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소개하는 프롤로그가 끝나면 본격적인 드라마가 시작된다. 그 문을 여는 것은 비서실장 리오를 따라 웨스트윙을 한 바퀴 도는 롱테이크 씬이다. <웨스트 윙>의 트레이드 마크라 할 수 있는 이른바 Walk and Talk 연출이다. 바쁘게 돌아가는 백악관 내부 풍경과 정보량 가득한 대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최적의 수단이다. 이런 쇼트 하나를 완성시키려면 많은 수고가 필요하다. 촬영(토마스 델 루스 / Thomas Del Ruth), 프로덕션 디자인(존 허트만 / John Hutman), 오랜 테이크를 견디어 낼 수 있는 배우의 역량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1. 출근
비서실장 리오가 웨스트 윙에 들어서면 카메라가 바로 뒤따라 붙는다. 이제부터 영원히 계속 이어질 것 같은 롱 테이크가 시작된다. 리오는 본인 집무실로 가는 길에 챙겨야 할 것을 질문하고, 부하들의 보고를 받기도 한다. 이 모습을 지켜보다 우리는 부지불식간 백악관이 현재 직면한 문제에 대해 어렴풋하게나마 감을 잡는다. 리오가 집무실에 도착하면 롱 테이크 도중 산발적으로 프레임 안으로 들어왔다 퇴장한 주인공들, 그러니까 샘, CJ, 조쉬, 토비가 어느샌가 자리를 잡고 있다. 곧바로 정례 참모진 회의로 이어진다.
참모들은 표류 중인 쿠바 난민이 플로리다에 상륙하면 대통령 지지율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에 대해 논의한다. 그러다 문득 이것이 생명에 관한 이슈임을 깨닫고 입을 다문다. 미 행정부의 수뇌부가 선한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는 것이, 그것이 판타지라 하더라도, 엄청난 안도감을 준다.
2. 랜딩햄 여사와 다나
초반부 롱테이크 장면에서 인상적인 인물 둘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부속실장 랜딩햄 여사(캐슬린 주스틴 / Kathryn Joosten)는 출근하는 리오를 보자 곧바로 대통령 상태부터 묻는다. 리오가 별거 아니라며 농담 삼아 대통령 흉을 보자 여기서는(대통령 집무실) 그런 말 해선 안된다며 정색한다. 랜딩햄 여사는 대통령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심을 갖고 있다. 반면 조쉬의 비서 다나(재널 멀로니 / Janel Moloney)는 랜딩햄과 달리 백악관에 근무한다는 자각이 아예 없는 듯하다. 백악관 서열 2위인 리오가 조쉬의 출근 여부를 묻자, 그 자리에서 고개만 까딱 돌려 조쉬의 이름을 크게 부른다.
3. 점점 좁아지는 입지
조쉬는 어제 TV 생방송 토론에서 근본주의 성향의 기독교 인사 매리 마쉬(애니 콜리 / Annie Corley)에게 해선 안 되는 발언(“당신의 신은 세금 탈루로 고소 당했다”)을 했다. 설화로 여론이 악화되자, 워싱턴 정가에선 대통령이 이번주 안에 조쉬의 경질을 발표할 것이라는 소문까지 돌고 있다. 냄새를 맡은 기자들이 대변인 CJ에게 달려가 진위 여부를 묻는다. 겉으로는 여유 있게 대응하는 듯 보이는 CJ도 속으로는 조쉬가 잘릴까 애가 탄다. 그녀에게, 아니 참모진 모두에게 조쉬는 가족과 같은 존재다. 조쉬의 해임을 막기 위해 비서실장 리오를 찾아가 대통령의 의중을 묻기도 한다.
공보실장 토비도 조쉬를 구하기 위해 발에 땀이 나도록 뛰고 있다. 보수 기독교계 인사를 백악관으로 초청하여 사태 수습을 시도한다. 토비는 조쉬를 만나 매리 마쉬에게 직접 유감 표명을 하라 조언한다. 자존심 강한 조쉬는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사과를 하냐고 언성을 높인다. 겉으로는 싸우는 척 보이지만, 서로를 아끼는 두 사람의 마음이 잘 드러난다. 당신이 조쉬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할까? 매리 마쉬 같은 사람은 상대가 사과하면, 이를 약점 잡아 더 많이 요구할 게 뻔하다. 사과하지 않는다면 공격은 더 거세 질 것이고, 경질 가능성은 좀 더 높아진다. 어려운 문제다.
※ 3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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