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더(데이비드 듀코브니 / David Duchovny)는 과거 FBI 범죄 행동 분석팀 시절의 동료 제리 라마나(웨인 듀발 / Wayne Duvall)의 요청으로 밀실 살인, 거대 소프트웨어 기업 유리스코의 CEO인 벤자민 드레이크(톰 버틀러 / Tom Butler)가 자기 집무실 안 화장실에서 감전사당한 사건을 수사하게 된다. 7화 <Ghost in the Machine>는 밀실 트릭을 깨거나 범인 찾기에 관한 드라마가 아니다. 오프닝 시퀀스부터 범인의 정체 - COS라는 이름의 인공지능 시스템 -를 먼저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COS는 유리스코의 창업자 브래드 윌첵(롭 라벨리 / Rob Labelle)이 개발한 건물 자동 통제 시스템으로 자가 학습이 가능하게 고안되었다. 스스로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여 자아를 갖게 된 COS는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벤자민이 시스템 페기를 결정하자 살인을 감행한다. COS는 사건 수사에 착수한 멀더와 스컬리(질리안 앤더슨 / Gillian Anderson)의 목숨까지 노린다.
인공지능
COS는 인공지능, 즉 AI다. 2023년 현재 시점에선 동시대적 이슈지만, 1993년(무려 30년전)의 드라마는 보는 사람도, 만든 사람도 그저 재미있는 SF적 소재로 여기고 있다.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컴퓨터 HAL9000을 염두에 두고 쓴 <Ghost in the Machine>은 장점보다 단점이 더 잘 보이는 작품이다. 여기저기서 클리셰를 끌어모아 어설프게 재조합 했다고 보면 맞을 것 같다. COS의 개발자 브래드의 생각과 행동은 우리가 컴퓨터 천재라 하면 퍼뜩 떠올리는 선입견들의 총합이다.
일개 시스템이 공포의 대상이 되어야 하고, 그 긴장감을 어떻게 영상으로 표현하는가에 연출의 성패가 달렸다. 그래서 제작진은 손쉽게 '의인화'전략을 취한다. COS 시스템은 말을 할 줄 안다. 내뱉는 말에 감정도 실려있다. 시스템이 작동할 때 모니터에 파동선이 그려지는데, 이는 시스템의 행동을 눈으로 보여주기 위한 방법에 다름 아니다. 건물 곳곳에 설치된 감시카메라는 COS의 눈처럼 기능한다. 최근 개봉한 <크리에이터>나 <매트릭스> 같은 영화는 아예 사람의 모습을 한 인공지능을 등장시켰다. 여러 종교에서 신을 인간의 모습으로 형상화하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살인의 추억
인공지능 COS는 빌딩 자동 제어 시스템에 불과하다. 빌딩 밖에선 무기력하다. 다만 먹잇감이 유리스코 빌딩 안에 있을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최초 살인은 벤자민이 화장실에 들어오기를 기다렸다가 실내등을 끄고 문에 락을 건 후, 벤자민이 강제로 문을 열려고 할 때 전기를 흘려보내 죽인다. COS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엘리베이터다. 아무 생각 없이 올라 탄 승강기가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여러 차례 보여준다. 멀더의 동료인 FBI요원 라마나 또한 엘리베이터에 탔다가 COS가 추락시키는 바람에 운명을 달리한다.
음모
멀더는 기가 죽어 있달까, 참으로 맥 빠진 듯한 주인공이다. FBI 요원 라마나는 친구랍시고 찾아와 먼저 도움을 청한다. 하지만 라마나는 멀더를 도구로 활용할 뿐이다. 멀더가 쓴 프로파일 보고서를 몰래 훔쳐 자기의 분석인 양 보고하고 상관의 칭찬을 받는다. 이 모든 것을 눈앞에서 지켜본 멀더는 라마나의 변명 - 과거에 저지른 실책 때문에 이를 만회하려면 큰 거 한방이 필요했다는 - 을 듣고 수긍해 버린다. 나중에 라마나가 공명심에 홀로 브래드를 미행하다 목숨을 잃자, 멀더는 그의 죽음에 책임감마저 느낀다. 호구가 따로 없다.
빌딩의 시설 관리 책임자 피터슨 (블루 만쿠마 / Blu Mankuma)은 멀더가 COS를 차단할 수 있는 방법을 질문하자 개발자 브래드가 정지 코드를 입력하면 된다고 답했다. 그러나 COS는 브래드의 접근 권한을 차단시켜 스스로를 보호한다. 브래드는 폭주한 COS가 자기 통제를 넘어서 라마나를 죽이는 광경을 실시간 목격하고 충격을 받는다. 그는 바로 체포되는데,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라마나의 살인을 인정한다. 멀더는 브래드가 살인을 저지를 사람이 아니라고 판단해 그의 주변을 파기 시작하지만, 가는 곳마다 국방부 요원들이 나타나 정보를 차단한다. 멀더는 그 너머의 진실을 찾아 2화에 등장했던 일명 '딥 쓰로트(Deep Throat)'를 재소환한다. 딥 쓰로트(제리 하딘 / Jerry Hardin)는 미 정부가 AI 기술을 확보하려 한다는 정보를 멀더에게 알린다.
