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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두번 봐도 재밌는 영화(★★★)

일라이(The Book of Eli) 2010년 - 2부 줄거리 등 상세 정보

by homeostasis 2025.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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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1) 종말 이후

초록이라곤 낌새도 없다. 이런 숲을 숲이라 부를 수 있을까? 잿가루가 눈처럼 흩날린다. 이곳은 죽음의 숲이다. 여기에 시체 한구가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다. 이건 사냥을 위한 미끼다. 깡마른 고양이 한 마리가 경계심을 풀지 않은 채 시체로 접근하자, 카메라는 매복 중인 일라이(덴젤 워싱턴 / Denzel Washington)를 비춘다. 방독면을 쓴 일라이의 얼굴은 지면과 거의 같은 높이에 있어, 사람인지 바위인지 분간이 안 된다. 고양이가 다가올수록 거친 숨소리도 잦아진다. 때가 왔을 때 일라이는 석궁의 방아쇠를 당긴다. 힘차게 날아간 화살이 고양이의 목을 꿰뚫는다. 일라이는 먹이를 획득하는 데 숙련된 기술과 전략이 있다. 

숲 밖의 세상 또한 색이 없다. 모조리 무채색이다. <일라이>는 컬러 영화지만, 색을 빼서 흑백영화처럼 보인다. 도로와 건물은 파괴되어 흉물이 된지 오래다. 일라이는 그 폐허 속을 혼자 걸어간다. 그에겐 분명한 목적지가 있다. 하지만 지금이 어디쯤이고, 언제 그곳에 닿을지를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 일라이가 지금 필요한 것은 신발이다. 지금 신고 있는 것은 닳아 걷기 불편하다. 일라이는 버려진 집을 발견한다. 먼저 부엌으로 가 수도꼭지를 돌려 본다. 역시나 수도 꼭지에선 아무 반응이 없다. 오늘도 수통에 물을 채우긴 글렀다. 대신 목을 매달고 죽은 시체 한구를 발견한다. 시체는 신발을 신고 있다. 일라이는 그 신발을 신어 본다. 자기 발에 딱 맞는다.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

밤이 찾아오고  일라이는 사냥한 고양이를 손질해 구어 먹는다. 고기 냄새를 맡고 쥐 한 마리가 다가온다. 일라이는 기꺼이 고기 한 점을 던져준다. 어디선가 득템 한 KFC 일회용 물티슈로 몸을 닦는다. 일라이는 편히 앉은 다음 이어폰을 끼고 아이팟의 전원을 켠다. 알 그린(Al Green)의 소울, <How Can You Mend A Broken Heart>가 적막했던 영화에 온기를 불어 넣는다. 음악은 희미해져 가는 문명의 기억을 순간적으로 되살린다. 잠시나마 마음의 안식을 찾은 일라이는 가방에서 두꺼운 책을 꺼내 한 구절씩 꼭꼭 씹어먹듯 읽어 내려간다. 그 책이 무엇인지, 우리는 내용을 보지 못해도 알 수 있다. 일라이는 문명의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이며, 그래도 인간답게 살려고 노력하는 자다. 그 안간힘의 바탕에 '책'이 큰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 약육강식

해가 뜬다. 잠에서 깬 일라이는 에어팟이 방전된 것을 알고 시름에 잠긴다. 그 옛날 원시시대에도 인간은 동굴 벽에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예술은 먹고 마실 수 없지만 영혼이 병들지 않게 하는 필수요소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또다시 길을 나선 일라이는 도움을 요청하는 여인과 마주친다. 그녀는 사냥을 위한 미끼다. 이 세상에서 인간은 짐승과 다름없다. 그들은 인간의 양심을 이용해 덫을 놓고 사람을 사냥한다.

