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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탈주자(Die Trying) - 3부 점입가경

by homeostasis 2024. 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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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와 홀리가 납치범들에 이끌려 대륙 횡단을 하고 있을 때, FBI는 한발 늦게 홀리 납치 사건의 단서를 모아 간다. 종교 단체 비스무리한 공동체를 이끄는 살인마 사령관의 정체는 무엇이고, 이들이 합참의장의 딸 홀리를 납치한 까닭은 또 무엇일까? 오랜 시간 잠입 수사를 해 온 비밀 정보원은 FBI 내부에 프락치가 있음을 알게 되고, 리처와 홀리의 신변에도 심각한 위기가 닥친다.  

 

1. 우위의 심리학

 

홀리는 축구를 하다 무릎이 박살 나서 지난 몇달간 목발 신세를 지고 있었다. 그녀는, 중요한 회의를 앞두고 세탁소에 맡겨 놓은 정장을 찾아오는 길에, 납치를 당했다. 다리만 멀쩡했어도 도망갈 여지가 있었을까? 홀리는 다시 생각을 더듬어 본다. 그녀는 명품 브랜드 옷을 즐겨 입는다. 월 스트리트 애널리스트의 연봉이면 이 정도 사치는 괜찮다. 지금 입고 있는 옷도 아르마니 정장이다. 명품 옷을 입고 출근을 하다 보니 회사 근처 세탁소 방문이 그녀의 루틴이 되었다. 범인은 꽤 오랫동안 홀리를 관찰한 것이다. 이것은 우발적 범행이 아닌, 치밀한 범행이다. 

아르나미 정장도 트럭 화물칸에 18시간 정도 갇혀있고, 헛간 기둥에 수갑을 차고 묶여 있으니, 그저 맨살을 가리는 정도의 기능 정도만 할 뿐, 명품으로서의 가치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됐다. 그동안 홀리는 FBI 요원으로서 민간인 리처의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 생각했었다. 하지만 보호해야 될 대상이 아님을, 리처는 온몸으로 웅변하고 있다. 아버지를 따라 전 세계의 미군 기지를 전전하며 성장해 온 홀리는 리처가 군인 출신임을 본능적으로 캐치한다.

홀리가 리처의 정체를 이리저리 추측할 때, 납치범들이 외양간으로 들어온다. 총을 든 납치범 앞에서 리처는 대담하게 요구사항을 쏟아낸다. 커피와 토스트, 트럭 짐칸에 깔 매트리스를 달라 강한 어조로 요구한다. 홀리는 갑자기 세게 나오는 리처 때문에 조마조마하다. 범인들이 빡쳐서 총으로 갈겨 버리면 어쩌나. 납치범과 인질 사이에도 심리학은 작동한다. 십수년간 범죄수사로 단련되어 온 리처는 이 분야의 전문가다. 엉겁결에 토스트를 만들어 온 범인들에게 너무 탔다며 새로 달라 요구한다. 어느덧 납치범이 자기 이름도 밝힌다. 리더는 로더, 스티브는 똘마니, 음흉하게 홀리의 가슴을 엿 본 놈은 이름을 알려주지 않는다.

이들은 리처와 홀리를 트럭에 다시 태우고 길을 떠난다. "우리는 더 이상 수갑도 차고 있지 않아. 이게 바로 심리학이지." 딱딱한 바닥 대신 푹신한 매트리스 위에 앉게 된 홀리에게 리처는 어깨를 으쓱하며 한 마디 던진다. 홀리는 다시 돌아 온 건 실수였다고 말한다. 자기를 걱정해 주는 홀리가 점점 더 마음에 드는 리처다. 그래서 그 행동이 무모한 것이 아님을 설명한다. 이 트럭은 페인트로 덧칠한 흔적이 있다. 도주를 위해 훔친 차량이다. 먼저 타고 왔던 검은 세단은 증거를 없애려고 불태웠다.. 이 부분이 치명적 실수다. 차량 화재는 경찰이 언제나 관심을 기울인다. 여러 가지 점을 종합해 볼 때, 납치범은 아마추어다. 그러니 탈출의 기회는 있다!! 설득력 있는 리처의 말에 홀리의 궁금증은 커져만 간다. 전직 군인이자 현재는 클럽 바운서로 일한다는 이 남자의 정체는 무엇인가!!

