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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뉴스 & 정보

씨네21 - 1471호 - 2024.08.27~2024.09.03.

by homeostasis 2025.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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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들롱이 사망했다. 과거의 영웅들은 악당으로 변하기도 하고, 늙어 사라진다. <리볼버>의 오승욱 감독은 자신이 열광했던 영화들을 자산으로 스스로만의 영화를 고집스레 만든다. 지금의 영화팬들은 무슨 영화에 열광했고, 누구를 영웅으로 생각할까? 

 

1. Opening

이번 호는 극장에서 이미 흥행 실패로 판정난 <리볼버>를 다시 꺼내 살펴본다. 오프닝에서 송경원 편집장은 '영화 전문지로서 <씨네21>이 놓치지 않아야 하는 건 눈에 보이는 결과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이면에 대한 호기심이어야 한다'라고 믿는다며 '걸작이라서 되돌아보겠다는 게 아니다. '널 지켜주겠다'는 오만을 부릴 처지도 못 된다. 다만 이렇게 어정쩡하게 잊히도록, 혼자 내버려 두진 않겠다.'며 <리볼버> 특집의 이유를 밝힌다. 

 

2. 부고

알랭 들롱(Alain Delon, 1935~2024)이 지난 8월 18일 사망했다. 그는 세계 최고의 미남으로 오랫동안 군림했다. <태양은 가득히>의 리플리 역으로 전 세계적인 유명세를 얻었고, 루키노 비스콘티,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등 세계적인 거장들의 영화에 출연했다.

 

 

특히 장 피에르 멜빌 감독과는 <사무라이>(1967년)를 비롯해 여러 편을 함께 했다. 알랭 들롱은 스크린 안과 밖에서 '위험한 남자'이미지를 구축했다. 누아르, 갱스터 영화에 자주 출연했고, 실제 살인혐의로 수사받은 적도 있었으며, 여러 여성들과 스캔들을 일으켰다. 프랑스 극우정치인 르펜의 지지자이기도 했다. 장미에 가시가 있고, 알록달록한 버섯에 독이 있는 것처럼 알랭 들롱은 평생을 위험한 꽃미남으로 살았다.

 

3. 한국이 싫어서 & 모쿠슈라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던 <한국이 싫어서>가 24년 8월 28일 개봉했다. 영화는 6만 2천의 관객을 동원했다. 아쉬운 결과지만, 만든 사람들, 혹은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의 영감이 되어 다른 작품의 자양분이 될 것이다.

 

이번 호에선 제작사 모쿠슈라, 그리고 계나(고아성 분)의 동생 미나 역을 연기한 뮤지션 김뜻돌의 인터뷰를 실었다. 나는 무엇이 됐든 주어진 여건 하에서 최선을 다해 결과물을 쌓는 사람들을 볼 때 응원하는 마음이 먼저 든다. 모쿠슈라도 그런 사람들의 집합체인 것 같다.

 

장건재 감독, 김우리 대표, 윤희영 PD의 3인 체제로 움직이는 모쿠슈라는 하마구치 류스케의 저서 <카메라 앞에서 연기한다는 것>을 출판하기도 했다. 적은 규모의 영화를 꾸준히 제작해 왔고, 지금도 차기작을 기획하고, 영화진흥위원회 등의 제작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기술적인 부분도 직접 배워가며 앞으로 나간다. 이들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지켜보자.

 

뮤지션 김뜻돌은 <한국이 싫어서>에서 고아성이 연기한 계나의 동생 미나 역을 맡았다. 본인은 '3남매 중 맞이, K장녀'라 자신을 소개한다. '자유로운 영혼 같지만 대학전공도 사회과학부'이며 '공자에서 일하다 판교의 소금회사에 취직'한 경험도 있다. 왕복 4시간 출퇴근을 하다 보니 '계나'에 자연스레 이입이 됐다고.

 

4. 문경

<방문자>, <반두비>, <컴,투게더>의 신동일 감독이 <문경>을 발표했다. 감독의 고향이 문경이고, 여성들의 이야기를 해 보고 싶던 차에 시나리오를 완성하게 됐다고. 영화의 전반부 30분은 도심에서 펼쳐지는 오피스 드라마인데, 이것이 문경의 탁 트인 야외에서 진행되는 나머지 분량과 대조를 이룬다.

