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성룡5

캐논볼 2 (The Cannonball Run 2) 1984년 - 두 번은 안 통한다!! 전편보다 나은 속편은 없다고 했다. 1편은 최저 수준에 가까운 영화라, 조금만 더 노력했으면 이 공식을 깰 수 있었다. 하지만 제작진은 1편의 공식을 게으르게 반복하며, 기어코 최악의 영화를 만들게 되니, 평론가 로저 이버트는 "관객의 지적 수준을 시험하는 심각한 모욕"이라 분노를 터트렸다. 만장일치에 가까운 악평 세례에도 불구하고 는 손익분기점을 돌파하며 손해 보지 않는 장사를 했다.는 여러 죄를 범했는데, 첫째 관객을 기만했고, 둘째 제작자에게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을 만들 여지를 제공했으며, 셋째, 그것도 모자라 바다 건너 홍콩의 감독 왕정(王晶 / Wong Jing)을 비롯, 여러 제작자에게 스타들을 모아 짧은 시간에 영화를 완성하면 돈을 벌 수 있다 하는 나쁜 선례를 만들었다. 1. 게으.. 2024. 4. 24.
캐논볼(The Cannonball Run) 1981년 - 이것은 영화인가, 배우들 친목 모임을 찍은 것인가 어디에나 쓸데없는 일에 목숨 거는 사람들이 있다. 1970년대 미국에서 이런 사람들이 모여 캐논볼이라 불리는 불법 레이싱 경주를 개최했다. 동부의 코네티컷에서 서부의 캘리포니아까지 최단 시간 안에 주파하는 자가 우승을 차지했다. 여기서 승부의 관건은 고속도로 순찰대의 과속 단속을 피해야 한다는 데 있었다. (1977년)로 카 스턴트 & 액션 코미디의 유행을 선도했던 할 니드햄(Hal Needham) 감독은 캐논볼 경주의 실제 주최자 중 한 명인 작가 브록 에이츠(Brock Yates)와 함께 1979년 다섯 번째 캐논볼 대회에 직접 출전한 경험을 바탕으로 영화 을 만들었다.은 영화의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에게 심각한 질문을 던진다. 과연 영화를 이렇게 만들어도 괜찮은 것인가? 거액(촬영시간 대비)을 받.. 2024. 4. 13.
레일로드 워(鐵道飛虎 / Railroad Tiger) 2016년 - 1부 홍콩의 성룡에서 중국의 성룡으로! 성룡 영화에서 골든하베스트(嘉禾 / Golden Harvest) 대신 상하이필름그룹(上海電影 / Shanghai Film Group)의 로고를 보는 기분은 참으로 씁쓸하다. 성룡 본인의 말대로 시간이 흐르면 세상도 변하고 사람도 변한다. 영원한 것은 없다. 지금 돌이켜 보면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기점으로 성룡은 홍콩이 아닌 중국인이 되려 결심한 것 같다. 본인의 마음이야 어떻든 간에 전 세계의 팬들은 성룡 하면 홍콩 경찰 진가구, 홍콩 해경 마여용을 떠올린다. 이 사실을 너무 잘 아는 성룡은 이때부터 자기 정체성을 영화적으로 재확립하는 작업에 돌입한다. 본격적인 첫 중국영화 은 전국시대로 회귀하여 홍콩 색깔을 지운다. '돈이 최고'라 외쳤던 아시아의 매 재키가 (사실상 의 3편인)에선 애국심에 불타.. 2024. 1. 3.
제패(除覇 / Fist to Fist) 1973년 - 오우삼, 원화평, 그리고 성룡의 교차점 8~90년대 홍콩영화의 위대함을 전 세계에 알린 세 명의 영화인이 신인 시절에 한 영화에서 만난 적이 있다. 이소룡 신드롬과 더불어 우후죽순 쏟아졌던 저예산 쿵후액션 중 하나인 는 원화평이 무술연출, 오우삼이 조감독, 그리고 성룡이 단역과 스턴트맨으로 참여했다. 영화 자체는 당시 유행하던 스파게티 웨스턴을 쿵후 액션 장르로 번안한 수준이다. 저예산이라 로케이션 분량이 대부분이고, 촬영과 미술 등도 평이하다. 그런데 스토리와 인물의 감정은 엄청 비장하여 여기서 나오는 언밸런스가 묘한 매력을 주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재앙과 같은 영화지만 70년대 쿵후액션영화를 좋아하거나, 오우삼-원화평-성룡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꽤 흥미로운 영화가 될 것이다. 영화가 반환점을 돌고 나면 나머지는 싸움과 싸움과 싸움.. 2023. 8. 22.
오우삼(吳宇森 / John Woo Yu-Sen) - 3부 젊은 날의 방황 대략 1970년에서 1972년까지 오우삼은 장철 감독 연출부에 속해 있었다. 이 시기 장철 감독은 동시에 3~4편을 연출하는 아주 바쁜 스케쥴을 소화하고 있었다. 동세대 다른 감독들이 대학에서 영화 연출 공부를 했다면, 오우삼의 학교는 장철 감독의 현장이 아니었을까. 오우삼이 조연출로 정식 크레디트를 받은 작품은 , (1972년), (1972년), (1972년), 그리고 (1973년), 이렇게 4편이다. 시네필 모임 장철 감독과의 인연을 설명하려면 다시 씨네필 모임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 오우삼은 문화 활동가들이 운영하는 비인가 기관에서 하는 연기, 영화 이론 수업을 들었다. 여기서 영화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이들과 교류를 가지면서 함께 영화를 보고, 토론하고, 더 나아가 실험 단편 영화를 찍었다. 당시 .. 2023. 6. 5.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