일라이는 불한당들에게 둘러 싸인다. 하지만 조금의 두려움도 없다. 불한당의 리더는 일라이의 육신, 그 자체를 탐한다. 인육을 먹고 살아가는 자들이다. 일라이는 상대가 방심한 틈을 노려 마체테를 휘두른다. 리더의 손목이 순식간에 뎅강 잘려 나간다. 손목에서 피가 분수처럼 터져 나온다. 불의의 기습을 당한 리더는 이미 떨어져 나간 손목을 바라보며 비명을 지른다. 남은 자들이 온갖 원시적인 무기를 들고 일라이를 공격한다. 일라이는 막고, 베고, 막고, 찌르기를 반복해 이들의 목숨을 빼앗는다.

 

3) 표지판

얼마나 걸었을까? 고가 도로 위를 걷던 일라이는 끊어진 다리에 멈춰서 그 아래서 벌어지는 살육의 현장을 지켜본다. 중년의 부부가 일군의 폭주족 무리에게 공격받고 있다. 여자는 강간의 대상이 된다. 일라이는 참견하지 말자고 혼자 되뇌인다. 지금에 와서 이 살육을 막을 도리가 없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분노를 삭이며 제 갈 길을 가던 일라이는 물 표시가 그려진 이정표를 발견한다. 문명이 파괴된 세상에서도 적응력 강한 인간들이 마을을 만들었나 보다.

도착한 그곳은 서부 개척시대의 마을을 닮았다. 건물 위에 보초들이 총을 들고 경계를 서고 있다. 남녀노소, 제법 많은 사람들이 보인다. 하나같이 선글라스를 쓴 마을 사람들이 낯선 일라이의 등장에 관심을 기울인다. 일라이는 곧바로 엔지니어(톰 웨이츠 / Tom Waits)의 가게를 찾는다. 그는 마실 물과 에어팟 충천을 원한다. 돈은 사라진 지 오래라 거래는 오로지 물물교환이다. 엔지니어는 일라이를 경계한다. 일라이는 해치러 온 것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한참 노력해야 한다. 엔지니어가 겨누고 있는 총을 눈 깜짝할 사이 뺏은 일라이는 '나는 너를 죽일 의사가 없다'라고 밝힌 후 되돌려준다. 그제야 공정 거래가 시작된다.

일라이는 벙어리장갑, 양념 소스 등을 주고, 그 대가로 에어팟 충전을 요구한다. 엔지니어는 완충까지 반나절 이상이 걸릴 것이라며 근처 바(Bar)가 있으니 들러보라 권한다. 일라이는 계속 기다리겠다며 제안을 거절한다. 서로가 서로를 믿어선 안 되는 세상이다. 그때 마을로 들어오는 오토바이 소리가 들린다. 아까 여행자 부부를 살해한 폭주족들이다. 일라이의 신경이 곤두선다.

 

4) 지배자

이 마을의 지배자는 카네기(게리 올드만 / Gary Oldman)라는 늙은 남자다. 그는 멸망 이전의 기억을 갖고 있다. 즉, 글을 읽고 쓸 줄 안다는 뜻이다. 영화에서 처음 등장할 때 카네기는 무솔리니 평전을 읽고 있다. 그가 권력, 통치술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카네기의 힘은 지식에서 나오고, 물리적인 폭력은 용병 대장 레드리지(레이 스티븐슨 / Ray Stevenson)에게 위탁하고 있다.

일라이가 고가도로 위에서 목격한 폭주족 두목 마르츠(에반 존스 / Evan Jones)는 책을 잔뜩 가져와 카네기에게 바친다. 카네기는 어떤 책을 간절히 찾고 있는데, 사냥꾼들 대부분이 글을 몰라 책만 발견하면 무조건 그에게 바친다. 마르츠가 가져온 것들은 <다빈치 코드> 같은 페이퍼북 소설과 잡지 따위다. 혹시나 했던 카네기는 이내 관심을 접는다. 마르츠는 여행용 샴푸도 갖다 바친다. 마르츠는 샴푸의 용도를 알지 못한다. 카네기는 노력의 대가로 술과 여자를 제공한다. 카네기는 '어쩌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마지막 샴푸'로 연인 겸 노예 클라우디아(제니퍼 빌스 / Jennifer Beals)의 머리를 감겨 준다. 앞을 보지 못하는 클라우디아는 샴푸의 향기에 놀라워한다. 

