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도서

영화의 맨살 - 하스미 시게히코(蓮寶重彦) 영화비평선 - 2부 영화가 영화인 까닭

by homeostasis 2023. 6. 26.
반응형

1부 다시 영화란 무엇인가 - Part 2

하스미 시게히코가 70년대 발표한 영화비평은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저널리즘 비평, 리뷰 등과 다르다. 하스미 선생은 한 감독의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곡선의 이미지, 추락하는 운동에너지 같은 영상의 특징에 주목한다. 영화를 영화이게 만드는 '영상'에 집중하려는 시도였다.

 

3) 영화, 황당무계의 반기호(1976년)

영화의 스크린은 달과 비슷하다. 어째서냐 하면 스스로는 빛을 내지 못하고 광원을 반사하는 것으로만 자신을 내보일 수 있다. 결정적인 차이는 달이 원형, 구(球)형인데 반해 스크린은 직사각형이라는 데 있다. 스크린의 모양은 영화 탄생 이래 지금까지 한 번도 변하지 않은 영화의 고유한 특성 중 하나일 것. 하스미 선생은 원형과 직사각형의 대결이 영화 작가들이 오랫동안 고심해 온 주제라고 한다. 그리고 그 대표적 작가로 히치콕을 꼽는다. 히치콕 영화는 온통 구멍, 나선의 이미지로 넘쳐난다. 직사각형의 문과 창문은 외부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데 그의 영화에선 이것이 수시로 열리거나 카메라가 문을 넘나들며 불안감을 조성한다. 

히치콕의 <오명>에서 나선계단의 이미지
<오명>에서의 나선계단

 

4) 영화와 떨어지는 것(1977년)

이 글의 주제는 '영화가 종(縱)의 움직임, 상하운동이 수직으로 벌어지는 이미지를 담기에 철저히 무력하다'로 요약할 수 있다. 영화는 횡적 운동은 잘 담는데 수직 운동은 표현이 쉽지 않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는 것만으로는 그저 멀리 있다는 느낌을 줄 뿐이다. 반대로 아래에서 추락하는 물건을 찍으려면 위험(카메라가 박살나는)을 감수해야 한다. 크레인, 헬리콥터, CG 같은 기술의 발달로 수직 운동을 한계 없이 담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이것은 필연적으로 컴퓨터 그래픽으로 그려낸 가짜 이미지, 편집을 활용해 하늘을 날거나 추락한 것처럼 꾸며낸 것에 불과하다.

영화감독들은 오래전 부터 수직운동에 취약한 영화의 본질을 꿰뚫어 봤다. 찰리 채플린, 해롤드 로이드, 스탠리 도넨과 프레드 아스테어, 데이비드 린의 <콰이강의 다리>, 돈 시겔의 <더티 해리>,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가 차례로 불려 나오며 영화의 한계를 인식한 감독들이 어떻게 수직운동을 표현해 왔는지를 설명한다. 이 글에서 라울 월쉬와 히치콕을 따로 언급한다. 라울 월쉬의 경우 끊임없이 인물을 수직(올려다 보거나, 혹은 내려다보는)의 위치에 두고 부감과 앙감의 차이에서 오는 에너지를 영화의 주된 동력으로 삼는다. 영화는 찍을 수 있는 각도의 한계로 인해 부감을 선택할 밖에 없다는 것을 자신의 영화를 통해 스스로 폭로한다.

