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쿠라 켄(高倉 建) 주연의 일본영화 <그대여 분노의 강을 건너라>(1976년)는 문화 대혁명 이후 중국 본토에서 개봉한 최초의 외국영화다. 이런 연유로 중국에서 대흥행을 했고, 다카쿠라 켄 또한 중국 내에서 높은 인기를 자랑하게 된다. 2014년 다카쿠라 켄이 사망하자 홍콩의 메이저 영화사 '미디어 아시아'가 오우삼을 초빙, 리메이크 프로젝트를 출범시켰다.
할리우드에서 중국으로 컴백한 오우삼은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대형 시대 에픽(<적벽대전> 2부작, <태평륜> 2부작)에만 매달렸는데 그중 4천5백만 불이 투입된 <태평륜>의 흥행실패는 재앙이 되어 오우삼을 코너로 몰았다. 건강 상의 이슈까지 겹쳐 최악의 시간을 보내던 오우삼에게 <맨 헌트>는 새로운 전환점이 될 수 있었다. 현대 배경의 액션 스릴러는 시대극에 비해 훨씬 부담이 적다. 무엇보다 이 장르는 오우삼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팬들 또한 오랜만에 쌍권총 액션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결론부터 말해 <맨헌트>는 실패작이다. 홍콩의 A급 작가진(진가상과 완세생)이 투입된 것치고 믿기 어려울만큼 수준 이하의 각색이다. 스토리는 클리셰로 가득하고, 최소한의 개연성도 지키지 않는다. 오우삼의 안일한 연출은 불을 질렀다. 시대착오적 낭만감성은 그의 개성이니 비판할 수 없다. VFX의 조악한 품질, 과도한 자기 복제는 이 영화의 기획의도가 B급 패러디물이 아닐까 의심하게 만든다. 다국적 캐스팅(후쿠야마 마사하루, 장한위, 치 웨이, 하지원 등) 또한 한몫한다. 다들 자국에서 한칼 하는 배우들을 모았건만, 한데 섞이지 못하고 기름처럼 둥둥 뜬다. 그 멋진 후쿠야마 마사하루도 이 영화에선 <서프라이즈>의 재연배우처럼 보인다.
영화의 마지막 30분은 눈 뜨고 보기 힘들다. 편집이 90년대 후반에 유행했던 조성모의 <To Heaven>을 닮았다. 순간순간 멋있는 액션은 있되 보기 좋은 그림에 그친다. 차라리 대놓고 B급을 표방한 영화였다면 웃기라도 할텐데, 주인공들의 비장한 표정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대략 난감이다. 자객 예양의 고사,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영웅'은 오우삼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테마다. <맨 헌트>는 더욱 노골적으로 이 테마를 강조한다. 하지만 허술한 만듦새 때문에 공허한 헛소리가 됐다. 오랜만에 쌍권총을 쏘려 마음 먹었다면, 총에 녹부터 닦고 나왔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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