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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두번 봐도 재밌는 영화(★★★)

일라이(The Book of Eli) 2010년 - 3부 해외 매체 리뷰 소개

by homeostasis 2025.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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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로저 이버트 닷컴

언제나 신뢰하는 영화 평론가 로저 이버트는 <일라이>에 별점 세 개 반을 주며 호평을 했다. 휴즈 감독의 연출, 덴젤 워싱턴의 연기를 극찬했다. 다만 영화의 결말에 대해선 아쉬움을 표했다.

▶ 기사 원문

나는 지금 말을 할 수 없다. (로저 이버트는 당시 암 수술로 턱 뼈를 잘라내 '진짜' 말을 못 했다) 그래서 직설적으로 쓰겠다. <일라이>는 아주 볼 만하다. 보고 후회할 만한 영화가 아니다. 끝에 가서 여러 번 '왓 더 퍽'이라 외칠만한 장면이 나온다. 이것은 보너스와 같다. 내가 지금 그 욕을 직접 할 수 없지만, 아무튼 WTF이다.

이 영화는 덴젤 워싱턴이 연기하는 외로운 방랑자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하이, 내 이름은 일라이'라 적힌 이름표를 달고 다닌다. 실제 이름표가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를 일라이라 부른다. 그는 30년 동안 폐허가 되어버린 미국을 도보로 횡단하여 서부로 가는 중이다. 마지막 여정을 보면 일라이는 화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걷는다. 영화적 언어로만 보면 동쪽으로 걷고 있다. "옳은 방향인지 어떻게 알아요?"라고 누가 묻자 일라이가 답한다. "믿음(Faith)" 그의 대답은 영화 후반부에 어떤 울림을 준다.

일라이는 손이 빠르다. 칼, 총, 라이플, 샷건 등 못 쓰는 무기가 없고 무술도 잘한다. 그에겐 이런 전투기술이 반드시 필요하다. 재앙이 닥쳐 지구 인구 대부분이 사라졌고, 남은 것은 폐허와 황량함 뿐이다. 악당들은 키가 큰 대머리 남자, 털이 많은 남자, 그리고 졸개들로 구성되어 있다. 앨버트와 앨런 휴즈 형제는 이 스토리를 햇빛에 탄 듯한 갈색, 그리고 창백한 블루의 색감으로 찍었다. 자비 없는 하늘 아래 먼지로 가득한, 척박한 세상을 창조했다. 이 세계관에서 물은 가장 소중한 보물이다. 버려진 땅에서 일라이는 고집스럽게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고 도보 여행을 계속한다. 황무지에서 일라이는 공격해 오는 모든 이를 죽인다. 그는 모든 것을 벨 수 있는 칼을 갖고 있다. 원 맨 아미라 해도 무방하다. 악당들은 그를 쏘아 맞추지도 못한다.

덴젤 워싱턴과 휴즈 형제는 고독한 남자와 그가 살아가는 세상을 훌륭하게 창조했다. <일라이>의 초반부는 이 남자의 외로운 여정을 묘사한다. 그러다 카네기(게리 올드만 분)가 지배하는 서부 마을에 도착한다. 카네기는 웨스턴과 갱스터 장르 속 악당과 같은 인물이다. 그는 키 큰 대머리 남자의 호위를 받으며 큰 책상 앞에 앉아있다. 털북숭이 악당도 물론 있다. 카네기는 이 악인들을 어떻게 자기 휘하에 모을 수 있었을까? 마실 물이 그 해답이다.