 

5) 응징자 

충전이 완료될 때까지 한 발짝도 안 움직일 것 같던 일라이가 폭주족 마르츠 일행이 있는 술집으로 향한다. 일라이는 바텐더(애런 쉬버 / Arron Shiver)에게 가서 수통을 내민다. 바텐더는 물을 주기 전에 일라이의 손부터 검사한다. 인육을 먹는 사람인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사람 고기에 중독된 사람은 부작용으로 손이 떨리고, 이 마을은 인육 먹는 사람과의 거래가 금지되어 있다. 일라이는 물 한 통의 대가로 벙어리장갑 등을 지불한다. 바텐터는 솔라라(밀라 쿠니스 / Mila Kunis)를 불러 비표를 주며 물을 받아오라 시킨다. 솔라라는 낯선 일라이를 몰래 관찰한 뒤 물을 뜨러 간다. 뒤뜰엔 물을 구하러 온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다. 카네기의 부하 레드리지는 솔라라를 보고 아는 체 한다. 레드리지는 솔라라를 마음에 두고 있다. 솔라라는 레드리지를 무시하고 일라이의 수통에 물을 가득 채운다.

그 사이 술집 안에선 시비가 일어난다. 폭주족 마르츠가 바에 앉아 있던 일라이를 찝쩍댄다.그는 건드리지 말아야 할 사람을 건드렸다. 가만히 있던 일라이가 번개처럼 마르츠를 공격한다. 얼마나 세게 쳤는지 단 일격에 마르츠의 숨이 끊겼다. 마르츠의 동료들이 일라이를 에워싼다. 그는 커다란 마테체로 이들과 맞선다. 칼이 움직일 때마다 마르츠 일행의 수가 하나씩 줄어든다. 2층에서 이 싸움을 지켜본 카네기는 일라이의 놀라운 살육 솜씨에 강한 인상을 받는다.

 

6) 회유

카네기는 일라이를 초대한다. 두 사람 모두 문명을 기억할 만큼 나이를 먹었다. 카네기는 늙은이들이 이 세상의 미래라며 씁쓸해한다. 그는 일라이에게 자신의 비전을 밝힌다. 카네기는 이 마을을 거점으로 해서 자신의 세력을 넓혀갈 생각이다. 그 과정에서 일라이 같은 특급 전사가 필요함은 말할 것도 없다. 카네기는 물, 음식, 편히 쉴 수 있는 숙소를 제공할 테니 함께 일하자고 제안한다. 일라이는 할 일이 있다며 완곡히 거절의 뜻을 밝힌다. "갈 데가 있소." "어디?" "서쪽" "서쪽은 아무것도 없어." "내가 들은 것과 다르군요." 카네기는 성급히 판단하지 말고 여기서 하루를 묵은 다음 내일 아침에 다시 말하자고 일라이를 억지로 주저앉힌다.

방으로 안내된 일라이는 세심하게 주변을 살핀다. 잠시 후 클라우디아(제니퍼 빌스 / Jennifer Beals)가 음식과 물을 갖고 온다. 일라이는 클라우디아도 세심히 살핀다. "눈은 전쟁 때문에 안 보이게 된 거요, 아니면 햇빛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요." 처음부터 안 보였던 탓에 전쟁 이후 갑자기 눈먼 사람들과 달리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며 미소를 짓는다. 일라이는 향기가 참 좋다고 칭찬을 한다. 클라우디아는 샴푸 향일뿐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응대한다.

카네기는 클라우디아를 불러 일라이에 대한 인상을 묻는다. "보통 사람과 달라요." 그녀는 일라이가 의지와 신념이 굳건한 사람임을 알아봤다. 클라우디아의 호평은 카네기의 자존심에 불을 지른다. 카네기는 클라우디아의 딸 클라라로 하여금 일라이와 하룻밤 자도록 지시한다. 클라우디아는 그러지 말라 애원하지만, 겁에 질려 마음껏 소리를 지르지도 못한다. 그녀는 카네기의 연인이 아니라 소유물일 뿐이다.

