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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두번 봐도 재밌는 영화(★★★)

네고시에이터(The Negotiator) 1998년 - 2부 창과 방패의 대결

by homeostasis 2023.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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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게리 그레이(F. Gary Gray) 감독은 <네고시에이터>가 엄청난 스케일의 액션 영화인 것처럼 만들려고 갖은 술수를 부린다. 시청 건물 주변에 바리케이드를 친 경찰 병력, 인질극을 보도하기 위해 몰려든 기자들, 경찰 병력, FBI 요원, 저격수들, 빌딩 상공을 날아다니는 헬기 장면이 틈만 나면 등장하여 관객의 눈을 속인다. 하지만 이런 장면들은 부수적이다. 며칠 몰아 찍은 컷들을 요령 있게 편집한 바람잡이 같은 장면일 뿐이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실내극이다. 로만이 인질극을 벌이는 시청 건물, 그것도 내사과 사무실에서 거의 모든 사건이 벌어진다. 안에서 인질극을 벌이는 로만과 협상가 새비안이 각자의 의도를 갖고 지략대결을 펼친다. 화면 연출의 대부분은 배우 얼굴의 클로즈 업 이다. 그러니 주연배우 사무엘 L. 잭슨과 케빈 스페이시에게 전적으로 기댄 영화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희한한 광경

사건이 해결된 날 저녁. 시카고 PD 강력반 소속 형사들은 술집을 빌려 트래비스 국장(존 스펜서 / John Spencer)의 생일 파티를 연다. 이 자리에 흑인 로만((사무엘 L. 잭슨 / Samuel L. Jackson)이 컨트리 음악에 맞춰 백인들과 손잡고 집단 군무를 추는, 참으로 회한한 광경이 펼쳐진다. 로만은 명예 백인처럼 보인다. 그의 부인 캐런(레지나 테일러 / Regina Taylor) 역시 로만의 파트너, 네이션(폴 길포일 / Paul Guilfoyle)의 아내 린다(론다 도트슨 / Rhonda Dotson)와 나란히 앉아 화기애애한 모습을 연출한다. 이 술집에 흑인이라고는 로만과 카렌 뿐이지만 불편한 기색이 전혀 없다. 진심으로 가족같은 동료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 즐겁게 파티를 즐기는데, 오직 한 사람, 네이선만 얼굴이 무겁다. 그는 파티 도중 로만을 따로 차로 불러내어 비밀을 털어놓는다. 시카고 경찰 기금은 장애를 입거나 순직한 경찰 가족의 재정적 지원을 목적으로 한다. 로만도 기금의 이사직을 맡고 있는데, 네이선은 내부의 공모자들이 조직적으로 기금을 횡령하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고 털어놓는다. 경찰학교 동기가 제보를 했고, 내사과도 연관이 있어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로만의 의견을 묻는다. 그래서 두 사람은 파티가 끝나고 인적 드문 공원에서 따로 만나기로 한다. 몇 시간 뒤, 약속장소로 찾아간 로만은 차 안에서 머리에 총상을 입고 숨져있는 네이선을 발견한다. 로만은 친구의 죽음에 슬퍼할 겨를도 없이, 기가 막힌 타이밍에 출동한 경찰들에게 체포된다.

막다른 길

체포 직후 로만은 강력반 선배 프로스트(론 리프킨 / Ron Rifkin), 내사과 니바움(J.T.월쉬 / J.T. Walsh) 앞에서 네이선과 나누었던 대화를 공개한다. 영화의 결말을 알고 이 장면을 보면 섬뜩하다. 네이트의 죽음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자들 앞에서 해선 안 될 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례식을 치른 지 얼마 되지 않아, 로만은 살인 용의자로 기소된다. 자신도 모르는 해외 계좌가 발견되고, 범행에 사용된 총도 로만이 과거 수사했던 사건과 관련있는 것으로 밝혀진다. 네이선을 죽인 자들이 로만에게 누명을 씌운 것이다. 누명을 쓴 것보다 로만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은 동료들의 차가운 시선이다. 20년간 생사를 같이 한 경찰 동료들 중 로만의 무고함을 믿어 주는 이가 한명도 없다. 검사는 공범자를 불면 감형 해주겠다고 협상을 제의한다. 변호사 마저 이 제안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자, 로만은 자신이 막다른 길에 서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전문가

