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하는 지구 탄생 이후 역사가 고스란히 보존된 박물관이나 다름없다. 미 정부는 5명의 연구자를 북극 기지로 보내 일명 '빙핵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빙하를 깊이 시추하여 그 안의 성분을 분석하면 지구의 생성과정을 알 수 있다. 거센 눈보라가 휘몰아치던 어느 날, 연구원 리처(켄 커징어 / Ken Kirzinger)가 피범벅이 된 모습으로 '우리는 더 이상 우리가 아니다'란 뜻 모를 동영상 전문을 남기고 기지와 연락이 끊긴다. FBI는 이 기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알아내기 위해 멀더(데이비드 듀코브니 / David Duchovny)와 스컬리(질리언 앤더슨 / Gillian Anderson)를 급파한다.
6인의 수사대
FBI는 뭔가 정상적이지 않은,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미심쩍은 일에 멀더와 스컬리를 투입한다. 외계인 꽁무니만 쫓아다니는 엑스파일 부서야말로 조직의 입장에선 이런 미션에 안성맞춤이다. 멀더와 스컬리는 일종의 잉여 혹은 소모품인 것이다. 과학기지를 조사하는 일이라 FBI 요원 외에 4명의 민간 전문가가 수사팀에 합류한다. 이들의 면면은 호러 장르의 스테레오 타입과 일치한다. 우선 지리학자 머피(스티브 히트너 / Steve Hytner)는 사람좋은 괴짜 타입으로 긴장할 때마다 녹음해 둔 과거의 NFL 중계방송을 워크맨으로 듣는 버릇이 있다. 이 유형의 인물이 끝까지 살아남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의사 하지(잰더 버클리 / Xander Berkeley)는 똑똑이 캐릭터다. 모두가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통성명 만으로는 서로를 믿을 수 없다며 신분증을 까라 요구하며, 본인의 깐깐하고 개인주의적 성향을 거침없이 표출한다. 자신의 머리를 믿는 하지와 정반대 자리에는 터프남 캐릭터인 비행기 파일럿 베어(제프 코버 / Jeff Kober)가 있다. 베어는 지능 보다 신체 능력을 믿는 상남자다. 독극물 전문가 낸시(펠리시티 호프만 / Felicity Huffman)는 무색무취, 공포영화에서 전형적인 희생당하는 여자 캐릭터라 보면 맞다.
The Thing
8화 <Ice>가 노리는 효과는 리들리 스콧의 <에일리언>, 존 카펜터의 1982년작 <괴물(The Thing)>과 다를 바 없다. 여기서의 괴물은 25만년 동안 빙하에 갇혀있던 외계 기생충이다. 이 놈은 숙주에 침입한 뒤, 숙주의 생각과 감정을 컨트롤한다. 감염된 사람은 타인을 향한 극도의 분노감에 사로 잡히게 된다. 기지 연구원들은 이 기생충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죽이다 못해 집단 자살로 공멸했다. 죽은 자의 몸속에 숨어있던 외계 기생충은 멀더 팀이 도착하자마자 또다시 활동을 개시한다.
사건의 발단은 기지를 수색하던 멀더가 개의 습격을 받으면서다. 상남자 베어가 멀더를 도와주려다 개에 물리면서, 최초의 감염자 신세가 된다. 의사 하지와 스컬리는 개의 몸에서 검은 혹을 발견하는데, 베어 또한 이것과 같은 혹이 관찰된다. 다른 사람들이 여러 단서들을 모아 열띤 토론을 이어갈 때, 그 옆에 서성이던 베어의 얼굴은 점점 창백하게 변한다. 좀비 영화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장면들이다.
진부한 설정에 저예산 냄새 물씬 나는 화면(여러번 반복되는 북극 기지 외부 장면은 처참한 수준) 때문에 기대감이 낮아질 수밖에 없었는데, 인물들 간의 갈등이 본격화되면서 몰입도가 상승한다. 이건 아무래도 장르 고유의 힘과 배우들의 연기 덕분이다. 한정된 공간에서 4명의 남자와 2명의 여자가 서로를 감염자라고 의심하면 긴장감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불신
누가 감염자인지 가려내기 위해 의사 하지는 옷을 탈의하고 검은 혹이 생겼는지 서로 관찰하고, 대변 검사까지 하자고 제안한다. 하지의 제안이 다수결로 체택되자, 베어는 거칠게 반발한다. 멀더와 다른 남자들이 힘을 합쳐 베어를 제압하고, 베어의 피부 아래서 꿈틀거리는 기생충의 움직임이 포착된다. 의사 하지는 메스로 베어의 살을 절개한 후 핀셋으로 기생충을 끄집어내는데, 이 기생충의 꿈틀거림과 끔찍한 생김새는 공포를 자아내기 충분하다. 기생충을 꺼내자마자 베어가 죽는다. 비행기 조종사였던 베어의 사망으로 남겨진 사람들은 고립된 처지가 된다. 기상 악화로 비행기 착륙도 불가능하다. 버티기에 돌입한 일행은 누가 또 감염자인가에 두고 신경쇠약에 걸린다.
<Ice>편의 가장 볼만한 요소는 멀더와 스컬리 간의 반목이다. 파트너십을 쌓아왔던 두 사람조차 감염의 공포에 서로를 불신한다. 멀더는 기생충을 더 연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스컬리는 깡그리 불태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뉴욕 같은 대도시에 감염이 확산된다고 상상해 보라! 급기야 스컬리는 다른 사람들의 편에 서서 멀더를 총으로 협박해 감금시킨다.
이 외계 기생충은 단성 생식이다. 번식을 위해 암수가 필요없다. 그래서 숙주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에게 적대적이다. 스컬리는 이를 이용해 치료방법을 찾아낸다. 감염된 개의 몸에 또 다른 기생충을 주입했더니 멀쩡한 상태로 돌아온 것을 확인한다. 스컬리와 하지는 멀더를 감염자라 생각해 그를 무력으로 제압한 다음, 핀셋으로 집은 기생충을 멀더의 귓속에 주입하려 한다. 이 장면이 <Ice>의 하일라이트다.
멀더와 스컬리는 최후에 생존자 그룹에 속하게 된다. <엑스 파일> 시리즈는 계속되어야 하니까, 이들이 살아남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말이라 할 수 있다. 멀더는 구조대가 도착하자마자 기지에 불을 지른 사실을 알게 된다. 안타까워하는 멀더에게 스컬리가 한 마디를 던진다. "그냥 그곳에 있게 내버려 둬."
에피소드 정보
8화 <Ice>는 1993년 11월 5일에 방영됐다. 쇼의 총괄 책임은 크리스 카터(Chris Carter), 시나리오는 글렌 모건(Glen Morgan)과 제임스 웡(James Wong)이 공동 집필했다. 촬영은 존 S. 바틀리(John S. Bartley), 음악에는 마크 스노우(Mark Snow)가 크레디트에 이름을 올렸다. 미술 감독 그레임 머레이(Graeme Murray)는 우연하게도 이 에피소드의 원전이라 할 수 있는 존 카펜터의 <괴물>에서 미술 스태프로 참여한 이력이 있다.
이 에피소드는 시즌1의 제작비 절감 차원에서 고안되었다. 제작비를 아끼기 위해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스토리를 생각해 낸 것. 하지만 세트를 짓느라 최종적으로는 예산을 초과 집행했다. 오프닝 장면에서 연구원 리처를 연기한 배우가 <엑스 파일> 시즌1의 스턴트 코디네이터 켄 커징어다. 본인의 장점을 살려 꽤나 격렬한 맨손 싸움을 보여준다.
Chronicle - 엑스 파일(se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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