 

7) 기도

오랜만의 따뜻한 잠자리를 갖게 된 일라이는 책을 읽으며 마음의 평안을 얻고자 한다. 이때 노크 소리가 들리며 솔라라가 들어온다. 일라이는 더 이상 필요한 게 없다. 얇은 슬림만 입고 들어온 솔라라는 다른 것(?)을 주겠다며 가까이 다가온다. 두 사람 사이의 너무 가까운 거리는 솔라라의 의도가 무엇인지 분명히 드러낸다. 일라이는 바로 거리를 벌리며 문을 열고 나가라고 말한다. 일라이의 단호한 의지를 확인한 솔라라는 제발 여기 있게 해 달라 애원한다. 카네기의 명령으로 왔고, 그것을 제대로 완수하지 못한다면 엄마 클라우디아가 대신 벌을 받는다. 클라우디아와 솔라라 모녀는 카네기의 소유물임이 다시 한번 확인된다.

일라이는 그녀에게 침대 한켠을 내어 준다. 솔라라는 이불 밑에 감춰둔 책을 발견하고 호기심이 생긴다. 그걸 눈치챈 일라이가 솔라라의 쏟아지는 질문을 차단하며 자기 몫의 음식을 함께 먹자고 제안한다. 항상 배가 고픈 솔라라는 책을 잠시 잊고 식탁에 앉는다. 식사 전 일라이는 솔라라의 손을 잡고 주기도문을 외운다. "친구를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힘든 시련을 이겨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도는 솔라라의 마음에 따뜻함, 진실함 같은 것들을 불어넣는다. 이렇게 사람을 감화시키고, 변화하게 만드는 힘! 카네기가 '책'을 간절히 구하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8) 기적

날이 밝자 카네기는 솔라라를 불러 지난밤 일을 묻는다. 솔라라는 대화를 많이 나누지 못했다며 거짓을 말한다.  밤새 솔라라를 걱정하며 잠 못 이뤘던 어머니 클라우디아는 딸에게 아침 식사부터 권한다. 잘 차려진 음식은 어제 일에 대한 보상일까? 클라우디아의 걱정 가득한 표정에 솔라라는 식사를 앞에 두고 어머니를 안심시켜 주고 싶다. 그래서 어제 일라이가 했던 대로 어머니의 손을 잡고 주기도문을 외운다. 일라이의 기도가 안식을 준 것처럼, 솔라라 또한 어머니에게 위안을 주고 싶다. 솔라라의 엉성한 기도문에 카네기는 득의의 미소를 짓는다. 클라우디아의 머리채를 발작적으로 잡아채며 솔라라를 협박한다. "일라이가 그 책을 갖고 있나?" 침묵하기로 일라이와 약속했던 솔라라는 어쩔 줄 몰라 눈물만 흘린다. "어떤 문양이 그려져 있었지?" 계속된 카네기의 물음에 솔라라는 손으로 십자가 모양을 만든다. 

카네기는 레드리지를 불러 급히 일라이가 묵었던 방으로 향한다. 하지만 안에 아무도 없다. 레드리지는 불침번을 맡았던 부하를 바로 쏴 죽인다. 그는 밥값을 하지 못했다. 그 시각, 일라이는 엔지니어에게 맡긴 아이팟을 회수해 나오는 길이었다. 가게 문을 열자, 자신을 포위한 카네기와 부하들이 보인다. 지붕 위에 저격수들이 그를 조준하고 있다. 카네기는 책을 넘기라고 고상하게 말한다. 이 마을이야말로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하다는 카네기의 궤변을 일라이가 단호히 거부한다. 이 책이 머물 곳은 하나님이 정한다. 일라이는 무수히 많은 적들을 뒤로하고 아무 일 없다는 듯 제 갈 길을 간다.

