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선악의 피안'에서 - 구로사와 기요시 <밝은 미래> (2003년)
하스미 선생의 친절(?)한 안내를 따라 구로사와 기요시 영화를 관통하는 키워드를 짚어 가보자. 우선 그는 'B급 영화의 긍지 높은 후계자' 다. 프로듀서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 감독이다. 폐가와 잡목림, 그리고 골판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영화를 찍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그에겐 있다. 이건 신념에 가깝다. 둘째는 '접촉'과 '감염'이다. 접촉이 없음에도 감염된다는 것의 공포가 그의 영화를 지배한다. 셋째는 선악을 넘어선 존재의 강조다. 기계, 동물, 사물에게는 선악의 잣대가 애초에 적용될 수 없다.
<밝은 미래>는 이 모든 것이 있으면서도 또 다른 가능성을 모색한다. 주인공들은 닿으면 죽게 되는 해파리를 애지중지 키운다. 어린 유지(오다기리 조)는 영문도 모른 채 마모루(아사노 다다노부)를 따른다. 그에게 감염이라도 된 것처럼 말이다. 나중에 유지는 그보다 어린 아이들에게 마모루 같은 존재가 된다. 마모루는 살인을 저지르고 외부와 접촉이 금지된 교도소로 들어간다. 마모루가 죽고, 유지는 마모루의 아버지 신이치로(후지 타츠야)와 함께 지낸다. 키우던 해파리는 자가 증식해 바다를 향해 가고, 아들을 만질 수 없었던 신이치로는 만져선 안 되는 해파리를 기어이 만지고 죽는다. 유지는 죽어가는 신이치로를 마모루 대신 끌어 안는다. 후지 타츠야 - 아사노 다다노부 - 오다기리 조의 트라이앵글 캐스팅은 선악을 넘어선 존재에 다름 아니다. 스타는 자고로 선악을 넘어선 존재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21세기 첫 번째 영화를 본 하스미 선생은 제자(구로사와 기요시는 하스미 시게히코의 릿쿄대 강의를 들으며 영화감독의 꿈을 키웠다)가 위대한 감독이 되어가고 있다며 그의 '밝은 미래'를 응원한다.
4) 영화의 21세기는 페드로 코스타의 <반다의 방>과 함께 시작된다 (2003년)
제목만 봐도 알겠지만 하스미 선생은 페드로 코스타의 <반다의 방>을 두고 포드, 오즈에 비견할만한 작가라 격찬한다. 리스본 빈민가에 사는 반다와 그녀의 방에 드나드는 사람들을 180분 동안이나 '지켜보는' 이 영화에 대해 그는 만약 감독을 만나게 된다면 '훌륭하다. 하지만 너무 짧은 것 같다'고 말해주고 싶다 중얼댄다. 이것은 자끄 리베트의 영화에 대해 장 뤽 고다르가 남긴 칭찬을 인용한 것이다.
하스미 선생은 이것은 오즈다, 이것은 포드다 할만한 숏을 여러 개 발견했다는데,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된 이 영화 어디에서 그런 장면이 있었는지...다시 찾아보려 해도 180분의 <반다의 방>은 쉽사리 엄두를 낼 수 없다.
5) 연출가의 지능지수의 이상한 높음 - 마이클 만 <콜레트럴> (2004년)
보통의 영화평론이 플롯의 전개, 영화의 주제, 숨겨진 의미 등 이야기적인 요소에 관심을 쏟는다면, 하스미 시게히코는 이를 의도적으로 피해간다. 이 글도 마찬가지다. <콜래트럴>이 현대인의 고독, 외로움, 남자들의 피곤함을 말한다는 식의 언급은 일도 없다. 대신 말도 안 되게 부자연스러운 이야기를 적당하게 넘어가는 연출이 대단하다고 칭찬한다.
"영화에 있어서 연출이란 배우의 연기지도라는 지루한 연극적 기량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숏에 어울리게 조직되어 있을리 없는 세계가 일단 카메라가 돌기 시작하면 마치 영화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고 마는, 시간과 공간의 그럴듯한 절단이 영화에서의 연출이란 것이다."
<콜레트럴>을 에릭 로메르의 '4개절 연작'에 비견할 만하다 주장하는 하스미 선생은 톰 크루즈가 죽어가는 장면을 칭찬하며 이렇게 글을 마무리 한다. "그것을 보게 되면 활극이라기보다 고도의 멜로드라마의 종막을 보고 있는 것처럼 가슴이 메인다. 그 가슴의 메임은 마이클 만의 탁월한 연출에의 오마쥬 이외의 어느 것도 아니다."
영화 비평은 무엇이며, 어떠해야 하는가를 다시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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