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학우는 평범한 회사원(홍콩무역발전국의 통계사무원과 퍼시픽 항공사 예약 담당 직원으로 일했다)이었다. 1984년 홍콩 신인가수 선발대회에서 우승하며 알란 탐, 허관걸이 속해있던 보려금(寶麗金 / Polygram)과 전속계약을 맺게 되는데, 장학우 본인(소속사 역시)은 이 계약이 일회성 이벤트라 생각했지 전업 가수의 길을 걸을 수 있을 거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1985년 4월 18일, 데뷔 앨범 <Smile>이 발표된 직후까지도 회사에 출근하고 있었다는 것이 그 증거다. 그러나 인생이란 언제나 예측불가하다. <Smile> 앨범은 30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대성공을 거둔다. 홍콩 대중과 평단은 전천후 보컬리스트의 등장에 환호했고, 장학우는 그해 홍콩의 양대 음악시상식(TVB의 10대경가금곡, RTHK 10대 중문금곡)에서 본상과 신인상을 차지한다.
앨범의 프로듀싱은 장학우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구정옥(區丁玉)이 담당했다. 구정옥은 이미 완성형에 가깝던 장학우의 보컬 능력을 십분 활용, 클래시컬한 발라드에서 로큰롤, R&B, 라틴, 중국 전통 음악까지 소위 백화점식 구성으로 앨범을 꾸몄다. 당시의 칸토팝은 외국 노래에 광둥어 가사를 붙인 번안곡이 대세였고, 이 앨범에도 다섯 개(일본 3곡, 미국 1곡, 헝가리 1곡)의 번안곡이 수록되어 있다. 오리지널리티 차원에서 결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mile>앨범은 듣기에 산만하지 않다. 장학우 보컬이 가진 힘 덕분이다. 앨범의 하이라이트는 1번 트랙 <경무니적검>에서 2번 <애적가방>, 3번 <사사기억>으로 이어지는 원-투-쓰리 펀치다.
Track Log
1) 경무니적검(輕撫你的瞼)
대만 싱어송라이터 나대우(羅大佑)의 원곡에 작사가 가룡(卡龍)이 광둥어 가사를 붙였다. <경무니적검>이 장학우의 오리지널 곡이라 아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이제 홍콩 팝 발라드의 고전이 됐다. 나대우 특유의 서정적 멜로디가 심금을 울린다. 특히 첫 번째 벌스는 압권이다. 노동니(盧東尼)의 편곡도 훌륭하다. 피아노 연주 하나로만 시작하다 두 번째 벌스부터 악기가 차곡차곡 더해진다. 스트링이 들어가며 서정성을 더하고, 후렴부에 드럼과 브라스가 추가된다. 간주의 기타 솔로는 홍콩 팝 사상 최고의 솔로 파트 중 하나라 해도 손색이 없다.
▶ 경무니적검
2) 애적가방(愛的卡幫)
섬세한 발라드 <경무니적검> 바로 뒤에 화끈한 로큰롤 넘버 <애적가방>이 이어진다. 밝고 가벼운 노래라 해도 연주는 정말 헤비 하다. 기타 리프가 뒤에서 계속 달리는 가운데 장학우는 엘비스 프레슬리처럼 남성적인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발라드도, 로큰롤도 능숙하게 소화해 내는 가수, 그게 바로 장학우라 선언하는 듯한 트랙 배치가 아닐 수 없다. 나는 트윈 기타가 서로 경쟁하듯 솔로를 주고받는 <애적가방>의 후반부를 가장 좋아한다. 작/편곡은 노동니, 작사는 임민총(林敏驄)이 썼다.
3) 사사기억(絲絲記憶)
신나는 로큰롤 <애적가방> 뒤에 발라드 <사사기억>이 뒤따른다. 요개록(姚凱祿)의 곡에 노영강(盧永强)이 가사를 붙였다. 편곡은 노동니가 맡았다. <사사기억>은 이동승과 왕소봉이 주연을 맡은 영화 <조점원앙(錯點鴛鴦)>의 주제곡으로 쓰였는데, 다소 신선도 낮은 멜로디에 일렉 기타를 앞세워 웅장하면서도 남성적인 록 발라드의 옷을 입혔다. 이 곡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장학우의 보컬 연기다. 후렴에서도 좀처럼 지르지 않다가 마지막에 딱 한번 고음을 내지르며 감정을 폭발시킨다. 신인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완급조절이다.
4) 국외인(局外人)
개인적으로 참 고마운 노래다. 이 곡을 통해 나카모리 아키나(中森明菜)를 알게 됐으니 말이다. 80년대 일본 대중음악을 대표하는 나카모리 아키나의 히트곡 <십계>가 <국외인>의 오리지널이다. <십계>를 모르는 사람이 이 노래를 들으면 별 문제가 없다. 반대의 경우라면 제 아무리 노래 잘하기로 소문난 장학우라 할지라도 나카모리 아키나의 곡은 무리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이건 장학우가 모자라서가 아니라 나카모리 아키나가 유일무이한 아티스트이기 때문이다. <십계>는 당시 일본 최고 기타리스트로 알려진 다카나카 마사요시(高中正義)가 만든 노래인데 임진강(林振强)이 광둥어 가사를 붙였고, 역시나 편곡은 노동니가 맡았다.
