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이 시작되었는데, 극장가는 조용하다. 매년마다 찾아오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어김없이 <명탐정 코난>은 돌아온다.
1. Opening
2024 서울 국제 도서전을 다녀온 송경원 편집장은 행사장의 열기에 문득 영화제와 묘하게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때 문화의 총아였던 소설은 그 자리를 영화에 넘겨주었고, 영화 역시 이제 쇠락, 죽음이란 단어와 함께 쓰이는 게 어색하지 않을 상황이 되어 버렸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을 걱정할 시간에 차라리 내 손이 닿는 곳에 있는 반짝이는 순간들을 흘리지 않고 고이 주워 담아 보리라 다짐"하자는 송경원 편집장의 말은 서글픈 진실이다.
2. 남궁민
남궁민하면 영화 <뷰티풀 선데이>에서의 모습이 한동안 내 머리를 지배했었다. 영화도, 캐릭터도, 배우도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았다. 그렇게 잊고 지내다 포털의 연예뉴스에서 '믿고 보는 남궁민' 같은 기사 제목이 자주 눈에 띄기 시작했다. <스토브리그>를 보면서 왜들 남궁민 남궁민 하는 지를 알게 되었다. 남궁민은 "제목이 곧 1인칭 주인공인 작품의 주연배우로 자리하고 4년 사이 3번의 연기대상"을 받은 배우가 됐다.
이번 인터뷰에서 남궁민은 배우로서의 작업 방식을 살짝이나마 밝힌다. 그의 연기 노하우를 읽으며 느끼는 감정은 스타 배우로서의 영광보다 프로가 갖게 되는 고단 함이다. 그는 큰 텀 없이 차기작에 들어가고, 그가 선택하는 드라마는 예외없이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이제 남은 과제는 영화에서도 그 성과를 이어갈 수 있을 지다.
3. 인터뷰
7월 24일 개봉을 앞두고 <데드풀과 울버린> 팀이 한국에서 다양한 프로모션 활동을 하고 돌아갔다. 씨네21은 먼저 숀 레비 감독과의 인터뷰를 실었다. 그는 <리얼 스틸>로 휴 잭맨과 작업했고, <프리 가이>를 통해 라이언 레이놀즈를 연출한 바 있다. 그리고 <박물관은 살아있다>의 감독이기도 하다. 가족영화 전문 감독이 R등급 슈퍼 히어로물을 잘 만들 수 있을까? 이 영화가 버디 코미디의 형태를 지닐 것이고, 음악이 중요한 장치로 쓰일 것임을 인터뷰를 통해 짐작할 수 있었다.
애플TV 신작 <써니>의 정킷 인터뷰 기사도 실렸다. 이 작품은 <오피스>, <지하창고 사일로의 비밀> 등으로 알려진 라시다 존스가 제작/주연을 겸하고, 일본배우 니시지마 하데토시가 함께 출연한 10부작 시리즈다. 교토에 사는 수지(라시다 존스)가 사고로 남편 마사(니시지마 하데토시)를 잃은 후 남편이 근무하던 회사로부터 로봇을 선물 받으며 벌어지는 일을 다루고 있다. 기자가 '외로움에 대처하는 각자 만의 방식이 있냐'가 묻자, 라시다 존스가 '대처 자체를 하지 않는다' 답한 것이 재미있다. 외로움은 그냥 삶의 디폴트 값이다. 외로움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참고로 라시다는 퀸시 존스의 딸이다.
마지막은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에 초대받은 일본 작가 다카노 가즈아키다. <제노사이드>, <13계단>, <건널목의 유령> 등의 작품을 썼다. 그가 쓴 소설 속 주인공은 항상 죄를 지은 상태에서 출발한다. 여기에 대해 가즈아키의 답이 기억에 남는다. "내 주인공은 0에서 시작하는 게 아니라 마이너스에서 출발한다." 죄를 짓고 그 후에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는 나이가 들수록 흥미로운 주제다. 완전무결하게 흠 없는 인생은 없다.