마을은 다 부서진 자동차, 거리에서 노숙하는 굶주린 이들로 가득하다. 우리는 이 마을에서 카네기에게 학대당하는 클라우디아(제니퍼 빌스 분)와 딸 솔라라(밀라 쿠니스 분)를 만난다. 여인들의 이름에서 파괴의 원인을 짐작할 수 있다. 클라우디아는 카네기가 운영하는 술집에서 일하는 창녀다. 그녀는 직장에 아이를 데려오는 실수를 범했다. 카네기는 솔라라를 컨트롤하려고 클라우디아를 학대한다. 대머리 남자를 조종하는 카네기의 수단은 여기서 밝히지 않겠다. 3막은 웨스턴의 재활용이다. 하지만 매끈하게 연출되었다. 주인공과 여자는 같이 도망치다 악당들에 포위된다. 너무 많은 영화들이 인용해서 그들의 외딴집에서 무수한 총탄 세례를 받을 때 이것이 스타일임을 거의 놓칠 뻔했다. 벽에 뚫린 총구멍으로 셀 수 없이 많은 빛이 들어와 메타포가 함축된 화면을 만든다. 카네기는 일라이를 원한다. 세상에 하나 남은 어떤 책을 그가 갖고 있어서다. 이 책의 정체에 대해선 비평가가 지켜야 할 규칙 때문에 밝힐 수 없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단번에 알 수 있다. 

휴즈 형제는 전작 <사회에의 위협(Menace Ⅱ Society)>과 저평가된 <프롬 헬(From Hell)>에서와 같이 생생한 이미지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 영화는 좋은 느낌을 준다. 덴젤 워싱턴의 연기는 곱씹어 볼수록 불편하다. 영화의 엔딩은 '단점'이다. 우리 비평가들은 이렇게 지적하길 좋아한다. 하지만 이 흠이 너무 크고, 부끄러운 줄 모르고, 타당하지 않은 것이어서 영화와 별개로 생명력을 얻고, 

처럼 생생한 이미지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 영화는 좋은 느낌을 준다. 워싱턴의 연기는 불쾌할수록, 우리가 그것을 더 곱씹게 만든다. 영화의 엔딩은 "흠"이다. 너무 엄청난, 그리고 부끄럼 없고, 타당성이 없는 것이어서 영화와 별개로 살아 움직인다. 적어도 예측 가능하지 않은 흠이다.

 

2. Collider

엔터테인먼트 전문 웹진 Collier의 매트 골드버그(Matt Goldberg)는 <일라이>가 변형된 웨스턴임을 지적한다. 잘 만든 영화임은 인정하지만 종교적 요소에 대해서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호오가 갈릴 것이라 평한다.

기사 원문

나는 서부영화를 사랑한다. <일라이>는 딱 거기 맞는 영화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라고 해서 속으면 안 된다. 이 영화는 6연발 권총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주인공 일라이(덴젤 워싱턴 / Denzel Washington)는 서쪽으로 향한다. 그의 이름은 불려지지 않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호명된다. 서부극에서 주인공을 '방랑자', '낯선 자'로 부르는 것과 같다. 구식 느낌의 살롱 등 웨스턴 장르의 여러 요소들이 영화에 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적 배경은 서부극을 만드는 데 훌륭한 도구였다. 총과 아이팟 정도를 빼면 현대 기술이 자취를 감췄다. 휴즈 형제는 잘 찍었고, 잘 편집했고,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을 가지고 종교적인 메시지를 강한 농도로 전달한다. 대중성에 장애가 될 수 있다. <일라이>는 가까스로 두 측면을 봉합하는 데 성공한다.

일라이는 영화의 첫 10분 동안 말이 없다. 나는 이 부분에서 강한 인상을 받았다. 대사가 없다 해도 영화의 마지막에 가서 이 방랑자와 그가 사는 세상에 대하여 알아야 할 것은 모두 안다. 방랑자는 황량한 사막과 한때 우리가 살았던,  이제는 폐허로 변한 도시를 도보로 통과한다. (비디오 게임 <Fallout 3>를 보는 것 같다) 현대 문명의 극히 일부분만 남아있다. 방랑자는 탁월한 서바이벌 전문가다. 멸망 이후에는 찾아볼 수 없는 기술이지만 당연한 듯 실력을 과시한다. 그는 물을 구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수도꼭지를 튼다.

