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두번 봐도 재밌는 영화(★★★)

꼬마유령 캐스퍼(Casper) 1995년 - 달콤한 인생

by homeostasis 2024. 11. 12.
반응형

요즘도 어린이 채널에서 <개구쟁이 스머프>를 종종 볼 수 있다. 몇십 년 전의 셀 애니메이션이지만 여전히 재미있다. 몰입하게 만드는 힘은 기술적인 완성도에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아이들은 더 하다. 만화 영화를 볼 때 자기가 직접 그 안에 있는 것처럼 몰입을 한다. 상상력과 공감능력이 어른보다 뛰어나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꾸중 듣는 장면을 볼 때, 아이들은 마치 자기가 꾸중 듣는 것 마냥 가슴을 졸인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마징가 Z를 조종하고, 요술공주 밍키에게 풋사랑을 느꼈다. 그런 의미에서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결합은 꿈의 영화나 다름없다.

오래전부터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결합은 꾸준히 시도되었다. 디즈니의 <메리 포핀스>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전혀 다른 매체를 합치는 일은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할 상황을 미리 계산한 뒤 실사 촬영을 해야 한다. 혹은 실제 촬영에 맞추어 정교하게 애니메이션을 그려 넣어야 한다. 시간이 많이 요구되는 복잡한 작업이었다. 1988년 로버트 저맥키스가 연출한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는가?>는 이를 완벽히 해내서 극찬을 받았다. 어른들의 장르 필름 누아르 속 세계관에 도널드 덕, 벅스 바니 같은 캐릭터가 공존한다. 연기파 배우 밥 호스킨스와 애니 캐릭터가 연기를 주고받고, 피아노 연주 배틀도 벌인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일회성 이벤트에 불과했다. 하나의 장르로 정착되기엔 작업 효율성이 떨어졌다. 하지만 이런 한계점들은 다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마이클 베이의 <트랜스포머>는 VFX의 비약적 발전을 상징하는 작품이다. 빠른 쇼트의 편집에도 CG 애니메이션으로 구현된 로봇이 마치 실제 같은 질감을 뽐내며 액션까지 펼친다.

1. 꼬마 유령 캐스퍼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한 <꼬마 유령 캐스퍼>는 CG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주인공인 최초의 영화였다. 좀 과장되게 말해 <트랜스포머>의 조상격인 영화다. 반투명의 귀여운 꼬마 유령을 구현하기에 CG가 최적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방법론에 있어선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는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애니메이션 캐릭터는 대부분 롱 테이크 장면에서 등장한다. 합성해야 할 쇼트 개수가 늘어나면 그만큼 인력, 시간, 예산이 증가한다. 따라서 긴 호흡의 장면 속에서 실제 배우와 CG 캐릭터의 재롱 잔치를 즐길 수 있도록 연출되었다.

착하고 소박한 듯 보이는 <꼬마유령 캐스퍼>는 할리우드라 가능한 영화다. CG 캐릭터는 차지하고서라도 영화 연출, 내용적으로도 디테일이 살아있다. 영화는 주인공 소녀 캣(크리스티나 리치)과 유령 캐스퍼의 교감을 실감나게 표현한다. 성에서 외로이 지내는 유령 캐스퍼는 친구가 간절히 필요하다. 전국을 떠도는 아버지 때문에 끊임없이 전학을 다니는 캣 또한 캐스퍼와 비슷한 상실감을 공유한다. 캐스퍼는 부모가 없고, 캣은 어머니가 없다. 아버지도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다. 외로운 두 존재는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위로한다.

 

캣을 연기한 아역 크리스티나 리치는 보통 영화보다 훨씬 더 부담스러운 촬영을 견뎌냈다. 상대배우가 보이지도 않는 CG 캐릭터인데다 긴 쇼트를 감당해야 했다. 성인연기자도 벅찬 연기였을 것이다. 여러 난관에도 불구하고 크리스티나 리치는 완성도 있는 연기를 해냈다. CG 캐릭터와 크리스티나 리치의 합이 정교하게 맞아떨어지는 몇 차례의 개그 시퀀스는 무성영화 시대의 코미디를 떠올리게 한다. 최첨단 기술의 영화지만 재미의 상당 부분이 로우 테크, 즉 고전적인 영화 테크닉에서 비롯된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유령이 정신사납게 복도를 날아다니는 장면은 유령을 보여주는 대신 스테디캠으로 찍은 시점 쇼트로 처리하고, 롤러코스터처럼 의자를 타고 지하의 비밀 실험실로 들어가는 장면은 '인디아나 존스'와 같은 활극영화의 리듬을 따라 한다.

 

2. 아이들 

할리우드가 가장 잘하는 장르가 가족영화다. <꼬마 유령 캐스퍼>을 조금만 뜯어봐도 얼마나 정교한 이야기 장치가 들어있는지 알 수 있다. 유령 캐스퍼는 미취학,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감정이입할 수 있는 주인공이다. 귀여운 생김새가 전혀 유령스럽지 않다. 그 또래 아이들은 재미있게 놀 수 있는 친구가 가장 소중하다. 친구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방법을 모를 때 갖는 두려움 역시 아이들이 몰입할 수 있는 요소다. 반면 캣은 12살이다. 아버지의 거짓말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나이다. 이성에 대한 관심이 늘어가고, 원하는 물건을 마음대로 살 수 없다는 것도 안다.  데이비드 포스터의 주제음악을 배경으로 캣과 인간으로 변한 캐스퍼가 춤추는 장면은 완벽한 하이틴 로맨스적 결말이다. 빌 풀만이 연기하는 아버지는 부모들이 감정이입할 수 있는 대상이다. 아버지는 사춘기에 접어든 딸과 불편해진다. 영화의 마지막, 캣의 엄마가 천사가 되어 나타나 남편에게 '이제 수영복 안에 티셔츠를 함께 입히지 마라'라고 당부한다. 딸의 성장을 있는 그대로 봐 주라는 메시지다.

 

유령이 주인공인 영화인 만큼 <꼬마 유령 캐스퍼>는 죽음에 대해서도 말을 한다. 부모가 아이에게 받는 질문 중 가장 난감한 것 중 하나가 '죽음'이다. 아이에게 죽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꼬마유령 캐스퍼>는 내가 본 것 중 가장 어른스러운 답을 들려준다. 미련이 남은 채 죽으면 유령이 된다. 유령이 되지 않으려면 현재를 후회 없이 잘 보내면 된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