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 파일> 시즌1의 세 번째 에피소드에 이르러서야 외계인 스토리에서 벗어났다. 멀더(데이빗 듀코브니 / David Duchovny)와 스컬리(질리안 앤더슨 / Gillian Anderson)는 연쇄살인사건을 수사하다 범인이 과학적으로 설명 불가능한 존재임을 깨닫는다. 유진 빅터 툼스(덕 허치슨 / Doug Hutchison)는 1933년에 5명을 죽였고, 30년 뒤인 1963년에 5명을 죽였다. 그리고 1993년 또다시 살인행각을 시작한다. 유진 툼스는 시즌1의 21번째 에피소드에서 재등장한다.
기초정보
3화 <Squeeze> 편은 1993년 9월 24일 방영되었다. 각본은 쇼의 크리에이터 크리스 카터(Chris Carter), 공동 제작자 글렌 모건(Glen Morgan)과 제임스 왕(James Wong)이 썼다. 모건과 왕의 사무실에 커다란 방범창이 있었는데, 두 사람이 이걸 보고 <Squeeze>편의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연출은 TV 쪽에서 주로 활동하던 작가 겸 프로듀서 해리 롱스트리트(Harry Longstreet)가 맡았는데, 프로듀서들과 연출 방향에 있어 갈등을 빚다 촬영 종료 전에 하차했다. 부족한 씬들은 편집을 통해서 간신히 메웠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반부 괴물의 시점 쇼트를 포함, 촬영감독 존 S. 바틀리(John S. Bartley)의 카메라 무빙을 이용한 영화적인 화면연출이 인상적이다. 여러모로 <양들의 침묵>이 많이 연상된다.
사냥꾼
<Squeeze>편의 오프닝은 호러영화의 하이라이트를 뚝 잘라 가져온 듯하다. 미지의 포식자가 길거리의 행인들을 둘러보며 먹잇감을 고르는데, 컷트 없이 이어지는 시점 쇼트가 아주 유려하다. 포식자의 정체는 아무리 좁은 곳이라도 몸을 욱여넣을 수 있는 유진이란 인물이다. 그는 희생자를 사냥하기 위해 환기구를 통해 건물 안으로 침입하는데, 카메라가 배기 덕트를 쭉 훑는 움직임을 통해 이를 표현한다. 희생자(그리고 관객)가 밀실 안에 무방비 상태로 있을 때, 예상했던 것과 살짝 엇박자의 타이밍에 유진이 공격을 시도함으로써 심약한 시청자들의 비명을 만들어 낸다. 이 모든 것이 공포영화의 문법에 충실하다.
톰 콜튼
FBI 연수원 동기 톰 콜튼(도널 로그 / Donal Logue)이 이 사건 때문에 스컬리를 찾아온다. 최근 볼티모어에서 발생한 3건의 밀실 살인 때문에 도움을 청하려는 것이다. 물론 이 사건의 범인은 유진 빅터 툼스다. 도널 로그는 캐나다 출신의 배우로 큰 몸집과 거친 외모 때문에 <선 오브 아나키>나 <바이킹> 같은 TV시리즈 등에 출연했다. 외모만 보면 백인, 덩치, 개새끼 같은 키워드가 자동연상되는 배우다. 도널 같은 배우를 캐스팅 한 이유는 멀더&스컬리와의 극적 대비를 위해서다. 콜튼은 꽉 막힌 사람이다. 여기에 자기 과시욕, 출세욕까지 갖고 있다. 스컬리에게 도움을 청하긴 했지만, '괴상한 사건'에 몰두하는 멀더를 무시하고, 이런 마음을 숨기려 하지도 않는다. 톰 콜튼이 멀더를 미친 사람 취급하는 모습에서 FBI 조직 내부가 멀더를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여기서 우리는 스컬리가 멀더에게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그녀의 커리어 또한 위협받게 될 것임을 직감한다.
죽지 않는 사람
스컬리는 멀더와 함께 가장 최근의 살인사건 현장을 방문한다. 피해자 어셔는 간이 뜯겨 나가 있었다. 콜튼 요원은 현장에서 침입의 흔적이 전무했다고 주장하지만, 멀더는 너무나 수월하게, 도착하자마자 좁은 환기구에서 지문 하나를 발견한다. 문제는 이것이 사람 것 같지 않게, 마치 지문을 쭉 잡아당긴 듯한 모양새라는 점이다. 멀더는 문헌 조사를 통해 현재 진행 중인 볼티모어 연쇄살인과 흡사한 케이스를 발견하는데, 그것이 놀랍게도 1933년의 5건, 그리고 1963년의 5건이었다. 1933년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지문이 1963년 지문에서도, 그리고 멀더가 환기구에서 얻은 지문과도 같다.
하나는 틀리고 하나는 맞다
멀더의 이론이 상당히 설득력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컬리는 멀더의 주장을 배제하고, 자신의 의견만으로 프로파일 보고서를 작성, 제출한다. 한 사람이 90년을 살며 범죄를 저지른다는 걸 누가 믿을 수 있을까. 연쇄 살인범이 경찰의 보안 강화로 더 이상 범행을 할 수 없다면 살인의 쾌감을 추억하려고 이전 범죄 장소에 다시 올 것이라 주장한다. 누구의 주장이 맞을까? 스컬리와 멀더는 어셔의 아파트 건물 주차장에서 잠복을 하다 배관 속에 숨어있던 유진을 체포하는 데 성공한다.