대사 없이 진행되는 오프닝에서 그는 목매고 죽은 사람을 발견한다. 비극적 순간이지만 방랑자는 시체의 주머니를 뒤져 필요한 것을 챙긴다. 신발도 벗긴다. 덴젤 워싱턴은 아주 진지하게 이 과정을 연기한다. 덕분에 캐릭터가 엄격한 실용주의자라는 인상을 준다. 이후 등장할 방랑자의 액션은 무자비한 수준이지만, 휴즈 형제는 이 캐릭터의 사명에 의문을 제기할 수 없게 만든다. 균형을 잡기 아주 힘든 역할임에도 덴젤 워싱턴과 휴즈는 관객을 캐릭터의 편에 설 것이라 확신을 갖고 영화를 만들었다. 우리는 적이 바닥에 뒹굴기 전에 10번 이상 칼질하는 일라이의 능력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불운한 무법자를 끝장내는 일라이의 동작은 흥분을 자아낸다.

서부영화에서 주인공의 전투력은 결단코 의심의 대상이 아니다. 일라이는 결국 카네기(게리 올드만)가 지배하는 마을에 당도한다. 카네기는 일라이가 갖고 있는 책을 애타게 찾고 있었다. 빠르지만 잘 편집된 액션장면이 등장한다. 방랑자는 그를 공격하는 무뢰배들을 산산조각 낸다. 카네기는 방랑자에게 자기 부하가 돼라 제안한다. 방랑자는 흥미가 없다. 하지만 손님이자 포로가 되어 이 마을에서 하룻밤 묵기로 한다. 카네기는 자신의 여자(그리고 맹인)의 딸, 솔라라(밀라 쿠니스)를 보내 방랑자를 유혹하라 지시한다. 하지만 방랑자는 정중하게 말할 줄 아는, 명예를 아는 전사다. 솔라라를 거절하는 대신 식사를 하자고 제안한다. 여기서 방랑자는 주기도문을 외운다. 일라이의 책이 성경임이 분명해지는 순간이다. 카네기는 성경을 무기 삼아 사람들의 정신을 통제하려 한다. 반면 방랑자는 선의로 그 힘을 쓰려한다. 그는 서쪽으로 책을 가져가라는 신의 음성을 들었다. 지금 이것이 스포일러지만, 알고 보는 편이 더 재미있다. 영화의 프리뷰 대부분은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만을 강조한다.

액션은 만족스럽다. 연기, 촬영, 연출 모두 일정 수준을 달성했다. 이것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선 관객과의 소통이 필수적이다. 영화는 아주 종교적이다. 이것이 불편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패튼 오스왈트(Patton Oswalt)의 <Sky Cake>를 떠올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요약하자면 사람들은 천국에 가기 위해 착한 일을 한다. 거기 가면 먹고 싶은 케이크를 다 먹을 수 있다. 종교 전쟁은 사후에 어떤 빵을 먹을 수 있냐에 대한 의견차이 때문에 벌어진다) 하지만 크리스천이 세계를 구한다는 영화의 의지 때문에 오히려 새로운 세상에 새로운 종교가 기독교를 대체할 수 있지 않을까 의문을 남긴다.

카네기와 방랑자는 영화 속 그 누구보다 나이가 많다.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들은 글을 쓰지 못한다. 왜 너의 말을 따라야 하는지 읽는 것보다 말하는 게 더 나은 방법이다. 카네기가 새로운 종교를 만들지 않고 성경에 전적으로 의지하려는 지 이해되지 않았다. 아마도 카리스마가 부족하고 깊이도 없는 사람이기 때문일 데다. 게리 올드만은 커리어 내내 대단한 악당을 연기했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선 낭비된 게 틀림없다. 영화 전체적으로 볼 때 휴즈 형제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를 현명하게 활용해 완성도 있는 웨스턴을 만들었다. 영화는 스토리를 자신 있게 전달한다. 맹목적인 신앙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면 <일라이>를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 이 영화는 웰 메이드 한 작품이며, 영리한 웨스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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