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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는 클래식(★★★★)

미스틱 리버(Mystic River) 2003년 - 3부 진혼곡

by homeostasis 2023.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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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틱 리버>에는 강의 물줄기를 따라가는 이미지가 여러 차례 반복된다. 그럴 때마다 영화에 등장하는 비극이 자연법칙의 일부인 것만 같아 섬뜩하다. 동시에 어쩔 수 없다는 무력감도 든다. 아동 성폭행 피해자 데이브(팀 로빈슨 / Tim Robbins)가 있던 술집에 지미 마컴의 딸 케이티(에미 로썸 / Emmy Rossum)가 들어오는, 그 운명의 밤 직전에도 어김없이 강의 이미지가 앞선다. 겨우 19살인 케이티는 친구들과 흥에 겨워 술집 바 위로 올라가서 춤을 춘다. 젊음의 활기는 모든 남자 손님들의 주의를 끈다. 데이브도 마찬가지다.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케이티를 한참 쳐다본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여기서 장면을 끊고, 몇 시간 뒤 피투성이가 되어 집에 돌아온 데이브를 보여준다. 그는 아내 셀레스트(마샤 게이 허든 / Marcia Gay Harden)에게 강도와 만나 격투를 벌였고, 어쩌면 상대방이 죽었을 지도 모르겠다며 고백한다.

이스트우드가 생략한 그 시간대 - 술집에 있을 때와 데이브의 귀가 사이에 케이티는 살해당했고, 데이브는 살인을 고백한다. 고의적으로 데이브에 대한 관객의 의심을 유도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진실이 무엇인가 판단하기에는 정보가 부족하다. 우리는 감독의 의도에 따라 그럴 것 같다 추측할 뿐이다. 

강의 물결

그날 새벽, 누군가 총에 맞았다는 신고가 접수되고, 경찰은 공원 입구에서 피해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차를 발견한다. 차주(車主)는 다름아닌 케이티 마컴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여기서부터 두 개의 축으로 영화를 끌고 가기 시작한다. 지미(숀 펜 / Sean Penn)가 케이티의 부재(不在)를 깨닫고 불길한 예감에 사로 잡히는 장면이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현장에 출동한 형사 션(케빈 베이컨 / Kevin Bacan)이 죽은 이가 지미의 딸임을 알고 망연자실해 하는 장면이 하나다. 이스트우드와 그의 편집자 조엘 콕스(Joel Cox)는 션과 지미를 오고가며, 지미가 느끼는 분노와 고통의 수위를 점점 고조시켜 나간다. 둘째 딸의 성찬식을 끝내고 교회에서 나온 지미가 거리에 가득한 경찰차를 보고 공원으로 뛰어가는 장면과 션이 시체를 찾았다는 부하들의 보고를 받고 공원 내 버려진 곰 축사로 향하는 장면부터는 교차 편집의 속도가 가파르게 증가한다. 숀 펜이 딸의 시체가 발견된 장소 앞에서 경찰들에 제지당해 울부짖을 때, 이 두 개의 축이 하나로 합쳐지는 순간이다. 관객의 본능적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숀 펜의 에너지를 따로 말해 뭐 할까. 

두 개의 축은 이후로도 유지된다. ①딸을 잃은 슬픔에 지미가 미쳐갈 때, ②형사 숀과 그의 파트너 파워스(로렌스 피쉬번 /  Laurence Fishburne)는 피해자 주변을 탐문하기 시작한다. ① 비극적인 일을 겪은 지미는 오랫동원 소원했던 데이브에게 뜻밖의 위안을 받고 ② 그 모습을 지켜보는 데이브의 아내 셀레스트는 데이브가 범인이라는 생각에 신경쇠약에 걸린다. ① 데이브가 아내에게 과거 성폭행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토로할 때 ②형사 파워스는 데이브를 용의자로 지목하고  ① 션과 파워스가 데이브를 용의선상에서 제외한 순간 ② 지미는 셀레스트에게 데이브가 범인일 거라는 고백을 듣고야 만다. 영화의 후반부, ①숀이 진범의 정체에 가까이 다가갈 때 ② 지미는 광기에 사로잡혀 데이브를 죽이겠다 결심한다. 서로 상반된 두 개의 상황을 지켜보며, 우리는 정말이지 내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 세상사에 한탄하지 않을 수 없다. 기계적이라 진부하게 여겨졌던 교차 진행은 <미스틱 리버>의 주제, 그 자체나 다름없다.

침묵. 나를 지키는 방법?!

이스트우드의 주인공들은 언제나 과묵했다. 과거에 죄를 지었다해도 변명하거나 사과하지 않는다. 때로는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까지도 그 과오를 분명히 밝히길 거부한다. 어차피 죄는 저질렀고, 저지른 죄는 사라지지 않는다. 차라리 그 댓가를 치르고 침묵하는 편을 선택한다. <미스틱 리버>에서 침묵은 아주 중요하게 활용된다.

