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또 한 번 넘어간다. 하루하루는 별 것 없는 하루인데, 31일에서 하루가 지나면 다음 달 1일이 된다. 그러면 이전과 다른, 완전히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는 것 같다. 결국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인가? 일체유심조라는 원효 대사의 가르침을 새기고 8월을 힘차게 시작해 보자!
1. Opening
'일단 누군가를 만나 정성을 다해 듣다 보면 궁금해지는 것들이 점점 늘어난다. 계속 궁금해진다. 그렇게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에서 찬찬히 오래 생각할 때 비로소 말을 걸어오는 것들은 시간이 갈수록 어여쁘다.' 나 역시 시간을 스쳐 살지 말고, 매 순간 충만하기를 기도해 본다.
2. 박석영 감독
박석영은 장편 독립영화를 꾸준히 연출하고 있는 감독이다. 정하담 배우와 함께 한 <재꽃>, <들꽃>, <스틸 플라워>로 많이 알려졌다. 그는 현재 지역상영관을 열심히 돌며 신작 <샤인>을 홍보 중이다. 초기작 두 편은 핸드핼드로 찍었다면, 점점 그의 카메라는 고정된 상태에서 배우를 담고 있다. "영화 기법이나 촬영을 잘 모르기 때문에 가장 단순한 방법을 찾게 되는 것 같다. 그저 카메라로 배우의 연기가 온전히 담기는 시간을 보는 것이 행복하다." 감독의 이런 말은 한편으로 꾸준히 자기 영화를 찍기 위해 선택한 방법론 - 장편 독립영화 - 일 수 있다.
3. 개봉작
<파일럿>과 <데드풀과 울버린>이 7월 마지막 주에 가장 주목받는 영화다. 한 주 먼저 개봉한 <데드풀과 울버린>은 마블의 멀티버스 서사의 피로감을 벗어던지지 못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8월 5일 기준 170만 관객을 동원했는데 한 주 늦게 개봉한 한국영화 <파일럿>이 개봉 6일 만에 190만 관객을 끌어모으는 데 성공했다. <파일럿>은 <뜨거운 것이 좋아>(1959년)와 <투씨>(1982년)과 같은 여장 남자의 역지사지 스토리다. 남지우 객원기자는 이 영화가 모범적인 영화가 될 것인가, 혹은 기념비적인 영화가 될 것인가의 기로에서 전자를 택한다고 하면서도 관객들이 오랫동안 희구해 온 코미디라 칭찬한다.
<더 원더스(Le Meraviglie)>는 오진우 평론가의 짧은 리뷰에 홀려 마음속 위시 리스트에 올려둔다. 감독 일리체 로르바케르는 '이탈리아 영화의 차세대 거장'이라 하고, 제67회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고, '16mm 필름'으로 찍었다는 점 등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죠죠의 기묘한 모험>은 제목 정도만 들어본 정도인데 이 만화의 스핀오프 <키시베 로한 루브르에 가다>의 영화판이 8월 1일 개봉한다. 이 영화에 대한 관심부터 원작 <죠죠의 기묘한 모험>부터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주 디즈니+의 <더 베어> 시즌3와 넷플릭스의 <스위트 홈> 시즌3가 출격한다. <더 베어> 시즌3 준수한 완성도를 자랑하지만 전 시즌에 비해 속도감이 떨어진 게 아쉽다고 하고, <스위트 홈>은 투박한 만듦새가 감상에 걸림돌이지만, 주제의식만은 끝까지 가져갔다고 평가한다.
4. 팬덤 × 영화
최근 개봉한 작품 중 '규모가 크지 않을지라도 팬덤이 명확한' 영화 3편을 특집으로 묶어 소개한다.
1) <수카바티 : 극락축구단>은 FC 안양 서포터스 'RED'를 다룬 다큐멘터리다.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닌데, 무언가를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전력을 다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가슴을 흔든다. 인터뷰를 보고 있으니, RED의 시그니쳐라는, 객석을 불게 물들이는 '홍염'을 직관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
2) <극장총집판 봇치 더 록! 전편>은 22년 방영된 일본 TV 애니메이션 시리즈 <봇치 더 록>의 TVA 편집본이다. 이런 작품이 있는 지도 몰랐는데 소개 기사를 보니 흥미가 돋는다. '혼자가 익숙한 성향의 아싸 소녀가 무엇보다 협동심이 중요한 밴드 활동'을 하는 내용으로, 처음 방영될 때만 해도 큰 기대가 없었으나 블루레이 / DVD 총 17만 장을 판매하며 신드롬을 일으켰다.
