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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장학우(張學友 / Jacky Cheung Hok Yau) - 1부 가신(歌神)이라 불리는 사나이

by homeostasis 2023.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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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학우는 명실상부 중화권 최고의 가수로 꼽힌다. 그의 이름 앞에는 'God of Song', 즉 '가신'이란 타이틀이 붙는다. 인기스타들을 '신', '황제'라 추켜올리는 중화권 매체들의 칭찬 인플레야 유명하지만, 장학우는 경우가 좀 다르다. 그의 팬들, 일반 대중, 업계 종사자들의 존경이 담겨 있다. 홍콩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황금기에 데뷔해 1990년대에 유덕화, 곽부성, 여명과 함께 사대천왕으로 불렸지만, 음악계의 기록과 업적에 있어선 압도적인 존재다. 중화권 최고 앨범판매(2003년까지 총 2,500만장) 기록 보유자이며, 홍콩 최초의 창작 뮤지컬 <설랑호>를 직접 만든 장본인이다. 앨범은 발표할 때마다 한 단계 위의 클래스(이 때문에 신작 발매 간격이 갈수록 길어지는 아쉬움이 있다) 뽐낸다. 노래실력은 또 어떠한가? 원래 처음부터 '가신'이라 불린 이유가 가창력 때문이었다. 천부적인 리듬감에 넓은 음역대를 바탕으로 어떤 무대에서도 안정적인 퍼포먼스가 가능하다. 거기에 섬세한 감정 표현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하니 그의 발라드는 그야말로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린다. 장학우의 노래가 30년 넘게 중화권의 클래식으로 사랑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장학우는 40년 넘게 홍콩 주류 음악의 선봉에 서 있었으므로 발라드, 락, 재즈, R&B 등 안 건드린 장르가 없다. 하지만 지금 현재 장학우가 주력하는 음악은 오케스트라와 락이 어우러진, 듣기 편한 어덜트 컨템퍼러리 록이라 할 수 있다. 데뷔 초기의 히트곡은 대부분 당대 히트한 일본과 서구의 팝들을 광동어로 번안한 노래들이었지만, 갈수록 현지 창작곡의 비중을 높여갔다. 이 과정에서 곽요량, 왕완지 같은 칸토팝의 대표적인 송라이터들을 발굴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장학우 본인 역시 작곡, 작사, 프로듀싱이 가능한 전천후 뮤지션으로 성장해 갔다.

공연의 신

장학우 커리어에서 콘서트 투어는 가장 중요한 부문이다. 어느 인터뷰에서 앨범 제작할 때 가장 신경 쓰는 요소로 본인이 녹음하는 곡이 콘서트에서 라이브로 소화 가능한 지 여부라고 밝힌 적이 있을 만큼 공연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한다. 장학우의 콘서트는 기네스북에 등재될 정도로 공연 횟수, 관객동원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중화권의 연창회 관련 기록을 스스로 갱신 중인데 <1/2세기 세계순회연창회>(2010년 12월~ 2012년 5월)로 146회라는 최다 공연 기록을 세운 다음, <A Classic Tour>(2016년 10월~2019년 1월)에서 233회 차 공연을 해내면서 이 부문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데뷔 초기(1984년~1987년)

1984년, 케세이 퍼시픽 항공사에서 발권 담당 업무를 하던 회사원 장학우는 홍콩18구업가창비새(全港十八區業餘歌唱比賽)라는 타이틀의 노래 경연 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하며 가수의 길을 걷게 된다. 홍콩의 메이저 음반사 보려금(Polygram)과 계약을 맺었지만 전업가수가 될 수 있을 거라 기대하지 못했던 장학우는 1985년 발표한 데뷔앨범 <Smile>이 20만 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홍콩의 차세대 가수로 당당히 자리매김한다. 홍콩 엔터 산업의 공식대로 배우 활동까지 겸하게 된 장학우는 1987년까지 총 6편의 영화에 출연하는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면서도 6장의 앨범(광동어 앨범 4장, 북경어 앨범 2장)을 내놓았다. 앨범은 모두 흥행에 성공했지만 그 완성도는 들쑥날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창력은 디스크그래피가 늘어날 때마다 발전했다는 게 주목할 지점. 이 시기 최고 작은 1986년 10월에 발표한 4집 <상애>. 발라드와 빠른 템포의 락을 주 무기로, 간간이 이 두 장르를 한 곡에 섞기도 하며 초기작들 중에선 가장 완성된 버전을 들려준다.

1987년, 성룡의 매니저로 유명한 진자강(陳自强 / Willie Chan Chi Keung)이 장학우의 매니지먼트를 맡게 되면서 장학우의 입지는 더욱 굳건해졌다. 80년대 말 홍콩영화산업의 전성기와 맞물려 영화 제안은 물 밀듯이 들어왔고, 87년 8월에는 톱스타만 설 수 있다는 홍함체육관에서 첫 번째 단독 콘서트를 개최하여 6회 공연 전석을 매진시키는 괴력을 과시했다. 이때가 장학우 초기 장학우의 영화 출연은 더욱 본격화되었고, 음악 쪽에서도 같은 해 8월, 홍함에서 첫 번째 단독 콘서트를 개최하여 6회 공연 전석을 매진시키며 초기 커리어의 정점에 선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정상에 선 순간이 가장 위험한 순간임을 이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 2부에서 계속됩니다!!

 

Chronicle - 장학우 (뮤지션)

다음 글 : 장학우 Discography

 

장학우(張學友 / Jacky Cheung Hok Yau) - Discography

1. 첫 번째 성공 장학우의 음악 커리어를 살펴볼 때 가장 첫 번째 단계는 1985년부터 1987년 8월의 최초의 단독콘서트까지로 잡아 볼 수 있다. 불과 3년 만에 6개의 스튜디오 앨범을 발표했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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