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Opening
7~8월은 한해 영화시장의 성패를 좌우하는 시즌이다. 24년은 코로나19, 미국 작가조합 파업 등의 여파라고 하지만 블록버스터급 대작이 없어도 너무 없다. 여기에 더해 한국 극장가는 연일 막장의 최전선을 갱신하는 정치 뉴스들과 파리 올림픽으로 더욱 불안한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송경원 편집장은 간절한 마음에서 영화 관람을 독려하며 '2024년 여름 한국에서, 현실은 영화를 이길 수 없다'는 정신승리적 문장으로 오프닝 칼럼을 끝맺는다.
2. 파일럿
이번 호는 화력을 총동원해 <파일럿>을 옹호한다. 먼저 배우 조정석의 인터뷰가 포문을 연다. <파일럿>은 조정석 배우의 존재감에 크게 의지한다. 그가 연기한 '한정석'은 미성숙에 비호감 캐릭터다. 그럼에도 관객은 부담 없이 이 인물을 받아들인다. 이게 바로 배우 조정석이 가진 힘이다. 조정석은 우러러보는 스타 대신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배우가 되었다. 인터뷰를 읽다보면 그가 가진 이 '보통'의 감각이 어디서 왔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또한 조정석은 세 글자 제목의 영화에 꽂힌 듯하다. <엑시트>, <파일럿> 모두 흥행작이 되었다. 그의 차기작은 또 세 글자 제목의 <좀비딸>다.
감독 김한결, 제작자 김명진 쇼트케이크 대표, 김재중 무비락 대표의 인터뷰도 마련되어 있다. 영화를 보며 물음표가 떠올랐던 장면에 대해 직접적인 답변을 들을 수 있어 좋았다. 임수연 기자가 '한정미(조정석)가 윤슬기(이주명)에게 이성적 호감을 갖고 있다고 받아들이는 관객도 있을 듯하다"는 질문을 보고 "그럼 아니었단 말인가?" 하고 깜짝 놀랐다. 손희정 평론가와 임수연 기자의 글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텍스트란 것이 <파일럿>의 가장 큰 장점임을 알려준다.
3. 김연교
<더 납작 엎드릴게요>의 주연배우 김연교는 2015년 연극 <안나라수나마라>로 데뷔, 다수의 영화, 드라마에 출연했다. 그와 동시에 단편영화 감독이자 팟캐스트, 유튜브 콘텐츠를 만드는 크리에이터이다. 대중적 인지도는 부족할지라도 자기가 좋아하는 여러 분야에서 계속 가능성을 탐색하는 사람인 듯하다. 지치지 말고 꾸준히 해내길 응원하고 싶다.
4. 프리큐어 올스타즈 F
2004년에 시작된 <프리큐어>시리즈는 2024년에도 계속된다. <극장판 프리큐어 올스타즈 F>는 무려 78명의 프리큐어 캐릭터가 등장한다. 총괄 프로듀서 와시오 다카시는 올스타 콘셉트의 극장판을 계속 만들 것이냐는 질문에 '한 교실에도 못 들어가는 인원을 스크린에 모두 그리는 일은 스태프에게 고된 일이다. 일단 스태프들이 화를 안 내는 선까지는 만들고 싶다'라고 각오를 다진다.
5. 조선인 여공의 노래
블록버스터가 많지 않다고, 이상한 썸머 시즌이라 중얼거렸는데 <조선인 여공의 노래>가 조용히 관객을 찾고 있었다. <북쪽에서 온 여행자>, <누나> 등을 연출한 이원식 감독은 1910~50년대 일본 오사카 방적공장에서 일했던 조선인 여공의 삶을 조명한다. 일제강점기의 계급 피라미드 맨 아래에 '조선인 여공'들이 있었다. 이들은 가혹한 노동환경 속에서도 '굶주린 짐승처럼 왕성하고 질긴 생명력으로 척박한 땅에 기어이 뿌리내린다.' 헐값에 노동력을 착취당했던 여성'들'은 해방 조국에서도 산업화라는 빛 아래 그림자로 존재했다. '공순이'라 불렸던 소녀들의 얼굴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6. 개봉작
'일본 성장 청춘물' <물은 바다를 향해 흐른다>는 동명의 원작 만화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박수용 객원기자는 '히로세 스즈의 반투명한 표정을 보며 이제 그의 이름이 한 작품의 무게를 온전히 짊어질 수 있음을 재확인한다.'고 주연배우의 매력을 인정한다. 씨네21 별점은 보통 수준이다.
문제작 <사랑의 하츄핑>은 국산 애니 <캐치! 티니핑>의 첫번째 극장판이다. 이자연 기자는 질감이 느껴지는 옷 표현 등 '섬세한 애니메이팅'이 인상적이라며 전반적으로 호의적인 평을 남겼다. 하지만 기자 본인도 이 영화가 백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으며 여름 극장가에 작은 파문을 남길 줄은 미처 몰랐을 것이다. 영화사 찬란과 배우 소지섭이 함께 수입한 <디베르티멘토>는 차별에 맞서 오케스트라 디베르티멘토를 만든 지휘자 자히아 지우아니의 실화를 다룬다.
