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티 해리>는 경찰 스릴러 장르에 있어 <프랜치 커넥션>과 함께 가장 중요한 영화(공교롭게 두 편 모두 1971년에 개봉)로 꼽힌다. 영화는 공개되자마자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딱 한 주 상영 수입(개봉일이 1971년 12월 22일)만으로도 1971년 흥행 top 4위에 올랐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더티 해리>에 이르러 진정한 무비 스타로 할리우드의 공인을 받게 된다. 전 세계적인 흥행 성공으로 4편의 속편, <이것이 법이다(The Magmum Force)>(1973년), <집행자(The Enforcer)>(1976년), <서든 임팩트(Sudden Impact)>(1983), <데드 풀(The Dead Pool)>(1988년)이 나오게 된다. 관료제와 불화하는 열혈 경찰 스토리는 예외없이 <더티 해리>의 변주로 인식됐고, 주인공 해리 캘러한은 '하드 보일드' 형사 캐릭터의 전형이 되었다.
영화는 오프닝에서 샌프란시스코 순직 경찰의 추모비를 비춘다. 이것의 의미는 분명하다. 지금의 사법 체계가 범인들에게 너무 관대해서 범죄 피해자와 형사들이 오히려 희생당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예민하게 받아들인 '뉴요커(The New Yorker)'의 폴린 카엘(Pauline Kael)은 <더티 해리>가 경찰영화라기보다 우익 판타지 - 리버럴이 경찰을 무력화시키고 있다는 - 에 가깝다고 지적하며, <더티 해리>가 그 노골적인 파시스트 영화라고 맹비난했다. 논란은 커졌고, 감독 돈 시겔과 제작자 겸 주연배우 이스트우드는 판단을 관객의 몫으로 돌리며 입을 닫았다. <더티 해리>가 그저 그런 경찰 스릴러였다면 파시스트라 공격받지도, 논란이 될 이유도 없었다. 모든 일은 <더티 해리>가 너무 매력적인 영화라는 데서 출발한다..
1. 스스로 신(神)이라 착각한 남자
이 영화에서 내가 꼽는 최고의 장면 세 개가 있다. 그 첫번째가 오프닝 시퀀스다. 누구인지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악인(惡人)이 샌프란시스코 마천루에서 저격용 라이플로 살해 대상을 고른다. 불운하게 타깃이 된 사람은 루프탑 수영장에서 헤엄치고 있던 여인이다. 범인은 스스로를 신으로 여기는 듯 하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굽어 내려볼 뿐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을 손가락 하나로 끝장낼 수도 있다. 조준경에 포착된 지 얼마되지 않아 여인은 총에 맞아 죽고, 수영장은 피로 붉게 물든다.
랄로 쉬프린(Lalo Schifrin)의 선율과 함께 사건 현장에 해리 '더티' 캘러핸(클린트 이스트우드 / Clint Eastwood)이 도착한다. 해리는 시체를 보자마자 건너편 건물 옥상에서 발사된 것임을 직감한다. 감독 돈 시겔의 적확한 프레이밍 - 이스트우드와 수영장의 시체, 그리고 이 현장 너머 범인이 있던 건물이 한 프레임에 담겨있는 - 이 해리의 본능적인 수사 능력을 강조한다.
해리 캘러한은 건너편 건물, 범인이 있던 바로 그 장소로 이동한다. 형사는 절대 서두르지 않는다. 이스트우드 특유의 느린 발걸음을 목적지를 향해 다가간다. 그 속도가 너무 느려 조바심이 날 지경이다. 해리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범인이 총을 쏜 바로 그 지점에 도착해 아래를 내려본다. 그곳에 범인이 남긴 탄피와 협박장이 놓여있다.
오프닝 시퀀스에 <더티 해리>의 모든 것이 다 담겨있다. 범인이 유희하듯 살인하고 떠난 자리에, 본능이 발달한 형사가 범인의 흔적을 기가 막히게 찾는다. 이 영화가 현대 배경의 웨스턴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해리의 모든 것이 신화적이다. 샌프란시스코의 마천루를 배경으로 살인의 부감과 추적의 앙감이 충돌하는 것도 웨스턴의 느낌을 더한다. 시퀀스를 틀어놓고 바로 연주한 듯한 랄로 쉬프린의 음악은 변칙적인 재즈 리듬으로 영화에 긴장감을 입힌다.
