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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영화의 맨살 - 하스미 시게히코(蓮寶重彦) 영화비평선 - 4부 감독론(2)

by homeostasis 2023.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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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거장들, 작품들 - 변모하는 풍경 속에서 Part 2

3부에 이어 하스미 시게히코의 감독론이 계속된다. 위대한 감독 장 르누아르, 존 포드에 관해 세상 어디서도 들을 수 없었던, 하스미 선생 만의 독특한 견해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이 다 그렇지만, 읽다 보면 여기서 소개된 영화들을 처음, 혹은 다시 한번 봐야겠다 마음먹게 된다. 극장에 갈 시간도 없는데 왜 굳이 옛날 영화를 봐야 하나, 지나친 지적 허영심 아닌가 싶기도 하겠지만, 현실이 고단하고 힘들수록 우리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좋은 영화들을 찾아봐야 한다. 

3) 장 르누아르 또는 촉각도시의 흔적

장 르누아르 하면 <위대한 환상(Le Grande Illusion)>(1937년)이 먼저 떠오른다. 하스미 선생은 역시나 이것이 거대한 오해라 생각한다. 진짜 장 르누아르의 걸작은 따로 있다. 토키 시대 이후 프랑스 영화에는 두 개의 '파리(Paris)'가 존재했다. 하나는 리자르 미어슨과 알렉산드로 트로네르, 두 미술감독이 만들어 낸 인공세트 속의 화려한 도시로서의 파리다. 또 다른 파리는 1930년대의 장 비고가 연출한 <아탈랑트>, 그리고 장 르누아르의 <익사에서 구조된 부뒤>의 로케이션 촬영으로 담아낸 실제 파리의 모습이다.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르네 끌레르, 자크 페데, 마르셀 카르네의 영화 속에서 볼 수 있는, 크레인 쇼트로 찍어 낸 인공세트의 파리를 진짜 파리보다 더 좋아하고, 이것이야말로 파리의 진면목이라 여겼다. 그것이 장 르누아르의 진짜 걸작 <익사에서 구조된 부뒤(Boudu Sauve Des Eaux)>(1932년)를 무시하고 <위대한 환상>을 만신전에 올린 이유라 지적한다.

익사에서 구조된 부뒤

이 영화에서 르누아르는 연출을 포기한 것처럼 보이는 평면적인 화면을 보여준다. 있는 그대로 찍어낸 듯한 영화다.  르누아르는 영화가 원근법, 황금비율 같은 회화의 법칙을 따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카메라가 마치 인간의 눈처럼 생생하게 담아낸 영화 속 파리는 촉각처럼 관객에게 받아들여진다. 장 르누아르가 파리를 담아낸 방식은 30년이 지나 고다르, 트뤼포, 샤브롤 같은 누벨바그 감독들에 의해 부활한다. 영화가 단순한 감상의 대상에서 머물러선 안된다고 생각한 젊은 감독들은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갔다. 그래서 하스미 선생은 장 르누아르와 장 비고를 누벨바그 이전의 누벨바그라 주장한다.

4) 존 포드, 뒤집어지는 하얀색

'하워드 훅스는 총명함으로 영화를 아름답게 만들고, 장 르누아르는 관능성으로 영화를 아름답게 만들지만, 존 포드는 아름다움으로 영화를 아름답게 만든다. 아름다움으로 영화를 아름답게 만들기 때문에 그 아름다움이 불분명해진다.' 존 포드를 이야기하는 하스미 선생의 문장은 암호처럼 모호하다. 여기서 '아름다움'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하스미 시게히코는 존 포드 영화의 진짜 아름다움은 모뉴멘트 벨리로 대표되는 거대한 자연, 남자들의 우정이 결단코 아니라며 그의 영화 중 가장 감동적인 작품이 <수색자>가 아니라 말년에 만든 <일곱 여인들(7 Women)>(1966년)이라 단언한다.

