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림36방>은 액션 못지않게 스토리텔링이 훌륭하다. 진행 템포가 빠르고 전개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스토리는 크게 ①주인공의 고난 → ②소림사에서 무술 수련 → ③고수로 거듭난 이후의 복수, 세 파트로 구분된다. 각 영역은 하나의 완결성 있는 스토리로 되어 있고, 파트 간의 연결도 자연스러워 관객이 영화 끝까지 몰입할 수 있다.
1. 장렬한 죽음
영화는 반청지사(反淸志士)들이 만주족 손에 비참하게 죽어 가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식민지 경험이 있는 나라의 사람들은 특별한 설명 없이도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할 수 있다. 천달 장군(라열 / 羅烈 / Lo Lieh)은 역도(청의 입장에 볼 때) 6명을 가장 번화한 북문 앞에서 공개 처형 한다. 이 날 사형 집행에 고위 관료가 감찰관으로 참석할 예정인데, 이 정보를 입수한 은 장군(유가영 / 劉家榮 / Lau Kar Wing)이 감찰관을 암살하려 건물 지붕에 숨어 기회를 엿보고 있다.
감찰관의 가마가 도착하자, 군사들이 뛰어나와 시민들의 접근을 막고, 가마가 통과할 수 있는 길을 만든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카메라는 빠른 패닝 + 줌 인 콤보를 사용, 지붕 위의 은 장군으로 순식간에 도약한다. 이 카메라 워크는 쇼 브라더스의 오픈 세트에서만 가능한 움직임이다. 은 장군은 그대로 몸을 날려 거대한 도끼로 가마를 후려 친다. 그러나 뜻밖에도 안이 텅 비었다. 이 모든 게 은 장군을 유인하기 위해 파놓은 함정이었다. 금세 다수의 병사들에 포위된 은 장군은 쌍칼을 주 무기로 쓰는 천달과 일 대 일 결투를 벌인다. 천달은 몇 수 겨루지 않아 은 장군의 오른팔 힘줄을 자른다.
감독 유가량은 상반신 위주로 액션을 보여준다. 풀 쇼트로 배우의 동작 전체를 보여주는 것보다 관객이 싸움을 가까이서 보게 하는 게 우선이라 생각한 것이다. 천달 역의 라열은 전문 무술배우가 아니지만 긴 테이크의 액션을 거뜬히 소화한다. 재미있는 건 은 장군의 의상 색깔이다. 암습을 하는 데 흰옷에 은도끼를 들고 있다. 여기서 리얼리티는 중요하지 않다. 순수한 정의가 불의에 홀로 맞서다, 그 새하얀 옷에 자신의 붉은 피를 뿌리며 죽어가는 장면 자체가 중요하다. 장철이 쇼브라더스 무협영화에 남긴 유산이라 할 것이다.
2. 의식화
주인공 유유덕(유가휘)은 호 선생(위홍 / 韋弘 / Wai Wang)의 학당에서 글을 배우고 있다. 호 선생은 은 장군이 오후 성문 앞에서 처형된다는 소식에 침통한 표정을 감출 수 없다. 학생들은 선생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다. 이들 중 임진(한국재 / 韓國材 / Hon Kwok Choi)이란 녀석이 처형을 다 함께 구경 가자 부추기고, 더 이상 참지 못한 호 선생이 은 장군은 충의와 명예를 아는 애국지사라 일갈한다.
호 선생에 감화된 유유덕과 친구들은 천달이 본보기 삼아 성문 앞에 걸어 놓은 은 장군의 시신을 보며 청나라에 대한 분노를 느낀다. 거기에 더해 천달의 수하 당삼요(당위성 / 唐衛成 / Wilson Tong Wai Shing)와 장 장군(장오랑 / 張午郞 / John Cheung Ng Long)이 백성들을 핍박하자 직접 행동에 나서는데…유가량 감독은 유유덕의 각성을 표현하기 위해 악당 당삼요와 장 장군의 비열한 표정과 행동을 강조한다. 덕분에 우리는 장 장군을 연기한 배우가 80년대 성룡의 전성기 걸작을 함께 만들었던 성가반 멤버 장오랑(張午郞 / John Cheung Ng Long)임을 알아볼 수 있다.
유유덕과 친구들은 호 선생이 활동 중인 비밀 조직에 가담한다. 처음에는 단순한 심부름 정도였다. 옳은 일을 한다는 자부심에 유유덕은 아버지의 어물전을 대만의 정성공과 대륙 간 메세지 전달의 통로로 사용한다. 여기서 비극이 싹튼다.
3. 예고된 불행
불행은 느닷없이 찾아든다. 평소와 다름없이 혁명동지의 아지트를 찾은 임진은 정 장군과 당삼요에게 붙들린다. 임진이 말린 생선을 들어 보이며 배달 온 점원이라 주장해 보지만, 생선 입 속에 숨긴 비밀 서신이 금방 탄로난다. 임진이 모든 것을 털어놓겠다며 머리를 조아리자, 장 장군 무리는 비열한 웃음을 흘린다. 경계가 느슨해진 틈을 타 관병의 칼을 뺏은 임진은 자기 배에 그 칼을 박아 넣는다. 배에 칼이 꼽힌 채 '절대 나를 고문하지 못할 것'이라 부릅뜬 눈으로 죽어간다. 임진이 평소 촐싹대는 성품이어서 이 장면은 더욱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이 사건 이후 호 선생을 비롯한 동지들은 줄줄이 자결하거나 체포된다. 도피를 이어가던 유유덕은 자기 눈 앞에서 아무 죄 없는 아버지가 당오랑(당위성 / 唐偉成 / Wilson Tong Wai Shing)의 손에 최후를 맞이하는 순간을 목격한다. 모든 것을 잃고 천애고아가 된 유유덕은 같은 신세인 친구(화륜 / 華倫 / Wa Lun)와 소림사행을 결심한다. 복수를 하려면 쿵후를 배워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소림사로 가는 길목에서 유유덕과 친구는 원수 당오랑과 마주친다. 유유덕은 친구의 희생으로 간신히 목숨을 구한다. 다리에 심한 상처를 입었음에도 그 먼 길을 걸어 소림사 가까이 갈 수 있었던 것은 불타는 복수심 때문이었다.
※ 3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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