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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두번 봐도 재밌는 영화(★★★)

파묘(破墓 / Exhuma) 2024년 - 위험한 도박

by homeostasis 2024.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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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 한국영화의 첫 번째 흥행작으로 기록될 <파묘>는 2월 22일 개봉하여 삼일절 연휴에만 무려 233만 명을 동원하는 괴력을 발휘하더니 결국 1천만 고지를 점령했다.

이 기록은 1월 개봉한 <노량 : 죽음의 바다>의 차지라 생각했는데 난데없이 2월말 비수기에 개봉한, 그것도 오컬트 장르의 영화가 극장가를 평정할 줄이야...역시 흥행은 하늘이 점지한다. 

1. 몸짓

개봉 전 공개된 김고은의 대살굿 영상이 입소문을 타며 초반 흥행에 불을 붙였다. 과거에도 굿판은 온 마을 사람들이 몰리는, 엄청난 구경거리였다. 하지만 대명천지, 21세기 한국에서 무당굿을 보려고 극장으로 사람들이 몰리다니 기이한 일이다.

<파묘> 속 굿판은 정말로 기대 이상이다. 김고은의 퍼포먼스는 '신들렸다'는 단어 말고는 표현할 길이 없다. 그녀가 뿜어내는 압도적 에너지에 숨 쉬는 것도 잊을 정도다. 수천만 불 들여 만든 할리우드의 특수효과 장면과 김고은의 굿판은 입이 떡 벌어지는 볼거리라는 점에서 추구하는 목표가 같다. 영화의 스펙터클이 반드시 자본의 투입과 비례하지 않음을 다시금 깨닫는다.

또 하나, 인상적인 지점! 굿판을 K팝 콘서트처럼 연출했다. 4대의 카메라로 찍었다는 화림(김고은)의 댄스 퍼포먼스(?)는 봉길(이도헌)의 비트가 반드시 필요했으며, 그 비트에 따라 편집이 이루어졌다. 봉길이 아이돌 가수들처럼 이어 마이크를 차고 추임새를 넣는다는 점도 예사롭지 않다. 

2.  부조화의 조화

<파묘>는 아슬아슬한 영화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 넘친다 하는 뜻이 아니다. 이러다 영화가 통째로 무너지는 게 아닌가 싶을 순간이 많다는 이야기다.

보통 오컬트 물에서 악령은 눈에 보이는 존재가 아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몸을 빌어 나타난다. <파묘>는 후반부에 최종 빌런이 직접 모습을 드러낸다. 그것도 갑옷을 입은 일본 무사의 모습을 하고서 말이다.

현대 배경의 오컬트 장르(라고 주장하는)에서 일본 15~16세기 전국시대 장군 귀신을 보니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난감하다. 장재현 감독의 영화에서 이런 장면은 처음이 아니다. <검은 사제들>에서 감독은 아기 돼지를 안고 필사적으로 달리는 강동원의 모습으로 클라이맥스를 채웠다. 세상을 구하는, 절체절명의 미션이 돼지를 안고 강물에 뛰어드는 것이라니.  

<파묘>는 이런 것들 투성이다. 아줌마 무당 오광심(김선영)과 청소년 무당 박자혜(김지안), 이들 나이의 중간 정도인 화림(김고은)이 함께 하는 장면, 화림&봉길이 5~60대 중년 아저씨 상덕(최민식), 영근(유해진)과 한 팀이 된다는 설정, 국도변의 허름한 사찰이 민족정기를 지키는 자들의 본거지라는 등... 자칫 하면 콩트, 시트콤으로 전락할만한 것들로 가득하다. 가장 극적인 장면은 일본 정령을 가로막는 한국의 백발 할매 귀신의 등장일 것이다.

김영진 평론가는 씨네21 지면을 빌어 "일제의 원귀와 한국의 수호령이 대결을 벌이는 스크린의 풍경은 고차원의 담론으로 포장하기에, 반복하지만 너무 외설적"이라며 반감을 표했는데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지적이다. 작정하고 B무비를 만들려는 것도 아니요, 오히려 이것을 진지하게 담아내니 난감하다. 자칫 영화 전체를 붕괴시킬 수 있는 도박이다. 

3. 불길한 풍경

그는 왜 이런 도박을 계속 하는가, 아니면 할 수밖에 없는, 감독 고유의 개성인가. 확실한 것은 작위적이고 노골적인, 혹은 함께 놓이면 이상해서 대부분의 감독들이라면 한 화면에 담지 않을 것을 아무렇지 않게 찍어 버리는 선택들이 앞으로의 그의 행보를 지켜보는, 흥미로운 관전포인트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좋든 싫든 장재현 감독의 영화는 끝까지 지켜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나는 그 힘이 스토리가 아니라 공간을 포착하는 감각에서 나온다고 본다. <파묘>의 공간은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 야산, 흐린 하늘, 국도 주변가 등 - 풍경이다. 그걸 보고 있으면 스크린 뒷편에 알 수 없는 존재가 있어 나를 노려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때 스크린에 균열이 생기며 그 구멍을 통해 무국적의 온갖 악령들이 비집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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