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거장들, 작품들 - 변모하는 풍경 속에서 Part 6
90년대 이후 세대에게 극장은 멀티플렉스이다. 반면, 이전 세대들은 하나의 대형 스크린이 있는 단일 상영관에서 영화를 봤다. 개봉관은 1~2천 석 규모였고, 재개봉관은 이보다 작았다. 영화 탄생 이후 극장은 꾸준히 스크린 크기에 집착해 왔다. 과거에는 대형화를 추구했고, 어느 순간부터 경영 효율성을 따라 극장의 몸집은 줄이고 상영관수를 늘리는 전략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이 추세의 종착지가 현재의 멀티플렉스였다. 똑같은 영화라 해도 2천 석 상영관과 2백 석에서 보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경험이다. 지금은 30석 규모의 프리미엄 상영관, 연인과 단 둘이 보는 상영관도 등장했다. 기술의 발전은 영화 관람에 있어 극장과 집의 차이를 점점 희미하게 만든다.
코로나19를 지나며 많은 사람들이 영화 산업의 종말을 예측한다. 영화 산업은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인가? 여기서 말하는 죽음이란 멀티플렉스 중심의 현재 산업 구조를 의미하는 것일까? 영화산업이 죽으면 영화도 함께 죽을까? 대형 스크린이 아닌, 작은 액정화면으로 영화를 보는 게 당연시되어 버린 시대에 영화는 이전의 영화와 어떻게 달라질까? 이때 영화를 영화라 부를 수 있는 것인가? 영화는 무엇인가? 이번에 소개할 하스미 시게히코의 글은 영화의 미래에 관해 여러가지 생각할 지점을 제공한다. 하스미 선생은 1985년 강연에서 죽어가는 영화를 애도하며, 그 쇠락의 시작은 1950년대였다고 말한다.
11) 영화는 어떻게 죽는가 - 헐리우드의 50년대(1985년)
#1 숫자들
강연의 제목을 되새김해보자. '영화는 어떻게 죽는가' 20세기 최고의 매체라 불렸던 영화가 죽고 있다는 뜻이다. 하스미 선생은 먼저 일련의 숫자들을 열거하며 청중의 주의를 환기시킨다. 이 숫자들은 1950년대를 소환하기 위한 포석들이다. 영화가 영화로 존재하려면 4와 24가 필요하다. 24는 영화가 1초에 24 프레임으로 찍힌 필름으로 구현된다는 의미다. 4는 필름 프레임 1개의 양옆에 뚫린 구멍의 숫자다. 1초에 24 프레임을 영사기로 돌리려면 바로 이 4개의 구멍이 필요하다. 4와 24는 영화의 물리적 조건들이다. 우리는 영화가 기계장치 - 이제는 디지털 신호로 바뀌었지만 - 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 예술로서의 영화, 즉 시네마는 물리적 토대 위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다음 등장할 숫자는 95다. 이 강연의 시점이 영화탄생 95주년이라서다. 모든 것은 100년쯤 되면 쇠퇴의 길을 맞이하거나 소멸되기 마련이다. 하스미 선생은 영화의 죽음을 예감하며 비로소 1950년대를 부른다.
만약 영화가 죽어가고 있다면, 그 쇠퇴의 시작은 1950년대에서 비롯됐다. 할리우드는 1950년대 몰아친 매카시 선풍, 소위 빨갱이 사냥을 피해 가지 못했다. 이때 재능 있는 다수의 감독들이 휩쓸려 나가고 말았다. 두 번째는 텔레비전 보급으로 인한 스튜디오 시스템의 붕괴다. 세 번째는 할리우드에서 영광을 일구었던 일군의 유럽 망명 감독들이 50년대에 일제히 자기 나라로 돌아가버린 일이다. 이 세 가지 사건이 할리우드의 토대를 내부에서부터 무너지게 만들었다.