청사 건물에서 검사를 만나고 나온 로만은 어디 잠깐 들릴 곳이 있다며 부인 캐런을 먼저 집에 돌려보낸다. 그 길로 내사과 사무실로 올라간 로만은 직원들의 제지를 뚫고 니바움을 만난다. 대화 도중 감정이 격해지고, 니바움의 부하가 로만을 끌어내려다 총을 꺼내면서 상황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된다. 여기서 니바움의 자백을 받아내지 못한다면, 로만의 미래도 없다. 평생 인질범을 상대했던 협상 전문가 로만은 스스로 범인이 되어 경찰들과 기나긴 대치에 들어간다. 내사과장 니바움과 그의 비서 매기(셔반 팰론 / Siobhan Fallon), 니바움의 정보원 루디(폴 지아마티 / Paul Giamatti), 그리고 자발적으로 붙잡힌 프로스트가 로만의 인질이 된다.

이제부터 영화는 숨가쁘게 흘러간다. 정부청사 건물 주위로 경찰 병력이 투입되고, 스나이퍼들이 로만을 저격할 준비를 한다. 트레비스 국장이 현장을 지휘하고, 특공대 대장 벡(데이비드 모스 / David Morse)은 강경 진압을 주장한다. 정부청사는 FBI의 관할이다. FBI 요원들은 일단 경찰이 해결할 수 있게 기회를 준다. 하지만 트레비스 국장이 일을 제대로 못한다면 언제든지 사건을 인수할 태세다.

로만은 경찰의 전략은 물론 담당자들의 면면까지 꿰뚫고 있다. 경찰에게서 연락이 오자, 이 통화를 모두 듣고 있음을 아는 로만이 동료들 이름을 하나씩 호명하며 각자와의 인연을 상기시킨다. 로만의 이 발언은 저격수 팔레르모(마이클 커들릿츠 / Michael Cudlitz)의 마음을 흔든다. 과거 팔레르모의 목숨을 구한 이가 다름아닌 로만이었던 것. 인질 협상에 나선 팔리(스티븐 리 / Stephen Lee)는 로만의 후임이라 적수가 안 된다. 로만은 팔리를 윽박지르며 갖고 놀다시피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소형 카메라가 들어올 만한 장소는 모조리 차단해 경찰의 시야 확보를 막고, 특공대 투입을 최대한 지연시킬 방법을 찾는다. 이것이 창과 방패의 대결이라면, 전투 초반부는 '방패' 로만의 압승이다.

낯선 이

로만의 첫번째 요구사항은 시카고 서부 경찰서의 인질협상가 크리스 세비안(케빈 스페이시 / Kevin Spacey)를 40분 안에 데려오라는 것이다. 크리스 세비안은 지난 5년간 인질극 상황에서 사상자 없이 사건을 해결한 인물이다. 시카고 경찰의 최고 협상가 두 명이 맞대결을 벌이게 된 것이다. 케빈 스페이시의 등장은 영화 시작 40분이 훌쩍 지난 시점으로 늦었지만 효과는 강력하다. 로만은 내사과 사무실이, 세비안은 현장에 설치된 임시 본부가 자신들의 주무대다. 둘은 전화를 통해 서로를 탐색한다. 스페이시와 잭슨의 대화 장면은 육탄 대결을 보는 듯 하다. 사무엘 잭슨은 찰진 대사빨로 유명한 배우. 그래서 잭슨 쪽으로 무게추가 기울기 십상인데, 스페이시는 차갑고 침착한 연기로 뜨거운 잭슨에 맞선다. 두 배우는 통화 장면의 팽팽한 긴장감을 만들기 위해 서로의 단독 숏 촬영 때도 현장에 나와 상대방의 연기를 받아주었다는 후문이다.

