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주>, <탈출 : 사일런스 프로젝트>, <하이재킹>...최근 개봉하는 영화들의 제목이 공교롭게 '어딘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이미지, 의미를 담고 있다. '어딘가'는 머무르면 위험한 곳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위험한 곳일까?
1. Opening
올해 칸 영화제에서 조지 루카스가 영화 제작에 있어 AI 사용에 대해 한 발언 - "중요한 건 피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겁니다." - 을 소개하며 1464호의 문을 연다. "축적과 모방의 결과물(AI)과 순수한 창작의 결과물을 구분할 수 있는가, 아니 애초에 순수한 창작이라는 것이 가능한가" 송경원 편집장은 AI가 영화를 어디로 인도할지 알 수 없지만, 그 답을 구하는 과정에 뛰어드는 것이 중요하다 말한다.
2. Focus
한국영화산업위기극복영화인연대 소속 16개 단체가 참여연대, 민변과 함께 멀티플렉스 3사를 티켓값 담합과 폭리혐의로 공정위에 신고했다. 갈등이 불거진 이유는 객단가 때문이다. 영화 티켓을 한 장 판매하면 영화발전기금을 제한 금액에서 부율에 따라 극장과 배급사가 수입을 나눠 갔는다. 그런데 통신사 할인, 카드사 할인 등으로 인해 실제 티켓 한장값이 얼마이냐에 대한 문제가 발생한다. 영화인연대 측은 코로나19 이후 극장값이 인상됐는데도 객단가는 인상률과 비교해 오히려 떨어졌다고 세부 내역을 공개하라 요구해 왔다. 극장3사는 배급사마다 개별 계약이고, 전체 공개는 영업 비밀이라 맞서 왔다. 작년부터 문체부, 영진위, 극장 3사, 영화인연대가 함께 테이블에 앉아 논의를 해왔지만 원만한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공정위 신고를 비롯한 법적 분쟁 단계로 넘어간 듯 보인다.
3. Cover
콘서트 실황 <볼빨간 사춘기 : 메리 고 라운드 더 무비>가 7월 12일 개봉한다. 콘서트 영화까지 나올 만큼 팬덤이 대단한가 싶다가 1억 스트리밍이 9곡이나 된다는 기사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제 곧 서른이 되는 안지영은 언제까지 '볼빨간 사춘기'를 유지할까. 사춘기의 정체성이야말로 본연의 것이라 절대 놓치지 않는다고 하지만 변하는 것 또한 자연의 섭리 아니겠나. 타이거J.K도 '드렁큰 타이거'를 떠나보냈듯, 너무 얽매이지 않았으면 한다.
4. Interview
야쿠쇼 고지는 23년 칸 영화제에서 빔 벤더스의 <퍼팩트 데이즈>로 남우주연상을 차지했다. 이 영화의 한국개봉을 앞두고 야쿠쇼 고지의 인터뷰를 실었다. 영화는 야쿠쇼 고지가 연기한 히라야마의 '평범하고 규칙적인 일상'을 계속 보여준다. 여기에 대한 야쿠쇼 고지의 코멘트가 마음에 와닿는다. "영화는 한번 보는 것으로 모든 걸 알 수 없다. 여러 번 봐야만 이전에 놓친 것을 발견하고 또 다른 감정을 느끼게 되지 않나. 그런 관점을 거치면서 많은 영화가 시대를 초월해 시람들 곁에 남는다...(중략)... 히라야마의 하루는 평범하게 흘러가지만 여러 차례 반복해서 보면 비로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러브 라이즈 블리딩>은 <델마와 루이즈>처럼 여성 투톱, 크리스틴 스튜어트와 케이티 M. 오브라이언의 사랑을 그린 영화다. 배우 애나 바리시니코프는 이 영화에서 크리스틴 스튜어트에게 일방적 사랑을 갈구하는 '데이지'란 인물을 연기했다. 인터뷰를 보면 상당히 스마트한 배우란 게 느껴진다. 예컨대 이런 대목 "연기스승들에게 항상 목소리를 낮추라는 지도를 받곤 했다. 더 낮고 안정적인 목소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얇고 높은 목소리는 내가 숨기고 싶은 약점 중 하나인데, 이번엔 내 약점을 한번 마음껏 써보겠다는 심정으로 임했다."이 그렇다. 애나 바리시니코프는 왜 이런 높은 목소리를 갖게 됐는지 성찰하며 목소리 콘트롤이 배우에게 굉장히 중요한 부분임을 설명한다. 얼굴이 왠지 모르게 친근했는데, 영화 <백야>로 유명한 발레리노 출신 배우 미하일 바리시니코프의 딸이다.
5. 개봉작들
<하이재킹>에 이어 금요일(7월 12일) 개봉을 택한 <탈출 : 사일런스 프로젝트>는 소개에서 제외되어 있다. 아마도 다음 주 씨네21에서 집중적으로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번 주 가장 기대작으로는 A24 &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러브 라이즈 블리딩>이다. 레즈비언 영화를 넘어 <델마와 루이스>, 양식화된 폭력, '<걸리버 여향기> 스타일의 판타지'로까지 나아간다고 하니 어떤 영화일지 짐작할 수 없다. 가족끼리 보러 가면 안 될 영화라는 것은 알겠다. 씨네21의 김소미 기자는 별점 넷을 줬다.
