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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두번 봐도 재밌는 영화(★★★)

헨리의 이야기(Regarding Henry) 1991년 - 2부 동화를 믿지 않는 감독

by homeostasis 2023.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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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 없는 노회한 변호사 헨리(해리슨 포드 / Harrison Ford)는 총상을 입고 대부분의 기억을 잃는다. 아내와 딸을 못 알아본다. 걷는 법, 말하는 법도 다시 배워야 한다. 아내 새라(아네트 베닝 / Annette Benning)는 백지가 되어버린 남편을 돌보며, 한동안 잊고 있었던 인생의 진짜 가치를 깨닫는다. <헨리의 이야기>는 프랭크 카프라(Frank Capra) 식의  인정극이 되어야 할 영화다. 관객에게 따뜻하고 행복한 느낌을 주는 영화가 되어야 한다.

감독 마이크 니콜스(Mike Nichols)는 J.J.에이브람스(J.J.Abrams)가 쓴 스토리의 낙천성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는 착한 사람들이 해피 엔딩을 맞이하는 영화를 만들면서, 이것이 가짜 판타지가 아닐까 의심한다. 이를테면 헨리가 고된 재활과정을 거쳐 서서히 회복되는 장면에서 템포를 높여 그의 귀환을 손뼉 쳐 환영해야 하는데, 기어이  생계를 걱정하는 아내 새라의 불안감을 거의 동등한 비중으로 붙인다. 해피엔딩으로 달려가는 영화를 마이크 니콜스가 자꾸 멈칫하게 만든다. 감독의 이런 염쇄적 태도가 영화에 균열을 낸다. 한스 짐머(Hans Zimmer)가 만든 테마 음악은 정확히 영화의 미묘한 감성을 대변한다. 밝은 데 불안하다.

느닷없이 찾아온 불행

총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된 헨리는 의식불명의 상태로 여러 주를 보내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다시 깨어난다. 마이크 니콜스는 솜씨 좋은 감독이다. 긴 시간의 경과 동안 벌어지는 일을 마이크 니콜스가 몇 개의 장면으로 압축해서 보여주는 것을 보고 있으니 그저 감탄밖에 나오지 않는다. 해리슨 포드가 침대에 누워 있는 동안 마이크 니콜스 감독은 아네트 베닝을 중심에 놓고 영화를 이끌어 간다. 이 파트에서 마이크 니콜스의 연출과 아네트 베닝의 연기는 완벽에 가깝다. 

새라는 집에 편히 있다가 경찰의 방문을 받는다. 경찰과 함께 아수라장과 같은 병원 응급실에서 남편을 찾아 돌아다닌다. 헨리는 온 몸에 붕대를 감은, 처참한 모습으로 누워 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법무법인 식구들, 찰리(도널드 모팻 / Donald Moffat), 필리스(로빈 바틀렛 / Robin Bartlett) , 동료 변호사 브루스(브루스 알트만 / Bruce Altman), 린다(레베카 밀러 / Rebecca Miller)는 본인들의 일인양 새라를 위로한다. 새라는 이들의 품에 안겨 울음을 터트린다. 이 순간의 유대감은 그저 기괴한 모래성에 불과하다. 영화는 후반부에 이 장면이 얼마나 이상한지를 폭로한다. 새라는 브루스와, 헨리는 린다와 불륜 관계에 있었다.

병상을 지키는 새라의 뒷모습으로 카메라가 다가간다. 이 화면은 그녀가 짊어진 무게감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의료진과 이름을 부르며 인사를 나눌 만큼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새라는 평소와 다름없이 눈 감은 헨리에게 입을 맞추고 병실을 나간다. 카메라는 새라를 따라 밖으로 나가려다, 담당의를 따라 다시 헨리의 침대로 눈을 돌린다. 의사는 수액을 체크하느라 못 보지만, 관객은 또렷이 눈을 뜬 헨리를 볼 수 있다. 기뻐하며 달려온 새라는 침을 줄줄 흘리는 헨리를 보며 망연자실한다. 뇌 손상을 입은 헨리는 과거의 헨리가 아니다. 충격을 받을까 딸 레이첼(카미안 알렌 / Kamian Allen)에게도 아빠를 보여줄 수 없다. 헨리는 돈 잘 버는 변호사로 돌아갈 수 없음이 명백해졌다. 이제 가족의 생계는, 딸의 학비는 어떻게 감당할까. 새라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소년 헨리

재활 전문 요양원으로 옮겨진 헨리는 '침묵의 사나이'로 불린다. 말을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하루 종일 아이처럼 도형 맞추기 퍼즐, 걷기 연습을 하며 보낸다. 헨리의 침대 옆에는 딸 레이첼과 아내 새라의 사진이 놓여있다. 하지만 지금 헨리가 가장 의지하는 이는 물리치료사 브래들리(빌 넌 / Bill Nunn)다. 쾌활한 성격의 브래들리는 헨리의 친구이자 구세주가 된다. 다시 걸을 수 있게 다리에 근육을 만들어주고, 이것도 모자라 헨리의 말문까지 트이게 한다. 브래들리가 계란 요리에 핫 소스를 잔뜩 친 다음, 그걸 헨리에게 먹여 결국 단어를 내뱉게 하는 데 성공한다. 이때 헨리가 처음 말한 단어는 '리츠(Riz)'다. 브래들리는 리츠 크래커가 그렇게 먹고 싶었냐며 크게 웃는다.

흑인 물리치료사 브래들리는 <제리 맥과이어>에서 쿠바 구딩 주니어(Cuba Gooding Jr.)이 했던 것처럼 영화에 활기를 불어 넣어야 하는 캐릭터다. 그래서 브래들리를 연기한 배우 빌 넌은 프레임 안으로 들어올 때 그냥 들어오지 않는다. 에어 기타를 치거나, 흑인 특유의 건들대는 걸음걸이로 지나가는 여인들에게 추파를 던진다. 브래들리가 등장하는 장면은 기대 만큼 즐겁지 않다. 되려 억지스러운 느낌이 든다. 배우의 잘못이라기 보다 마이크 니콜스가 만든 영화 초반부의 진지한 톤과 엇박자를 내기 때문이다.

헨리는 휠체어에서 일어나 제 두 발로 걸을 수 있을 때 까지 재활에 몰두한다. 해리슨 포드는 비열한 변호사에서 백지 상태가 되어버린, 헨리의 롤러 코스터 같은 변화를 너무나 설득력 있게 연기한다. 해리슨 포드가 어눌한 발음으로 말을 하려 애를 쓰면, 관객들은 누구나 그를 응원하고 싶어진다. 헨리가 눈을 뜬 다음부터는 <헨리의 이야기>는 해리슨 포드의 연기 쇼타임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 3부에서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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