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리처는 완벽한 주인공이 아니다. 놀라운 추리력과 가공할만한 무력을 겸비했지만, 실수 또한 많이 한다. <추적자>의 후반부는 리처 스스로 일을 어렵게 만들었다 수습하고, 자신의 실수를 제자리로 돌리는 과정의 반복이다. 덕분에 우리는 리처를 냉정한 살인 기계가 아닌, 더운 피가 흐르는 인간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1. 프락치
형이 남긴 전화번호는 뉴올리언스 경찰서의 스피렌차 형사, 프린스턴 대학의 바슬로뮤 교수, 컬럼비아 대학의 켈스타인 교수의 연락처였다. 리처는 마그레이브 경찰서에 남아 있는 핀레이에게 연락, 지금까지 알아낸 정보를 공유한다. 이때 핀레이가 뜻밖의 소식을 전하는데, 재무부에서 형이 추적하던 사건과 관련한 중요 단서를 직접 전달하기 위해 몰리가 애틀랜타로 날아오는 중이라 한다. 리처는 몰리를 만나기 위해 직접 공항으로 달려간다. 혼잡한 공항 로비에서 초면인 사람을 쉽게 알아볼 수 있을까? 몰리는 리처를 보자마자 대번에 알아보고 반갑게 손을 흔든다. 형 조와 동생 잭은 쌍둥이라 할 만큼 닮았다는 설정이다.
리처는 인파 때문에 잠깐 시야에서 몰리를 놓치는데, 그 찰나의 순간에 누군가 칼로 몰리를 찌른다. 몰리는 등장 하자마자 안타까운 죽음을 맞게 되고, 이 일은 리처, 로스코, 그리고 핀레이, 피카르로 이루어진 비공식 수사팀의 정보가 외부로 새고 있음을 경고한다. 프락치는 이들 중 누구일까? 핀레이, 아니면 피카르? 작가는 배신자 찾기를 소설 후반부의 주요 동력으로 가져간다.
2. 고독한 형사들
마그레이브로 돌아온 리처는 형이 남긴 메모 속 '클라이너 파일'을 찾기 시작한다. 경찰서 문서 보관소에 꼬리표가 달린 서류상자를 발견하지만 쓸데없는 파일만 가득하다. 막막한 상황에서 그레이가 죽기 전날 로스코에게 숨겨달라 부탁했던 총기 박스가 문득 떠오른다. 그레이 같은 베테랑 형사가 총 한 정을 못 숨겨 로스코에게 부탁했을 리 없지 않은가. 맡긴 것은 총이 아니라 상자 그 자체가 아닐까?
과연 상자 뚜껑 뒤에 열쇠 하나가 숨겨져 있다. 리처는 이제 또 하나의 수수께끼를 풀어야 한다. 이 열쇠는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불현듯 처음 머리 깎으러 이발소에 갔을 때 손님 중 백인은 죽은 그레이 반장이 유일했다는 흑인 이발사의 말이 떠오른다. 노(老)이발사는 그레이가 로스코가 찾아오기 전까지 아무에게도 보여주면 안 된다고 부탁했던 서류 봉투 세 개를 내어준다.
첫 번째 서류는 뉴올리언스 형사 스피렌차가 수년동안 조사한 클라이너 보고서다. 스피렌차 형사는 관할구역에서 발생한 8건의 살인사건을 수사하다 몇 가지 공통점을 찾아낸다. 살인에 쓰인 무기는 모두 소음기가 달린 22 구경 권총이었다. 피해자 8명은 미시시피의 섬유처리업자와 직간접적 관련이 있다. 섬유업자가 바로 아버지 클라이너였다.스피렌차는 아버지보다 아들 클라이너를 더 위험인물로 생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아들 클라이너는 완전한 사이코패스. 스피렌차는 FBI와 공조해 1년 넘게 클라이너의 뒤를 캐고 다녔지만 더 이상의 단서를 확보할 수 없었다. 사건은 흐지부지되고, 파일은 서랍에 처박혀 잊혔다가 수년이 지나 그레이 반장에게 전해진다.