애니메이션이 두 편 개봉한다. <극장판 도라에몽 : 진구의 지구 교향곡>은 43번째 극장판으로 이우빈 기자가 별점 넷을 줬다. 다른 한편은 <빅샤크5 : 80일간의 해저일주>. 중국 애니메이션인데 5편씩이나 나온 나름 인기작인 듯. 그런데 타이틀롤 '빅 샤크'가 이번 영화에서 주인공이 아니란다.
6. Essay
이번 주 '복길의 슬픔의 케이팝 파티'는 2001년 여름으로 향한다. H.O.T의 <열맞춰!>와 학교 아이들의 아이돌이었던 일명 '춤신춤왕'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밀레니엄 시절의 학생들이 아이돌을 소비했던 방식, 문화가 를 간접적으로나마 엿보며 부럽다는 생각도 든다. <열맞춰!>의 가사가 이리 좋은 지도 처음 알았다. '절망과 한숨밖에 내 가슴속에 남는 건 없었지. 오직 이 땅에 내가 살아 남과 다른 날 찾고 싶었어.'
7. Special : AI와 영화의 관계를 고민하다
이번 특집은 AI와 영화와의 관계에서 주요 화두를 정리하고 있다. ① 생성형 AI를 활용해 컷 구성, 촬영 계획 효율화 등 실질적인 영화연출이 가능하다. ② AI를 통해 배우의 얼굴을 복제, 변형할 수 있다. 작년 미국 배우, 방송인 노동조합(SAG-AFTRA) 파업 쟁점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23년 11월 제작자연맹과 합의에 도잘했는데 디지털 복제본 제작 시 배우와의 동의, 복제본의 사용처 명시, 동의의 기준점 등이 명시되었다. ③ 기존 영화를 AI가 학습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을까? <뉴욕타임스>는 AI가 자사의 기사를 학습한 것에 대해 오픈AI, 마이크로소프트를 대상으로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역시 지난해 파업을 했던 미국작가조합은 AI 시나리오 제작을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학습데이터에 대한 대가 지급을 약속받는 방식으로 합의했다.
단순 이슈 정도로만 생각했던 AI가 영화 제작에 있어 당면한 현실인 것 같아 왠지 조바심이 난다. 듀나의 글은 AI가 가져올 미래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예상을 할 수 있게 한다. 긍정적인 측면으로는 대자본이 투자되어야만 가능했던 이미지와 영상을 가난한 창작자에게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이고, 부정으로 보자면 우리가 인간이 만든 창작물과 AI가 만든 창작물을 구분하지 못할 가능성이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집행위원장 신철은 한때 죽은 이소룡의 이미지를 가져와 이소룡 주연의 영화를 기획했었다. 그래서인지 이번 영화제에서 AI 국제 콘퍼런스를 포함시켰다. AI기술로 제작비와 영화 제작 일정을 상당 부분 감축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 혼자서도 영화를 완성하는 게 가능해질 수 있다고 전망한다. 이 분야의 선구자로 불리는 영화감독 데이브 클라크는 특히 비용이 많이 드는 VFX 연출을 AI로 간편하게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 단언한다. 부천영화제에서 데이크 클라크가 연출한 AI 단편영화를 상영했는데 현장에서 탄성이 나왔다고 한다.
8. 비평들
남다은 평론가는 영화제작에 관한 영화, 영화를 찍는 영화감독을 찍은 난니 모레띠의 <찬란한 내일로>(2023)를 다룬다. 거의 래핑이라 할 만한 '창작자의 자기연민, 연민에 밴 자기 조롱, 조롱이 동반하는 자기도취, 도취가 빚어내는 자기 과장, 그러니까 실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자기애, 설상가상, 첩첩산중의 환경에서 점차 쪼그라들고 여러 겹으로 쪼개져 민낯을 드러내는 내적 형상, 그러니까 창작자의 널뛰는 리듬이 이 세계의 태생적 조건이자 심장'이라 이 장르를 정의하고, 이와 흡사한 문장으로 <찬란한 내일로>의 벅찬 감동을 전달한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난니 모레띠의 <파멜만스>인가?
안시환 평론가는 <디 에이트 쇼>를 통해 '자본주의 리얼리즘의 우울한 초상'을 그려본다. 그래서 어쩌라고 하며 듣기 싫어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어떤 세상,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아는 건 필요한 일이다. 글 중 포디즘과 포스트 포디즘이란 말이 나오는 데 검색하고 나서야 포디즘(Fordism)이 포드주의임을 알게 됐다.
이연숙(리타) 평론가는 '여적여(여자의 적은 여자) 장르를 화두로 던지면서 혹시 페미니즘, 퀴어 비평의 틀이 여성 관계의 폭을 좁히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해 본다. '남적남'이란 말이 없는 이유는 특별하지 않아서다. 남자와 남자가 우정을 나누고, 남자와 남자가 심리적 주종 관계를 맺고, 남자가 남자를 배신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게 보인다. 나는 여성과 여성 간의 관계 역시 좀 더 다양하게 그리는 영화가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P.C의 차원이라기보다 여기가 미개척지라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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