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고시에이터(Negotiator) 1998년 - 1부 흑인경찰, 누명을 쓰다!!

시카고 경찰청의 에이스 협상 전문가 대니 로만(사무엘 L. 잭슨 / Samuel L. Jackson)은 비리 경찰들에 의해 파트너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게 된다. 믿었던 동료들마저 결백을 주장하는 로만에게 등을 돌린다. 막다른 길로 내몰린 로만은 최후의 수단으로 경찰 고위간부를 인질로 잡고 경찰청 건물에서 농성에 돌입한다. 인질 상황의 스페셜리스트가 작정하고 인질극을 벌이자 시카고 경찰들은 속수무책! 로만은 경찰들의 모든 전략을 꿰뚫고 있다. 이제 또 다른 협상전문가 새비안(케빈 스페이시 / Kevin Spacey)이 로만의 맞수로 등장하며 두 사람 간의 불꽃 튀는 지략 싸움이 시작된다.

이렇듯 <네고시에이터>의 플롯 - 누명 쓴 경찰이 자신의 힘으로 결백을 증명 - 은 전형적인 경찰스릴러다. 어찌 보면 뻔한 이야기다. 하지만 '누명 쓴 경찰'을 흑인스타 사무엘 잭슨이 연기하면 사정이 달라진다. 영화 속에서 대니 로만은 백인에 포위당한 삶을 살고 있다. 가족처럼 생각했던 동료들도 다 백인, 그를 배신하는 이도 백인, 살인범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도 백인이다. 그러니 <네고시에이터>는 주류 사회의 일원이라 믿었던 흑인이 백인 비리 카르텔에 의해 누명을 썼다가 결국 백인들에게 'fuck you'를 먹이는 영화로 읽을 수 있다.

또 하나, 연출을 맡은 F. 게리 그레이(F. Gary Gray)는 아이스 큐브의 <프라이데이>로 데뷔하고 '흑인판 델마와 루이스' <셋 잇 오프>로 만든 흑인감독이다. <네고시에이터>는 게리 그레이에게는 본인 커리어에서 가장 큰 규모의, 가장 주류 감성에 가까운 영화였다. 그래서 장르의 공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게 조심스레 영화를 끌고 간다. 그러다 중반이 지나 영화의 투톱 가운데 한축인 케빈 스페이가 등장하면서 영화는 비로소 제 궤도에 올라선다. <L.A. 컨피덴셜>에 이어 또 한번 경찰을 맡게 된 케빈 스페이시는 사무엘 잭슨과 영화를 양분하며 팽팽한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하는 일등공신이 된다.

기초 정보

북미 개봉일은 1998년 7월 29일이다. 제작비는 43.5백만불로 추정되는데 극장매출만으로 총 88백만 불을 벌었다. 2차 시장까지 포함하면 이익을 봤을 것이다. 제작사 뉴 리전시와 파트너쉽 관계에 있던 워너 브라더스(Warner Bros)가 배급을 맡았다. 아논 밀찬(Arnon Milchan)의 뉴 리전시(New Regency)는 90년대 후반 <히트>, <타임 투 킬>, <L.A. 컨피덴셜> 같은 수작들을 연이어 공개하여 품질관리(?) 측면에서 업계 최강을 자랑하던 독립 제작사다. <네고시에이터>에서도 뉴 리전시의 프로덕션 역량이 충분히 입증된다. 시나리오는 신진작가 제임스 드 모나코(James DeMonaco)와 케빈 폭스(Kevin Fox)가 공동으로 크레디트를 받았는데, 둘 다 <네고시에이터>가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90년대 할리우드에서 액션영화 전문 촬영감독으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던 러셀 카펜터(Russell Carpenter)가 카메라를 잡았다. 

포위된 흑인

<네고시에이터>의 타이틀 시퀀스는 주인공 대니 로먼의 훈장 수여식, 결혼식 사진들로 꾸며져 있다. 사진의 중심에는 로먼이 있지만, 카메라의 관심은 주변 동료들에 가 있다. 로먼이 카메라를 향해 웃고 있을 때, 동료들은 다른 쪽을 보거나, 다른 표정을 짓는다. 이 장면은 관객들로 하여금 누가 진짜 범인일까 생각하게 만든다. 사진 속에서 흑인은 로먼이 유일하다. 그는 중년 백인 남성들에 포위되어 있다. 이 영화에는 1년 전 뉴 리전시가 제작한 <L.A. 컨피덴셜>에 출연했던 배우들이 다수 출연한다. 그래서 <네고시에이터>를 요약하면 <L.A. 컨피덴셜>의 세상 속에 떨어진 블랙필름의 흑인 히어로 정도가 될 것이다. 

백인 동료들로 출연한 론 리프킨(Ron Rifkin), 존 스펜서(John Spncer), 데이비드 모스(David Morse), 폴 길포일(Paul Guilfoyle) 등은 1990년대 할리우드의 무수한 스릴러 영화들을 빛냈던 배우들이다. 특히 누아르, 스릴러 등에 특화된 배우들이었다. 그래서 이들의 얼굴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긴장감이 생긴다. 노련한 배우들의 연기는 <네고시에이터>의 장점 중 하나다. 

불길한 타이틀 시퀀스가 끝나면 로먼(사무엘 잭슨)의 클로즈업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로먼은 누군가와 반려견을 주제로 수다를 떨고 있다. 카메라가 천천히 물러서면, 클로즈업이 풀 쇼트로 바뀐다. 그제서야 관객은 로먼 옆에 파트너 네이선(폴 길포일), 완전무장한 SWAT팀을 볼 수 있다. 지금 로먼은 백인 미치광이(의미심장하게도)와 대치 중이다. 보통 이런 역은 흑인 혹은 라틴계 갱이 일반적이다. 해병대를 나왔다는 게 인생의 유일한 자부심일 거 같은 오마(톰 바우어 / Tom Bower)는 어린 딸을 인질로 삼고 자기 아파트 안에서 경찰과 맞서고 있다. 그의 요구사항은 이혼한 부인을 데려오라는 것. 아마 현재였다면 오마는 트럼프의 열성 지지자가 됐을 것 같은 이미지다.

로먼은 인질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몸이 근질근질한 SWAT팀 리더 벡(데이비드 모스)은 호시탐탐 무력진압을 주장하고, 맞은 편 건물에는 명령만 떨어지면 언제든지 방아쇠를 당길 수 있는 저격수들이 배치되어 있다. SWAT이 행동에 나서면 인질이 죽을 수 있다. 로먼은 긴박한 순간에도 흥분하지 않고, 적절한 판단으로 인질을 구해낸다. 이를 위해 상부의 명령을 어기고 독자행동을 하고, 범인에게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다. 결국 대니는 범인을 잡고, 인질도 살려낸다. 오마의 인질극은 영화 전체에 대한 일종의 예고편이다. 이 시퀀스의 설정과 상황이 반복/변주되는 것이 <네고시에이터>의 전부다.

※ 2부에서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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