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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두번 봐도 재밌는 영화(★★★)

마영정(馬永貞 / The Boxer from Shantung) 1972년 - 3부 상해의 토니 몬타나

by homeostasis 2023.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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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관태는 자신의 첫 번째 주연작 <마영정>에서 생애 다시없을 명연기를 선보였다. 장철 감독은 강대위와 적룡 대신 진관태를 주연으로 기용한 자신의 안목에 뿌듯했을 것 같다. 강대위와 적룡은 누가 봐도 얼굴에 주연배우라고 쓰여있다. 귀공자 다운 품위가 있고 무엇보다 아름답다. 반면 진관태는 거친 땀냄새가 난다. 적룡과 쇼브라더스 신인배우 양성소 '남국실험극단(南國實驗劇團)' 1969년도 동기생인 진관태는 적룡이 무비스타가 되는 동안 전문 무술 연기자 혹은 단역을 전전했다. 진관태는 가진 것이라고 두 주먹과 자존심 밖에 없는 마영정이란 캐릭터를 본능적으로 이해하는 듯 마영정의 상승 욕구를 온몸으로 표현한다. 클라이맥스 결투 장면에서 진관태가 뿜어내는 광기는 50년이 지난 지금도 화면에 살아 움직인다. 

마영정 속 배우 진관태

 

1. 인생의 고달픔

한 조직의 두목이 된다는 것은 그만한 무게를 짊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보호비 낼 여유가 없는 상인들에게 인정을 베푸는 멋진 두목이고 싶지만, 형제들은 수입이 충분치 않다고 반발한다. 식구를 제대로 먹이지 못하면 두목은 두목 대접을 못 받는다. 게임의 법칙을 아는 마영정은 좁은 구역을 벗어나 더 큰 파이를 차지하기 위해 양쌍의 카지노를 뺏기로 마음먹는다. 양쌍의 무서움을 아는 조직원들은 섣불리 마영정을 돕지 않는다. 마영정은 두목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잘못하면 죽는다는 걸 알면서도 혼자 양쌍의 카지노를 찾아간다.

장금발(곡봉)과 부하들은 단신으로 쳐들어 온 마영정을 비웃는다. 멋진 파이프와 전용 마차가 무슨 소용일까. 수많은 도끼날에 혼자 맞서는 마영정의 결투가 호쾌하기보다 서글프다. 마영정이 고군분투하나 양쌍이 다른 사패왕을 보내면 금방 뒤집힐 전세다. 하지만 양쌍은 담사를 꺾고 나면 카지노는 언제든 되찾을 수 있다는 계산으로 지원군을 보내지 않는다. 덕분에 마영정은 카지노의 새로운 주인이 된다. 형제들은 마영정의 리더십을 칭송하고, 마영정은 승리의 축배를 들지만 표정은 쓸쓸하기 그지없다.

 

2. 반면교사

양쌍은 교활한 늙은이다. 담사의 부하(왕종 / 王種 / Wang Chung)를 몰래 포섭한 뒤 담사에게 협상을 제안한다. 양쌍의 초대를 받고 약속장소로 가던 담사는 배신한 부하에게 기습을 당한다. 음악 하나 없이 바람소리만 스산하게 들리는 가운데 담사는 배에 칼이 꽂힌 상태에서 양쌍의 부하들에 포위된다. 자신의 운명을 감지한 담사의 표정에 비장함이 감돈다. 이 시기 배우 강대위의 폼은 정말 미친 것 같다. 고통을 참으려고 담배 파이프를 꽉 깨무는 강대위는 뭐라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여기서 장철 감독은 마영정으로 하여금 담사의 죽음을 목격하도록 만든다. 마영정이 담사의 위치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순간 흠모의 대상이 싸늘한 시체가 된 것을 본다. 마영정은 담사가 죽어서까지 물고 놓지 않았던 담배 파이프에 시선이 꽂힌다. 얼마나 세게 물었는지 피가 배어있다. 마영정은 담사가 느꼈을 공포와 허무함을 이 파이프를 통해 확인한다. 죽은 담사는 마영정의 운명이기도 하다. 노래 파는 여자 금영자는 마영정이 두목이 됐을 때부터 이 운명을 알고 있었기에 그토록 눈물을 흘렸던 것이다.