카네기와 레드리지가 보기에 일라이는 미친 놈이다. 카네기의 명이 떨어지자 레드리지가 무방비 상태의 일라이를 향해 총을 쏜다. 등 돌린 상대를 쏘아 죽이는 일은 누워서 떡 먹기다. 하지만 총알이 빗나간다. 다시 한번 쏘는데 이번엔 일라이의 옷깃만 스친다. 레드리지는 이 상황을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 일라이가 그제야 권총을 꺼내들고 반격에 나선다. 일라이가 방아쇠를 당길 때 마다 카네기의 부하들이 쓰러진다. 일격필살이다. 총알이 떨어지자, 산탄총을 꺼낸다. 비탄이 카네기의 무릎에 박힌다.

부하들이 부상당한 카네기를 실내로 옮기는 동안 레드리지가 계속해서 일라이를 노린다. 엄폐 중인 일라이가 그 순간 천천히 몸을 일으켜 레드리지의 시야 앞에 자신을 드러낸다. 레드리지는 양손으로 권총을 잡고 일라이를 겨눈다. 일라이는 아무 표정의 변화없이 레드리지를 바라본다. 그 순간 레드리지는 이상한 느낌, 왠지 일라이를 죽이면 안 될 것 같아 들고 있던 총을 내린다. 일라이는 제 발로, 천천히 마을 입구로 걸어간다. 이 싸움을 지켜본 마을 사람들과 솔라라는 기적을 본 듯 큰 충격을 받는다.

 

9) 동행자

혼자 사막을 걷던 일라이는 쫓아오는 발걸음 소리를 듣는다. 그 소리의 주인공은 솔라라다. 함께 데려가 달라고 조른다. 어머니 클라우디아가 일라이와 함께라면 안전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일라이는 그럴 생각이 없다. 태어나서부터 상대를 설득하는 방법이라고 거래 밖에 모르는 솔라라가 물이 있는 곳을 가르쳐 줄 테니 그 대가로 동행을 요구한다. 둘은 물이 있는 곳에 도착한다. 입구를 지키는 경비병을 제압하고 안으로 들어간다. 동굴 속에 먹을 수 있는 물이 흐른다. 솔라라는 카네기가 여기 말고도 두 곳을 더 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위치는 카네기만 알 뿐이다. 이것이 그의 힘이다. 카네기는 물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마을을 더 만들 생각이다. 황폐해진 세상에 자신만의 왕국을 세우려는 의도다. 일라이가 가진 책은 그 길로 향하는 무기와 같다. 수통에 물을 채운 일라이는 출입구 근처에 와서 선글라스를 놔두고 왔다며 솔라라에게 가져와 달라 부탁한다. 먼저 나온 일라이는 밖에서 문을 잠근다. 솔라라와 함께 가기에 그의 앞에 놓은 길은 너무 위험하다.

한편 무릎을 다친 카네기는 눈앞에서 성경을 놓친 것이 너무 분하다. 레드리지에게 일라이의 추격을 명하는데, 반응이 시원치 않다. 부하를 제법 잃었다고 새로운 조건을 제시한다. 그가 원하는 것은 솔라라다. 카네기는 흔쾌히 수락한다. 레드리지는 그제야 적극적으로 움직인다. 보유 중인 병력을 모두 동원해 일라이 사냥에 나선 레드리지가 출발 전 카네기에 묻는다. "어느 방향으로 갈까?" 일라이와 나눴던 대화를 기억하고 있는 카네기가 답한다. "서쪽으로!"

 

10) 인도자

솔라라는 일라이를 잃고 혼자 황무지를 헤맨다. 얼마쯤 왔을까? 웬 여인이 도움을 청하는 소리에 솔라라가 응답한다. 여인은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녀는 상대가 젊은 여자(솔라라)인 걸 알자 당황하며 '빨리 도망쳐라' 작게 속삭인다. 함정이었다. 남자 둘이 솔라라를 노리고 다가온다. 도망치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괴한들은 큰 파이프 안으로 솔라라를 끌고 가 강간을 시도한다. 솔라라는 격렬하게 저항해 보지만 상대가 안 된다. 한 놈이 음흉하게 웃으며 바지춤을 내릴 때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이 그의 아랫도리를 꿰뚫는다. 다른 한 놈 역시 얼굴에 화살을 맞고 쓰러진다. 활을 쏜 사람은 다름 아닌 일라이였다.솔라라는 일라이를 껴안고 흐느낀다. 일라이는 솔라라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기다린다. 이제 그녀를 내칠 일은 없을 것 같다. 이 또한 신의 뜻이리라. 