5) 회포적니(懷抱的你)
현대음악가로 유명한 임민이(林敏怡)가 작,편곡을 맡았고, 가사는 문정일(文井一)이 썼다. <회포적니>의 멜로디는 마이너 발라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런데 임민이가 편곡에 엄청 공을 쏟았다. 강렬한 기타 리프가 곡의 처음과 맨 끝을 장식하는데, 막상 본격적으로 노래가 시작되면 라틴 느낌의 기타, 스트링 연주를 더해 가을 느낌 물씬 풍기는 음악으로 변한다.
6) 첨몽(甛夢)
80년대 주류 팝은 백인음악과 흑인음악의 경계선이 희미해지고, 야성을 뽐내는 기타 보다 달콤한 신디사이저가 앞으로 나온다는 것을 그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댄 하트만의 <I Can Dream about You>가 아닐까. 영화 <스트리트 오브 파이어>의 삽입곡이기도 한 이 곡은 백인 뮤지션 댄 하트만이 불렀지만, 정작 영화와 뮤직비디오에서는 흑인 보컬 그룹이 립싱크를 했다. 도입부의 몽환적 사운드와 댄서블한 비트는 흑인음악처럼 들리지만, 후렴의 친숙한 멜로디는 컨트리 록에 가깝다. 편곡을 맡은 노동니는 원곡을 최대한 재현했지만, 신디사이저의 비중은 오리지널에 비해 적고, 도입부의 리듬 파트는 실제 드럼 연주 소리로 들린다.
7) 정이서(情已逝)
키스기 타카오(來生孝夫)의 <Goodbye Day>는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리메이크된 명곡 중에 명곡이다. 여기에 반원량(潘原良)이 가사를 붙인 <정이서>는 이 앨범이 30만 장 판매고를 올리는 데 가장 혁혁한 공을 세웠다. TVB 10대 경가금곡, RTHK 10대 중문금곡에 꼽히며 장학우의 첫 번째 메가히트곡이 된다. 편곡자 노동니는 원곡의 시그너쳐와도 같은 피아노 전주와 브라스를 빼는 대신 베이스 연주 위에 스트링과 기타로 멜로디에 더욱 집중하는 선택을 했다. 장학우는 후렴부에 음을 길게 빼는 비브라토로 애절함을 살렸다. 그럼에도 원곡 <Goodbye Day>가 월등히 좋다.
8) 조몽자(造夢者)
남들이 아무리 비웃어도 나는 꿈을 향해 나가겠다고 다짐하는 내용의 노래다. 그래서일까, 장학우는 유달리 우렁찬 발성으로 노래를 소화한다. 위림(威林) 작곡, 번원량 작사, 노동니가 편곡한 <조몽자>는 좋은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Smile> 앨범의 가장 큰 구멍이 됐다. 후렴이 약한 데다 구성 또한 단조롭다.
9) 온유(溫柔)
작곡 임민이 & 작사 임민총 콤비의 마이너 발라드. 2절의 색소폰은 지금에 와서 옛날 음악이라는 느낌을 주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임민이의 스트링 편곡은 세월을 타지 않고, 곡의 품격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장학우의 보컬에서 슬픔과 상실감이 뚝뚝 떨어진다. 개인적으로 <경무니적검>과 함께 이 앨범의 베스트라 생각한다.
10) 교차산료(交叉算了)
일본 밴드 Sally가 1984년 발표한 <버진 블루(バ-ジン・ブル-)>를 번안했다. 초기 로큰롤을 표방한 곡으로 통통 튀는 광둥어 라임이 재미있다. 색소폰이 메인 악기라 얼핏 들으면 설운도의 <상하이 트위스트>가 생각난다. 리믹스 버전과 함께 싱글로 발매되기도 했다.
11) Smile Again 마리아(Smile Again 溤莉亞)
한국에서도 크게 히트한 뉴튼 패밀리의 <Smile Again>이 원곡이다. 서정적인 멜로디, 감정을 꾹꾹 눌렀다가 후렴에 가서 터트리는 드라마틱한 구성, 스트링의 전진 배치 등 원곡의 주요 포인트를 그대로 옮겨 놓았다. 플루트 연주는 사라졌고, 사비 직전의 유명한 프리 코러스 파트는 백보컬로 대신한다. 뉴튼 패밀리의 '리드 보컬' 체프레기 에바가 한(恨)을 토해내는 느낌으로 노래했다면, 장학우는 좀 더 담백하게 부른다.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기타 솔로도 원곡은 격정적으로, 장학우 버전은 깔끔한 느낌으로 바뀌었다.
Chronicle - 장학우 Disc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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