존 포드 영화 속 광활한 모뉴멘트 벨리, 지평선, 넓은 하늘의 구름은 호연지기를 절로 일으키는 대자연이 아니다. 이곳은 열린 공간이 아니라 오히려 닫힌 세상이다. '앞으로 나가려는 시선은 벽과 같은 바위산에 갇혀'있다. 아무리 멋진 풍경이라 할지라도 스크린 안으로 수렴되는 연극무대 같은 소우주에 불과할 뿐. 오히려 넓은 대지는 그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의 피곤을 강조할 뿐이다. 포드 영화의 대부분은 일시적으로 부자유스러운 신분이 된 남자(<역마차>의 탈옥수 존 웨인, <황야의 결투>에서 어쩔 수 없이 보안관을 맡게 되는 와이어트 어프)가 지평선 저쪽에서 이쪽으로 돌아오는 내용을 다룬다. 가장 중요한 테마는 바로 귀환이다. 존 포드는 이를 에피소드의 연쇄를 통해서가 아니라 화면, 영상 그 자체로 전달한다. 이 테마의 시각적인 상징이 '남자들이 돌아올 때 그들을 맞이하는 여인들이 입은 넓은 에이프런의 하얀색'이다.

하스미 선생은 '평범한 이야기의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를 진정 감동적인 영화로 만들어 주는 것이 하루의 노동으로 검게 그을린 남자들을 기다리는 여인들의 에이프런'이라 쓰고 있다. 이 에이프런과 하얀색의 이미지는 포드 영화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특히 배우 모린 오하라는 <리오 그란데>, <조용한 사나이> 등 에이프런 차림으로 문 앞에 서서 남자를 맞이하는 그 순간만을 위해 선택된 배우처럼 보인다고 평가한다. <리오 그란데>에서 존 웨인은 15년 전에 헤어진 부인 모린 오하라와 재회한다. 둘 사이의 아들이 존 웨인이 지휘하는 기병대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부인은 존 웨인에게 아들을 내놓으라 다그친다. '남자가 돌아오길 기다리는 여인'과 전혀 맞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들이 인디언에 붙잡히고 존 웨인이 구출하러 떠나자 모린 오하라는 '남자를 기다리는 존재'로 변한다. 마지막에 부상당한 존 웨인에게 뛰어가는 모린 오하라의 하얀색 에이프런은 포드적 테마를 완성한다.

영화 수색자의 한장면

<수색자>를 살펴보자. 영화 초반, 남북전쟁에서 막 돌아온 존 웨인은 에이프런을 두르고 기다리는 여인을 본다. 하지만 이 여인은 동생의 부인이다. 마지막 장면에서도 존 웨인을 맞이하는 여인은 카우보이 집단의 막내 제프리 헌터의 연인 베라 마일즈와 장모 올리버 케인이다. '기다리는 에이프런'은 있되 존 웨인을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이 지점에서 비애가 묻어난다. 존 포드는 커리어 후반기로 갈수록 웨스턴이 아니라 가정극을 찍는 것처럼 보인다. 남자 주인공이 이동을 멈추고 통제를 받는 순간은 하얀색 에이프런을 맞이할 때다.

하얀색 에이프런은 성별을 뛰어넘기도 한다. <롱 그레이라인>의 타이론 파워, <기병대>의 윌리엄 홀든, <리버티 발렌스를 쏜 사나이>의 제임스 스튜어트는 남자이면서 하얀색 에이프런을 두른다. 제임스 스튜어트는 웨이터로 앞치마를 맨 상태로 무법자 앞에 권총을 들고 나선다. 하얀색 헝겁은 성적 경계를 넘나들고, 물리적인 거리를 넘나 든다. 색깔이 있는 것도 멀리서 보면 하얀색으로 보인다. 거리를 무력화시키는 하얀색은 점화의 순간에도 나타난다. 어둠을 일순간 밝히는 하얀색은 사라지는 순간 어둠이 된다. 하스미 시게히코는 '영화 자신의 눈부신 빛남과 소멸. 뒤집어지는 하얀색은 끊임없이 하얗지 않은 것으로 변용하는 자질을 안고 뒤집어지며 영화 그 자체의 생성과 소멸의 일순을 자기 자신에게 계속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라는 문장으로 이 글을 마무리한다.

※ 5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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