FBI는 유진을 체포해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하는데 결정적인 단서를 찾지 못한다. 궁여지책으로 거짓말 검사가 진행되고, 유진은 그 어떤 질문에도 네거티브 반응을 보인다. 참관 중이던 멀더는 스컬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1933년과 1963년 범행에 대해 물어본다. 유진의 생체반응이 급격한 움직임을 보이지만, 콜튼을 비롯한 FBI 수사관들은 멀더를 미친놈 취급할 뿐이다. 결국 유진은 무죄로 석방되고, 며칠 지나지 않아 연쇄살인이 재개된다. 역시나 피해자는 간이 뜯긴 채로 사망했다.
은퇴한 보안관
FBI는 다시 혼돈에 빠진다. 한편 멀더와 스컬리는 이들과 독자적으로 수사를 결심하며, 1933년 사건을 수사했던 당사자 프랭크 브릭스(헨리 벡먼 / Henry Beckman)를 어느 양로원에서 만난다. 브릭스는 멀더와 스컬리를 보자마자 25년 동안 당신들이 찾아오길 기다렸다며 혼자서 몰래 수사했던 기록까지 내어준다. 그가 1963년에 찍은 사진 속 인물은 얼마 전 경찰에서 봤던 유진이 틀림없다. 브릭스는 유진이 살인 후 피해자의 물건을 전리품으로 가져간다고 알려준다.
롱스트리트 감독은 브릭스가 입을 떼는 순간부터 카메라를 조금씩 배우 쪽으로 가까이 움직이게 한다. 보는 우리도 따라서 화면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캐나다의 베테랑 배우 헨리 벡먼은 무서운 이야기로 어린아이를 잠 못 들게 만드는, 말솜씨 끝내주는 할아버지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완수한다.
둥지
60년 전에 수사를 했던 브릭스, 그리고 지금 수사를 하는 멀더와 스컬리, 두 팀이 확보한 유진의 주소는 동일하다. 과거 주소지의 사진이 지금 실제 모습과 겹쳐지는 화면 전환, 그리고 카메라가 상승해 주변 골목을 내려다보는 영상은 으스스한 분위기를 극대화한다. 유진의 주거지는 버려진 집 같다. 수색장면에서 멀더와 스컬리가 들고 있는 손전등, 나무 널판으로 빛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놓은 창문, 벽에 뚫린 구멍, 그 안으로 이어진 비밀통로는 느와르와 호러의 결합 같다. 안에 무엇이 있는지 어두워서 보이지 않는 곳으로 먼저 들어가는 이가 스컬리여서 감동했다. 스컬리는 앞뒤 재지 않고 먼저 행동하는, 용감한 사람이다.
벽 속 공간은 담즙 냄새로 가득하다. 이곳은 유진이 100년 가까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휴식처, 둥지 같은 장소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두 사람은 여기가 빈 둥지라 확신하지만, 이들 바로 위에 어둠 속에 숨은 유진이 있다. 스컬리는 깜깜한 곳을 걷다 무언가에 옷이 걸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유진이 대담하게 스컬리의 목걸이를 채어 가는 감각이었다. 한밤중에 혼자 TV를 보고 있던 사람이라면 이 장면에서 머리가 쭈뼛 섰을 것이다.
습격
멀더와 스컬리는 유진의 집, 즉 10년 동안 버려져 있었던 건물 앞에 형사들을 배치하고 잠복수사를 시작한다. 툼스가 둥지로 돌아올 때 체포하려는 의도다. 멀더와 스컬리가 허무맹랑한 짓을 한다고 생각한 콜튼이 중간에서 작전을 취소시킨다. 스컬리는 콜튼과 심하게 언쟁을 한 뒤 작전이 취소된 사실을 전하기 위해 멀더에게 전화를 걸지만 통화가 안 된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이라 가능한 설정이다. 멀더는 이 사실을 모르고 교대 근무를 위해 홀로 잠복장소로 향한다.
먼저 퇴근해서 집에 돌아온 스컬리. 그녀의 집 앞에는 유진이 눈을 번뜩이며 스컬리를 훔쳐보고 있다. 스컬리는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기 위해 욕조에 물을 받고, 카메라는 좁은 욕실에서 직선으로 움직이며 창 밖으로 보이는 유진의 실루엣을 응시한다. 이와 동시에 멀더는 홀로 유진의 둥지를 살피다 그 안에서 스컬리의 목걸이를 발견한다. 유진의 다음 목표가 누구인지 알게 된 멀더가 급히 스컬리의 집으로 향할 때, 스컬리는 유진의 공격을 받는다. 바지를 벗고 셔츠만 입은 스컬리가 집안을 어슬렁 걸어 다닐 때, 카메라는 그녀의 맨다리에 포커스를 맞춘다. 바닥 가까이 있는 환풍구에서 유진이 손을 뻗어 스컬리의 다리를 붙든다. 유진은 기어코 그 좁은 통로에서 비집고 나와, 스컬리를 쓰러트리고, 스컬리 위에 올라타, 그녀의 셔츠를 벗겨 간을 노린다.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멀더가 나타나 스컬리의 목숨을 구하고 유진의 체포에 성공한다.
끈질긴 생명력
양로원의 브릭스는 신문을 보다 유진이 체포됐다는 기사를 확인한다. 그런데 뜻 밖에도 신문을 기분 나쁘듯 찢어 버리는데, 카메라가 물러서며 신문을 찢은 사람이 구치소의 유진임이 드러난다. 유진은 찢은 신문지를 씹은 뒤 뱉어 감방 벽에 던진다. 감방 안에 그의 둥지를 새로 만드는 중이다. 이때 교도소 간수가 감방 철문의 좁은 투입구를 통해 식판을 넣어주고 떠난다. 유진은 이 좁은 투입구를 오랫동안 응시하며 다시 한번 안광을 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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