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집 <Smile>의 성공으로 1985년을 정신없이 바쁘게 보낸 장학우가 1986년 새해 벽두(1월 5일)에 두 번째 스튜디오 앨범을 발표한다. 광둥어 앨범인 2집은 별도의 타이틀 없이, 커버에 타이틀 곡 <요원적타>와 <Amour>를 함께 적어 놓았다. 보려금(寶麗金 / Polygram)에서 발매됐으며, 1집과 마찬가지로 구정옥(區丁玉)이 앨범을 진두지휘했다.
2집은 12곡이 실렸지만, 그 밀도가 1집에 비할 바 없이 옅어졌다. 번안곡이 4개나 되고, 장학우가 출연한 영화 <치심적아>, <벽력 대나팔> 주제곡, 행사 테마곡 등이 수록되어 있다. 11번, 12번 트랙 역시 라디오 드라마 <초하한계(楚河漢界)>의 삽입곡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반만>의 히트에 힘입어 35만 장을 팔아치우며 1집의 판매기록을 넘어섰다.
1. Amour
작사 : 우언(雨言) / 작곡 : Camillo Blanes / 편곡 : 노동니(盧東尼)
스페인의 국민가수 카밀로 세스토(Camillo Sesto)가 부른 <Amor No Me lgnores>를 광둥어로 리메이크했다. 애절한 라틴 팝을 록 발라드 느낌이 나게 편곡을 새로 했다. 외국곡임에도 희한하게 홍콩 노래처럼 들린다. 1절은 잔잔하게 흘러가고, 2절부터 일렉 기타가 후방에서 용트림하며 대폭발을 예고한다. 장학우의 보컬은 터지기 직전까지만 감정을 고조시킨 뒤 퇴장하고, 그 마무리는 장엄한 코러스 사이를 예리하게 베고 들어오는 기타 솔로의 몫이다. 이 곡은 장학우의 첫 영화출연작 <치심적아(痴心的我)>의 주제곡으로 쓰였다. 장학우는 이 영화를 통해 평생의 반쪽이 될 나미미(羅美薇)를 만나게 된다.
2. 월반만(月半彎)
작사: 가룡(卡龍) / 작곡: 타마키 코지(玉置浩二) / 편곡: 두자지(杜自持)
<월반만>은 일본밴드 안전지대(安全地帯)의 그 유명한 <유메노츠즈키(夢のつづき)>를 광둥어로 리메이크한 곡으로서, 2집 앨범이 성공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월반만>이 잘 된 이유는 명확하다. 타마키 코지가 쓴 감성적 멜로디, 안전지대의 편곡(하모니카 간주와 마지막 피아노 연주)이 훌륭해서다. 지금의 장학우라면 '거장' 타마키 코지의 노래를 부르지 않을 것이다. 데뷔 8개월 차의 패기 넘치는 신인가수였고, 일본 노래가 지금의 K팝처럼 아시아 전역에서 대단한 위세를 누리던 시절이라 가능했다.
광둥어 가사는 원곡과 다르다. <유메노츠즈키>는 혼자 과거를 회상하는 내용이라면 <월반만>은 지금 내 옆에 있는 연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노래다. 이 부분이 곡을 해석하는 데 결정적 차이를 가져왔다. 타마키 코지는 애상, 슬픔이 묻어나게 노래를 불렀다면, 장학우는 목소리에 완전히 힘을 빼서 감미롭게 부르는 데 주력했다. 다만, 라이브 영상을 보면 앨범과 달리 딴딴한 진성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월반만> 역시 영화 <치심적아>에 삽입곡이었다.
▶ <월반만>
3. 투심자(偸心者)
작사 : 임진강(林振强) / 작곡 : 서일훈(徐日勳) / 편곡 : 서일훈
홍콩의 유명 편곡자 서일훈이 만든 노래로 음악적 욕심이 가득하다. 뮤지컬 넘버처럼 한 곡 안에서 극적 변화가 여러 번 시도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1절은 장중한 느낌의 발라드인데 간주부터 일렉 기타의 강렬한 연주가 시작되더니 강렬한 락 비트의 노래로 변한다. 2절에선 키보드, 현악 스트링까지 웬만한 악기 소스들이 다 동원된, 스케일 큰 사운드를 들려준다.
4. 애연적성화(愛戀的星火)
작사 : 문정일(文井一) / 작곡 : 임민이(林敏怡) / 편곡 : 임민이
임민이의 마이너 발라드 <애연적성화>를 듣고 있으면 추억 돋는다. 80년대 한국, 홍콩, 일본이 공통적으로 공유하던 감성으로 벌스의 멜로디는 트로트곡이라 해도 이상할 게 없다. 클래식 기타 연주 때문에 더욱 예스런 느낌이 난다. 여성 코러스와 함께 부르는 후렴은 닭살 돋을 정도로 옛날 방식인데, 이상하게 마음이 간다. 미간을 찌푸리면서 따라 부르고 싶다.
5. 묘(苗)
작사 : 임진강 / 작곡 : 임민이 / 편곡 : 임민이
홍콩에서 가장 오래된 시민단체 중 하나인 BGCA(The Boys’ & Girls’ Clubs Association of Hong Kong) (BGCA) 주최 행사 주제가이다. 경쾌한 느낌의 동요로 BGCA 어린이 합창단과 함께 불렀다. 뜻깊은 노래지만 앨범의 흐름을 끊는다.
