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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영화의 맨살 - 하스미 시게히코(蓮寶重彦) 영화비평선 - 11부 국경과 시간을 넘어 영화를 만나다

by homeostasis 2023.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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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이동하는 영화들

영화 시민권자 하스미 시게히코는 스위스, 홍콩, 마드리드, 한국의 광주에 출몰하여 그곳의 역사와 영화를 사유한다. 타국에서 미래의 거장과 만나는 운명적인 일도 경험하고, 현재의 거장과 대화를 나누며 그가 만들고자 했지만 아직 만들지 못한 영화를 상상한다. 영화는 국경과 시간을 넘어 영화를 생각하는 여러 사람들과 링크를 만든다.

1) 알프스 남쪽 사면의 마조레 호반에 남쪽의 영화도시가 출현한다(1983년)

일종의 기행문이면서 모험담이다. 하스미 시게히코는 스위스 로잔에서 기차를 타고 로카르노로 향한다. 여행의 목적은 제36회 로카르도 영화제 참석이다. 혼자만의 여행은 로카르노에 도착하자마자 시끌벅적한 파티 모임으로 변한다. 세계 각국에서 온 영화인들은 로카르노에서 잠깐의 친구를 만든다. 영화제 프로그램 중 그해 칸 황금종려상(83년)을 수상한 이마무라 쇼헤이의 <나라야마 부시코> 야외상영이 있다. 영화제 측은 하스미 시게히코가 일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사전 무대인사를 부탁한다. 하스미 선생은 무대에 올라 칸 영화제 대상은 <나라야마 부시코>보다 백배는 훌륭한 로베르 브레송의 <돈>에게 돌아갔어야 마땅하다고 외친다. 하스미 시게히코에게 영화는 국적보다 중요하다.

2) 영평인으로 홍콩영화제에 출석해 12일 간을 보냈다. 신작으로는 허우샤오시엔과 첸카이거의 영화가 틀림없이 일급의 작품이었다(1987년)

11회 홍콩국제영화제 참관기다. 하스미 시게히코는 나루세 미키오 특집의 강연자로 초청 받아 홍콩에 간다. 여기서 하스미 선생은 50년대 홍콩에서 가장 인기 있던 장르, 오어희곡편(奥語戱曲片) 영화를 보게 된다. 오어희곡편은 광동 오페라를 영화로 옮긴, 일종의 뮤지컬로 오우삼 감독의 1976년작 <제녀화>를 끝으로 소멸해 버린 장르다. 하스미 선생은 오어희곡편을 느긋하게, 때로는 손뼉 치며 즐기는 지금의 관객들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는다. 과거의 영화가 현재의 체험이 될 수가 있음을 깨닫는 순간이다. 한편, 영화제 기간에 본 영화 중 최고의 작품으로 허우샤오시엔의 <연연풍진>을 꼽는다. 이미 대가의 영역에 들어섰구나 감탄하고 있었는데, 페리 선착장 근처에서 우연히 만난 지인으로부터 허우샤오시엔을 직접 소개받는다. 영화제에서만이 가능한 기적같은 경험이다. 

3) 마드리드의 거리에서 영화를 말하다 - 빅토르 에리세와의 대화(1992년)

1973년, 첫 번째 영화 <벌집의 정령>으로 전 세계를 놀라게 한 빅토르 에리세는 10년 후인 1983년에야 두 번째 영화 <남쪽>을 발표한다. 다시 또 10년 만에 세 번째 영화 <햇빛 속의 모과나무>를 완성한 빅토르 에리세를 마드리드의 한 거리에서 만나 대화를 나눈다. 둘의 만남은 프라도 미술관에서부터 시작되는데, 젊은 빅토르 에리세는 지금처럼 유명한 관광지가 되기 전의 프라도 미술관에서 <라스 메니나스>를 하루종일 바라보곤 했었다. 작가는 무엇이고, 관객은 무엇인가, 그린다는 것은 무엇이고,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 그림을 통해 빅토르 에리세는 회화와 영화를 연결했을 것이다.