<미스틱 리버>의 인물들은 비밀을 털어 놓은 자와 비밀을 지키는 자로 나누어 진다. 불쌍한 데이브는 부인 셀레스트에게 그날 밤의 일을 거의 사실대로 말했다. 그는 말하지 않아야 할 상대에게 비밀을 말한 죄로 억울하게 죽는다. 지미의 협박 앞에 데이브가 케이티의 살인을 자백하는 장면은 그래서 보기가 힘들다. 사람들은 진실보다 자기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원하는 법이다. 셀레스트는 남편의 비밀을 지켜주지 못하고, 말해선 안 될 사람에게 털어 놓는다. 이 행동으로 인해 아들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아버지 데이브)를 빼앗아 버린다. 퍼레이드 행렬 장면에서 거의 넋이 나간 셀레스트의 표정은 발설한 자의 말로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언제나 입을 닫는 편이 자기를 지키는 데 유리하다.

침묵하는 자는 어떠할까? 지미가 이 영화에서 침묵하는 자의 대표라 할 수 있다. 그는 과거에 자기가 저지른 살인에 대해 함구한다. 자신의 죄를 어디서도 고백할 수 없기에 죽은 자의 부인에게 매달 돈을 송금하는 것으로 부채감을 덜어내고 있다. 하지만 그의 죄는 딸의 죽음이라는 대가로 돌아온다. 딸 케이티는 죽인 자의 아들과 사랑하는 사이가 되고, 죽인 자의 권총으로 죽임을 당한다. 지미는 이것도 모른 채 또 한 번의 죄를 범하고, 또다시 침묵을 지켜야 한다. 지미의 과거의 살인, 그리고 현재의 살인에 모두 협력자가 존재한다. 살인을 함께 한 새비지 형제와 지미는 같은 죄를 공유하기에 한 몸과 같다. 지미의 부인 아나베스(로라 리니 / Laura Linney)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남편의 죄를 알고서도 침묵한다. 끔찍한 실수라며 자책하는 지미를 침대로 이끌어 죄의식을 마취시키려는 아나베스는 모연이 송골해질 정도로 무섭다. 마지막, 퍼레이드 장면에서 지미는 아내 아나베스의 손을 잡고, 옆에는 새비지 형제를 대동한 채 단란한 모습으로 구경을 한다. 죄를 공유한 가족의 탄생 같다.

형사 션이 지미의 죄를 알고서도 묵인해 주는 듯한 장면이 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영원한 묵인이라고는 보지 않았다. 수사는 언제든 재개될 것이다. 죄와 침묵은 지미를 딸의 살해범과 다를 바 없는 처지 - 케이티를 죽인 범인이 청각장애인이라는 것을 상기해 보라 - 로 만들 것이다. 그의 침묵이 당장의 안녕을 유지하는 데는 도움 될 지 몰라도, 죄는 예상치 않은 시점에 그를 찾아와 대가를 요구할 것이다. 지미는 둘째 딸이 있고, 데이브에게는 아들이 있다.

션의 아내는 임신한 채로 남편을 떠났다. 션은 아내가 떠난 이유, 딸의 얼굴, 이름도 알지 못한다. 그리고 아내는 매일 션에게 전화를 걸어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버틴다. 션은 아내의 거대한 침묵에 어쩔 줄을 모른다. 영화의 막바지, 션은 또다시 걸려온 아내의 전화에, 평소와 달리 '미안하다'라고 먼저 말한다. 그 사과가 아내의 마음을 돌린다. 침묵으로 션의 사과를 이끌어 낸 아내 쪽도 대단하지만, 일체의 설명 없이 간결하게 '미안하다' 한마디로 진심을 전달하는 데 성공한 션도 대단하다. 이스트우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의사소통의 한 장면이다.

진혼곡

숀 펜이 야수처럼 분노를 폭발시키는 그 유명한 장면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죽은 케이티의 시체를 부감으로 내려다 본다. 그리고 본인이 만든 소박한 멜로디의 메인 테마로 소녀의 죽음을 위로한다.  <미스틱 리버>에서 지미와 션, 데이브, 셀레스트, 아나베스 모두 비극에 일정 정도 책임이 있다. 하지만 어린 데이브가 당했던 폭력과 케이티의 죽음은 그들의 탓이 하나도 없다. 불행은 호시탐탐 약한 자의 등을 노린다. 이스트우드는 그럴 때 어떻게 자기를 지킬 수 있을까를 염려하며, 무고한 피해자를 향해 따뜻한 음악으로 애도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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