 

3. 모두의 비극

담사를 제거한 양쌍은 마영정과 찻집에서 약속을 잡는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줄 알면서도 아니 갈 수 없다. 피하는 순간 겁쟁이가 되고, 겁쟁이가 되면 두목의 자리를 유지할 수 없다. 마영정은 운명의 날이 밝기 전, 친구이자 자신의 마차를 모는 소강북(정강업)에게 돈을 쥐어준 뒤, 상해를 떠나라 당부한다. 사실 이건 친구를 위하는 행동이라기보다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 프로스트의 유명한 시 'Road not taken'이 떠오른다.

문제의 마지막 결투가 있기 전, 장철 감독은 양쌍이 사장을 협박해 손님들과 종업원을 내쫓고 자기 부하들로 찻집을 가득 채우는 모습을 길게 보여준다. 그래서 찻집에 마영정이 들어올 때, 그에게 접근하는 사람들의 모든 움직임에 신경이 곤두선다. 악당과 관객은 함정임을 알고 마영정은 모른다. 양쌍과 마영정이 이층에 자리를 잡고 대화를 시작할 때, 땅콩장수로 위장한 장금발이 마영정의 복부에 도끼날을 박아 넣는다. 함정이란 것을 알게 된 마영정이 이층의 적들을 상대하다 난간 아래 1층을 내려다보는 화면은 절망 그 자체다. 무채색 옷에 도끼와 칼을 든 적들이 빈틈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빽빽하다.

마영정의 마지막 찻집 결투

이제부터 마영정은 담사와 마찬가지로 배에 도끼를 꽂은 채 18분간의 대살육을 시작한다. 미쳐 날뛴다는 표현이 적당하다. 이층에서 일층으로 추락한 마영정을 향해 적들이 개미떼처럼 달려든다. 사패왕 4인은 마영정의 손에 비명횡사한다. 죽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계단 난간을 종이짝처럼 뜯어 적의 목을 눌러 터트린다. 장금발과 마영정이 계단 아래 좁은 공간에서 도끼 자루를 들고 힘겨루기 하는 장면에선 절로 얼굴이 찌푸려진다. 장금발의 도끼는 마영정의 목을 금세 찌를 듯 하고, 마영정은 두 팔로 힘겹게 자루를 잡고 버티다가 결국 자기 배에 꽂힌 도끼를 뽑아 장금발을 공격한다. 고통으로 몸부림치며 카메라를 향해 악을 쓰는 배우 곡봉의 표정만 보면 공포영화라 해도 될 법하다.

사패왕 모두를 죽인 마영정은 이층의 양쌍을 죽이려고 기를 쓰고 계단을 오르지만 그때마다 굴러 떨어지기를 반복한다. 마영정은 계단을 올라가는 대신 아예 계단 자체를 무너트린다. 이층 바닥이 힘없이 꺼지고 나무기둥에 깔린 양쌍을 향해 마영정은 몇 번이고 도끼질을 한다. 그리고 미친 사람처럼 웃던 마영정은 누군가의 칼에 찔러 숨을 거둔다. 할리우드에 <스카페이스> 토니 몬테나가 있다면, 홍콩에는 <마영정>이 있다!!

 

4. 무서운 엔딩 

진관태의 웃음소리가 귀에서서 사라지기 전, 영화는 급히 엔딩 크레디트를 올린다. 그러면서 누군가에게 쫓기듯 기차 플랫폼으로 달리는 금영자와 소강북을 보여준다. 이들은 겁에 질린 얼굴로 기차를 탄다. 장철 감독은 왜 이런 에필로그를 붙였을까? 이 장면에서 디아스포라적 공포를 느꼈다면 과장일까.

오우삼은 1989년 장철 감독을 재정적으로 돕기 위해 만든 <흑전사 (원제 : 의담군영 / 義膽群英 / Just Heroes)>를 연출하는데, 진관태가 열등감 때문에 친구와 보스를 배신하는 갱스터로 나온다. 정강업 역시 두목을 살해하는데 가담한 운전기사로 나오는데 <마영정>의 두 배우가 정의 대신 욕망에 눈먼 캐릭터를 연기한 것이 더없이 적절해 보인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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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사처럼 되고 싶은 욕망이 마영정을 상해 암흑가의 세력 갈등 한가운데로 데려간다. 위험이 닥치면 피해야 정상인데 마영정은 되려 그 앞으로 달려간다. 돌파하거나 나가떨어지거나 둘 중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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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onicle - 오우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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