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에 별점 줄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하다 별점 하나를 준다. 모든 면에서 수준 이하의 영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이야기는 많다.
1. 소림사
소림사의 동자승 소룡(석소룡 - 釋小龍 / Ashton Chen Siu Lung)은 불가의 인연을 찾으라는 주지 스님의 명을 받들어 속세로 떠난다. 그는 어린 아이지만 뛰어난 무공의 소유자다. 어린 소룡의 보호자로 사형 둘이 함께 하는데, 그 중 한명이 주성치의 <서유쌍기>에서 삼장법사를 연기했던 나가영(羅家英 / Law Kar Ying)이다. 그의 등장은 주성치 류의 넌센스 코미디가 될 것이라는 신호다.
대도시에 도착한 소룡은 전철 안 소매치기를 보고 의협심이 발동한다. 도둑을 잡으려고 정신없이 뒤를 쫓다 사형들과 떨어지게 된다. 소룡을 놓친 나가영은 걱정 따위 내려놓고 클럽에서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는 일탈에 집중한다.
2. 중국룡
석소룡의 이름만 보고 눈치 챈 분들도 있을 것이다. <용재소림>은 1994년~1996년, 짧은 기간 동안 반짝 인기몰이를 했던 아역배우 석소룡과 학소문(郝劭文 / Hao Shao Wen) 콤비의 영화다. <소림소자>, <중국룡> 등과 같은 계열이다. 석소룡이 '리틀 이연걸'이라면, '사이드 킥' 학소문은 '리틀 오맹달'이다.
겉은 귀여운 아이인데 속은 음흉한 개저씨다. 이 포인트가 바로 석소룡 & 학소문 콤비의 인기 비결이다. 당시 5~6살에 불과했던 학소문은 술을 마시고, 여자에게 추파를 던진다. 이런 연기가 가능했던 건 중화권 영화 대부분이 후시녹음이어서 가능했다. 아마도 현장에서 학소문은 지금 찍고 있는 장면이 무엇인지, 대사의 내용은 무엇인지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용재소림>에서도 석소룡은 학소문과 만나게 된다. 일행과 떨어져 혼자 방황하던 석소룡은 거리에서 음식을 훔치던 '소왕초' 학소문과 마주친다. 도둑은 당연히 잡아야 한다!! 석소룡은 학소문을 쫓아, 그의 아지트에 가게 되는데, 거리의 고아들이 모여 있다. 학소문은 이들을 먹이기 위해 도둑질을 한 것. 위기의 순간, 학소문은 갑자기 맹인처럼 검은 선글래스를 끼고, 얼후를 연주하며 구슬프게 노래를 부른다. 인정에 호소하는 것이다. 이 노래에 감동한 석소룡은 슬픔의 눈물을 흘린다.
이 영화의 코미디는 학소문이 담당한다. 하지만 밝고 유쾌한 웃음이 아니라,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막가파식 유머를 펼친다. 예를 들어 석소룡과 학소문이 돈을 벌려고 광장에서 차력 시범을 보이는 장면이 있다. 학소문은 관객의 환호를 끌어내려고 무거운 아령을 중요 부위에 매달고 풍차 돌리기를 시전한다. 당시 대만의 인권 감수성이 어느 정도인지를 고발하는 듯한 장면이다.
3. 홍콩 배우들
대만 아이들이 주연을 맡은 영화에 홍콩의 스타들이 들러리로 캐스팅되었다. 출연료가 부족했는지 A급 스타 대신 뭔가 좀 애매하다 싶은 배우들을 불러 모았다. 80년대 정점을 찍고 서서히 추락해 가던 원표(元彪 / Yuen Biao)가 주인공 격인 맡았고, 그와 대립하는 원표의 친형 역할로 <옥보단>류의 에로 영화에서 맹활약 중인 서금강(徐錦江 / Elvis Tsui Kam Kong)이 캐스팅 됐다. 또한 쇼 브라더스 무술 영화의 마지막 히로인 혜영홍(惠英紅 / Kara Hui Ying Hung)이 서금강의 애인이자 메인 빌런으로 등장한다.
원표는 <모험왕>의 이연걸과 비슷한, 트래져 헌터 캐릭터를 연기한다. 친형 서금강은 중국의 유적을 암시장에 내다파는 브로커다. 원표는 형에게서 고대 불상을 입수해 원래 자리로 돌려 놓으려고 한다. 이 과정에서 꼬마 석소룡, 학소문과 동행이 된다. 목적지에는 서금강이 불상을 되찾기 위해 부하들을 이끌고 대기중이다. 혜영홍은 그의 애인인 척 하다 마지막에 본색을 드러낸다. 서금강의 돈과 조직을 모두 빼앗은 후에 원표, 석소룡, 학소문과 한판 대결을 펼친다.
