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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봐서 나쁠 건 없는 영화(★★)

오랑팔괘곤(五郞八卦棍 / The 8 Diagram Pole Fighter) 1984년 - 2부 미치거나 혹은 스님이 되거나

by homeostasis 2023. 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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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팔괘곤>의 인물들은 경극 무대와 비슷한 쇼 브라더스 세트장 위에서 분노의 감정을 여과없이 토해낸다. 모두가 하나 같이 원통해 하고, 증오로 으르렁 거리고, 원통해 하다 복수심으로 미쳐간다. 각각의 감정이 임계점에 닿으면 여지없이 액션이 등장한다. 긴 창(長槍)과 봉(棒)이 직사각형 스크린의 좌우를 번개처럼 가로 지를때, 드라마는 사라지고, 감정과 한몸이 된 액션만이 남는다.

돌아온 육랑

양씨 가문의 든든한 안방마님 사태군(이려려 / 李麗麗 / Lily Li Li-Li)은 홀로 돌아온 여섯째 아들 육랑(부성 / 傅聲 / Alexander Fu Sheng)을 품고 피눈물을 흘린다. 남편과 여섯명의 아들이 한꺼번에 죽었으니 그 심정이 오죽하겠나. 하지만 정신이 나간 쪽은 어머니 사태군이 아니라 살육의 현장에서 살아 돌아온 육랑이다. 혈육도 못 알아보고 어머니와 여동생 팔매(혜영홍 / 惠英紅 / Kara Hui Ying-Hung), 구매(양청청 / 楊靑靑 / Yeung Ching-Ching)를 향해 창을 휘두른다. 겨우 정신을 찾은 육랑이 배신자 반미(임극명 / 林克明 / Lam Hak Ming) 장군의 모략에 걸려 부친과 형제들이 어떻게 도륙당했는지를 증언하다 또 한번 발작을 한다. 온 몸으로 죽음의 순간을 묘사하는 부성의 미친 열연은, 이 영화 촬영 중 불운의 교통사고로 사망한 젊은 배우가 피워낸 마지막 불꽃처럼 보인다.

미친 부성과 슬픔에 빠진 이려려&#44; 오랑팔괘곤의 스틸

사냥꾼의 은혜

살육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또 한명의 형제, 오랑(유가휘 / 劉家輝 / Gordon Liu Chia Hui)은 쫓기다가 우연히 빈 산채 하나를 발견한다. 부상과 굶주림에 시달린 오랑은 빈 집에 몰래 들어가 주인 있는 음식을 염치불구하고 먹어 치운다. 허기가 채워지니 혈육의 억울한 죽음이 또 한번 그의 영혼을 급습한다. 간신배를 향한 분노가 머리 끝까지 찰때 집주인 사냥군이 등장한다. 역시나 사냥군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시끄러운 세상을 피해 산 속에 숨어 살던 은거 고수였다. 오랑을 추적하던 거란군이 약속한 듯 사냥군의 집 앞을 포위하고, 사냥군은 오랑을 살리기 위해 그를 비밀땅굴로 떠밀어 숨긴 후에 홀로 그 많은 병사들과 홀로 결투를 벌인다.

감독 유가량(劉家良 / Lau Kar Leung)이 직접 사냥군 역을 맡아 파괴적 액션을 선보이는데, 좁은 집 안에 자리잡고 안으로 들어오려는 거란군을 봉을 사용해 파리 잡듯 후려친다. 사냥군의 집은 언덕 꼭대기,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다수의 적들이 집벽에 개미떼처럼 붙어 포위하고 있는 양상이다. 수적열세에 몰린 유가량은 봉을 길게 가로로 잡고 적들을 밖으로 밀어 붙이는데, 유가량과 군사들이 함께 높은 곳에서 저 아래로 동귀어진 하듯 떨어진다. 홍콩 액션 영화의 팬들은 이 장면의 액션 디자인이 유가량 본인이 공동연출한 성룡의 94년작 <취권2> 다루(茶樓) 결투씬과 똑같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사태군의 분투

상중(喪中)인 양가장은 침울하게 가라 앉아 있다. 하얀 상복의 육랑이 위패 앞에 무릎을 꿇고 홀로 앉아 있다. 이때 반미 장군이 생존한 오랑과 육랑을 체포하기 위해 양가장으로 쳐들어 온다. 군사들의 함성에 또한번 실성한 육랑이 배신자 반미를 외치며 창을 들고 뛰어 나갈 때, 어머니 사태군이 그를 무력으로 제지한다. 육랑을 숨긴 사태군은 황제가 직접 하사한 용두곤을 앞세워 반미 장군의 진입을 막는다. 이 과정에서 어머니 사태군은 다섯째 아들 또한 생존해 있음을 알게 된다. 사태군 역의 이려려는 1970년, 20살의 나이로 데뷔해 수없이 많은 영화에 출연한 베태랑 배우다. 수많은 쇼브라더스 영화에 출연했고, <사제출마>에서 석견의 딸로 나와 치마를 활용한 발차기로 성룡을 괴롭혔던 바로 그 배우다. <오랑팔괘곤>에서는 카리스마 넘치는 여장부의 모습부터 연약한 어머니까지, 다양한 감정을 안정감있게 연기한다.

창을 부러트린 오랑

사냥군의 희생으로 목숨을 건진 오랑은 비로소 현실을 인정한다. 지금은 반미를 상대할 힘이 없으니 때가 될 때까지 은거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본인의 정체성이나 다름없는 양가의 창끝을 스스로 잘라 불구덩이에 집어 넣고 청량사라는 이름의 절로 들어간다.

오랑은 머리를 깎고 중이 되려 한다. 그러나 청량사의 주지 스님(고비 / 高飛 / Phillip Ko Fei)는 오랑의 출가를 허락치 않고 축객령을 내린다. 자신이 양오랑임을 밝혀도 주지 스님은 꿈쩍 하지 않는다. 중이 되기에 오랑의 얼굴이 살심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중이 되는 것 마저 거절 당하자 오랑은 감정이 폭발한다. 아무도 머리를 깎아주지 않자 직접 칼을 잡고 홀로 제 머리카락을 자른다. 칼에 베인 머리에서 피가 뚝뚝 흐르는데 광기라는 말 밖에 달리 표현할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오랑은 계인도 직접 새긴다. 뜨거운 향으로 삭발한 제 머리를 지져 여섯개의 점을 완성한 뒤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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