카네기는 저 멀리 까마귀 떼를 보고 손가락질을 한다. 그곳에 일라이에 의해 처단된 두 괴한의 시체가 있다. 부하들 사이에선 일라이의 신격화가 시작된다. "아무도 그놈을 죽이지 못하는 것 같아." 카네기는 재빨리 부하들의 동요를 잠재우려 한다. "그놈, 아무것도 아냐. 총 한 방이면 죽일 수 있어." 해가 서서히 기운다. 밤에 이동은 무리다. 레드리지와 카네기는 일단 야영을 하고 내일 동트면 추적을 재개하기로 결정한다.

일라이와 솔라라 또한 쉴 곳을 찾아 불을 피운다. 평안이 찾아오자 솔라라는 책에 대해 묻는다. 일라이의 회고가 시작된다. 지금부터 30년 전, 전쟁이 일어났고 하늘이 뚫렸다. 지상의 모든 생명체가 죽음을 면치 못했다. 운 좋은 사람들은 지하에 숨어 화를 피했다. 1년쯤 지나 지상으로 올라왔는데, 그때부터 혼돈의 시작이었다. 일부는 이 책 때문에 전쟁이 일어났다며 보이는 족족 불태웠다. 당시 일라이는 내면에서 신의 목소리를 들었다. 음성을 따라갔더니 돌 더미 아래서 지구상에 유일하게 남은 성경을 발견했다. 그 목소리는 서쪽으로 가라 했고, 일라이는 지금까지 여정을 계속하고 있다. 믿지 못하는 솔라라에게 일라이는 진지하게 자기 말이 진실이라 강조한다.

 

11) 마사와 조지

밤이 깊어간다. 일라이가 잠든 것을 확인한 솔라라가 몰래 가방을 뒤져 책을 꺼내려한다. 하지만 귀신같이 잠에서 깬 일라이가 솔라라를 막는다. "어차피 읽지도 못하잖아." 그렇다. 일라이는 글을 읽을 수 없다. 아침이 되고 일라이와 솔라라는 다시 길을 떠나고, 도중에 외딴집 하나를 발견한다. 울타리 앞에 '출입금지'라는 푯말이 보인다. 오지 말라고 하면 가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이다. 주인을 불러 보지만 답이 없다. 현관 문고리를 돌리려 할 때, 갑자기 '텅'하는 소리와 함께 딛고 있는 바닥이 푹 커진다. 방문객을 노린 함정이었다. 이곳의 주인, 조지(마이클 갬본 / Michael Gambon)와 마사(프란세스 데 라 투어 / Frances de la Tour)가 총을 겨누고 생포한 사냥감을 확인한다. 마사는 솔라라를 '귀여운 여자애'라 부르며 반색한다.

일흔 살은 족히 넘게 보이는 조지와 마사 부부는 용케 전쟁 이전의 느낌의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소파, 양탄자 등 인테리어가 20세기 초의 그것과 흡사하다. 노부부는 일라이와 솔라라를 집 안으로 들여 차를 대접하고, 축음기로 음악도 틀어준다. 일라이는 마사의 손이 심하게 떨리는 것을 보고 긴장한다. 손떨림은 식인의 증거다. 조지는 뒷마당도 구경시켜 준다. 거기에 크고 작은 무덤이 잔뜩 있다. 두 부부가 잡아먹은 사람들의 무덤일 것이다. 마사는 베이컨으로 샌드위치를 만든다. 무슨 고기로 만든 베이컨인지 짐작이 간다. 

