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화성 탐사선 바이킹 1호가 촬영한 화성 사진이 큰 화제를 불러 모은다. 사진 속 화성 지표면에 사람 얼굴과 비슷한 형상이 찍혀 있었던 것이다. 남다른 상상력의 소유자들은 외계 문명의 고대 유적이라는 주장을 펼쳤고, 이 사진은 외계인 음모론의 증거(?)로 사용된다. <엑스 파일>의 기획자 크리스 카터(Chris Carter)는 이 사진 속 얼굴이 실제 외계인이라는 컨셉으로 9화 <Space>편의 각본을 썼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얼굴이 유령처럼 우주와 지구를 넘나들며 나사(NASA)의 우주프로그램을 방해한다는 내용이다. 흥미로운 대목이 없지 않으나 에피소드의 완성도는 참혹하기 그지 없다.
사보타주(Sabotage)
1977년, 이 사진을 보도하는 뉴스 화면으로 드라마가 시작된다. 나사를 대표해 벨트(에드 로터 / Ed Lauter)가 나서 기자의 질문에 답한다. 그는 지형과 그림자 때문에 생긴 착시현상이라고 일축한다. 그러나 벨트 자신은 '얼굴'의 실체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시간을 건너뛰어 1993년, 우주 왕복선 발사를 앞둔 휴스턴 우주센터 관제실은 긴장감으로 가득하다. 벨트는 이제 센터장이 되어 있다. 카운트다운에 돌입하고 발사 3초를 앞둔 시점에 기체 이상을 알리는 비상 경보가 울리고, 모든 계획이 즉각 중단된다. 시청자들은 이 장면에서 1986년 2월, 발사된 지 73초 만에 공중 폭발한 우주왕복선 챌린지 호 참사를 떠올리게 된다.
이 일이 있고 얼마 되지 않아, 우주 왕복선과의 교신을 담당하는 통신 관제관 미셀 (수산나 톰슨 / Susanna Thompson)은 수신자 불명의 우편물을 받는다. 그 안에는 사보타주를 의심케 할 만한 사진 - 티타늄 소재의 핵심 부품 하나에 심각한 훼손 - 이 들어 있다. 나사 활동에 부정적 여론이 조성될까 우려한 벨트는 정밀조사 없이 2주 후 발사 재개를 강행한다. 미셀은 벨트의 조치를 그냥 지켜볼 수 없다. 다음 번 탑승하게 될 우주비행사가 그녀의 약혼자이기 때문이다. 미셀은 FBI에 이 사진을 제보하고, 그것을 멀더(데이비드 듀코브니 / David Duchovny)와 스컬리(질리안 앤더슨 / Gillian Anderson)가 받게 된다.
제미나이 계획(Project Gemini)
닐 암스트롱(Neil Armstrong)은 달 착륙 3년 전인 1966년, 제미나이 8호에 탑승해 대기권 밖으로 나간다. 이때 주요 미션은 무인 위성과의 도킹 실험이었는데, 도킹을 하자마자 선체가 통제력을 잃고 급회전을 하면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게 된다. 관제실과 통신마저 두절된 상태에서 암스트롱은 침착한 상황 판단으로 지구로의 무사 생환에 성공하고, 이때의 대처를 높이 평가받아 아폴로 11호 캡틴으로 선발된다. 만약 암스트롱이 이때 사망했다면 여론 악화로 인해 달 착륙 계획 자체가 전면 취소됐을 수도 있었다.
드라마에서 온갖 의혹의 진원지가 되는 센터장 벨트는 닐 암스트롱을 모델로 한다. 젊은 시절의 그가 제미나이 8호의 우주비행사 였다는 설정이다. 실제 사고 원인은 RCS(Reaction Control System) 장치의 오작동이지만, 드라마에선 화성 사진에 찍힌 '얼굴'이 유령처럼 우주를 떠돌다 벨트를 습격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얼굴'은 벨트의 몸에 들어가 그를 통제한다. 지구로 돌아온 벨트는 전세계적 영웅으로 추앙받지만, 한편으로 우주 괴물에 조종당하는 숙주에 지나지 않았다. 30년여 년이 흘러 벨트는 휴스턴 우주센터의 장(長)이 되고, '얼굴'은 본격적으로 마수를 드러낸다. 챌린지호 참사도, 최근 발사에서 핵심 부품이 고장난 것도 얼굴의 조종을 받은 벨트가 벌인 일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외계 '얼굴'의 목적이 인류의 우주탐사를 막는 것이고, 전지전능한 힘이 있는데, 왜 벨트 한 사람만 붙잡고 그 긴 세월을 버텼는지 납득이 안 간다. 게임 팩맨을 닮은 얼굴 유령이 벨트 몸 안으로 침입하는 장면의 처참한 시각효과는 참을 수 있다. 하지만 스토리의 황당함은 견디기 힘들다.
