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두번 봐도 재밌는 영화(★★★)

마담 킬러(亡命鴛鴦 / On The Run) 1988년 - 탈출 불가!! (리뷰편)

by homeostasis 2024. 11. 21.
반응형

영화 <마담 킬러>의 장면들은 뇌리에 사진처럼 박혀있다. 여러 번 봐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조그만 극장에서 이 영화를 처음 본 이후부터 그랬다. 그 이미지의 대부분은 배우의 얼굴이다.

1. 얼굴의 영화

'얼굴의 영화'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 장면의 대부분이 클로즈업 또는 바스트 쇼트 위주이다. 배우의 얼굴을 자세히 보여주기 위함이다. 얼굴에 바싹 다가 간 화면을 보고 있으면 폐소공포증이 생길 것 같다. 70년대 대만의 대표적 미남배우 진상림(秦祥林 / Charlie Chin Chiang Lin), 무술배우로 유명한 라열(羅烈 / Lo Lieh), 원화(元華 / Yuen Wah), 고비(高飛 / Phillip Ko Fei)가 <마담 킬러>의 악당 4인방을 연기한다. 모두 홍콩 대중에게 친숙한 얼굴들이었다. 이런 배우들이 인면수심의 악당으로 나온다. 감독 장견정(張堅庭 / Alfred Cheung Kin Ting)은 별다른 대사도 없이 악당을 좁은 공간에 몰아넣고, 카메라를 그들 얼굴 가까이 들이댄다. 악인의 얼굴이 스크린을 가득 채울 때 우리는 귀신보다 더 무서운 게 사람이란 말을 실감하게 된다. <마담 킬러>의 모든 인물은 돈 때문에 발목이 잡힌다. 모든 게 97년 홍콩의 중국반환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홍콩 탈출을 위한 목돈 마련이 주된 동기다. 그 목적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악귀가 된다.

 

2. 희망 없음

말단형사 향명(원표 - 元彪 / Yuen Biao 분)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부인 낙환(진옥련 - 陳玉蓮 / Ida Chan Yui Lin 분) 역시 경찰인데 남편보다 빨리 승진해 지금은 마약반의 반장으로 재직 중이다. 자격지심, 열등감, 자존심 등등이 이들 사이를 갈라놓는다. 이미 별거한 지 오래고, 낙환은 새로 만난 남자와 함께 캐나다 이민을 계획 중이다. 향명은 비루하게 부인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이민 간 다음 이혼절차를 밟자고 부탁한다. 현지에서 낙환이 법적 남편 향명에게 초청장을 보내면 그도 이민을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남자의 자존심 따위 홍콩 탈출 앞에선 아무 짝에 필요 없다.향명의 꿈은 낙환이 정체모를 킬러에게 암살당하면서 산산조각 난다. 연이은 불운이 그를 기다리는데 낙환을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지명수배자로 쫓긴다. 심지어 부인을 죽인 여자 킬러 아추(하문석 - 夏文汐 / Pat Ha Man Jik)와 함께 도망자 신세가 된다. 관련자들은 사건을 묻기 위해 악착같이 둘을 죽이려 하고, 향명과 아추가 살아서 홍콩 탈출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은 점점 희박해진다.

<마담 킬러>의 드라마는 비약과 우연, 익숙한 클리셰 덩어리로 점철되어 있다. 하지만 몇몇 쇼트는 허술한 드라마를 상쇄할 만큼 강렬하다. 이런 게 바로 영화, 시네마의 힘이 아닐까. 장견정 감독은 촘촘한 드라마보다 배우의 얼굴을 앞세워 반환을 앞둔 홍콩인들의 마음 속, 지옥도를 꺼내 보인다. '가화삼보'의 일원으로 전성기를 구가하던 액션 스타 원표가 죄도 없이 악당에 쫓기는 불운의 남자를 연기했다. '신조협려'의 소용녀이자 화려한 미모의 소유자 진옥련이 부인 역을 맡아 원표가 더욱 초라해 보인다. 카리스마가 아쉽지만 그래서 재수없는 남자에 더욱 잘 어울렸다.

이 영화의 진짜 스타는 태국에서 건너 온 살인청부업자를 연기한 하문석이다. 모두 홍콩 탈출을 꿈꿀 때 그녀는 반대로 돈을 벌기 위해 홍콩으로 들어온다. 홍콩의 밤거리를 배회하는 하문석의 얼굴은 아무 표정이 없고 창백하다. 마치 이미 죽은 사람, 유령처럼 보인다. 가녀린 체구에 레트로 머리, 미니 스커트를 입은 하문석은 가만 있기만 해도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 잡는다. 이 영화의 최고 스펙타클이다.

 

3. 홍콩 탈출

<마담 킬러>는 반환을 앞둔 홍콩인의 불안, 공포, 엑소더스의 욕망을 일체의 희망없이 냉정하게 바라본다. 이 어둡기만한 스릴러를 홍금보(洪金寶 / Sammo Hung Kam Bo) 제작, 원표 주연의 영화로 보게 될 줄이야. 원표를 비롯한 출연자들의 면면은 강력한 육탄 액션을 기대하게 만든다. 하지만 <마담 킬러>의 액션은 대부분 총격전이다. 액션 시퀀스에서도 클로즈업 위주의 연출은 예외없이 적용된다. 감독은 총격전에서 탄환이 인체를 어떻게 파괴하는지 강박적으로 묘사한다. 머리를 관통하고, 눈이 터지는 등의 잔혹한 장면이 많이 나온다. 로케이션 촬영도 남다르다. 특히 아추가 묵는 값싼 모텔방, 코즈웨이 베이의 밤거리, 건물 사이 골목 등은 도시 홍콩의 이면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영화의 악인은 이기적 욕망으로 친구, 부인, 노인, 아이를 무자비하게 살해한다. 주인공 또한 별반 다를 게 없다. 아추는 돈을 받고 살인을 하는 청부업자이다. 향명은 살인자 아추를 처음 만난 순간 '너 때문에 미국 이민도 못가게 됐어!'라 화를 낼 정도로 찌질하다. 88년의 홍콩 관객은 이 영화를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향명과 아추는 도주 중에 값 싼 모텔, 오락실, 좁은 골목, 버려진 공터, 주차장을 전전하며 노숙을 한다. <아비정전>의 '발없는 새'처럼 그들은 어디서도 쉬지 못하고 계속 도망을 다녀야 한다. 이 영화의 원제는 <망명원앙>이다. 한국 개봉 때 당시 유행하던 '마담' 영화를 본 따 <마담 킬러>라는 제목을 붙였다. 비디오 출시 때는 뜬금없이 <극도추종>이라는 타이틀을 붙였다. 영문 타이틀은 'On the Run'이다. 이 영화는 제목까지 쉬지 않고 계속 바뀐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