#2 50년대의 비극
할리우드 황금기를 만들었던 감독들 대부분은 생계 때문에 영화 현장에 뛰어들어 일가를 이룬 사람들이다. 존 포드, 라울 월쉬 등은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다. 일본의 경우도 비슷하다. 일본영화는 1930년대에 첫 황금시대를 맞이하는데 오즈와 미조구치 역시 학력이 없다. 한국의 임권택 감독도 비슷한 케이스라 할 수 있겠다. 2차 대전이 끝나고 할리우드에서 유례없는 세대교체가 진행되는데, 1950년대 영화계에 들어온 재능들은 윗세대와 반대로 고학력자들이 많았다. 대부분이 인텔리였고 좌익 활동의 영향을 받거나 직접 관련된 케이스가 적지 않았다.
하필이면 이때 빨갱이 사냥이 시작된다. 조셉 로지, 에이브러햄 폴론스키, 줄스 닷신 같은 사람들이 공산주의자로 몰려 미국에서 추방되거나 활동이 금지된다. 엘리아 카잔, 에드워드 드미트리, 로버트 로센 등은 동지들을 고발하는 선택을 하고 할리우드에 남았다. 하스미 선생은 배신자로 낙인찍힌 엘리아 카잔에 대해 변명을 시도한다. 미국인 엘리트는 유럽으로 도망칠 수라도 있었지만, 그리스 이민자 출신의 엘리아 카잔은 갈 곳이 없었다. 유일한 선택지는 전향하여 미국에 남는 것이었다. '망명자는 선, 배신자는 악' 단순한 이분법으로 이때의 영화인들을 가를 수 없다.
중요한 것은 50년대 감독들이 쉽게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는 점이다. 할리우드 영화의 낙천성은 이때부터 붕괴하기 시작했다. 용케 살아남은 영화감독들은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은밀한 방식으로 표현해야 했다. 알아볼 사람만 알아보라는 식으로 장르영화 속에 상징을 심어 두었다. 이렇게 50년대 감독들은 평범한 감독처럼 상징으로 위장하며 작품 활동을 해야 했다. 스필버그로 대표되는 80년대 미국의 주요 감독들이 자국의 50년대 감독 대신 일본의 구로사와 아키라를 그들의 영화적 아버지로 삼은 데는 이런 이유가 크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텔레비전이 보급되며 할리우드에 대격변이 일어난다. 극장 관객수가 급감하자 스튜디오는 살아남기 위해 제작편수를 줄이고, 그들의 남은 역량을 대작 영화에 몰빵 했다. 편수의 감소는 일자리의 감소를 뜻한다. 이때 상당수 영화인력들이 TV로 이동했고, A급 인력들은 대작 영화에 대거 투입된다. 이것이 50년대 감독의 육체와 정신을 피폐하게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대작영화는 인건비 절감을 위해 스페인과 멕시코에서 촬영을 했다. 헐리우드에 거주하며 스튜디오로 출퇴근할 수 있었던 감독들이 낯선 타국에서 장기간 체류하며 영화를 찍어야 했다. 니콜라스 레이는 스페인에서 <왕중왕>과 <북경의 55일>을 찍던 중 알코올중독에 빠졌다. 이후로 영화 한 편만 남기고 불행한 노년을 보내다 암으로 사망했다. 안소니 만은 <로마제국의 멸망>을 연출하고 할리우드로 돌아오지 못한 채 타국에서 심장병으로 삼아한다. 50년대 감독들은 미국영화의 붕괴를 자신의 몸으로 살아내야 했던 불행한 존재들이다.
#3 죽은 것들
스튜디오 시스템은 전속 스태프와 감독, 배우들이 매일 영화를 찍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스튜디오는 고유한 작풍이 저절로 형성되었다. 워너는 활극과 갱스터, 파라마운트는 도회적인 경쾌함, 20세기 폭스의 영화들은 지방적인 끈끈함이 묻어났다. 50년대에 이런 스튜디오 시스템이 붕괴한다. 스태프들이 뿔뿔이 흩어지며 미국 영화가 그동안 쌓아왔던 노하우가 일순 사라지게 됐다. 하스미 선생은 할리우드 영화가 이때부터 눈 내리는 장면을 제대로 찍지 못 한하고 있다며 한탄한다. 스튜디오 시스템이 잘 돌아가던 시절에 미국은 일류 카메라맨들을 배출하는 데 성공해 왔다. 하지만 지금은 유럽의 검증된 카메라맨을 불러들이고 있다. 기술 스태프들의 능력 저하는 스튜디오 시스템이 불러온 악영향이다.
