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더(데이비드 듀코브니 / David Duchovny)는 1년 여에 걸쳐 계속되고 있는 연쇄살인을 뒤쫓고 있다. 사망자들은 모두 유흥가에서 누군가를 만나 성관계를 가진 뒤 쇼크 현상 - 관상 동맥 파열 등 - 을 일으키다 죽었다. 사체에선 현대 과학으로는 만들 수 없는 고농도의 페로몬이 검출되었다. 멀더와 스컬리(질리안 앤더슨 / Gillian Anderson)는 단서를 좇다가 '킨드레드'라 불리는 종교 공동체의 흔적을 찾게 된다.
이번 에피소드는 종교와 섹스, 양립불가능한 키워드를 병치시켰다. 굉장히 위험한 접근 시도다. 감독 롭 바우먼(Rob Bowman)과 작가진은 포르노 영화에나 적합할 법한 스토리를 그럴듯한 스릴러로 포장하는 데 성공한다. 개인적으로는 시즌1 최고의 에피소드 중 하나라 생각한다.
※ 스포일러 경고!
1. 부러운 능력
마티는 남성도, 여성도 될 수 있는 존재다. 양성애자 같은 게 아니다. 정말 남자 몸에서 여자 몸으로, 여자 몸에서 남자 몸으로 자유롭게 변신할 수 있다. 이 얼마나 부러운 능력인가. 에피소드의 첫 장면, 여자 모습의 마티가 클럽에서 한 남자를 꼬신다. 유혹의 미소, 몸짓 같은 거 없이도 남자는 쉽사리 마티에게 넘어간다. 마티는 손을 한번 슬쩍 잡은 것만으로도 상대를 홀릴 수 있다. 마티는 조그만 터치로도 엄청난 페로몬을 주입시킬 수 있다. 걸어 다니는 최음제, 혹은 섹스 몬스터와 같은 존재다.
마티와 남자는 바로 모텔방에서 뜨거운 시간을 보낸다. 남자는 섹스를 마친 후 '자기 평생 최고의 관계'였다며 아이처럼 환호한다. 그러다 갑자기 심한 고통을 호소하다 죽게 되고, 마티는 여자에서 남자로 몸을 바꾼 다음 유유히 방을 빠져나간다. 뒤에 현장 조사를 온 스컬리는 세상이 어느 때인데 낯선 사람과 섹스를 하냐고 혀를 찬다. 이 대사는 80년대 후반 ~ 90년대 초반이 AIDS에 대한 공포가 극에 달했던 때임을 새삼 상기시킨다.
2. 수행자들
멀더와 스컬리는 어찌저찌해서 마티가 킨드레드(Kindred)라는 종교 공동체와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된다. 킨드레드는 작가진이 아미쉬(Amish)를 본 따 만든 가상의 종교집단이다. 아미쉬는 현대 문명을 거부하고 순전 아날로그 방식으로 의식주를 해결한다. 마차로 이동하고, 소(牛)로 밭을 간다. 옷도 검은색으로 맞춰 입는 등 금욕적인 삶의 태도로 유명하다.
아미쉬를 세계적으로 널리 알린 것은 아마도 해리슨 포드 주연의 1984년도 영화 <위트니스(Witness)>(1984년)가 아닐까 한다. 영화는 도시의 형사가 우연히 아미쉬 마을에 머물게 되며 자연친화적 삶의 태도를 배운다는 내용을 다루었다. <Gender Bender> 또한 금욕적 종교 단체와 성(成)을 연결한다. 감추면 감출수록 음란해 지는 게 성이다. 금욕과 욕망이 충돌하니 그 에너지가 어마어마하다.
멀더와 스컬리는 킨드레드 공동체를 직접 방문하기로 한다. 가장 가까운 마을에서 여러 정보를 수집하던 중 필요한 물품을 사러 온 일군의 킨드레드들을 보게 된다. 이들은 차 대신 4마리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다닌다. 멀더가 잡화점에 가는 킨드레드 일행을 따라갈 때, 스컬리는 마차를 지키는 킨드레드 청년 앤드류(브랜트 힝클리 / Brent Hinkley)에게 말을 건다.
처음에는 눈치를 보며 스컬리를 피하던 앤드류가 악수를 청하는 스컬리의 손을 잡는데, 그 순간 스컬리는 묘한 황홀경에 빠진다. 검정 사제복을 입은 남자와 무채색 정장을 입은 여자가 서로 시선을 교환하고, 피부를 맞대는 것은 섹스와 다를 바 없다. 앤드류에게 홀린 질리언 앤더슨의 표정이 보는 이의 자세를 고쳐 잡게 만들 정도로 아찔하다.