블러핑

인질의 안전을 무시할 수만 있다면 경찰은 무력으로 밀고 들어와 로만을 끝장낼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최후의 수단일 뿐. 그전까지 최대한 범인을 안정시켜 희생자를 막아야 한다. 그러나 무력 진압을 하고 싶어 안달이 난 벡은 트래비스 국장을 설득해, 로만이 새비안과 협상에 나선 틈을 타서 비밀리 특공대를 투입한다.  교전이 시작되고, 건너편 빌딩 옥상에서 대기 중인 저격수 팔레르모에게 로만을 쏠 수 있는 결정적 기회가 찾아온다. 하지만 팔레르모는 생명의 은인에게 차마 방아쇠를 당길 수 없다. 팔레르모의 항명으로 로만은 창문을 뚫고 들어온 특공대원 두 명, 스캇과 마커스를 사로 잡게 된다. 인질의 수가 늘어난 것이다.

로만은 절박한 심정으로 인질극을 벌였지만 미친 놈은 아니다. 새비안과 협상을 통해 니바움이 감추고 있는 진실 - 네이선을 살해한 진짜 범인을 찾아내는데 이 인질극의 목적이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인질을 죽일 수 있는 '미친놈'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로만은 특공대원 스캇(딘 노리스 / Dean Norris)를 다른 방으로 끌고 가 사살한 척한다. 다른 인질들과 밖의 경찰은 스캇이 죽었다고 철석같이 믿는다. 이 연기로 인해 로만의 협상력이 더욱 세진다.   새비안은 인질을 죽인 데 항의하며 건물의 전기를 끈다. 범죄 증거를 찾기 위해 니바움의 컴퓨터를 봐야 하는 로만으로선 전기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서 인질 한 명 - 선배 프로스트 - 을 풀어주는 대가로 음식과 전기를 받아낸다. 

새비안의 입장에선 로만이 무고한 사람인지 아닌지 중요하지 않다. 무사히 인질을 구해 내고 대치 상황을 종료시키는 것이 당면 과제다. 그래서 장애를 입은 전직 경찰을 섭외해 네이선에게 횡령 사실을 알린 익명의 제보자로 꾸민다. 새비안은 행여 탄로 날까 경찰 지휘부를 포함, 그 누구에게도 이것이 가짜임을 밝히지 않는다. 게리 그레이 감독은 새비안의 블러핑을 관객에게도 감춘다. 이 작전은 거의 통할 뻔했다. 로만은 제보자의 등장에 긴장을 풀지만, 마지막 순간에 던진 유도질문 하나로 가짜임을 간파한다. 로만은 새비안의 전략을 비난하지 않고, 새비안 또한 작전 실패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둘 다 각자의 일을 했을 뿐이다.

정의 실현에 대가가 요구된다

시간이 지나며 요지부동이던 니바움이 흔들리면서, 로만은 일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대강 짐작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잡범 루디와 니바움의 비서 매기가 많은 도움을 준다. 루디를 연기한 폴 지아마티와 비서 역의 셔반 팰론은 조연이지만 관객이 로만을 응원하게끔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누명을 벗기 위해 고군부투하는 로만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며 이 두 캐릭터는 니바움의 컴퓨터를 조사하고, 그의 거짓말을 밝혀 내는데 적극적으로 나선다. 니바움은 내사 과정에서 횡령을 포착한 뒤 이를 묵인하는 대가로 횡령금의 일부를 요구했다. 

인질극이 길어지자 비리 경찰들은 자신들의 죄가 밝혀질까 겁을 먹는다. 새비안의 블러핑이 범인들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한 것이다. 현장 지휘권을 가진 새비안은 트래비스 국장과 벡 대장의 제안을 받아들여 만약을 위해 특공대 한팀을 건물 안에 배치했는데, 그 안에 섞여있던 특공대원 헬만(네스토 세라노 / Nestor Serrano)이 비리 경찰 중 하나였다. 핼만은 기회를 틈타 단독으로 로만을 공격한다. 이로 인해 영화에서 가장 시끄럽고 소란스러운 액션장면이 펼쳐진다. 중화기가 불을 뿜고, 로만은 권총과 조명탄으로 여기에 맞선다. 총성이 그치고, 로만은 조준사격을 받아 니바움이 사망했음을 확인하고 망연자실한다. 헬만은 그의 컴퓨터도 박살을 내놓았다. 무죄를 입증할 수 있는 인적, 물적 증거가 모두 사라졌다. 