OTT 신작은 디즈니+의 <노 웨이 아웃 : 더 룰렛> 아직 1, 2화만 공개된 상황에서 이유채 기자라 리뷰를 썼다. 긴장감은 넘치지만 '어수선한 연출'과 '편의적인 각본'이 다소 아쉽다고 평했다. 이 시리즈의 최대 강점은 조진웅, 염정아, 유재명, 이광수, 김무열, 그리고 대만배우 허광한 등 배우들의 얼굴이 아닐까 싶다.
7. 리볼버
<무뢰한>의 오승욱 감독 × 전도연 배우가 근 10년만에 <리볼버>를 발표했다. 아쉽게도 감독의 전작들처럼 흥행면으로선 실패한 작품이 됐다. <무뢰한>처럼 <리볼버>도 시장의 참패를 영화적인 평가로 만회하며 생명력을 이어갈 수 있을까? 오승욱 감독은 <리볼버>가 '대화의 영화'라고 했는데, 조한나 기자는 바로 이 지점에서 영화의 장단점이 존재한다고 평가한다. 대화가 중요해졌지만, 영화가 번뜩이는 순간은 오히려 인물들이 말하지 않을 때라고 한다. 이 영화의 발단은 전도연 배우의 제안이었다고 한다. 처음부터 전도연 배우를 중심으로 영화를 구상했다. 감독은 <사망유희>에서 이 영화의 구조를 착안했다고 밝혔다. 이소룡이 사망탑 각층의 고수들을 격파해 나가는 것과 비슷하게 <리볼버>는 주인공 수영(전도연)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7명의 사람을 각개격파하듯 만난다.
이지현 평론가는 '전도연 배우론'에서 전도연이 우리와 가까운, 현실 속 이미지 - '전도연의 얼굴에는 일상의 장소가, 그리고 평범한 감상이 스며들어 있었다.' - 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전도연이 연기하는 혜경은 지나치게 우리들의 모습과 가깝다. 짙은 장르적 성격이 뒤엉켜 있지만, 누구나 이해할법한 감정을 영화 <무뢰한>은 호소한다.' 이지현의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하진 못했지만, 적어도 <리볼버>의 경우, 배우를 중심으로 감상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클로즈 업을 적극 사용했다는 오승욱 감독의 인터뷰 내용도 눈에 밟힌다.
8. 29회 씨네21 영화평론상
올해도 최우수상은 없었다. 하지만 두 명의 우수상 수상자가 나왔다. 부산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문주화 당선자는 여러 번의 도전 끝에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번에도 떨어질 거라 생각하고 '내년에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써야지' 하며 벌써부터 차년도 공모를 준비했다는 소감이 인상 깊다. 작품비평으로 미야케 쇼의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을, 이론비평으로 아키 카우리스마키를 썼다. 아키 카우리스마키가 은퇴를 선언했다 <사랑은 낙엽을 타고>가 6년 만의 복귀작이라는 것을 이제서야 알게 됐다. 그동안 영화 감상의 폭이 얼마나 좁아졌는지 문득 실감 난다.
이병헌 당선자는 신인이 아니다. 2019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부문, 2023년 박인환상 영화평론 부분에 수상한 바 있다. '2019년에 등단했다고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개점휴업' 상태였다고 한다. 고정 지면이 없어 혼자 글을 쓰며 브런치 등 개인 채널을 통해 글을 써왔다. 영화평론가로 살아가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지만 '계속 쓸 사람이란 사실에는 고민도, 의심도 없었다'라고 하니 그의 앞날을 응원한다. 이병헌의 글 <스필버그는 왜 열린 지평선을 찍지 못하는가?>는 전문을 보고 싶다.
9. 비평
김소미의 <프렌치 수프>에 대한 글은 이 영화처럼 아름답다. 그는 '도입부부터 무려 40분 동안 하나의 만찬을 준비하는 주방과 이를 즐기는 미식가의 식탁'에 머문다며, 이 영화가 요즘의 주방을 다룬 박진감 넘치는 연출에 역행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프렌치 수프>는 거시적 관점으로 시간을 바라본다. 트란 안 홍 감독은 '관객에게 시간을 선물하는 데 성공'했다면서 '플린을 교육함으로써 자신의 소멸에 대비하는 와제니의 실천은 시간의 덧없음에 대한 우아한 포즈'라고 말한다. 영화 엔딩에서 '순환하는 패닝'에 경탄하며, 이 장면이 미조구치 겐지와 연결되는 지점을 설명한 부분도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볼 만하다.
김병규 평론가의 '기계는 벌레를 포획할 수 있는가?'는 <미래의 범죄들>과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영화에 대한 흥미로운 길라잡이다. <플라이>에서 천재 과학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파리 한 마리 때문에 비극적 사고를 맞이한다. <폭력의 역사>에선 톰이 킬러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순간 무인의 시점 숏이 등장하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벌레소리가 계속 들려온다.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에 패배하고, 보는 것이 완벽한 현실이라 주장할 수도 없다. 이를 김병규는 '패배하는 기계장치'라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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