3. 이상한 나라의 두 요원
백주 대낮, 성적 기습을 당한 스컬리는 곧바로 합류한 멀더 때문에 위기를 넘긴다. 스컬리는 당한(?) 사실을 멀더에게 밝히지 않는다. 어떤 여자가 이런 일을 털어놓을까. 비밀을 간직한 스컬리는 멀더와 함께 킨드레드 주거지를 행해 산을 오른다. 분명 지도를 따라 가는데, 아무리 걸어도 제자리다. 우거진 숲이 방향감각을 무디게 만든다. 멀더와 스컬리는 얼마 뒤 킨드레드에게 포위당한다.
거의 납치되듯 끌려간 킨드레드 마을에서 두 요원은 괴상한 경험을 한다. 멀더는 킨드레드의 기묘한 의식을 목격한다. 여기 사람들은 환자를 병원에 데려가는 대신 헛갓 뒤편 비밀동굴에 생매장을 한다. 동굴로 숨어들어간 멀더는 생매장당한 사람이 멀쩡하게 눈 뜨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성별이 남자에서 여자로 바뀐 것을 보고 경악한다. 멀더가 인디아나 존스 스타일의 모험을 할 동안, 스컬리는 앤드류에게 이끌려 진짜 강간 당할 뻔한다.
킨드레드 주거지에서 벌어지는 장면은 저예산 시리즈라는 게 무색할 만큼 스타일리시하다. 롭 바우만 감독의 역량이 여기서 드러난다. 킨드레드는 전기를 쓰지 않는다. 실내, 동굴, 주택 외부 장면의 광원은 석유 랜턴뿐이다. 롭 바우만과 촬영감독 존 S. 바틀리(John S. Bartley)는 어둡고도 붉은 색조의 화면으로 으시시한 분위기를 만든다. 처음 산속에서 멀더와 스컬리가 길을 잃을 때의 장면부터 심상치 않았다. 바람 소리를 배경으로, 바람에 흔들리는 머리카락, 옷자락, 나뭇가지, 수풀의 움직임을 카메라가 빙빙 돌며 포착한 장면은 무협소설 속 '진법'에 빠지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 싶다.
4. 꼬리가 길면 잡힌다
무기도 없는 상태에서 킨드레드 마을을 헤짚고 다니던 멀더와 스컬리는 결국 꼬리가 밟혀 쫓겨난다. 별무소득 없이 돌아왔지만, 범인 마티가 이번엔 흔적을 드러내고야 만다. 클럽에서 만난 남자 미첼(니콜라스 리 / Nicholas Lea)과 뒷골목에서 카섹스를 하다 경찰 검문에 걸린 마티는 급히 여성에서 남성으로 변해 경찰을 공격하고 달아나는데, 이때 훔친 미첼의 크레디트 카드를 쓰다가 덜미가 잡힌 것.
멀더와 스컬리가 마티를 체포할 찰나, 어느샌가 킨드레드 일족이 나타나 마티를 데려간다. 추적을 해보지만 이들은 마치 연기처럼 사라지고 난 후다. 두 요원은 지원 병력을 잔뜩 이끌고 킨드레드 마을로 쳐들어간다. 하지만 마을은 텅텅 비었고, 동굴 입구도 시멘트로 막아 놓았다.
에피소드의 마지막, 멀더와 스컬리는 근처 밀 밭에서 미스터리 서클을 발견한다. 킨드레드는 외계인이었을까? 그렇다면 그들은 왜 그토록 오랜 시간 이곳에 머물며 금욕생활을 했던 것일까.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지만, 이렇게 떡밥만 던져놓고 애매모호하게 끝내는 게 <엑스 파일>의 트레이드 마크다.
5. 에피소드 정보
1994년 1월 21일에 방영된 <Gender Bender>는 섹스 어필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제작자 겸 작가 글랜 모건(Glen Morgan)에 열망에서 출발했다. 야하면서도 불가사의한 스토리를 짜기 쉽지 않았다. 초고를 쓴 래리 바버(Larry Barber) & 폴 바버(Paul Barber)는 성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는 설정을 내놓았고, 크리에이터 크리스 카터(Chris Carter)가 아미쉬 스타일의 종교 집단을 집어 넣었다. 나중에 아미쉬가 반발할 수도 있다는 문제제기가 있었지만, 여기에 대해 카터는 '어차피 아미쉬들은 TV를 안 보니 걱정할 거 없다'며 답했다고.
롭 바우먼은 <Gender Bender>편으로 <엑스 파일> 시리즈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크리스 카터는 롭 바우먼에게 마음대로 연출할 수 있게 엄청난 자유를 줬다. 이 에피소드로 본인의 능력을 입증한 바우먼은 크리스 카터의 총애를 받으며 중요한 에피소드의 연출자로 선택받게 된다. 심지어 최초 극장판 연출도 그가 맡는다.
Chronicle - 엑스 파일(se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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