조지와 마사는 에드워드 올비(Edward Albee)의 희곡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나(Who's Afraid of Virginia Woolf)'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 희곡은 아이를 너무 원한 나머지 가상의 아들이 존재한다고 믿는 노부부의 이야기다. 종말 이후에도 문명의 생활, 교양이 있는 척 행동하지만 실은 온갖 부비트랩을 설치, 인간을 사냥해서 먹고사는 부부의 모습과 비슷한 구석이 많다.

 

12) 신의 뜻은 없는가?

조지와 마사가 본색을 드러내기 전 일라이가 먼저 총을 꺼낸다. 일라이가 노부부를 무장해제 시키고 집을 떠나려 할 때, 카네기 일당의 차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가온다. 일라이, 솔라라, 조지 & 마사 부부는 한 배를 탄 신세가 된다. 조지 할아버지는 집 곳곳에 엄청난 양의 화기들을 숨겨 두었다. 카네기는 부하들을 앞마당에 도열해 놓고 무력시위를 한다. 책과 솔라라만 넘겨주면 물러나겠다고 제안한다. 이때만 해도 카네기는 일라이쯤 가볍게 제압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안에서 창이 열리더니 수제 폭탄 하나가 날아든다. 이것이 폭발하며 흉험 한 총격전이 벌어진다. 조지와 마사 부부는 무시 못할 전투력으로 카네기 일당에게 심각한 피해를 입힌다. 더 큰 무력이 필요하다. 레드리지는 RPG포를 꺼내 집을 아예 박살내 버린다. 이 공격으로 마사가 즉사하고, 광분한 조지가 람보처럼 미친 무쌍을 보여준다. 하지만 화력은 카네기 쪽이 더 우세했다. 구식 기관총까지 등장하고 조지는 자기가 먹은 사람의 수만큼의 총알 세례를 받고 사망한다.

일라이와 솔라라는 결국 항복을 하고 집 밖으로 걸어 나온다. 카네기는 솔라라의 머리채를 잡고 책을 달라 일라이를 협박한다. 이 와중에 레드리지는 솔라라를 너무 거칠게 대하는 것 같아 불만이다. 그만큼 솔라라에 진심이다. 일라이는 할 수 없이 그의 책을 넘긴다.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은 카네기는 일라이에 대한 부하들의 공포를 잠재우기 위해 복부 쪽으로 총을 한 방 쏜다. 카네기의 부하들은 이번에도 일라이가 살아남을 지 꼼짝않고 지켜본다. 하지만 일라이 역시 사람이었다. 털썩 주저앉아 무릎을 꿇너니 결국 대자로 쓰러진다. 카네기는 일라이를 큰 소리로 조롱한 뒤 울부짖는 솔라라를 차에 태워 철수를 명한다.

 

13) 모든 게 그의 뜻대로

기분 좋게 복귀 중인 카네기 일행. 레드리지는 솔라라를 자기 험비 뒷자리에 태우고 함박 미소를 짓는다. 그는 전리품으로 일라이의 마테체도 뺏어왔다. 이 칼을 대시보드 위에 쓰레기처럼 던지고, 일라이도 별 거 아니었다 생각한다. 방심한 틈에 솔라라는 몰래 로프를 꺼내 운전자의 목을 뒤에서 조른다. 그 바람에 차가 방향을 잃고 몇 바퀴 돌아 멈춘다. 카네기는 뒤따르던 레드리지의 차에 문제가 생긴 걸 보고 급히 핸들을 꺾는다. 솔라라는 무사했다. 차에 함께 탄 이들은 목이라도 꺾인 것인지 미동 하나 없다. 하지만 위기는 계속된다. 굉음을 내며 카네기의 차가 달려는 중이다. 솔라라는 수류탄 하나를 주워 용감하게 투척한다. 카네기는 간신히 수류탄을 피했지만 뒤따라오던 차가 일격을 당해 산산조각이 났다.