 

신동일 감독의 전작과 달리 보기 편한 영화다. 롱 테이크의 관조적 시점을 즐겨 사용했던 이전과 달리 <문경>에선 전형적인 숏-리버스 숏 구도를 적극 구사한다. 신동일 감독은 전작 <청산, 유수>를 통해 충청도를, 이번 <문경>은 경상도를 다루었으니, 차기작으로 전라도 배경의 영화를 만들면 어떨까 생각 중이라고 한다.

 

5. <딸에 대하여>의 세 배우

<딸에 대하여>는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엄마(오민애 분), 딸 그린(임세미 분), 딸의 동성애인 레인(하윤경 분)의 관계를 통해 불안한 현대인의 삶, 가족, 그리고 연대의 가능성 등을 탐구한다. 엄마 역의 오민애는 <파일럿>에서 주인공 엄마, <더 글로리>의 하도영 모 역을 맡은 배우다.

 

영화 속 엄마 역에 대해 오민애는 '사실 우리는 누구나 사랑을 품고 살아가길 원한다. 연예인을, 강아지를, 식물을 이렇게나 사랑할 수 있는 존재인데 정작 가족과는 그걸 잘 못 이룬다.'라고 말하는데, 인간관계의 본질을 꿰뚫는 말인 것 같아 곱씹게 된다.

 

임세미 배우는 장편 독립영화를 하고 싶어 소속사까지 옮길 정도로 다양한 작품에 대한 의지를 보인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봄날의 햇살'로 잘 알려진 하윤경은 내면이 단단한 사람인 듯하다. 연기에 대한 생각을 밝힐 때 아주 논리적이다. 독립영화 현장에 있을 때 '아, 내가 이래서 연기를 좋아하게 된 것인지'하고 자각하게 된다고.

 

6. 개봉작

여름의 막바지에 독립영화, 애니메이션, 할리우드 호러 스릴러, 인도 액션 등 비교적 적은 규모의 영화들이 일제히 개봉을 했다. 앞서 소개한 <한국이 싫어서>, <문경>을 포함해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 수상을 포함, 여러 국제영화제를 돌고 있는 손현록 감독의 <그 여름날의 거짓말>도 관객을 만난다.

 

고교생 다영이 '살 떨리는 여름방학'을 회상하는 내용으로 '감정에는 취약하지만 책임 앞에서는 숭고한 태도를 보이기도 하는 파격적이며 꿋꿋한 10대 상을 제시'한다. 딸 가진 부모 입장에선 호러 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21년에 완성한 <한밤의 판타지오>도 늦은 개봉을 한다. 어린이들이 중심이 된 성장영화인데 여기에 정령과 같은 판타지의 요소들과 현실의 문제들이 끼어든다. 리뷰를 쓴 문주화 영화 평론가는 이 영화가 어린이를 바라보는 시선 자체에 의구심을 표한다. <둠벙>은 세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미스터리 호러로 여러 사회문제를 슬래셔, SF 등 'B급 장르의 문법'으로 표현했다. 씨네21의 김경수 기자는 별점 하나 반을 줬다.

 

23년 글로벌 액션팬들에게 'underrated' 작품으로 입소문을 탄 인도영화 <킬 Kill>도 개봉한다. 특수부대원이 열차를 장악한 40명의 무장강도를 단신으로 돌파한다. <설국열차>의 잔혹 액션 버전이라 볼 수도 있는데 상대를 죽이는 방식이 아주 잔인하고 수위가 높다. 호러 장르의 신흥명가 블룸하우스의 신작 <이매지너리>도 개봉한다. '대물림된 공포', '어머니와 딸', 그리고 일상적 공간이 가장 위험한 곳이 되는 공포를 주 무기로 내세웠다. 누구나 박수칠만한 영화는 아닌 것 같다.