다이 하드
스컬리는 이번에도 <엑스 파일>의 설정을 철저히 지킨다. 전산 시스템이 사람을 죽인다는 멀더의 주장을 믿지 않고, 심리상담을 받아 보는 게 어떻겠냐고 진심으로 권하기까지 한다. 스컬리는 집 컴퓨터가 해킹당하고, 그 진원지가 유리스코 빌딩 전산실임을 확인하고 나서야 멀더의 말을 절반쯤만 믿는다.
<엑스 파일>은 참 신기한 드라마다. 보통 드라마에서 남자 주인공이 할 역할을 여자인 스컬리가 한다. 에피소드 후반부, 멀더와 스컬리는 유리스코 빌딩에 잠입한다. 멀더는 브래드에게서 얻은 바이러스를 COS 메인 보드에 심어 끝장을 보려 한다. 혹시나 엘리베이터에 탔다가 라마나 요원과 같은 신세가 될까 봐 두 사람은 전산실이 있는 23층까지 비상구 계단으로 올라간다. 막상 도착해 보니 문이 잠겨 밖으로 나갈 수 없다. 탈출할 방법을 찾던 멀더는 환풍구를 발견한다. 환풍구를 통해 나가면 반대편에서 문을 열 수 있지 않을까? 이런 험한 일은 남자가 자진해서 나서는 게 폼이 나고, 기사도적인 측면에서도 맞다. 하지만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스컬리가 먼저 힐을 벗고 환풍구 안으로 들어간다.
스컬리는 환풍구 통로에서 <다이 하드>의 브루스 윌리스 못지않은 생고생을 경험한다. 환풍구로 들어가자마자, COS는 옳다구나 하고 공조시스템을 가동한다. 위로는 강풍을 일으켜 스컬리의 전진을 막고 뒤로 물러나게 만든다. 아래는 대형 팬이 스컬리를 산산조각 낼 기세로 웅웅 소리를 내고 있다. 위기의 순간, 스컬리는 클라이밍 선수라도 된 듯, 한 손으로 자기 몸무게 전체를 버티며 남는 손으로 대형 팬에 부착된, 조그만 제어장치 박스를 겨냥해 총을 쏜다.
스컬리가 생고생을 할 때, 멀더는 손쉽게 비상구 계단을 탈출한다. 관리 책임자 피터슨이 문을 열어준 것이다. 멀더는 그와 함께 전산실로 가서 바이러스가 담긴 디스켓을 실행시키려 한다. 잠자코 멀더를 지켜보던 피터슨은 총을 꺼내 멀더를 멈추게 한다. 피터슨은 단순한 엔지니어가 아니라 국방부의 비밀요원이었다. 이때 지옥에서 돌아온 스컬리가 온몸에 시커먼 먼지를 뒤집어 쓰고 나타나 피터슨 요원의 등 뒤에 총을 겨눈다. 스컬리는 단호히 멀더에게 'Do it'을 외친다. 시스템은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한국 속담을 학습하지 못했던 것 같다. 결국 COS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쓸모없는 고철이 된다. 피터슨은 기술자들을 여럿 데리고 와서 어떻게든 시스템을 살려 보려 애를 쓰지만 가망이 없어 보인다고 보고한다. 이때 한쪽에 방치된 모니터에서 불빛이 들어오는 모습을 시청자들에겐 확인시켜 준 뒤 드라마는 끝이 난다.
에피소드 정보
7화 <Ghost in the Machine>은 1993년 10월 29일에 첫 방영됐다. 쇼의 크리에이터 및 제작총괄은 크리스 카터(Chris Carter), 프로듀서 알렉스 간사(Alex Gansa)와 하워드 고든(Howard Gordon)이 각본을 썼다. TV에서 주로 활동한 중견 제럴드 프리드먼(Jerrold Freedman)이 연출을 맡았고, 음악 마크 스노우(Mark Snow), 촬영 존 S. 바틀리(John S. Bartley)이 변함없이 크레디트에 이름을 올렸으나 미술의 마이클 네미르스키(Michael Nemirsky)가 빠지고, 그 자리를 그레임 머레이(Graeme Murray)가 채운다. 주무대가 되는 유리스코 빌딩은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 버너비 시의 메트로타워 건물에서 촬영했다.
에피소드 후반부, 스컬리가 건물 환풍구에서 위기를 맞는 장면은 촬영 직전에 추가됐는데, 원래 엘리베이터 통로에서 벌어지는 액션으로 구상했다가 제작비 문제로 급히 변경됐다고 한다. 촬영 기간은 대략 9~10일 정도라고 알려져 있다. 각본을 쓴 하워드 고든은 <Ghost in the Machine>을 시즌1에서 가장 실망스러운 에피소드로 꼽았는데, 그의 의견에 동감한다. 그래도 볼만했던 것은 액션 본능을 장착한 스컬리의 활약상이다.
Chronicle - 엑스 파일(se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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