#4 1973년
하스미 시게히코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사람들은 자기 나라 영화에 대해 놀랄 만큼 무지하고 둔감하다.' 1950년대 미국 감독들은 할리우드의 쇠퇴, 영화의 죽음을 양 어깨에 짊어지고 무너져 갔다. 그런데 뜻밖에 '미국 영화를 구할 사람은 바로 나'라는 자의식을 가진 일군의 유럽 출신 감독들이 등장한다. 하스미 선생은 이들을 73세대 감독이라 묶는다. 73세대 중 가장 유명한 이가 빔 벤더스다. 그는 고국의 무관심 속에 유럽을 방랑하던 니콜라스 레이를 <도시의 앨리스>에서 배우로 캐스팅하고, 니콜라스 레이가 죽기 전 일 년 동안을 기록한 <물위의 번개 - 닉스 무비>를 만든다.
프랑수와 트뤼포는 미국인들에게 그저 흥행사라만 치부되던 알프레드 히치콕을 찾아가 <히치콕과의 대화>라는 책을 쓴다. 이 책은 미국인들이 얼마나 히치콕에 무관심한지에 화가 나서 당신네들의 히치콕은 대단한 영화작가라는 것을 교육적으로 깨닫게 하려는 의도로 쓰였다. 스위스인 다니엘 슈미트는 50년대 할리우드에서 걸작 멜로드라마를 만들었던 독일감독 더글라스 서크를 매일 찾아가 다큐멘터리를 찍고, 회고전 상영을 조직하여 명감독의 말년에 예우를 다하고 있다. 스페인 감독 빅토르 에리세는 알코올 중독으로 망가져 가는 니콜라스 레이를 바로 옆에서 지켜본 이다. 그는 50년대까지 쌓아온 할리우드적 영화기법, 하지만 이제 미국에서는 찍지 않게 된 방법을 구사하여 <벌집의 정령>이라는 걸작을 남겼다.
#5 영화의 죽음을 애도하는 방법
하스미 시게히코는 영화 이전에 영화관 자체가 죽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만족스러운 스크린 환경에서 영화 보는 일이 점점 어려워져 간다. 현상소 작업의 완성도도 저하되어 간다. 이제 비디오로 고독하게 영화를 보는 시대가 도래했다. 하스미 선생은 '영화관의 어둠과 커다란 스크린이 없어진다면, 영화는 소멸할 수밖에 없다'며 여기에 무자각한 감독은 윤리성을 결여하고 있다고 탄식한다.
이런 차원에서 가장 윤리적인 미국작가로 하스미 선생이 지목하는 이가 바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다. 이스트우드는 1950년대 TV서부극과 B무비에 출연하면서 할리우드의 붕괴를 직접 체험한 사람이다. 이탈리아 감독이 만든 웨스턴으로 국제적인 스타가 되어 미국으로 역수출된 이스트우드는 돈 시겔과의 만남을 통해 홀로 1950년대 감독들의 작업을 계승한다. 예컨대 최근 미국영화에서 노인이 사라졌다. 노인이 중요한 역할로 등장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만이 이것을 결정적인 결여임을 감지하고 노배우 행크 워든, 존 맥킨타이어를 캐스팅한다.
하스미 선생은 이 강연의 끝에서 영화의 죽음이 어쩔 수 없는 것이라 한다면 적어도 죽고 있다는 것을 모른 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누군가는 50년대 이후 영화가 잃어버린 것, 그리고 영화 자체에 대해 진지하게 조명하고 대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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