 

일본 TV 애니메이션의 극장판 2편도 24년 8월 말에 개봉했다. <극장판 블루 록 - 에피소드 나기>는 시리즈의 조연 캐릭터 나기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블루 록'은 전원 스트라이커로 된 축구팀 프로젝트 명칭이다. 남지우 기자는  이 작품의 테마가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에 관한 직업적, 존재적 난제 탐구라고 썼다. 짧은 리뷰를 보고도 <블루 록>에 대한 호기심이 생긴다.

 

<극장판 기븐_히이라기 믹스>는 BL 밴드물 <기븐>의 두 번째 극장판이다. BL 쪽은 관심이 없었고, 마니악한 장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애니메이션 시리즈와 극장판이 제작될 정도로 수요가 있다니 놀랍다.

 

7. 영화 <리볼버>, 총알은 남아있다

 

전국 관객 25만 명 동원에 그친 <리볼버>는 평단의 엄청난 찬사도 받지 못한 채 극장에서 내려왔다. 씨네21은 이렇게 잊힐 영화는 아니라며 <리볼버>를 다시 꺼내 요리조리 살핀다. 이번 <리볼버> 특집은 필자들의 주장에 동의 여부를 떠나 영화 전문지가 존재해야 할 이유를 보는 듯하여 반갑기 그지없다.

이우빈 기자는 <리볼버>가 포털사이트의 관객 평으로만 보면 탈웰메이드 성, 달리 말해 재미없고 못 만든 영화라 전제한 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이라 생각한다. 의도적으로 웰메이드를 피해 갔다고 보는 것이다.

 

그 의도는 '그간 한국영화가 빚져 오려 노력하던 정전의 누아르, 이를테면 와일더, 멜빌, 코폴라, 폴란스키, 두기봉, 코언 형제, 마이클 만의 자장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한국사람 하수영(전도연 분)의 거대하고 극 사실적인 탈옥극'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우빈 기자는 <리볼버>가 한국영화 르네상스(2000년대 초반, <올드보이>, <살인의 추억> 등이 나오던)를 떠올렸다.

 

김영진 평론가는 <리볼버>가 '드라마의 얼개는 있지만 극적인 충격은 없다'며 이것이 관객의 심기를 건드렸을 것이라 생각한다. '겉만 그럴싸하며 알맹이 없는 인물들만 나오는 영화라는 비판'을 받았다며, 여기에 대한 반론으로 '그 허세가 품위가 되는 게 이 영화의 묘미'라 주장한다.

 

김영진이 보기에 <리볼버>는 장르적으로 이렇게 진행될 것이라는 세팅을 해놓고 카타르시스를 주는 대신 '각자 부여받은 존엄에의 의무를 힘겹게 완수하는 캐릭터들의 긴장과 힘'에 집중했다.

 

또 한 가지 주목할 부분은 '스펙터클이 대규모 자본을 투입한 물량의 크기'에 달려있는 게 아니라 배우의 '표정과 몸짓의 덜림, 활달한 행동 묘사와 연출만으로 시네마스틱한 스펙터클이 가능'하다고 믿는다며 연기, 연출, 편집 리듬의 탁월함에 대해 다시 주목하길 권한다.

 

김병규 평론가는 <리볼버>에서 김기영의 흔적을 본다. 그것은 마지막, 하수영(전도연 분)이 휠체어에 탄 앤디(지창욱 분)를 산 위에 올려놓는데, 그레이스(전혜진 분)가 앤디를 다시 끌고 내려오는 장면이다. 여기서 오승욱이 김기영 감독의 <고려장>을 비틀었다고 봤는데, 두 편 모두 핵심은 '가족은 지긋지긋'한 것이라는 점이다.