2. 시스템에 대한 증오
범인은 10만불을 요구하며, 만약 응하지 않을 시 전갈좌에 태어난 사람 혹은 가톨릭 신부를 살해할 것이라 경찰을 협박한다. 그래서 스콜피오 킬러 -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연쇄살인범 조디악 킬러에서 가져온 것 - 라는 명칭으로 불린다. 시장(존 버논 / John Vernon)은 경찰국장(존 라취 / John Larch), 강력반의 브레슬러 반장(해리 가르디노 / Harry Guardino)을 불러 대책 회의를 갖는다.
시장의 일정 때문에 밖에서 한참 기다려야 했던 담당 형사 해리 캘러한은 시장의 얼굴을 보자 특유의 시니컬한 농담을 던진다. "당신이 부르면 달려 나가려고 문 앞에서 45분을 기다렸소" 해리는 만난 지 일분도 채 안되어 시장의 반감을 산다. 이렇게 밉상인 사람도 없다. 그는 자신이 속한 경찰 조직을 불신한다. 무슨 일이 생기면 일선 형사들이 책임을 지고, 영광은 고위 관료와 정치인들의 몫이다.
3. 더러운 해리
스콜피오 킬러를 잡느라 여념이 없는 가운데, 해리 캘라한은 반장의 지시로 새로 파트너 치코(레니 산토니 / Reni Santoni)를 맞이한다. 그는 해리와 달리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인텔리다. 치코는 이점 때문에 해리가 자신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유는 따로 있다. 해리의 역대 파트너들이 한결같이 죽거나 심한 부상을 당한 징크스 때문이다.
지코는 캘라한이 왜 '더티 해리'로 불리는 지를 궁금해 한다. 동료 형사 디 조르지오(존 미첨 / John Mitchum)가 이에 답을 한다. "그는 모든 사람을 증오해. 이탈리아인, 마약거래, 흑인, 여자 사무원을 싫어하지." 멕시코인은 어떻게 생각하냐 지코가 되묻자, 가만 듣던 해리가 직접 등판한다. "Especially Spanish" 하지만 이 또한 진짜 이유가 아니다. '더티 해리'는 그가 온갖 더러운 일을 도맡아 하기 때문에 붙은 별명이다. 영화는 시종일관 해리가 고생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총격전은 일상이요, 자살 기도하는 사람을 구하려다 욕을 듣고, 잠복 수사 중 변태로 오인받아 동네 주민에게 집단 린치를 당하기도 한다.
4. 고단한 하루
경찰은 건물 옥상에서 무차별 저격을 하는 스콜피오 킬러를 잡기 위해 헬기를 띄워 샌프란시스코 상공을 계속 돌게 한다. 한편 일부 지역에만 고의로 경계를 풀어 범인을 유인하는데, 스콜피오 킬러는 경찰의 의도대로 매복중인 옥상 건물로 올라갔다가 경찰과 총격전을 벌인다. 불행히도 스콜피오 킬러가 경찰의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면서 더 큰 비극을 초래하게 된다. 경찰에 교훈을 주겠다며 10대 소녀를 납치한 것이다. 스콜피오 킬러는 소녀를 생매장한 다음, 그 장소를 알려주는 대가로 샌프란시스코 시(市)에 거액을 요구한다.
시장의 승인이 떨어지고, 해리 캘라한이 돈가방 전달 임무를 맡는다. 역시나 힘든 일은 그의 몫이다. 처음 약속 장소에 도착하면, 범인은 없고 공중전화만 울린다. 전화를 받자 스콜피오 킬러가 다음 약속 장소를 알려주며 정해진 시간 안에 도착하여 공중전화를 받으라고 지시한다. 만약 그때까지 도착하지 못하면 소녀는 죽는다. 미행을 떼어 내기 위해 잔머리를 굴린 것이다. 해리 캘라한은 악당이 시키는 대로 지하철역, 뒷골목, 어두운 공원까지 달리고 또 달린다.
도심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공원 언덕, 커다란 십자가 동상 아래서 해리 캘라한은 빨간 복면을 쓴 스콜피오 킬러와 처음 대면한다. 스콜피오 킬러는 총을 버리게 한 뒤 해리를 향해 무차별적 린치를 가한다. 무력하게 구타당한 해리를 향해 처음부터 인질을 살려 줄 생각이 없었다고 조롱한다. 모든 게 악당의 뜻대로 흘러가는 듯 보이지만, 해리 역시 무방비 상태로 온 것은 아니었다.
