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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봐서 나쁠 건 없는 영화(★★)

수호전(水滸傳 / The Water Magin) 1972년 - 2부 사문공과 노준의의 악연, 그리고 절대미남 연청

by homeostasis 2023.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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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철 감독은 수호전 트릴로지의 1편으로 원작의 방대한 분량 중 하필 ‘옥기린’ 노준의가 군사(軍師) 오용의 계략에 의해 양산박에 합류하는 에피소드를 선택했다. 왜 여기일까 고민하다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장철 감독은 그토록 애지중지했던 강대위(姜大衛 / David Chiang Da Wei)의 연청(燕靑)을 보고 싶었던 듯 하다. 처음부터 ‘강대위 = 낭자 연청’을 정해 놓고 기획을 시작한 게 분명하다.

강대위

연청은 양산박 108호걸 중에 능력치가 가장 출중하다. 백옥처럼 흰 피부에 못 다루는 악기가 없어 모든 여성들의 워너비(wannabe) 셀럽이고, 천하제일의 씨름 실력까지 겸비했다. 영화 스토리 상 주인공은 노준의가 분명하지만, 장철의 관심은 온통 노준의의 심복 연청에게 쏠려있다.

 

1. 구전 문학

한창 연회 분위기가 무르익고, 두령 송강(곡봉 / 谷峰 / Ku Feng)은 '탁탑천왕' 조개(퉁림 / 佟林 / Tung Lin)가 보이지 않는다 걱정한다. 군사 오용(금봉 / 金峰 / Chin Feng)이 조개가 증두시를 정탐하러 갔다 고하는데, 마침 한줄기 바람이 일어 망루 위에 걸어 두었던 조개의 깃발이 뚝하고 부러진다. 불길한 징조가 아닐 수 없다.

<수호전>의 초반 30분은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등장인물과 배경정보를 전달하는 데 할애된다. 소설은 문장으로 쓰면 되는데, 영화는 직접 보여줘야 해서 어렵다. 영화 시상식에 각색상이 있는 이유다. 장철 감독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구전문학의 특성을 그대로 살린 스토리텔링을 선보인다. 총두령 송강이 조개의 안위를 물으면 책사 오용이 답을 하고, 그 다음 컷에 말을 타고 달리는 조개를 보여주는 식이다. <수호전> 중반까지 스토리텔링은 송강과 오용의 대화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2. 사문공의 무력과 조개의 죽음

증두시는 양산과 인접한 도시로 증(曾)씨 가문이 지배한다. 증두시의 무력은 군무를 총괄하는 사문공(구로사와 토시오 / 黑澤年雄 / Kurosawa Toshio)을 중심으로 그 밑에 '증가오호'라 불리는 증씨 5형제가 담당한다. 사문공은 양산박이라면 이를 갈 만큼 싫어한다. 마침 염탐하러 온 조개를 추적해 활로 부상을 입힌다. 위기의 순간에 임충(악화 / 岳華 /  Yueh Hua)이 나타나 사문공과 결투를 벌여 조개를 구한다. 사문공은 조개의 생명이 위급함을 알고 임충과 끝장을 보지 않는 선에서 대충 싸우다 물러난다.

<수호전>은 일본의 토호 영화사와 합작 비스무리한 형태로 진행된 듯 하다. <007 두번산다(You Only Live Twice)>(1967년)에도 출연했던, 토호를 대표하는 액션 배우 탄바 테츠로(丹波哲郞)가 주인공 격인 노준의를, 떠오르는 액션신성 구로사와 토시오(黒沢年男)가 숙적 사문공으로 출연한다. <대취협(大醉俠 / Come Drink with Me)>(1966년)의 네임드 스타 악화가 구로사와 토시오와 벌이는 잠깐의 창술 대결도 흥미진진하다. 악화는 원래 플루트 주자를 꿈꿨던 클래식 학도로서 무술을 전문적으로 배운 연기자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 창을 제법 힘있게 휘두르며 임충의 무공을 설득력 있게 표현한다. 운동신경이 원래부터 좋은 것일까, 아니면 무술감독 유가량의 역량인지 궁금하다.

또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아주 이상한 장면이 있다. 조개의 부하 중 하나가 증가오호에게 공격 당하는데, 증가오호는 이 자를 빙  둘러싸고 조금씩 상처를 입혀가며, 마치 희롱하듯 죽인다. 그런데 이 장면을 비정상적으로 길게 보여준다. 장철 감독의 영화에서 악당들은 언제나 다수가 한 명을 핍박하고, 영웅은 상대가 안될 걸 알면서도 혼자 다수를 상대한다. 증가오호가 비열한 악인임을 알려주는 장철식 문법이다.

조개는 탈출에 성공하지만 양산박에 도착하자마자 숨을 거둔다. 죽기 전에 조개는 송강에게 복수를 부탁한다. 흑선풍 이규(번매생 / 樊梅生 / Fan Mei-Sheng)는 사문공의 심장을 씹어먹겠다 다짐하고, 송강은 곧바로 군사에게 증두시로 출정할 것을 명령한다. <수호전>보다 불과 한 달 앞서 개봉한 <마영정>에서 배우 곡봉은 야비한 악인을 연기 했더랬다. 그런데 <수호전>에서는 시침 뚝떼고 의협의 상징 송강을 연기한다. 곡봉은 극단적인 감정, 이를테면 절규하거나 오열하는 연기를 정말 잘한다. 이 장면에서도 죽어가는 조개보다 오열하는 '송강' 곡봉이 모든 시선을 다 가져간다.

 

3. '옥기린' 노준의 & '낭자' 연청

책사 오용은 사문공을 잡기 위해서 반드시 하북 제일 부자(富者)이자 사문공의 사형제 노준의를 포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준의는 무술에 빠져 부인 가씨(능령 / 凌玲 / Ling Ling)를 소흘히 한다. 가씨는 무술 수련에 정신 없는 남편 눈을 피해 집사 이고(전청 / 田靑 / Tin Cing)와 통음을 한다. 가씨를 연기한 능령은 쇼브라더스 전속으로 영화에서 올누드씬을 연기해 화제를 모았던 배우다. <수호전>에서도 어김없이 과감한 노출을 선보인다.

이고와 가씨, 수호전

사문공이 소개된 후 강대위의 연청이 첫 등장 장면이 이어진다. 연청은 기루에서 여인들에 둘러싸여 피리를 분다. 거리에서 씨름꾼들의 돈 내기 시합에 한창이다. 연청은 여인들의 간청에 못이겨 씨름꾼들과 한 판 붙게 된다. 유가량이 설계한 씨름 안무는 한국 씨름과 다르다. 무기 없이 맨손으로 상대를 들어 매치거나 쓰러트리는 유도에 가깝다. 장철 감독은 영화에서 정말 중요한 순간, 특히 주인공이 장렬히 죽어가는 장면을 슬로모션으로 처리한다. 강대위의 씨름 시퀀스에서도 장철은 아낌없이 슬로모션을 퍼붓는다. 이런 호사는 강대위에게만 허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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