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고비를 넘긴 리처가 마그레이브로 돌아온다. 이제 남은 것은 처절한 반격뿐이다. 이 소설은 '잭 리처' 시리즈의 기본 공식을 Set-Up 했다. 그 공식은 다음과 같다. 리처가 여행 중에 우연히 작은 마을을 지난다. 아 마을은 힘센 악당이 지배하는 곳으로, 마을 주민들은 악당의 횡포를 참고 견딘 지 오래됐다. 리처는 구세주처럼 악당을 처단하고 마을을 해방시킨다. <하이눈> 같은 서부영화의 내러티브와 비슷하다. 그렇다. '잭 리처'시리즈는 현대 배경의 웨스턴에 다름 아니다.
1. 돌아온 야차
마그레이브로 돌아온 리처는 갈 곳도 없고 해서 이노식당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잠시 눈을 붙인다. 이때 지나가던 베이커 경사가 리처를 알아본다. 베이커는 소설 첫 부분부터 등장한 경관으로, 핀레이와 로스코를 도와주던 캐릭터다. 리처는 혹시나 해서 베이커에게 허블 집에 갈 거라며 거짓 정보를 흘린다. 리처는 빈집에 들어가 사람이 있는 것처럼 조명과 TV를 켠 뒤 근처에 숨어 매복을 한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다섯 명의 괴한이 접근한다. 아들 클라이너가 앞장을 섰고, 현직 경관이 두 명이나 포함되어 있다. 산탄총과 각양각색의 고문도구, 대못까지 챙겨 왔다. 이자들이 모리슨 반장을 못 박아 죽인 범인이었던 것이다.
마침 폭우도 쏟아지고 해서 리처는 람보처럼 악당들을 완전히 이 세상에서 지워버린다. 악당들이 들고 온 산탄총을 빼앗지만 사용하지 않는다. 살점이 다 날아가면 뒤처리가 어렵다. 대신 곤봉으로 목뼈를 분질러 죽이고, 칼로 목을 잘라 죽이고, 맨 손으로 눈알을 뽑아 죽이고, 수영장에 머리를 처박아 죽인다. 몸서리 처질 만큼 냉혹한 살인이다. 리처는 아버지 클라이너의 신경을 긁기 위해 이 시체들을 몰래 감춘다.
2. 종이의 비밀
다섯 명을 죽인 현장인 허블의 집에서 리처는 태연히 젖은 옷과 무기를 말린다. 그리고 따뜻한 커피를 내려 마신다. 리처에게 악인을 죽이는 일 따위 귀찮은 벌레 잡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지친 몸을 쉬려 집을 둘러보다 리처는 허블의 서재에 가득 꽂혀있는 금융 서적들에 시선이 멈춘다. 바슬로뮤/켈스타인 교수의 상원 보고서까지 찾아서 진지하게 정독하며 밤을 꼬박 새운 리처는 클라이너가 지폐 종이를 어디서 구했는지, 보안이 엄격한 창고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깨닫게 된다.
미국 달러는 1달러와 100달러 모두 크기가 같다. 클라이너는 위폐를 생산하기 위해 폴 허블을 통해 1달러 지폐를 대량으로 매입해 왔다. 이렇게 조달한 1달러 지폐를 베네수엘라로 보내 표백처리하고, 이것을 100달러 위폐로 만든 다음 미국으로 들여온다. 리처는 자신의 추리를 입증하기 위해 새벽 5시에 핀레이를 깨워 애틀랜타로 향한다. 리처는 스톨리가 1달러 지폐 뭉치를 몰래 빼돌리다 발각되어 살해된 것이라 추측한다. 스톨리의 차고는 불탔지만, 돈뭉치를 자기 집에 보관했을 리 없다. 그래서 스톨리의 본가로 향한다.