솔라라가 급히 운전석으로 가 차에 시동을 건다. 이때 레드리지가 솔라라의 손목을 잡는다. 깜짝 놀라는 솔라라. 하지만 레드리지의 가슴에 일라이의 마테체가 꽂혀있다. 신의 뜻인가? 레드리지는 스스로 가슴에 꽂힌 칼을 뽑고 차에서 내린 뒤 선글라스를 벗어 태양을 바라보다 숨이 멎는다. 솔라라는 일라이의 칼을 챙긴 뒤 즉각 액셀을 밟아 왔던 길로 되돌아간다. 카네기는 솔라라를 그냥 내버려 둔다. 추적하기엔 연료가 모자란다. 성경도 얻었겠다 카네기는 솔라라를 포기하기로 마음먹는다.

솔라라는 다시 노부부의 오두막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일라이가 보이지 않는다. 서쪽으로 얼마쯤 달렸을 때 일라이가 힘겹게 걸음을 떼고 있다. 솔라라는 죽기 직전의 일라이를 부축해 차에 태운다. 일라이는 솔라라에게 자기 탓이라 후회의 말을 전한다. 책을 지키는데 급급해 책의 가르침에는 정작 소홀했다. 그 가르침은 자기보다 남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

마을로 돌아온 카네기는 다리가 썩어 들어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책 역시 못 구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세상에 하나 밖에 남지 않은 그 책은 맹인용 점자책이었다. 우리는 그제야 일라이가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임을 알게 된다. 클라우디아를 불러 책을 읽어보라 하지만, 클라우디아는 자신의 의지로 거절한다. 그녀는 카네기에게 힘의 종말을 알린다. 오른팔 레드리지가 없는 카네기는 이빨 빠진 호랑이에 불과했다. 레드리지의 부하 중 하나가 새로운 권력자가 되어 카네기가 세운 마을을 파괴한다.

일라이와 솔라라는 긴 여정 끝에 금문교에 도착했다. 일라이의 목적지는 한때 '더 록'이라 불렸던 알라트라즈 섬이었다. 노를 저어 섬에 도착한 일라이와 솔라라는 일군의 경비병들이 맞는다. 이곳엔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었다. 지도자 롬바디(말콤 맥도웰 / Malcom McDowell)는 유실됐던 문명의 흔적을 모아 복구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일라이는 롬바디 앞에서 성경을 구술한다. 일라이는 성경을 모두 외우고 있었다. 그가 바로 살아있는 성경이었다. 오랜 필사작업 끝에 성경이 인쇄되어 책으로 만들어진다. 일라이는 하나님의 미션을 완수한 뒤 숨을 거둔다. 솔라라는 롬바디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일라이의 마테체, 가방, 아이팟을 물려받고 다시 고향으로 향한다.

 

2. 영화 정보

북미 개봉일은 2010년 1월 15일이다. 알콘 엔터테인먼트(Alcon Entertainment)와 '액션의 명가' 실버픽쳐스(Silver Pictures)가 공동으로 제작했다. 배급은 워너 브라더스(Warner Bros)가 맡았는데 제작비 8천만 불에 최종 수익 1억 5천7백만 불을 기록했다. 감독은 휴즈 형제(알버트 휴즈(Albert Hughes) & 알렌 휴즈(Allen Hughes))가 맡았다. 각본은 <스타워즈 스토리 - 로그원>의 게리 휘타(Gary Whitta)가 썼다.

빛바랜 듯한 영상은 <피노키오>, <아쿠아맨> 등을 작업한 촬영감독 돈 버지스(Don Burgess)의 솜씨다. 영화 속 격투씬은 덴젤 워싱턴이 직접 연기했다. 촬영 전 이소룡의 절친이기도 한 필리핀 무술가 댄 이노산토(Dan Inosanto)에게 직접 훈련을 받았다. 일라이의 격투기술은 필리핀의 무술 칼리를 바탕으로 짜였다. 영화의 스턴트 코디네이터는 제프 이마다(Jeff Imada)가 맡았다.

이 영화는 종말의 원인이 핵전쟁 때문이라고 직접 언급하지 않는다. 작가 게리 휘타는 간접적으로 이를 추측할 수 있는 단서를 여기저기 남겨두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야외에서 선글라스를 끼는 이유는 핵폭발로 오존층이 파괴되었고, 강한 자외선으로부터 눈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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