&lt;다이 하드&gt;에서의 부감 추락씬
<다이하드>의 한스 그루버 추락씬의 부감과 앙감
&lt;다이 하드&gt;에서의 앙감 장면

 

히치콕은 추락하는 장면이 허위라는 것을 알고 인물이 어떤 식으로든 추락하지 않도록 만든다. 추락 직전의 상황(수직운동 그 자체보다 사람이 떨어질 때 발을 댈 곳이 있는지, 혹은 저쪽과 이쪽 사이의 허공을 강조)을 만들어 서스펜스를 일으킨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진짜 추락하는 경우는 없다. <현기증>에서 추락할 뻔한 형사는 그 다음 장면에서 아무 설명 없이 거리에 있고,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에선 제임스 스튜어트가 절벽에 매달린 에바 마리 세인트의 손을 붙잡고 있다가 열차칸 침대에서 위아래로 손 잡고 있는 장면으로 전환된다. <비밀첩보원>은 비행기 추락 장면에서 아예 비행기 조종실에 카메라를 고정시키고 마치 바다에 추락할 때까지 원테이크로 찍은 것처럼 가장한다. 이는 영화가 추락 장면을 담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어떤 상황에서도 추락하지 않음을 보여줌으로써 영화만의 논리를 역설적으로 만들어 냈다.

 

5) 제도로서의 영화(1980년)

영화는 이데올로기, 권력, 정치 등 제도 없이 성립할 수 없다. 어떤 국가에서 음모와 성기 노출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면 이것에 불만을 품은 자가 존재하겠지만, 대다수의 영화는 이것을 당연하게 받아 들인다. 비평이 제도 등에 신경을 쓰다보면 영화를 제대로 직시하지 못할 때가 많다. 예컨데 에이젠슈타인의 몽타쥬를 혁신적이고 대단한 것이라 칭송하지만, 할리우드 멜로드라마에서 사용된 몽타주는 관심 밖으로 둔다. 할리우드 영화에 반기를 든 이탈리아 영화를 '네오리얼리즘'이란 카테고리로 묶어 칭찬하지만, 네오리얼리즘의 효시라고 하는 데시카의 <자전가 도둑>은 할리우드 멜로드라마의 작법이 그대로 적용된 영화다. 하스미 선생은 어떤 틀과 제도 안에 영화를 집어 넣으려 하지 말고, 영화 그 자체가 생생하게 스스로 드러내는 제도와 정치를 생각해 보자 말한다.

 

6) 영화와 비평(1980년)

영화를 논할 때 화면과 음악, 연기 등 영화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함께 언급해야지 내용만 이야기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영화를 기호학으로 분석하는 것도 '영화를 영화 아닌 그 무엇'으로 만든다며 경계한다. 하스미 선생은 영화가 스토리에 기반하여 만들어지므로 내용을 좇아가는 것은 당연하지만, 무엇보다 생생한 영화체험, 나와 영화 사이의 상호작용에 대해 써야 한다며 비평이 '영화를 모방'하는 수준에 이르러야 합당할 것이라 주장한다. 하지만 내 생각에 이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할 수 없는 일을 하겠다고 덤벼드니 하스미 시케히코는 글의 말미에 '비평은 사랑과 유사'하며 그래서 '비극적'이라 끝을 맺는다.

※ 3부에서 계속 됩니다.

Navigation - 영화의 맨살

이전 글 : 영화의 맨살 - 하스미 시게히코 영화비평선 1부

 

영화의 맨살 - 하스미 시게히코(蓮寶重彦) 영화비평선 - 1부 영화에 영혼을 판 남자

하스미 시게히코는 일본의 신(神)급 영화평론가로 7~80년대 영화팬들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한국에서도 명성이 잘 알려져 있지만 그의 평론이 정식 출판된 것은 이 책 이 처음이다.

egfilmarchive99.tistory.com

다음 글 : 영화의 맨살 - 하스미 시게히코 영화비평선 3부

 

영화의 맨살 - 하스미 시게히코(蓮寶重彦) 영화비평선 - 3부 감독론(1)

거장들, 작품들 - 변모하는 풍경 속에서 Part 1 2부는 하스미 시게히코가 쓴 감독 비평을 소개해 놓은 장이다. 여기서 호명된 감독과 키워드는 다음과 같다. 존 포드와 앞치마, 장 르누아르와 파리(

egfilmarchive99.tistory.com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