4. 개봉작
CJ E&M의 텐트폴 <탈출 : 프로젝트 사일런스>와 소니픽쳐스의 <플라이 미 투 더 문>은 7월 12일 개봉 이후 열흘 정도 지났는데 언제 개봉했나 싶을 만큼 빠르게 극장가에서 사라지고 있다. 만에 빠르게 극장에서 사라지고 있다. 반면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 : 100만 달러의 팬타그램>은 7월 17일 개봉하여 일일 박스오피스 2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씨네21 이우빈 기자의 리뷰만 보면 호의적이다.
오우삼 감독의 오랜만의 신작 <사일런트 나잇>도 개봉했다. 보고 싶어도 상영관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아마도 OTT 플랫폼을 통해 곧 만나볼 수 있을 듯하다. 이 영화는 대사가 없이 진행된다. 파격적인 영화실험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여러모로 기대를 모았지만, 오우삼 특유의 과잉 정서가 이번에도 감상의 커다란 장벽으로 다가온다.
OTT 출시작으로는 애니메이션 시리즈 <최애의 아이>2기와 <화인가 스캔들>을 소개한다. <최애의 아이>는 1기에 비해 연출, 시각효과가 뛰어난 반면 OST에 대해선 1기에 비해 아쉽다고 하고, <화인가 스캔들>에 대해선 '이야기를 지탱하는 대부분의 요소엔 독창성이 전무'하다고 썼다. 이 작품은 현재 10부작 중 6화까지 공개되었다.
5. Special
이번 주 특집은 5인의 젊은 소설가에 대한 인터뷰다. 소설, 영화, 음악 등 장르를 불문하고 창작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언제나 배울 점이 있다. 소개된 작가들 중 개인 신상을 숨기고 필명으로 활동하는 소설가 단요가 가장 눈에 들어온다. SF에 천착해 온 소설가인 동시에 <수능 해킹>의 공저자로 로프 작가로도 활약 중이다. 주말마다 영화감상회를 운영하고, 24년 장편 두 작품과 단편 한 작품이 출간이 예정되어 있고, 25년에는 다섯 권을 발표할 계획이다. 문학상을 통해 등단하는 게 아니라 거꾸로 첫 소설 <다이브>를 발표한 후에 "약력이 너무 없으니 문학상을 조만간 받아오겠다" 다짐한 후 문학상을 진짜로 받아낸, 대단한 창조력의 작가다.
<입속 지느러미>의 소설가 조예은의 인터뷰에도 공감되는 지점이 많다. 이를테면 "난 비관적인 사람이 맞다. 내가 보고 그리는 세상의 인물들은 단지 무언가를 하는 사람들이고, 큰 기대가 없는 만큼 쉽게 무너지지 않는 쪽이다" 같은 문장이 그렇다. 조예은은 정밀하고 상세한 묘사를 피한다. "상상력의 범위를 넓힐 수 있는 선에선 가장 정확하고 아름다우며 적은 정보량의 문장을 써내고 싶다" 구체적으로 묘사할수록 오히려 흥미가 떨어지는 역설은 영화 연출에도 적용된다.
첫 장편소설 <동경>의 작가 김화진은 민음사 편집자에서 유튜버로 알려졌다 2021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되며 소설가로 등단했다.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자기 일을 하는 사람 같다. 그녀에겐 사람과 사람의 관계, 특히 친구 사이가 화두다. 인터뷰 내용 중 나랑 비슷하다 싶은 지점이 드문 드문 보인다. "나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산다." 나도 그렇다.
202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자 김기태는 24년에 첫 번째 소설집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을 발표했다. 그의 소설은 '우리 시대의 대중문화, 보편의 세태를 생생하게 반영'한 것을 특징으로 한다. '나는 솔로' 같은 연예 리얼리티 방송 출연자의 이야기, 아이돌 공연장에서 압사 사고에 연루된 재일 교포의 이야기 등이 담겨있다.
