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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오 섬에서 왕자처럼 지냈던 주소룡은 홍콩행을 결심하고 아인을 따라나선다. 주소룡이 급히 홍콩을 가려는 데는 소꿉친구처럼 지냈던 아모의 마음을 알았기 때문. 주소룡과 아모의 감정선을 잘 끌고 나가면 '사랑을 알아보지 못하고 나중에 후회하는 남자''일편단심 사랑 주는 여자'의 절절한 로맨스가 가능하다. 분명 <도성타왕>은 거기까지 가지 않는다. 남녀의 사랑보다 아버지 주비홍과 아들 소룡 간의 부자정(父子情)에 더 관심을 쏟는다. 주성치&이력지 콤비는 이 모티브를 계속 발전시켜 나가 <식신>, <희극지왕>, <소림축구>의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멜로를 완성한다.

왕자와 거지

홍콩에 입성한 주소룡이 마천루를 배경으로 당당히 서 있는 장면이 나온다. 다음 컷은 이 앵글을 굳이 만들려고 공중전화박스 위에 올라선 주소룡의 모습이다. 이때 아인이 주소룡에게 대체 지금 뭐 하는 거냐 묻게 함으로써 개그 하나가 완성된다. 주소룡은 머리부터 발끝까지(옷도 인민복을 입었음) 시대착오적이다. 정작 본인은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멋있다고 믿는다. 홍콩에 도착함과 동시에 아인의 실체도 만천하에 드러난다. 채무자들은 추심업자인 아인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인은 빚을 받기 위해 미장원 사장(엽자미(葉子楣 / Amy Jip Ji Mei)을 찾아가는데, 그녀가 사정을 하자 빈손으로 돌아설 뿐 아니라 주비홍에게 받은 돈까지 더 빌려준다. 

공중전화박스에 올라서 있는 주성치

미장원 사장을 연기한 엽자미는 홍콩 ATV 소속 탤런트로 연기생활을 시작했다. 그녀가 주목받은 것은 글래머러스한 몸매 때문. 특히 가슴 사이즈로 유명세를 탔는데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무수한 영화들에서 이쪽 방면으로 소비당했다. 나중에는 아예 3급영화로 방향을 틀어 경력 후반기에 찍은 <옥보단>이 그녀의 대표작이 되었다. <도성타왕>에서 주성치는 엽자미의 가슴을 보고 아무 말 없이 카메라를 꺼내 다짜고짜 사진을 찍는데, 이 상황이 엽자미의 배우 커리어를 단적으로 상징하는 장면 같다.

한편 아인은 주소룡을 데리고 홍콩 구경시켜 준다는 명목으로 여기저기 끌고 다니는데, 늦은 저녁을 먹던 중 22시가 되자 주소룡은 죽은 듯이 잠에 빠진다. 진지하게 생각하지 말자. 주소룡은 밤 10시가 되면 어디서든 곧바로 잠에 빠진다는 설정이다. 아인은 주소룡을 집까지 겨우겨우 끌고 오지만, 조직원들이 빚을 받으려고 기다리고 있다. 본인이 고리대금업자이면서 한편으로는 채무자로 조직두목 용형(용방 / 龍方 / Lung Fong)의 빚독촉에 시달리는 처지!! 아인은 무술 실력으로 둘을 쫓아내지만,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일 뿐. 조만간 깡패들이 잔뜩 몰려올 것이 분명하다. 아인은 비정하게도 잠든 주소룡을 내버려 둔 채 홀로 도망친다.

주인공은 비범해야 한다

잠시 후 체구 좋고 살벌한 외모의 중간보스가 아인의 방문을 부순다. 중간보스를 연기한 이는 당시 악역으로 한창 주가 상승 중이던 성규안(成奎安 / Shing Fui-On)이다. 성규안은 이수현이 제작한 <공업>, <황가반>, <벽력선봉>, <첩혈쌍웅> 등을 통해 명실상부한 홍콩 최고의 악역으로 성공할 수 있었기에, 그가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갔다. 과연 성규안은 별거 아닌 역할이지만 프레임에 등장하자마자 압도적인 아우라를 뽐낸다.

중간보스와 조직원들은 잠들어 있는 주소룡을 어떻게든 깨워보려 하지만 도대체가 일어나질 않는다. 집단 구타도 소용한다. 대신 시계 알람이 울리자, 조신하게 눈을 뜨고 기지개하는 주성치의 모습에 폭소가 터진다. 주소룡은 그의 이름대로 이소룡 식의 발차기와 우산을 무기로 사용해 악당들을 물리친다. 성규안은 포권까지 하며 주성치의 무술 실력을 추켜 세운 뒤 손에 수류탄 하나를 쥐어주고 떠난다. 주소룡의 대역을 한 스턴트맨이 화염에 휩싸인 집 베란다에서 점프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입이 떡 벌어진다. 스턴트맨은 앞을 보며 뛰는 게 아니라 시야를 하늘로 향한 채(배영 자세로) 점프한다. 이 당시 홍콩 스턴트맨들은 정말 미친 것 같다.

숨어있던 아인은 용케 살아남은 주소룡을 데리고 당구장으로 향한다. 당장 잘 곳이라도 마련하려면 돈이 필요한데 집이 타버리는 바람에 완전 빈털터리. 그래서 내기 당구를 통해 목돈을 쥐려고 한다. 이곳에서 아인은 딱 호구처럼 보이는 상대를 찾아 내기시합을 청하고, 그동안 주소룡은 건물 앞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아인을 기다린다. 멍청하게 생긴 상대는 알고 보니 당구고수였고, 아인은 돈을 따긴커녕 엄청난 빚까지 지게 생겼다. 마침 당구장으로 자신을 찾아 들어온 주소룡을 보자 아인은 나 대신 칠 거라고 큐대를 넘기고 도망을 친다. 혼자 살겠다고 정신없이 달려가던 중 양심이 아인의 발목을 붙잡는다. 그래도 내가 이러면 안 되지. 마음을 다잡은 아인이 칼을 들고 당구장에 난입하는데, 어랍쇼? 게임의 승리자는 주소룡이고, 당구 고수는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다. 주소룡이 당구의 초고수임을 아인은 이제야 알게 된다.

하지만 영화는 주소룡의 당구 실력을 사전에 미리 예고했다. 타이오섬에서 동네 꼬마들을 상대로 당구 시합에서 승리하는 장면, 그리고 건물 앞 계단에 무수히 떨어져 있는 바퀴벌레(이건 모두 주소룡이 우산 끝을 사용해 잡은 것)가 그 단서들이었다. 촌놈이라고, 아이들하고 시합에서 이겼다고 무시했기 때문에 몰라본 것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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