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아름다운 여자 주인공 맨디(몽가혜 - 蒙嘉慧 / Yoyo Mung Ka Wai 분)가 카페 유리창을 닦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로맨틱한 멜로 영화의 배경으로 어울릴 것 같은 카페와 상가 거리는 잠시 후 흉폭한 강도 사건의 현장으로 변한다. 사건을 수사하던 중안조 형사들은 이곳에 서로 다른 두 무리의 강도단이 있었음을 깨닫는다. 한쪽은 극악무도한 베테랑 범죄자들, 다른 한쪽은 어설프기 짝이 없는 본토 출신의 초보 범죄자들이다. 경찰은 두 강도단의 위험성을 오판하고, 영화는 예상 밖의 결말을 맞이한다. <비상돌연>은 영화 전체가 아이러니의 연쇄다. 관객의 예상을 시종일관 벗어난다. 예를 들어 극 중에서 중안조 팀장 켄(임달화 - 任達華 / Simon Yam Tat Wah 분)은 잘 생긴 외모와 깔끔한 매너로 여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다. 관객과 켄 자신마저 이를 의심치 않는다. 나중에 자신을 향한 러브 사인이 모두 켄의 착각임이 밝혀진다.
1. 보고 있는 것을 믿지 마라!
<비상돌연>은 경찰과 범죄자의 대결을 그린다. 우리가 수도 없이 봐 왔던 스토리를 갖고 있다. 하지만 완전히 새로운 영화처럼 느껴진다. 익숙한 장르 서사에 현실의 작동 원리인 '우연', '의외성'을 한 방울 첨가한 결과다. 영화의 의외성은 독특한 편집으로 강조된다. 쇼트 - 리쇼트 편집순서를 역으로 뒤집는다. 총격전을 보여준다고 하면 보통의 경우 총 쏘는 사람의 쇼트가 먼저 나오고, 그다음 총에 맞아 쓰러지는 사람을 보여준다. 이 경우 누가 총을 쐈고, 누가 총에 맞았는지 명확히 알 수 있다. <비상돌연>은 반대로 총 맞고 쓰러지는 장면이 먼저 나온다. 뒤의 쇼트를 보기 전까지 누가 총을 쐈는지 알 수 없다.
이런 식의 편집이 계속되면 작위적이라는 반응이 나올 수 있다. 이런 문제를 감수하면서까지 의외성을 강조하는 <비상돌연>은 단지 장르의 규칙을 갖고 놀기 위해서가 아니다. 사실 우연과 예상치 못한 일은 인간사의 핵심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도 이를 피해 갈 수 없다. 영화 속 캐릭터들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우연에 의해 운명이 결정되고, 무슨 일이 생길 치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다. 이런 점이 '강호(江湖)에 몸 담은 자, 강호의 법칙에 따라 죽는다'는 장르의 인과율과 묘하게 이어진다.
<비상돌연>은 영화를 본 사람이면 찬반이 엇갈릴 수밖에 없는 논쟁적인 결말을 갖고 있다. 왜 이렇게 끝을 맺었는지 의도가 궁금해진다. 허무적 운명론일 수도, 혹은 관객과의 단순한 게임일 수도 있다. 누군가는 97년 이후의 불안한 미래를 은유한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정말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일상의 소중함이라 믿는다. 우연과 예상 밖의 상황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래서 더욱 지금 이 순간, 동료들과 함께 먹는 맛있는 식사, 연인과 나누는 잠깐의 시간이 소중하다. 강도단을 잡는다는 수사극의 내용 중간에 주인공 형사들이 농담하고, 오해하고 사랑에 빠지는 일상을 계속 보여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 두기봉 혹은 밀키웨이 유니버스
영화의 감독은 유달지(遊達志 / Patrick Yau Tat Chi)가 크레디트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촬영 초반에 하차하고, 제작자인 두기봉(杜琪峯 / Johnnie To Kei Fung)이 거의 모든 장면을 직접 연출했다고 알려져 있다. (유달지 감독은 양조위 & 유청운 주연의 <암화(暗花)>에서도 동일한 상황을 겪었다.) 유달지의 비중이 얼마인지 몰라도 확실한 것은 <비상돌연>이 두기봉과 밀키웨이 이미지(銀河映像 / Milkyway Image)의 영화라는 것이다. 두기봉과 위가휘(韋家輝 / Wai Ka Fai), 조감독 나영창(羅永昌 / Law Wing Cheong), 시나리오의 유내해(遊乃海 / Yau Nai Hoi), 사도금원(司徒錦源 / Szeto Kam Yuen), 액션연출의 원빈(元彬 / Yuen bin) 등 밀키웨이의 핵심 스태프와 전속배우나 다름없던 유청운(劉靑雲 / Sean Lau Ching Wan), 임달화, 황탁령(黃卓玲 / Ruby Wong Cheuk Ling), 허소웅(許紹雄 / Ben Hui Siu Hung), 그리고 밀키웨이의 마스코트 임설(林雪 / Lam Suet)이 출연한다.
꼬리에 꼬리를 물며 영원히 이어질 것 만 같은, 영화 초반 카페 앞 거리 장면은 <대사건(大事件 / Breaking News)>(2004년)의 그 유명한 6분간의 오프닝 롱테이크 시퀀스를 예고하는 듯하다. 두기봉의 걸작 중 하나인 <PTU>와도 겹치는 부분이 많다. 거의 같은 출연진이 참여했고, 예상치 못한 우연이 캐릭터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점, 경찰의 한 개 팀을 따라가는 스토리 등 <비상돌연>을 <PTU>의 베타버전이라 해도 무방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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