빅토르 에리세는 본인이 구상중인 <라스 메니나스>에 관한 영화 이야기를 하스미 선생에게 들려준다. 영화는 총 3부로 구성될 예정인데 1부는 미술관에서 <라스 메니나스>를 보는 현재 사람들의 일상, 2부는 1부에 나왔던 미술관 청소부가 <라스 메니나스> 그림 속의 세상으로 들어가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3부는 이 영화를 찍고 있는 영화현장이 배경이 된다. 첨언 하나, 2023년 기준으로 아직 이 프로젝트는 미완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빅토르 에리세는 2023년(두 번째 영화를 만든 지 30년 후)에 본인의 4번째 장편 연출작 <눈을 감아요(Cerrar Los ojos)>를 공개했다.

4) 광주의 존 포드(2003년)

2003년은 존 포드가 죽은 지 30년이 되는 해. 지금은 없어진 광주국제영화제에서 존 포드 기획전의 강연자로 하스미 시게히코를 초청했다. 망월동 묘역을 방문한 하스미 선생은 통역자의 설명을 들으며 전두환 기념석을 밟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한다. 

"..내게 그런 권리가 있는가 하는 생각에 일순 주저하게 된다. 발바닥에 남는 이 근질거림은 일본인이 한국에서 포드를 영어로 말하는 것의 답답함과 어딘가 통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5) '절대의 화페' - 사고와 감성에 대한 단편적 고찰 1(2004년)

1995년 8월, 로카르노 영화제 참석을 위해 스위스를 다시 찾은 하스미 선생은 고다르의 이상한 초대를 받고 작은 호반 도시 쥬네브로 향한다. 이 글은 그 기이한 기행문이다.

#1 정중하면서도 고압적인

장 뤽 고다르는 영화제의 한 심포지엄에서 영화 전문가들이 모인 자리에서 독특한 제안을 하나 한다. 신작 <영화의 역사(들)> 상영을 위한 최적의 공간은 쥬네브에 위치한 자기 작업실이라며, 영화를 보고 싶다면 언제든지 찾아오라 한 것이다. 하스미 선생은 이것이 '신'의 작업실을 참배할 '의무'인지 '권리'인지 알 수 없음에도 당연한 듯 일정에도 없는 여행을 시작한다.

#2 외계인과 풍경의 면모

고다르의 부친은 프랑스인, 모친은 스위스인이었다. 이중국적자 고다르는 1989년 "나는 이제 파리에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며 "나는 국경지대의 주민, 프랑스계 스위스인 것이다"고 선언한 후 줄곧 쥬네브에 틀어박혀 작업을 이어갔다. 하스미를 포함한 세 명은 결국 고다르의 간단한 인사를 받으며 그의 작업실에 앉아 영화를 보게 된다.

#3 사고하는 형식

지금 하스미가 이 글을 쓰는 시점은 이때로부터 10년이 지난 2004년 여름이다. 영화에 대한 기억조차 희미하다. 고다르가 뒤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영화를 봐야 하는 체험이 몹시도 초현실적이었다는 느낌이 남아있다. 10년이 지나 문득 이때가 떠오른 것은 간헐적으로 화면에 점멸했던 '형식을 이루는 사고', '사고하는 형식'이라는 어구 때문이었다. 이 문장이 도출된 것은 에드아르 마네가 그린 여성들의 초상에서 비롯된다. 왜 마네인가 라는 질문은 1971년, 근대 회화는 마네에서 비롯됐다는 미셀 푸코의 강연과 연결된다.  여기서 하스미 선생은 <영화의 역사(들)>에서 고다르가 뤼미에르 형제의 시네마토그래프의 발명을 무시하고, 영화의 기원이 화가 마네와 함께 성립됐다고 말한 의미를 10년만에 고민하기 시작한다.

※ 12부에서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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