경찰 지휘부의 지시와 달리, 파트너 치코로 하여금 멀찌감치 자신을 따라오도록 미리 작전을 짜두었다. 스콜피오 킬러가 돈가방을 챙겨 도망가기 직전, 치코가 도착해 총격전이 벌어진다. 해리는 치코에게 사살해선 안 된다고 소리친다. 소녀가 묻힌 장소를 반드시 알아내야 한다. 총격전 와중에 치코가 부상을 입고, 해리는 발목에 숨겨둔 칼로 스콜피오 킬러의 무릎을 깊게 찌른다. 끔찍한 고통에 범인은 돈가방이고 뭐고 도망가기 바쁘다.
5. 악마 경찰
<더티 해리>에는 마천루를 선회하는 헬기와 그 헬기에서 도시를 내려다 보는 부감 쇼트가 자주 등장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7~80년대, 특히 경찰 스릴러 장르를 찍을 때 헬기 쇼트를 즐겨 사용했다. 아주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신(神)이 된 듯한 기분을 주는데, 그 높이의 정도와 화면이 움직이는 속도, 카메라의 흔들림 등에 따라 미세한 감정 변주가 가능하다. 영화에서 기막힌 헬기 쇼트가 여럿 등장하는데, 그중 하나가 샌프란시스코 49 ers 홈구장에서 벌어지는 고문 시퀀스다. 이것이 내가 꼽은 두 번째 명장면이다.
해리는 천신만고 끝에 스콜피오 킬러가 스타디움의 관리인임을 알게 된다. 그곳으로 쳐들어간 해리는 풋볼 경기장을 가로질러 도망치는 범인을 향해 인정사정없이 총을 쏜다. 극심한 공포에 발이 묶인 스콜피오 킬러는 변호사를 불러 달라 애원한다. 생매장 장소를 알아내는 게 급선무인 해리는 보다 효과적인 방법을 택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고문이다. 해리는 소녀가 있는 곳을 캐물으며, 상처 입은 악당의 무릎을 구둣발로 밟는다. 범인이 고통스런 비명을 토해낼 때, 카메라는 고문 중인 해리를 스쳐지나 하늘 높이 상승한다. 선을 넘었다는 감각, 한편으론 악당에게 벌을 주는 데서 오는 쾌감이 동시에 휘몰아친다.
6. 무법
장소를 알아냈지만, 소녀는 끝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다. 이를 지켜보는 해리 캘라한의 표정에 무력감이 가득하다. 하지만 이것은 예고에 불과하다. 담당 검사(조제프 소머 / Josef Sommer)와 판사 배너먼(윌리엄 페터슨 / William Paterson)은 스콜피오를 기소조차 하지 못하고 풀어준다. 체포 때 해리가 자행한 고문이 문제였다. 무슨 법이 이러냐는 해리의 항변과 자유의 몸이 된 스콜피오 킬러의 모습이 교차된다. 정의를 수호하는 데 법이 오히려 방해가 된다. 법이 악인을 단죄하지 못하면, 사적 보복이 시작된다.
7. 더티 플레이
지금까지 해리 캘라한은 저 아래서 온갖 '더티'한 일을 떠안아 처리하던 형사였다. 주도권은 스콜피오 킬러가 쥐었고, 해리는 따라가기 바빴다. 법이 악인을 처벌하지 못하고, '더티' 해리가 직접 단죄하기로 마음 먹은 순간부터 영화의 구도는 전반부와 정반대로 흘러간다. 해리의 분량이 급속도로 사라지고, 카메라는 주로 스콜피오 킬러의 행적을 좇는다.
