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스미 시게히코는 일본의 신(神)급 영화평론가로 7~80년대 영화팬들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한국에서도 많은 추종자들이 있지만 그의 평론이 정식 출판된 것은 이 책 <영화의 맨살>이 처음이라고 한다. 읽다보면, 왜 이제서야 번역본이 나오게 됐는지 알 것 같다. 특유의 스타일 - 만연체의 호홉 긴 문장 때문에 잠깐 정신을 팔면 길을 잃기 쉽상이다. 하지만 해독의 재미 또한 쏠쏠하다. 이 어려운 번역을 뮤지션 윤상의 파트너로 유명한 박창학이 맡았다.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이 책, 꼭 한 번 봤으면 한다. 선동적이고 현학적이라 비판 받았던 글 속에서 '영화'와 '영화 보기'에 대한 새로운 시각, 깨달음을 얻게 된다. 책의 서문에서 저자는 '영화관에 아무리 많은 관객이 몰려도 영화를 옹호하는 사람은 소수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썼다. 어떤 영화를 옹호해야 하는 것이고, 영화를 옹호한다는 게 무슨 의미인가 하는 질문이 자연스레 뒤따른다. 이렇듯 그의 글은 수많은 의문부호를 남기고 여기에 답을 구하다 보면 신기하게 영화가 미치도록 보고 싶어진다. 정성일의 경고(책을 읽고 나면 하스미 코스프레를 하고 싶어진다며 그의 영향력을 견딜 만큼 내공을 쌓은 뒤에 읽으라)처럼 나도 주화입마에 걸린 듯 하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책으로 들어가 보자!!!
1부 다시 영화란 무엇인가 - Part 1
책의 첫 파트는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글들이 묶여 있다. 요즘처럼 휴대폰으로 영화를 보는, 매체 간의 경계가 흐릿해져 가는 시대에 더욱 의미 있는 글이 아닐까 싶다.
1) 영화, 이 부재하는 것의 광채(1970년)
글은 책으로, 그림은 화폭에 그린 그림으로 언제든 다시 꺼내 볼 수 있다. 근데 영화라는 것은 빛과 그림자로 된 영상이라 영화를 속속들이 기억하고 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아마 평론가를 비롯해 영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은 모두 고개를 끄덕일). 영화는 결국 보고 보여지는 매체이고, 이런 영화의 본질과 한계를 깨달은 감독은 특정한 폼(form)으로 영화를 연출한다. 관객이 이 폼을 분명히 인지할 때 비평글을 쓰는 게 아니라 온 몸으로 '비평 체험'을 하게 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글의 후반부는 폼에 대한 케이스 스터디로 되어 있다. 존 포드, 라울 월시, 하워드 훅스 같은 위대한 웨스턴의 작가들이 어떤 폼으로 영화를 만들었는지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2) 영상의 이론에서 이론의 영상으로(1971년)
영화 본질에 대한 질문은 이 글에서 좀 더 심화학습 된다. 후토 준지의 영화 <붉은 모란>에서부터 장 뤽 고다르, 샘 페킨파, 오스 야스지로로 종횡무진, 열변을 토하는 하스미 선생의 글에 압도된다. 이 글은 제목이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영상의 이론'이라 함은 영화를 특정 이론에 끼워 맞추거나 어떤 주장의 근거로 삼는 것을 의미한다. 하스미 선생은 영화 이론이 영화를 영화가 아닌 다른 것으로 만든다며 비판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는 길일까?
다시 영화의 본질로 돌아가보자. 글은 에로티시즘을 묘사해서 독자로 하여금 상상하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독서 체험을 흉내낼 수 없다. 사람들은 영화가 다른 매체보다 자유로워서 무엇이든 표현할 수 있다 생각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영화 또한 다른 매체처럼 엄격한 형식의 한계에 갇혀 있다. 예컨데 관객은 카메라가 찍은 것만 볼 수 있다. 얼굴을 보고 있으면 동시에 뒤통수를 볼 수 없다. 우리가 평생 달의 뒷면을 볼 수 없는 것과 같다. 영화의 미래를 열었다고 칭송받는 에이젠슈타인의 몽타쥬, 오손 웰즈의 딥 포커스 등도 이런 영화의 형식적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시도였다.
영화는 본질적으로 시선극이며, 시선을 표현하는 방식은 3개 뿐, 다른 것은 있을 수 없다.
- 카메라가 옆에서 두 사람을 한꺼번에 찍기
- 두 사람 중간에 카메라를 놓고 번갈아 패닝해서 찍기
- 한쪽씩 따로 찍어 교차하여 보여주기
이런 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감독들은 한계를 넘어서려고 노력했다. '이론적 영상'은 바로 영화의 본질에서 출발한 영상을 의미한다. 멜로 영화에서 필수적인 장면이 있다. 바로 사랑에 빠진 남녀가 서로를 바라보는 쇼트다. 하지만 이 장면은 한명씩 따로 찍은 장면을 편집하여 연결한 것에 불과하다. 오스 야스지로는 이 한계를 자각하고 중요한 장면에서 두 인물을 한 프레임에 나란히 배치한 뒤 서로가 같은 곳을 보게 한다. 하스미 선생은 오스 야스지로가 만든 이 화면들을 보면서 영화에 무한한 감동을 느낀다고 쓴다.
※ 2부에서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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