썩어도 준치라고, 원표는 영화 중반 이후부터 주연으로서의 중심을 잡아준다. 서금강은 <나홀로 집에>의 조 페시처럼 멍청한 바보 악당으로 망가진다. 혜영홍은 영화 내내 배경으로 존재하다 클라이맥스에서 비로소 카리스마를 뽐낸다. 원표와 혜영홍의 대결은 홍콩 액션 영화팬들을 흥분시킬 정도의 빅 이벤트지만, 두 배우는 그저 시늉만 한다. 액션은 아역 석소룡에게 몰아주었다. 딱 한 번, 원표와 혜영홍이 맞붙는데 찰나지만 베테랑다운 몸놀림을 확인할 수 있다.
4. 비비안 수
청순한 외모에 반전 몸매로 일본, 홍콩에서 많은 남성 팬을 보유했던 서약선(徐若瑄 / Vivian Hsu)이 <용재소림>의 히든 카드라 할 수 있다. 소매치기 서약선 역시 우연히 원표 일행과 여정을 함께 하게 된다. 글도 배우지 못한, 거리의 여자지만, 원표는 여동생처럼 자상하게 서약선을 보살피며 러브라인을 만든다.
이 과정이 말도 안 되는 우연과 비약으로 점철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약선의 미모는 어떻게든 영화에서 멜로의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원표와 서약선이 길거리 노점에서 국수를 먹다가 지나가는 트럭에 먼지를 뒤집어 쓰고 둘이 웃는 장면, 혹은 서약선이 자기의 정체를 고백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스타의 힘이란 이런 것일까.
5. 미션 임파서블
지리멸렬하게 결말을 향하던 영화는 불상을 뺏은 혜영홍 일당이 기차를 타면서부터 괴상한 에너지를 뿜는다. <용재소림>의 클라이맥스는 기차와 연결지어 상상할 수 있는 액션이 다 등장한다.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의 기차 시퀀스를 초저예산으로 만들면 <용재소림>이 될 것이다.
어느 정도가 하면, 자동차로 열차를 추격하고, 달리는 열차 지붕 위로 점프한다. 착지 한 순간 터널이 있어 충돌을 피하기 위해 기차 지붕 위에서 전력 후진 질주를 한다. 그러다 차는 터널에 부딪혀 폭발하고, 주인공들은 객차 안으로 들어가 악당들과 맨손 대결을 펼친다.
기차에서 엎치락 뒷지락 하다 선로가 바뀌며 낭떠러지를 향해 달려가고, 석소룡은 고수들과 객실 안과 열차 지붕 위에서 싸움을 벌이고, 그 와중에 서약선은 말을 달려 열차 위로 올라탄다. 기차가 추락하기 직전, 주인공들은 열차 지붕 위로 착륙한 경비행기를 타고 탈출한다.
이것을 제대로 찍을 기술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조잡한 특수효과를 사용하더라도 어찌됐든 찍어낸다. 여기서 발생한 에너지가 이 영화를 빵점 짜리에서 별점 하나 짜리 영화로 구원해낸다.
6. 대만영화
대만 하면 에드워드 양, 허우샤오시엔의 이름이 먼저 떠오른다. <청설>, <장난스런 키스>, <말할 수 없는 비밀>, <나의 소녀시대>, <그 시절, 내가 사랑했던 소녀>, <상견니> 같은 로맨스를 잘 만든다는 인상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 대만의 영화산업은 오랜 세월 홍콩의 하위 기지로 존재했다. 쿵후영화가 대세라면, 홍콩 배우, 스태프를 기용해 훨씬 싼 제작비로 짝퉁 영화를 만들어 팔았다. 대만은 그 굴곡진 역사로 인해 엔터업계에서 조직폭력배의 영향력이 컸다.
<용재소림>은 장굉전시(長宏影視 / Chang Hong Film & Video)라는 회사가 제작했는데, 대표가 오돈(吳敦 / Ng Dui)이란 인물로 악명높은 죽련방의 간부 출신이다. 1984년 대만과 미국 간의 외교 갈등을 초래했던 정치 암살 사건의 주범이기도 하다. 미국에 체류중인 반체제 작가 강남(姜南)을 죽련방 소속 갱들이 총으로 쏘아 죽인 사건으로, 오돈은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지만 6년만 복역한 뒤 출소했다.
자유의 몸이 된 오돈은 장굉전시라는 회사를 만들어 <신유성호접검>, 왕정의 <추남자>, 임지령 주연의 <소이비도> 주걸륜의 <쿵푸덩크> 같은 영화를 만들었다. 모두 인기 아이돌, 홍콩 배우들을 끌어모아 왕정식으로 대충 찍어 만들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무시무시하지 않은가?
7. 영화 정보
<용재소림>은 1996년 설날 시즌용 영화로 제작됐다. 하지만 홍콩 개봉일은 1996년 3월 4일이다. 제작은 오돈의 부인 허패용(許佩容 / Jessica Hsu Pei Yong)과 황태래(黃泰來 / Taylor Wong Tai Loi)가 맡았다. 감독 하수헌(夏秀軒 / Kenny Ha Sau Hin), 각본 맥계총(麥啓聰 / Ray Mak Kai Chung) 등 핵심 스태프들은 홍콩의 2~3진급 인력이다. 이 영화의 유일한 볼거리인 기차 시퀀스는 홍콩 최고의 액션감독 동위(童瑋 / Stephen Tung Wai)가 실력을 발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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