김멜라는 2021년부터 출판사 문학동네의 젊은 작가상 4년 연속 수상한, 등단 10년 소설가다. 인터뷰 내내 애인과 스킨십에 대해 말한다. <이응 이응>, <제 꿈꾸세요>, <논리> 등 그녀의 소설 또한 사랑, 애도가 주제다. 지금 사랑하고 있는 대상을 언젠가는 잃을 수밖에 없다는 두려움이 큰 듯하다. "청소년이 될 시기를 앞둔 어린이에 관해 쓸 때 항상 마음에 오래 남는다"는 김멜라는 사랑이 충만한 사람인 듯.
6. 정려원
<눈물의 여왕>에 한창 빠져 있을 때 후속작인 <졸업>의 티저를 보게 됐다. 여자 선생님과 남자 제자의 사랑 이야기에 불쾌감부터 먼저 들더라. 김하늘과 김재원의 <로맨스> 때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그 시간 동안 내가 보수적으로 변한 걸까?
정려원의 인터뷰를 보면서 <졸업>이 안판석 감독의 연출작임을 처음 알게 됐다. 이유재 기자가 "<졸업>은 '드라마'를 봤다는 느낌을 제대로 안겨준 작품이었다. 16부작의 호흡으로 차곡차곡 빌드업되는 이야기, 자기 서사를 부여받은 주변인물들, 시대가 반영된 문학적인 대사, 효율성이란 이름으로 제거되지 않은 풍경 스케치까지, '드라마는 곧 문학'이라고 말하는 안판석 감독의 작업"이라는 질문을 듣는 순간 아차 싶었다. 드라마를 끝낸 정려원의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편견 때문에 놓친 <졸업>부터 챙겨볼 시간이다.
7. 비평들
북한이 주요 배경인 <하이재킹>, <탈주>가 이번 여름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다. 송형국 평론가는 지금 북한 소재의 영화와 과거 북한 소재의 영화를 비교하며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살핀다. 예컨대 "<국경의 남쪽>(2006), <크로싱>(2008) 같은 탈북 서사와 올해 나온 <로기완>, <탈주>를 비교해 보면, 탈북인을 포용의 자세로 대하면서도 타자화하는 태도가 또렷했던 2000년대 작품들에 비해 <탈주>의 규남은 명백히 한국 청년, 즉 우리 자신 안으로 들어와 있는 캐릭터"다. 지금의 창작자들은 북한을 상대의 자리에 놓고 이야기를 만드는 게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북한을 빌려온다. 이제 북한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었다는 반증이다.
박정원 평론가의 <퍼펙트 데이즈> 비평은 감탄하며 봤다. 필자가 영화를 보며 주목한 지점과 화면의 묘사, 스토리의 소개가 물 흐르듯 하나로 합쳐져 있다. 이것이 옳은 방식인가를 떠나 감탄할 만한 글이다. 영화를 보지 않았어도 영화를 본 듯한 충만감을 준다.
박홍열 촬영감독은 영화의 색이 '지각 가능하다. 하지만 강력한 서사와 캐릭터 앞에서 우리의 감각은 색에 대해 인식 불가능 상태로 놓일 때가 많다'라고 하면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색으로 분석한다. 주인공 모스의 색은 옐로, 킬러 시가의 색은 '블루'다. 눈치채지 못할지 모르지만, 영화는 옐로와 블루로 스토리텔링을 시도한다. "색은 서사에 가려 있는 동시에 서사의 깊이와 의미를 생성해 낸다."
8. Closing
임소연 동아대학교 기초교양대 교수의 지적이 날카롭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등장하여 대체될 확률이 높은 직업으로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문직이 꼽히지만, 현실에서 인공지능과 로봇에 자리를 내준 주요 직종이 서비스업이라는 사실은 이 성차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콜센터와 마트 계산대, 은행 창구... 다음은 어디일까? 어디에 이름 없는 여성들 혹은 쉽게 대체가능한 인간들이 일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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