6. 서난종명(恕難從命)
작사 : 노국점(盧國沾) / 작곡 : 채국권(蔡國權) / 편곡 : 노동니
홍금보 주연의 영화 <벽력대나팔(霹靂大喇叭 / Where's Officer Tuba?)>의 주제곡이다. 이 작품은 장학우의 첫 영화 출연작이기도 하다. <서난종명>은 러닝타임이 3분이 채 안 되는 짧은 곡으로 말발굽 리듬에 뿅뿅거리는 효과음에 놀라다 보면 금방 노래가 끝나있다. 자기 인생은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7. 요원적타(遙遠的她)
작사 : 반원량(潘源良) / 작곡 : 타나무라 신지(谷村新司) / 편곡 : 두자지
1984년, 일본에서 아시아의 화합을 증진한다는 취지로 팩스 뮤지카(PAX MUSICA)란 음악 공연이 기획되었다. 1회에는 한국의 조용필, 홍콩의 알란 탐, 그리고 일본의 타나무라 신지가 합동공연을 펼쳤다. 조용필 7집에 수록된 <아시아의 불꽃>이 이 페스티벌을 위해 만든 노래다. 당시 한국에서도 언론에 많이 언급되어 타나무라 신지의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타나무라 신지는 일본의 레전드 뮤지션이다. 싱어 송 라이터로 포크, 록, 발라드, 엔카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명곡을 남겼다. 야마구치 모모에의 최고 히트곡 <いい日旅立ち>의 작곡가이기도 하다.
<요원적타>는 타나무라 신지가 1985년에 발표한 <낭만철도 - 도상편(浪漫鉄道 - 途上編)>을 리메이크한 곡이다. 하모니카 연주를 제외하면 원곡의 편곡과 같아 음악적으로 뭐라 이야기하기 애매하다. 이 곡의 엔진이자 생명은 피아노 리프와 마지막 후렴부 장학우의 절창이 될 것이다. 반원량이 쓴 광둥어 가사가 당시에 큰 화제를 모았다. 실연 후 힘들어하던 남자가 연인의 아버지로부터 편지를 받는데, 연인이 백혈병으로 투병하다 사망했다는 충격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다. 남자는 그제야 연인의 갑작스러운 이별 통보의 이유를 깨닫는다.
8. 단차소녀(單車少女)
작사 : 반원량 / 작곡 : Elmar Kast, Joachim Horn-Bernges / 편곡 : 두자지
80년대 초반에 사랑받던 유로 신디 팝 계열의 노래다. 가제보(Gazebo) 혹은 F.R.데이비드의 음악을 떠올리면 된다. 원곡은 이탈리아 계 독일 뮤지션 니노 드 안젤로(Nino De Angelo)의 <Gar Nicht Mehr>. 멜로디가 계속 반복되는 노래의 구조상 보컬 보다 사운드가 훨씬 중요하다. 장학우가 자신의 장점을 발휘하기 힘든 장르의 곡이다.
9. 진면목, 가면구(眞面目, 假面具)
작사 : 번원량 / 작곡 : 노동니 / 편곡 : 노동니
장학우의 영화 데뷔작 <벽력대나팔>의 주제곡이다. 스트링 편곡이 아주 듣기 좋다. 그런데 인트로가 시카고의 <Hard to say I'm Sorry>를 그대로 가져온 듯하다. 이것은 표절인가? 오마쥬인가? 브라스 연주가 일제히 터져 나오는 후반부를 들으면 밴드 시카고에 대한 오마주에 가깝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익숙한 노래의 전주를 가져와 관심을 환기시키는 일종의 샘플링 전략이라고 이해하면 좋을 성싶다.
10. 정도(征途)
작사 : 임민총 / 작곡 : 노동니 / 편곡 : 노동니
전자 오락실의 뿅뿅 거리는 음향으로 가득한 80년대 댄스 넘버다. 그땐 최신 사운드였을지 몰라도 이번 앨범에서 가장 시간의 때가 많이 묻은 노래가 됐다.
11. 패왕별희(覇王別姬) & 12. 초가(楚歌)
작곡: 고가휘(顧嘉煇) / 작사: 등위웅(鄧偉雄) / 편곡: 고가휘
<패왕별희>와 <초가>는 TVB 30부작 드라마 <초하한계(楚河漢界 / The Battlefield)>의 주제곡으로 홍콩영화음악계의 거성, 고가휘의 작품이다. 2집은 동시대 대중음악 문법에 충실한 곡들로 채워져 있지만, 마지막 두 곡 <패왕별희>와 <초가>는 예외다. 중국 전통 음악 색채가 강해 청자들을 당황하게 만든다. 하지만 두 곡 모두 퀄리티가 높다. 특히 <패왕별희>는 오케스트라와 전통 악기를 적절히 배치한 편곡, 전반부와 후반부의 극적 변화, 함께 노래를 부른 하묘연(夏妙然 / Serina Ha)의 낭랑한 음색도 감상 포인트다.
▶ <패왕별희>
Chronicle - 장학우 Disc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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