 

2. 최후의 다섯 프레임

 

FBI 영상전문가들이 세탁소에서 가져온 CCTV 영상을 분석중이다. 홀리가 납치되는 순간의 마지막 다섯 프레임에서 리처만 정면을 보고 있고, 진짜 범인들은 옆모습만 찍혔다. 기술자들은 전문 프로그램을 사용해 이들의 정면 얼굴을 복원한다. 가게 앞에 정차되어 있었던 검은 세단의 차종과 번호판도 확인했다. 글로써 포렌식 과정을 재미있게 묘사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작가는 독자가 지루하지 않게 그 과정을 따라갈 수 있도록 'FBI는 최신 기종 보다 현장에서 입증된 모델을 선호한다'는 식의 전문가다운 설명을 붙인다. FBI는 거대한 조직이라 모든 일에 절차가 있고, 간단한 사실 확인에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 등 삐걱거리는 수사과정 또한 오히려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3. 바늘 찾기

윌매트(Wilmatte) 경찰서는 치과의사 네이선 루빈이 검은 색 세단을 몰고 집을 나선 이후 실종된 사건을 FBI에 보고한다. 비슷한 시점, 시카고 소방서가 공항 인근 도로에서 불에 탄 검은 렉서스 차량의 존재를 FBI에 알린다. 네이선 로빈은 <탈주자> 도입부에 괴한에게 구타당해 사망한 바로 그 인물이다. 작가가 여기 저기 흘려 놓은 단서를 FBI가 뒤늦게 수집, 취합해 정보로 만드는 과정이 드라이하게 이어진다.

공항 근처에서 이 증거들이 발견된 탓에 FBI는 범인들이 비행기로 도주했을 가능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한다. 브로건과 밀로셰비치가 급히 공항으로 달려 가는데, 특별한 소득이 없다. 납치 직후에 이륙한 비행기 자체가 없었고, 비슷한 인상착의의 사람도 없었다. 대신 불에 탄 픽업트럭 한 대가 보고된다.

수사 과정을 실시간으로 보고 받은 웹스터 국장은 가슴이 답답하다. 합창의장에게 좀 희망찬 소식을 알려주고 싶지만 그렇 수 없어 마음이 무겁다. 존슨 의장은 부인을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이번에 딸까지 납치가 되었으니 평생 국가를 위해 살아온 애국자에게 너무 가혹한 형벌이 아닌가 싶다.

 

4. 스파이

악당들의 근거지에 FBI 쪽 비밀 요원이 잠입해 있다. 그가 홀리의 납치소식을 제일 먼저 알렸다. 그런데 경계가 강화되며 외부와의 교신도 힘들어졌다. 무전기를 숨겨 놓은 나무 근처로 가려다가도 마음을 접고 돌아선다. 숲에서 돌아오던 비밀요원은 '붉은 점' 살인마 사령관과 맞닦트린다. 사령관은 그에게 무전기 주파수를 잡는 스캐너를 주며 외부와 내통하는 자가 있는지 감시하라 지시한다. 사령관은 첩자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FBI 내부에 배신자가 있음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5. 트럭 속의 대화

매트리스를 경계 삼아, 등을 맞댄 리처와 홀리는 이동 중에 많은 대화를 나눈다. 홀리는 얼핏 본 리처의 흉터 - 배에 커다랗게 나 있는 - 에 관심을 가진다. 리처는 '이것은 분명 야전병원의 솜씨'라는 홀리의 지적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 무용담을 꺼낸다. 베이루트에 파병 나가 있을 때, 관통상을 당한 상태로 부상당한 아군을 구출한 적이 있었다. 본인은 그저 내장이 밖으로 나와 있었던 것만 기억한다고 담담히 말한다.("내장이 선홍빛이더군.") 훈장을 탄 적 있냐는 물음에는 기다렸다는 듯 내역을 읊는다. ("전역 기장 몇 개, 은성훈장 하나, 청동성장 두 개, 베이루트에서 상이기장, 파나마와 그래나다, 사막의 방패, 사막의 태풍작전에서 종군 기장을 받았소.")