두 번째 서류는 클라이너 재단의 회계보고서였다. 재무제표는 위조지폐범이 한 마을 전체를 어떻게 매수할 수 있었는가를 보여준다. 재단의 수입은 제로인데 막대한 보조금 비용이 계상되어 있다. 악당은 위조지폐로 보조금을 뿌려 마을 전체를 매수하는 동시에 돈세탁을 하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노렸다.
세 번째 서류는 그레이의 보고서였다. 이 고독한 형사는 클라이너 재단의 창고를 홀로 감시했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들락날락하는 트럭의 대수까지 세고 있었다. 그런데 1년 전부터 눈에 띄게 트럭의 수가 줄었다. 이는 위조지폐 유통에 문제가 생겼다는 증거로 해안경비대가 반년 전부터 추진해 온 밀수 단속 강화와 맞물린다. 앞부분에 계속 언급됐던 대통령의 예산 삭감 조치 발표가 이제야 복선으로 제 기능을 한다. 정부 예산 삭감 때문에 리처는 군복을 벗고, 교도소 인력 충원은 요원한 일이 되어 버렸다. 당연히 해안경비대의 단속도 약화될 수밖에 없다. 클라이너의 창고는 다시 트럭으로 붐비게 될 게 뻔하다.
3. 당하기만 하는 리처
리처는 군에서 배운 전략대로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메이컨에 숙소를 잡는다. 적의 공격을 피하려면 한 곳에 머물지 말고 계속 움직이는 편이 유리하다. 리처는 주도면밀하게 전략을 짜지만 어째 헛발질만 연거푸 한다. 그레이 보고서에 영감을 얻은 리처는 먼저 위조지폐 유통의 확실한 증거를 잡기 위해 곤봉, 초코바, 물, 군복까지 구매해서 클라이너 창고 앞에서 잠복에 들어간다. 잠시 후 아들 클라이너가 운전하는 트럭이 창고에서 나오자 뒤를 밟기 시작하다. 장장 600km를 따라갔지만, 이 트럭의 짐칸은 텅 비어 있었다. 유인작전에 당한 것이다.
리처가 헛수고를 할 동안 프린스턴 대학의 월터 바슬로뮤 교수는 강도를 당해 사망하고, 트럭운전사 스톨리의 집은 화재로 불타고, 동거녀 주디는 행방불명된다. 지금 악당은 내부 첩자의 도움을 받아 조 리처가 남긴 단서를 하나하나 무용지물로 만들고 있다. 더군다나 로스코가 피카르의 요청(여성, 아이 케어를 위해 추가 인력이 필요)을 받아 혼자 안가(安家)로 향한다. 그녀가 위험하다!!
4. 위조지폐의 역사
리처는 급히 뉴욕 컬럼비아대의 켈빈 켈스타인 교수에게 연락을 취한다. 교직원이 대신 받는데 오늘 아침, 히스패닉계 남자 둘이 교수를 찾았고, 점심 약속까지 잡았다고 한다. 리처는 켈스타인 교수를 지키기 위해 급히 뉴욕행 비행기를 탄다. 빨리 움직인 덕에 악당들보다 먼저 켈스타인 교수를 만나는 데 성공한다.
켈스타인과 바슬로뮤는 미국 최고의 위조지폐 전문가였다. 두 사람은 2차 대전 때 SIS로 징집되었는데, 주 업무가 독일 경제의 완전 파탄을 위해 위조지폐를 제조, 유통하는 것이었다. 위조지폐 분야의 두 권위자는 형 조 리처의 오랜 협력자이기도 했다. 소설은 교수의 입을 빌어 전문적인 위폐 제작 프로세스를 묘사한다. 평면 인쇄와 요판 인쇄에 대한 흥미진진한 강의가 펼쳐진다. 혹시 위조지폐의 4요소를 들어 봤는가? 바로 인쇄기, 연판, 잉크, 그리고 종이다. 이 중 가장 입수하기 힘든 것이 종이다. 지폐는 모두 특수제작한 종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교수와 헤어진 뒤 리처는 뉴욕 번화가 한복판에서 총을 든 히스패닉 2명을 만난다. 위협받던 중에 리처는 아무리 막 나가는 악당이라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는 곳에선 감히 방아쇠를 당기지 못할 거라 예상하고 과감히 도주한다. 과연 히스패닉 킬러 듀오는 총을 쏘지 못한다.
※ 7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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