 

오승욱 감독의 <무뢰한>, 각본을 쓴 <초록물고기> 등에서 주인공은 아파트와 그것이 상징하는 행복한 가정을 꿈꾸다 파멸에 이른다. <리볼버>의 하수영 역시 아파트를 돌려받는 게 목적이다. 하지만 그녀는 결말에 가서 '비장한 최후' 대신 미련 없이 떠나는 쪽을 택한다. 이런 점에서 김병규는 <리볼버>가 오승욱 감독의 두 번째 챕터를 여는 작품일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김예솔비 평론가는 <리볼버>에서 '리볼버'라는 무기가 갖는 관능에 주목한다. 영화에서 리볼버는 액션을 위해서가 아니라, '폭력의 절제를 추동'하는 도구로 쓰인다. 하수영은 리볼버를 '누구도 살해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져가기 위한' 용도로 사용한다. 살인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긴장과 누아르 특유의 가오, 경직성은 이 영화가 '실은 불발된 멜로의 변형'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8. <유어 아너> &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24년 8월 12일 지니 TV에서 공개된 <유어 아너>의 각본을 쓴 김재환 작가, 8월 23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의 손호영 작가, 오완일 PD의 인터뷰 기사다.

 

<유어 아너>의 김재환 작가는 <고령화가족>으로 알려지기 시작해 24년 쿠팡 플레이 오리지널 <소년시대>를 성공리에 마무리했다. 영화계에서 시나리오 작가로 20년 동안 천착해 온 인물.

 

초기에 대부분 신생이나 한번 망한 제작사와 일했는데 '제작자가 원하는 완벽함에 다가가기 위해 수없는 실패와 좌절을 거듭하다 보니 장르성을 뛰어넘게 됐다'며 영화 시나리오 작가임에도 시리즈에 성공적으로 적응한 이유를 밝힌다. 본인의 쓰라린 경험을 유머로 승화시킬 줄 아는 분이다.

 

고민시의 미친 열연으로 주목받은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의 모완일 PD는 이 작품이 '빌런에 맞서는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건의 주변부에서 피해를 본 이들이 소중한 자기만의 공간을 잃고 다시 회복하는 이야기'라 말한다. 작가 손호영은 결말에 대해 지켜야 할 사람을 위한 것이라며 '자신을 지킬 때 보다 더 무거운 마음으로 비밀을 안은 채 살아가는 사람'이라며 영하(김윤석)와 보민(이정은 분)의 선택을 설명한다.

 

9. 비평들

 

김소희 평론가는 정이삭 감독이 <트위스터스>에서 클라이맥스의 무대로 영화관을 택하고, 그 영화관에서 상영 중인 작품으로 흑백영화 <프랑켄슈타인>(1931년)을 골랐다는 데 주목한다. 폭풍의 스펙터클을 관람하기 바쁠 텐데 영화 평론가는 예민하게 이 장면을 포착했다.

 

필자의 고찰은 <오즈의 마법사>, 정이삭 감독의 전작 <미나리>, 그리고 <영구와 땡칠이>(?)를 거쳐 빅토르 에리세의 <벌집의 정령>(1973년)에 이른다. <트위스터스>와 <벌집의 정령>은 영화가 '영화 바깥의 현실과 연결되는 방식'으로 '영화 속 영화'로 <프랑켄슈타인>을 인용했다.

 

유선아 평론가는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미래의 범죄들>을 이야기한다. 영화는 '육안으로 볼 수 없었던 신체의 내부를 활짝 열어 장기를 적출하는 해부 퍼포먼스'가 최고의 쇼가 된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유선아는 '내면이 마음과 정신을 뜻하지 않고 인체 내부를 가리킬 때, '아름다운 내면' 콘테스트가 곧 아름답게 배치된 장기를 의미하게 될 때'를 통해 '현대의 이미지, 영상을 향한 우수에 찬 근심'으로 이 영화를 보았다.

 

앙드레 바쟁은 '기록의 사실성이 허구적 진실이 되기를 바라면서 몽타주를 금지'하고 롱 테이크를 쓰자고 주장했다. 이도훈 평론가는 지금 디지털 영화 시대의 롱 테이크의 의미를 고민한다. '카메라 앞에서 벌어지는 유일한 순간을 기록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후반작업을 통한 개입과 조작'이 필연적이다. 이때 롱 테이크의 미학은 과거와 어떻게 다를 것인가?

 

Chronicle -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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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혹하게 더웠던 24년 8월 말, 에 소개된 영화들은 한결같이 외계인에 공격(에일리언 로물루스) 받는 청춘들, '한국이 싫어서' 떠난 청춘들, 토네이도 같은 자연재해와 맞닥트린 청춘들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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