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네티컷 주 그리니치의 어느 주택가. 조깅하던 부부가 이른 아침부터 길가에 나와 있는 이웃집 아이 티나(사브리나 크리빈스 / Sabrina Krievins)를 발견하고 다가간다. 티나는 자기가 왜 여기 있는지 영문을 모른다. 아이의 부모를 찾아 티나와 함께 집으로 들어간 부부. 아빠 조엘은 마당 그네에 미동 없이 앉아있다. 부부 중 남자 쪽이 조엘의 어깨를 툭 건드리자, 그의 목이 힘없이 뒤로 꺾인다. 조엘은 죽은 지 오래다. 비명이 터지고, 부부가 티나를 급히 안는다. 그런데 죽은 아빠를 바라보는 티나의 시선이 놀랍도록 차갑다.
11화 <Eve>는 오프닝 시퀀스부터 안정감 있는 연출을 보여준다. 평범한 주택가를 내려다 보는 부감 쇼트, 저 멀리서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 침착한 카메라 움직임, 여기에 마크 스노우(Mark Snow)의 불길한 음악이 더해지면 공포 분위기가 제대로 조성된다. 새삼 <엑스 파일>의 매력 - 타블로이드 잡지에나 나올법한 황당한 이야기를 정극 스타일로 진지하게 다루는 - 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준다.
※ 글 전체가 스포일러입니다!!
1. 가축 훼손
아빠 조엘의 사인(死因)은 과다출혈이다. 흡혈귀에 물린 듯 목덜미에 두 개의 구멍이 뚫렸다. 몸속에 있는 피가 전부 빠져나가다시피 했는데 피해자는 반항을 못했다. 범인이 '디기톨리스'라고 식물에서 채취한 천연 마취제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딸 티나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사망 직후 비가 내려 증거가 다 씻겨 내려갔다. 까다로운 사건을 배당받은 멀더(데이비드 듀코브니 / David Duchovny)는 어김없이 '외계인 가설'을 주장한다. 엑스 파일에는 오래전부터 외계인 출몰지역에서 벌어진 가축의 집단 폐사(과다 출혈에 의한) 사건이 여러 건 보고되었다. 이번 사건과의 차이점은 오로지 피해 대상이 사람이라는 것뿐이다.
2. 예상치 못한 전개
멀더와 스컬리(질리안 앤더슨 / Gillian Anderson)는 티나의 인터뷰를 위해 보육기관을 찾는다. 혈육을 모두 잃어 위탁 가정, 혹은 입양부모가 정해질 때까지 시설에서 지내야 하는 티나. 안쓰러운 마음이 절로 든다. 티나의 얼굴에선 감정을 찾아볼 수 없다. 티나는 멀더에게 솔깃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건 당일 아침 구름에서 빨간 불빛을 봤고, 거기서 나온 무언가가 아빠를 잡으려 했다는 것이다. 멀더가 기대했던 내용과 정확히 일치한다. 하지만 멀더의 기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무너진다. 티나의 아버지가 죽던 그 시각,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캘리포니아에서도 동일한 범죄가 발생했다. 역시 딸 하나를 둔 아빠가 과다출혈로 죽었고, 디기톨리스 마취성분도 발견됐다. 두 요원이 서둘러 캘리포니아 주, 마린 카운티로 날아갈 즈음, 티나는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 납치당한다.
3. 도플갱어
피해자의 집 앞에 도착한 멀더와 스컬리는 문을 열어주는 딸 신디(에리카 크리빈스 / Erika Krievins)를 보고 경악한다. 마린 시티의 신디와 그리니치의 티나는 도플갱어처럼 생김새가 똑같다. 신디가 거실에서 TV를 보는 동안, 멀더와 스컬리는 아이 엄마 엘렌(타샤 심스 / Tasha Simms)을 붙들고 딸을 입양했냐, 자연 출산했냐 등의 무례한 질문을 쏟아낸다. 똑같은 수법으로 살해당한 남자들의 딸이 똑같은 얼굴을 가졌으니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과연 티나와 신디는 같은 불임센터에서 시험관 시술에 의해 태어난 것으로 밝혀진다.
어른들이 심각한 대화를 할 때, 신디는 TV에 정신이 팔려 있다. 아니 그런 것처럼 위장한다. 신디의 귀는 온통 엄마와 멀더, 스컬리가 나누는 대화에 쏠려있다. 감독은 이를 표현하기 위해 신디를 카메라 가까이에 두고, 원경에 어른들을 배치한다. '티나', '시험관 시술' 같은 단어가 들릴 때, 신디는 미세하지만 누구나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표정에 변화를 준다. 이 장면만 봐도 연출자 프레드 거버(Fred Gerber)가 탄탄한 내공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다.
4. 슈퍼 솔저
시험관 시술을 한 여의사 샐리 캔드릭(해리엇 샌섬 해리스 / Harriet Sansom Harris)이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른다. 샐리는 불임 분야의 초엘리트 의사였는데, 이곳에서 불법적인 우생학 실험을 이어가고 있었다. 병원 홍보 영상 속 샐리는 불임으로 고통받는 부부들에게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마치 구원자처럼 '복음'을 전파하고 있지만, 그녀의 실체는 프랑켄슈타인과의 미치광이 과학자였다. 불임센터 원장의 제보로 경찰이 수사를 시작하자, 샐리는 종적을 감춰 버렸다.