명예 회복

새비안은 트래비스 국장 등에게 어떻게 동료를 죽일 생각만 하냐고 분노를 터트린다. 영화는 경찰 지휘부 전체가 범인일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니바움의 사망을 계기로 FBI가 지휘권을 인수한다. 시카고 경찰은 뒤로 물러설 수 밖에 없다. 이제 협상의 시간은 끝났다. 귀가를 통보받은 새비안은 집으로 돌아가는 척 하다가 갑자기 청사 건물로 뛰어간다. 동료들 대신 낯선 이가 더욱 적극적으로 로만을 구하려 한다. 두 사람은 총을 겨눈 채 대화를 나눈다. 새비안은 투항을 권하고, 로만은 이대로 포기할 수 없다고 버틴다. 이 자리에서 로만은 자신이 인질 중 그 누구도 죽이지 않았음을 확인시켜 준다. 스캇은 결박된 채 멀쩡히 살아 있었다. 로만은 새비안에게 도움을 호소한다. 니바움 집에 가서 개인 컴퓨터를 뒤지면 새로운 증거 자료를 입수할 수도 있다. 과연 위험을 감수하고 로만의 손을 잡을까?

무장 병력이 투입되고, 로만은 최후의 일전을 준비한다. 인질로 잡혀있던 특공대원 중 흑인 마커스(브루스 비티 / Bruce Beatty)가 말없이 로만의 손을 힘껏 잡는다. 나는 이 장면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왜냐면 진심으로 로만을 응원해 준 동료는 마커스가 처음이기 때문이다. 이제 로만은 진입로에 서류더미를 잔뜩 쌓아놓고, 여기에 남은 조명탄을 모두 던진다. 서류에 불이 붙고, 건물 안은 연기로 가득 찬다. 스캇의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로만은 방독면을 쓰고 있다가 혼전 상황이 연출되자 연기 속으로 사라진다.

FBI의 작전을 지켜보던 시카고 경찰의 트레비스 국장과 벡 대장은 건물 안에 로만이 없음을 직감한다. 로만이 건물 밖에 있다면 지휘권은 다시 시카고 경찰에게 넘어간다. 비리 경찰들은 로만이 니바움의 집으로 향했음을 안다. 거기에 비밀 증거가 있을 것이다. 이들은 경찰 본진이 도착하기 전에 로만을 제거해야 한다. 그들의 예측대로 로만은 새비안과 함께 니바움의 서재에서 컴퓨터를 뒤지고 있었다. 증거를 찾기도 전에 헬만을 비롯한 비리 경찰들이 들이닥친다. 또 한 번 총격전이 벌어지고, 긴박한 순간에 뜻밖의 인물, 프로스트 선배가 등장한다. 이때 새비안이 느닷없이 로만에게 총을 쏜다. 그리고 공디스크 한장을 흔들며 증거를 없애 줄테니 한몫 챙겨달라며 프로스트를 상대로 지분 협상을 제안한다. 그야말로 필사의 블러핑이다. 두 사람 간의 디테일한 협상 내용은 로만이 몰래 들고 있던 무전기를 통해 경찰 전원에게 전달된다. 로만의 무죄가 명명백백하게 밝혀지는 순간이다. 이렇게 영화는 케빈 스페이스를 영웅으로 등극시키고, 사무엘 잭슨은 사랑하는 부인 카렌의 품에 안기게 한다.

뒷 이야기

1988년 세인트루이스의 전직 경찰 앤소니 D. 다니엘(Anthony D. Daniele)이 33만불의 리베이트를 받고 경찰 연금을 횡령한 죄로 구속되는 일이 있었다. 그는 다수의 경찰, 변호사와 짜고 범죄를 계획했다 8년형을 선고받는다. 이에 앙심을 품고 부시장 사무실에서 인질극을 벌였고, 15시간의 대치 끝에 자수를 한다. <네고시에이터>의 시나리오는 이 사건을 바탕으로 쓰여졌다. 최초에 케빈 스페이시에게 로만 역을, 실베스터 스탤론(Sylvester Stallone)에게 새비안 역을 제안했다. 하지만 스탤론이 거절하면서 지금의 캐스팅이 완성된다. 엔딩 또한 바뀌었다. 두 주인공이 기차역에서 150명의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면서 파국을 맞는 결말이었는데, 케빈 스페이시가 강력히 여기에 반대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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