리처가 찐 군인임을 알게 된 홀리는 비로소 리처에게 의지하고픈 마음이 생긴다. 아버지를 따라 영국 기지에 살 때 축구(아스톤 빌라의 팬)에 빠졌고, 축구하다 다리를 다친거라 고백한다. 리처가 아버지의 이름을 묻자, 홀리는 '존슨 장군'이라 똑똑히 답한다. 납치범이 왜 홀리를 선택했는지 이해가 된다. "왜 모든 사람들은 내게 일어난 일을 아버지 때문이라 생각하죠?" 장군 아버지 때문에 평생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홀리가 발끈한다. 하지만 아버지가 합참의장인데 어쩌겠나.

어머니의 사망으로 홀리에게도 아버지는 유일한 혈육이다. 리처는 여기서 또 고민을 거듭한다. 합참의장도 월급 받는 공무원일 뿐이다. 그를 협박해서 미국을 흔들 생각이라면, 백악관은 해고하고 다른 합참의장을 임명하면 그뿐이다. 그래서 납치범들의 범행은 바보 같고, 무모하기에 더 위험하다.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의 리처가 바로 운전선을 향해 주먹으로 세게 내리친다. 빡 돈 납치범들은 차를 세우고 화물칸의 문을 여는데, 거기다 대고 리처가 지금 큰 실수하고 있다 소리치니, 리더 격인 로더가 산탄총으로 짐칸 지붕을 쏴버린다. 짜증 나니 닥치라는 거다. '심리적 우위'를 운운하며 뻐기던 리처가 머쓱하게 됐다. 쓸데없이 납치범들을 화나게 해서 목숨을 잃을 뻔했다.

그 후로 차는 6시간을 더 달려 새로운 은신처에 도착한다. 괜히 설친 탓에 리처 몫의 매트리스와 저녁식사가 사라졌다. 밤이 깊어 갈 때, 홀리의 가슴을 훔쳐보던 음흉한 놈이 마구간 안으로 들어온다. 그의 목적은 홀리다. 그녀 앞에서 바지를 벗고 자기 물건(?)을 흔들며 지금 입고 입는 속옷의 형태를 설명하라 협박한다. 홀리도 특수훈련을 받은 사람이다. 빈틈을 노려 상대를 공격해 보지만, 다친 무릎 때문에 곧바로 제압된다. 

작가 리 차일드는 이 대목을 상세히도 묘사한다. 홀리는 범인의 완력에 못 이겨 '속옷은 빅토리아 시크릿으로 짙은 복숭아색'이라 말하는 굴욕을 겪는다. 이 놈의 명령으로 상의 단추도 하나씩 풀어 내려간다. 마지막 다섯 번째 단추를 푸는 순간, 우지끈 소리와 함께 음흉남의 목이 꺾인다. 분노한 리처가 묶여있던 기둥을 아예 부러트린 뒤 공격에 나선 것이다. 리처는 시체 처리를 쉽게 하려고 마지막은 매트리스로 질식시켜 죽인다.

 

6. 고뇌

작가 리 차일드는 존슨 합참의장의 애끓는 부정(父情)을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차분히 묘사한다. 감정의 직접적 표현은 없다. 의장의 행동, 대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이것이 훨씬 고급진 방법이다. 존슨 의장은 혼자서 링컨 기념관과 미국사 박물관으로 이어지는 산책로를 따라 걷는다. 목적지는 FBI 본부 건물이다. FBI의 웹스터 국장을 찾아 수사의 진행 사항을 묻기 위해서다. 

납치 사건에서 이틀이 지나면 생존율이 급격히 떨어진다. 존슨 의장도, 웹스터 국장도 이를 너무나도 잘 안다. 50명의 인질구출팀이 언제든 투입될 태세를 갖추고 있다. 무려 치누크 헬기를 동원해 불에 탄 픽업트럭을 시카고에서 워싱턴으로 공수해 와서 분석 중이다.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타버린 트럭에서 결정적인 단서를 찾을 수 있을까? 담담하게 FBI 본부 건물을 나온 존슨 의장은 온 길을 되돌아 걷는다. 베트남전 기념비에 걸터앉은 존슨은 30년 전 나라를 위해 죽어간 젊은이들의 이름 위에 얼굴을 파묻고, 그제야 참아왔던 눈물을 쏟아낸다.

※ 4부에서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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