실종자를 찾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막다른 길에 다다른 멀더에게 빅 쓰로트(제리 하딘 / Jerry Hardin)가 결정적 제보를 한다. 50년대 소련은 유전자 기술을 이용해 슈퍼 솔저를 만들겠다는 야심을 품었다. 이 정보를 접한 미국 역시 서둘러 프로젝트에 착수했는데, 과학자, 운동선수 등 우수한 인재들의 유전자를 복제해 초인(超人)을 만들려 했다. 샐리 캔드릭은 이 실험의 결과로 탄생한 '이브 7호' 였다. 멀더와 스컬리는 빅 쓰로트의 도움으로 국가가 특별 관리하는 중범죄자 감옥에 수감 중인 또 다른 샐리 캔드릭 - 이브 6호를 만나게 된다.
5. 양들의 침묵
특별 교도소 감방에서 이브6호를 만나는 장면은 영화 <양들의 침묵>과 비슷하다. 이브 6호는 간수의 눈알을 물어뜯어 삼킨 이후로 사지를 결박당한 채 독방에서 살고 있다. 멀더와 스컬리는 그녀의 입을 통해 유전자 복제를 통해 탄생된 '아담'과 '이브'에 대해 듣는다. 뛰어난 지능을 갖고 태어났지만 불안정한 정신 상태로 인해 이들 중 대부분은 자살을 했다. 남아 있는 자는 이브 6호와 이브 7호 - 샐리 캔드릭뿐이었다. 그녀는 신디와 티나를 직접 만들어 창조주들의 결함을 직접 보완하려 한 것이다. 멀더와 스컬리는 감방 안에 이브 6호가 붙여놓은 어릴 적 사진을 보게 되는데, 이 사진 속 이미지는 <Eve> 편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 흑백사진 속에 어린 티나, 신디와 똑같이 생긴 이브들이 단체로 모여있다.
이브 6호와 이브 7호는 얼굴은 같지만 성격이 다르다. 6호는 광인(狂人)이고 7호는 나름 이성적이라 할 수 있다. 이 극단의 인물을 한 배우가 연기하는데 전혀 어색하지 않다. 1인 2역을 한 배우는 연극 무대에서 주로 활동했던 해리엇 샌섬 해리스가 연기했다. 해리엇은 10년 후 뮤지컬 <모던 밀리(Thoroughly Modern Millie)>로 토니상을 수상한다.
6. 위험한 아이들
샐리 캔드릭은 신디를 납치하기 위해 모습을 드러낸다. 앞서 티나를 납치한 자 역시 다름 아닌 샐리였다. 잠복하던 멀더와 스컬리가 급히 달려 가지만, 신디를 쏘겠다며 총으로 위협하는 샐리를 막지 못한다. 은신처에 도착한 샐리는 신디에게 먼저 데려 온 티나를 소개한다. 그녀는 남은 이브들을 모아 가족을 만들려 했다. 하지만 티나와 신디는 샐리의 예상을 뛰어넘는 존재였다. 아이들은 샐리의 음료수에 독약을 풀어 살해한다. 티나와 신디는 함께 공모해 각자의 아빠를 살해한, 진짜 범인들이었다.
멀더와 스컬리는 샐리의 차를 추적해 은신처를 찾아낸다. 두 요원이 도착했을 때, 티나와 신디는 가증스럽게도 샐리의 시체를 가리키며 부들부들 떤다. 멀더와 스컬리는 아이들이 살인자라는 사실을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Eve> 편의 클라이맥스는 이동 중에 들른 고속도로 휴게소를 무대 삼아 펼쳐진다. 아이들은 샐리를 살해한 수법 그대로 음료수에 약을 타서 멀더와 스컬리를 먹이려고 한다. 멀더와 스컬리는 음료수를 삼킬 것인가? 독이 든 음료수를 둘러싼 고전적 서스펜스 게임이 시작되고, 두 요원 마침내 아이들의 악마성을 직접 눈으로 보게 된다. 티나와 신디는 도주하기 위해 주위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해 멀더와 스컬리의 추적을 막으려 한다. 아이들의 계획은 거의 성공할 뻔했다. 하지만 멀더와 스컬리는 주차장 대형 트레일러 뒤에 숨어있던 아이들을 체포한다. 에피소드의 마지막 장면, 의사 가운을 입은 또 한 명의 '이브'가 검문을 통과해 신디와 티다가 수감되어 있는 교도소로 들어간다. 이브의 반란은 끝나지 않았다.
7. 에피소드 정보
1993년 12월 10일에 방영된 <엑스 파일> 시즌1의 11화 <Eve>는 프리랜서 작가케네스 빌러(Kenneth Biller)와 크리스 브란카토(Chris Brancato)의 초안에서 비롯됐다. 브란카토는 그레고리 펙, 로렌스 올리비에 등이 출연한 1978년도 영화 <The Boys from Brazil>에서 영감을 얻었다. 이 영화는 아돌프 히틀러의 유전적 클론을 만들겠다고 결심한 나치 과학자의 음모를 다룬다. 이 초안을 글렌 모건(Glen Morgan)과 제임스 웡(James Wong)이 다듬어 최종고를 만들었다. 새로운 이브, 티나와 신디는 각각 글렌 모건과 제임스 웡의 부인 이름을 따서 지었다. 촬영 존 S. 바틀리(John S. Bartley), 편집 스티븐 마크(Stephen Mark), 미술에 그레임 머레이(Graeme Murray) 등이 메인 스태프진을 이루고 있다.
제작진들은 신디와 티나 역을 위해 쌍둥이 아역배우가 필요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캐스팅을 시도했지만 현지 법률 기준을 충족할 수 없어 캐나다 밴쿠버에서 에리카 크리빈스와 사브리나 크리빈스를 캐스팅했다. 크리에이터 크리스 카터는 이 에피스드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게 배우들이라고 밝힌 바 있다. 특히 해리엇 해리스의 연기에 격찬을 했다. 현재까지 활동 중인 미국 락 밴드 Eve 6는 바로 이 에피소드에서 영감을 받아 밴드의 이름을 지었다.
Chronicle - 엑스 파일(se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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