한정된 자원
멀더와 스컬리가 휴스턴에 도착한 이후부터 이 에피소드의 감독 윌리엄 그레이엄(William Graham)은 카운트다운을 알리는 타이머를 계속 화면에 노출한다. 발사 시각은 다가오는데, FBI 요원들은 사보타주의 결정적 단서를 찾지 못한다. 사고가 발생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을 조장하는, 다소 옛스러운 서스펜스 테크닉이다. 참고로 윌리엄 그레이엄은 1926년생으로 1950년대부터 연출 경력을 시작한 노장 감독이다.
우리의 예감과 달리 우주 왕복선은 아무 문제 없이 발사에 성공한다. 멀더와 스컬리는 조사를 접고 워싱턴으로 돌아갈 채비를 한다.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 미셀이 짐 싸고 있던 멀더와 스컬리의 호텔방으로 급히 찾아온다. 원격 조종 장치의 이상으로 우주선이 태양 정면을 향해 이동 중이다. 이대로라면 비행사들이 타 죽게 생겼다. FBI 요원들이 장치 고장의 원인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관제실은 비행사들과 교신하며 어떻게든 이들을 살리려고 애를 쓴다. 제작진은 위기에 처한 비행사들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아니 예산상의 문제로 보여줄 수도 없었다. 오로지 음성 통신만으로 이 상황을 연출해 나간다. 황당한 설정의 에피소드가 그나마 볼 만해 지는 시점이 관제실 장면이라는 점이 많은 것을 시사한다. 보여줄 때 보다 안 보여줄 때, 설명하려 할 때보다 침묵할 때가 때론 훨씬 좋을 수 있다.
영웅의 실체
비행사를 구하는 이는 뜻 밖에 벨트 소장이다. 그는 원격 조종 대신 비행사들이 수동 조종을 지시한다. 자칫 하면 우주 미아가 될 수 있는, 아주 위험한 방법이다. 미셀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벨트의 판단이 결국 비행사들을 살린다. 다음 날, 벨트는 기자들 앞에 서서 우주 왕복선이 순조롭게 미션을 진행 중이라며 거짓 발표를 한다. 이번 에피소드의 또 하나 테마는 '영웅의 실체'라고 표현할 수 있다. 멀더에게 벨트는 어린 시절의 영웅이다. 벨트를 처음 만날 때 팬심을 고백하며 들떠 있는 멀더를 보라!! 하지만 옆에서 지켜보며 실망을 하게 된다.
1차 시도가 무위에 그치자 '얼굴'유령이 직접 나선다. 벨트의 몸을 떠나 우주로 날아가서 우주선을 들이(진짜 충돌이다!!) 받는다. 충격으로 산소 탱크가 고장 나는데, 이 상황은 벨트가 제미나이 8호에서 겪었던 것과 정확히 같은 사고다. 긴급 대처에 경험 많은 벨트의 조언이 절대적인 상황이 됐다. 이 중요한 때에 환영에 사로잡힌 벨트가 발작을 일으키고 쓰러진다. 의료진이 달려와 응급 처치를 하지만, 이미 제정신이 아니다. 멀더는 마지막 방법으로 체면 요법을 시도한다. 그것이 통했는지 벨트는 왕복선 선체에 결함을 밝히며, 정상 괘도로 진입 시 선체가 견디지 못할 것이라 경고한다. 비상 착륙에 성공하기 위해선 진입 각도를 수정해야 한다는 팁을 알려준 뒤 의식을 잃는다. 미셀의 약혼자는 무사히 지구로 돌아온다. 동시에 얼굴 유령도 벨트에게 돌아온다. 벨트는 자기 몸에 유령이 들어온 것을 알고, 병원 창문에서 뛰어 내린다. 신문을 통해 벨트의 투신 자살 소식을 접한 멀더는 영웅의 최후에 씁쓸함을 감추지 못한다.
에피소드 정보
9화 <Space>는 1993년 11월 12일에 방영되었다. 음악은 마크 스노우(Mark Snow), 촬영에 존 S. 바틀리(John S. Bartley), 미술 그레임 머레이(Graeme Murray)가 맡았다. 크리스 카터는 시즌1 정규 편성을 코 앞에 둔 93년 9월경에 각본을 작업을 진행했다. 제작비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무렵이라 이 에피소드는 무조건 저예산으로 완성시켜야 했다. 크리스 카터는 나사(NASA)에서 아카이브 영상을 싸게 구해 제작비를 절감했지만, 우주센터 관제실 세트를 짓는데 당초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지출을 하게 되었다. 의도와 달리 9화는 시즌 1 전체 에피소드 중 가장 값비싼 회차가 된다. 8일이라는 짧은 촬영 일정, 잦은 각본 변경이 완성도에 치명적인 영향을 준 듯 하다.
Chronicle - 엑스 파일(se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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