3. 배신자의 정체
과연 부모님의 차고에서 1달러 지폐가 가득 든 에어컨 박스 두 개를 발견한다. 리처의 추리가 사실임이 증명되는 순간이다. 피카르는 로스코와 함께 마그레이브 경찰서로 오기로 했다. 이제 FBI가 출동해 클라이너 재단의 창고를 압수수색하면 형의 못다 한 임무를 완수하게 된다. 아버지 클라이너를 못 죽인 것은 아쉽지만 그 아들의 생명을 앗아간 걸로 퉁치자 마음먹는다.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경찰서에 도착한 리처는 산탄창 이티카 MAG-10을 들고 나타난 틸 읍장, 22구경 루거 마크 2를 든 클라이너, 그리고 로스코와 허블의 부인 찰리를 인질로 잡은 피카르의 환영을 받게 된다. 배신자는 바로 피카르였다. 놀랍게도 악당은 리처를 바로 사살하지 않는다. 대신 허블이 있는 곳을 털어놓으라 위협한다. 위조지폐를 계속 만들려면 허블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서 이들은 리처가 허블을 감췄다고 믿고 있다. 진즉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허약하고 겁 많은 허블이 리처의 생명을 구했다.
4. 블라인드 블레이크의 영혼이 리처를 부른 것인가?
리처는 내일 아침까지 허블을 찾아 클라이너에게 데려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찰리 허블과 로스크가 죽는다. 그러나 어디 숨었는지 짐작도 안 된다. 막막한 상황에 감시역으로 따라붙은 피카르 요원과 함께 움직여야 한다. 리처는 피카르를 떼어내고 허블을 찾아낼 수 있을까? 물론 리처는 해낸다. 자세한 방법은 소개하지 않겠다. 대신 타이어 펑크, 트렁크에 든 1달러 지폐 뭉치가 피카르를 제거하는 데 주요하게 사용된다는 점만 밝히겠다.
탈영병 잡는 데 이골이 난 리처는 한 모텔에서 폴 레논이라는 가명으로 투숙중인 허블을 찾아낸다. 허블은 악당이 모리슨 반장을 고문해 죽이는 현장에 함께 있었다. 겁에 질린 허블은 일단 도망부터 친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용기를 내야 할 때다. 아내 찰리와 아이가 잡혀 있다. 리처는 교도소에 있을 때와 같이 허블과 콤비를 이뤄 한밤중에 마그레이브 경찰서를 기습해 유치장에 갇혀있던 핀레이를 구출한다.
그런 다음 숨을 곳을 찾아 흑인 이발사의 가게로 도망친다. 놀랍게도 이 노인은 오래전부터 필요한 사람에게 은신처를 제공해 왔다. 인권운동하던 흑인 여자, 베트남 징집을 피해 도망치는 젊은이, 노동조합원 등등. 더 짜릿한 장면은 흑인 이발사의 늙은 누나와 리처와의 만남이다. 할머니는 젊은 시절 블라인드 블레이크와 함께 공연을 다니기도 했던 뮤지션으로 그의 죽음을 목격한 장본인이었다. 장님인 블레이크가 길을 가다 백인 소년과 부딪혔는데 그의 아버지가 지팡이로 블레이크의 머리를 사정없이 때려 살해했다. 그 백인소년이 지금의 틸 읍장이 되었다.
참고로 블라인드 블레이크는 미국의 실존했던 블루스 뮤지션이다. 개인사에 대해선 거의 알려진 바가 없으며 생전에 녹음한 음원만이 그가 남긴 흔적이었다. 1934년 경에 사망했다 알려져 있는데 그가 누군가에 맞아 죽었다, 폐결핵으로 죽었다는 등 여러 소문만이 무성했고, 작가 리 차일드는 이 소설을 통해 자신만의 버전을 추가한 것이다.
잭 리처와 핀레이는 오우삼의 <첩혈쌍웅>처럼 악당들이 지키고 있는 클라이너 창고로 향한다. 그 안에 100달러 지폐가 산처럼 쌓여있다. 이 탐욕의 산에서 늙은 틸 읍장과 클라이너는 리처&핀레이와 총격전을 벌인다. 죽은 줄 알았던 피카르가 살아 돌아오고, 악당과 한편인 경찰이 주인공과 인질의 생명을 위협한다. 몇 차례의 위기 끝에 리처는 악인을 지옥으로 보낸다.
악의 소굴이던 마을은 다시 평화를 찾고, 리처는 로스코를 뒤로 한 채 또 어딘가를 향해 떠난다. 로스코는 몰리가 갖고 있던 조의 사진을 이별의 선물로 잭에게 전달한다. 이 사진 뒤에는 자기 연락처를 메모해 두었다. 버스에 올라탄 리처는 형의 사진을 보며 눈물을 흘린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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