스콜피오 킬러는 어딜가나 해리 캘라한의 시선을 느낀다. 해리는 근무 외 시간에 스콜피오 킬러를 미행하는,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견디다 못한 스콜피오 킬러는 해리에게 구타당했다고 자해극을 벌이기도 한다. 압박감을 느낀 범인은 초등학생이 탄 스쿨버스를 납치하는, 또 한 번의 인질극을 벌일 때 내가 꼽은 세 번째 명장면이 나온다. 스쿨버스 운전사를 위협해 공항으로 향할 때, 그 길목에 있는 다리 위에 해리 캘라한이 서 있다. 그 시점 쇼트 속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형사 해리 캘라한이 아니라 사신(死神)을 연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스콜피오 킬러가 가졌을 죽음의 공포를 관객도 느낄 수 있다. 해리는 다리에서 버스 지붕 위로 뛰어내려 스콜피오를 종말로 끌고 간다. 인질과 차를 붙잡고 있는 스콜피오 킬러가 훨씬 유리한 상황이지만, 관객과 스콜피오 킬러 모두 공포에 사로잡혀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
이 장면의 스턴트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직접 소화했다. 말파소(The Malpaso Company) - 이스트우드가 만든 제작사 - 전속 스턴트 감독 버디 반 혼(Buddy Van Horn)은 이스트우드와 함게 '더티 해리' 시리즈의 액션을 모두 설계했다. 그래서일까, 이스트우드는 시리즈의 마지막 영화 <데드 풀>의 연출을 버디 반 혼에게 맡기기도 했다.
8. 혐오일까 아닐까
<더티 해리>에서 일반적으로 가장 널리 회자된 장면은 길거리에서 흑인 은행강도 셋을 처리하는 씬이다. 위험한 총격전의 와중에 해리 캘라한은 절대 맞지 않을 사람처럼 천천히 범인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간다. 흑인 강도 하나가 총에 맞아 쓰러져 있는데 손만 뻗으면 닿을 자리에 총이 떨어져 있다. 해리 캘라한은 정말 벌레 보듯 강도를 내려다 보며 말한다.
"네 놈이 무슨 생각을 하는 지 맞춰볼까? 내가 여섯 발을 쐈을까, 다섯 발을 쐈을까 고민 중일 거야. 글쎄, 내게 사실을 말해 주자면 나도 신나게 쏘다 보니 몇 발을 쐈는지 잊어버렸네. 하지만 이 총은 매그넘 44야.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권총이지. 너의 머리를 깨끗이 날려버릴 거야. 어때, 스스로 질문을 한번 해보지. 오늘 운수가 좋을까?? 한번 해 보지 않을래, Punk?"
이 장면의 임팩트가 너무 커서, 사람들은 해리가 조소하는 대상이 흑인 '범죄자'란 사실을 까먹는다. 이것은 인종차별적인 장면일까? 변호하기도 애매하지만 이 대사는 마지막 스콜피오 킬러와의 마지막 대결에서도 반복된다. 흑인 강도는 저항을 포기하지만, 스콜피오 킬러는 미친 놈답게 총을 잡으려다 매그넘 44의 파괴력을 제대로 맛본다.
PC적 감수성이 있는 관객들은 영화 내내 반복되는 동성애 혐오에 눈살을 지푸릴 수 있다. 스콜피오 킬러는 백인 남자와 함께 흑인 게이를 살해 대상으로 점찍는다. 해리 칼라한이 야간 순찰을 돌 때, 거리의 게이들을 보고 혀를 차는 장면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한적한 공원에서 스콜피오 킬러의 연락을 기다릴 때 파트너 찾는 게이 남자의 플러팅 상대가 되기도 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해리라는 캐릭터를 빌어 세상이 엉망이 돼 간다고 탄식하는 듯하다.
9. 외로운 늑대
세상은 너무 빨리 변한다. 해리는 거기 적응하기보다 자기 위치를 지키는 방식으로 맞선다. 그래서 혼자가 된다. 파트너 치코는 해리의 이전 파트너들처럼 부상을 당해 병원에 입원한다. 문병을 간 해리에게 경찰을 그만두겠다 말한다. 해리는 이해한다고 답한다. 해리 같은 형사는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되었다. 과거 서부의 무법자들이 문명에 밀려나는 것과 흡사하다. 그는 부인도 없다. 부인은 음주운전자의 차에 치어 죽었다.
한참 시간이 흘러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노인이 되어 만든 영화 <퍼펙트 월드>, <밀리언 달러 베이비>, <그랜 토리노> 등에서 이스트우드가 연기한 인물은 해리 캘라한이 나이 든 것 같은 캐릭터다. 그런데 예전과 달리 여성, 이민자, 성소수자들에 대해 과거와 달리 따뜻한 시선을 드러내거나, 자기가 한 짓을 후회한다. 이때 정말 기이한 감동이 찾아오는데, 이것은 역설적으로 <더티 해리> 등에서 보여준 이스트우드의 보수적이고 남성중심적인 태도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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