3) <하이퍼포커스>는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VR 콘서트 실황이다. 관객은 VR 장비를 쓰고 콘텐츠를 관람하게 되고, 좋아하는 멤버를 초근접 거리에서 볼 수 있고, 공연에 맞춰 응원봉까지 흔들 수 있다. '러닝타임 100분짜리 영화와 10분짜리 VR 영화의 CG 작업량'이 같은 만큼 분량은 40분에 불과하지만 이것도 전작에 비해선 두 배 늘은 것이라고 한다. 임수연 기자가 쓴 <하이퍼포커스> 체험기가 특히 재미있다.
5. 스위트 홈 시즌3
<스위트 홈> 시리즈의 최종장이 될 시즌3가 공개됐다. 2020년에 나온 시즌1은 미국 넷플릭스 톱 10에 진입하는 등 글로벌한 성공을 거두었고, 이후 5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주연배우 송강, 이도현, 고민시는 무시할 수 없는 스타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사실 시즌2와 시즌3을 동시에 제작했고, 현재 군 복무 중인 송강과 이도현은 프로모션 일정에 참여하지 못한다. 씨네 21은 시즌3에 대한 분석 기사 대신 이응복 감독(<도깨비>, <미스터 선샤인>)과 배우 이진욱, 이시영, 고민시의 인터뷰로 지면을 채웠다. 시즌4, 5, 6이 나올 수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감독이 고민시를 가리키며 "애가 하고 싶다고 하면 하겠다."라고 한 대목이 인상 깊다.
6. Master's Talk : 숀 레비 × 류승완
액션 신을 장기로 삼는 두 감독 류승완과 숀 레비가 입을 모아 조지 밀러 감독을 탓한다. "조지, 멈춰요! 다른 감독들 위해 아이디어 좀 남겨놔요! 당신은 이미 거장이잖아요" 이 대담의 결론은 '조지 밀러가 왕이다'
7. 비평들
<퍼펙트 데이즈>에서 히라야마(야쿠쇼 고지)의 과묵함은 김소희 평론가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빔 벤더스는 히라야마의 '특수한 사연이나 아름다움'을 설득하지 않고, 그의 얼굴과 동선을 따라갈 뿐이다. '얼굴을 이해하거나 언어화하는 일은 태양이나 나무를 완전히 이해하는 것만큼 터무니없는 일이다.' '히라야마의 과묵함은 식물과 태양의 존재양식을 모방'하는 듯 보인다. 김소희 평론가의 글을 가이드 삼아 다시 한번 <퍼펙트 데이즈>를 생각해 보자.
<러브 라이즈 블리딩>을 '현실과 환상 사이의 낙차'로 해석한 김성찬 평론가의 글도 흥미롭다. 이 영화는 '로맨스와 여성 연대의 정극에서 범죄수사물과 B급 괴수물, 그리고 SF로까지 나아간다.' 환상을 강조하면 현실이 되어버리고, <러브 라이즈 블리딩>처럼 '현실을 강조하면 환상에 다다른다.'
이도훈 평론가는 블릿 타임을 사유한다. <매트릭스>로 널리 알려진 이 기법은 '정지된 것을 움직이는 것으로 전환하는 영화의 기본 법칙을 뒤흔든다.' '시간의 연속적 흐름을 일시적으로 중단하는 기존의 슬로모션, 프리즈프레임에 더해 느려진 시간의 흐름을 공간적으로 표현'한다. 블릿 타임은 필연적으로 시공간의 질서를 다스리는 '새로운 영웅의 형상'을 만든다. <매트릭스>의 네오, <엑스맨 : 데이즈 오브 패스트>의 퀵 실버, <플래시>의 플래시는 '총알이 발사되어 내 몸에 도달하는 그 찰나의 시간'동안 생사를 오가는 선택을 해야 한다.
정준희 언론학자는 넷플릭스 <돌풍>을 마구 깐다. 시리즈의 대립구도 - 전통 우파 세력과 기득권화되어버린 민주화 세력 - 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긴커녕 왜곡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근거로 <돌풍>에서 보수의 악당들은 뭔가 구체성이 결여되어 있는데, 신흥 기득권 쪽은 전대협의장, 민주노총 위원장, 김대중 -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연상할 수 있을 만큼 구체적이다. 한쪽에게만 잔인한 '직접 언급' 방식은 허술하고 비겁하다.
8. Closing
홍기빈은 '현재의 인류에 훨씬 더 큰 위협이 되는 것은 1%의 과시적 소비가 아니라 20%의 모방적 소비'라고 말한다. 모방적 소비는 한 사회의 소비 욕구를 비정상적으로 끌어올리고, 여러 가지 사회문제는 물론, 기후와 같은 생태 위기까지 몰고 온다. 어째서 인간은 네가 하면 나도 해야 할 것만 같은 소비의 신경쇠약에서 벗어나질 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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