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디오는 항상 큰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한다. 지금부터 50여 년 전 홍콩의 쇼브라더스가 그랬다. 무협소설의 원류이자 동북아시아에 사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고전 <수호지>를 스튜디오의 '에이스' 장철 감독에게 맡긴다. 장철 감독은 지금 소개하는 <수호전>, <쾌활림>, <탕구지>로 이어지는 트릴로지로 완성한다.
쇼브라더스는 전속 계약으로 강대위(姜大衛 / David Chiang Da Wie), 적룡(狄龍 / Ti Lung)같은 아이돌 스타와 곡봉(谷峰 / Ku Feng) 같은 베테랑 배우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었다. 여기에 숙련된 스태프와 청수만에 위치한 대형 스튜디오가 있으니 무협 서사극 제작에 최적의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쇼 브라더스는 <수호지> 이후에도 김용의 '영웅문' 연작 등 무협소설의 프랜차이즈화를 지속적으로 시도한다. 이런 경향은 TVB 방송국(쇼브라더스가 보유한)의 무협 드라마로 계승되어, 어쩌면 <수호전>이 TVB 무협드라마의 조상격일지 모르겠다.
1. 기초 정보
<수호전>은 1972년 3월 17일(홍콩 기준)에 개봉했다. 총감독은 장철(張撤 / Chang Cheh)이 맡고, 포학례(鮑學禮 / Pao Hsueh Li)와 우마(牛馬 / Wu Ma)가 공동 연출로 투입되었다. 각본은 장철과 예광(倪匡 / Ni Kuang)이 공동 집필했으며, 액션연출은 <마영정>과 마찬가지로 당가(唐佳 / Tong Kai), 유가량(劉家良 / Lau Kar Leung), 유가영(劉家榮 / Lau Kar Wing), 진전(陳全 / Chan Chuen)이 담당했다. 오우삼은 조연출로 크레디트에 올랐다. 촬영과 편집은 일본 출신의 미야키 유키오(宮木辛雄)와 곽정홍(郭廷鴻 / Kwok Ting Hung)이 담당하고 있다.
2. 이상한 프롤로그 자막
역사적 사실을 다룬 시대극, 혹은 거대한 세계관의 에픽은 관객의 이해를 돕는 방편으로 영화 서두에 스토리의 배경 정보 등을 자막으로 알린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오프닝이 대표적이다. <수호전> 역시 거친 파도가 부서지는 이미지 위로 빨간색의 자막을 띄우는데, 극의 내용을 설명하는 게 아니라 고전소설 수호전의 기원과 어떤 판본이 있는지를 적는다. 되려 관객의 몰입을 방해한다. 왜 이런 자막을 붙였을까? 내 생각에 장철은 시내암의 원작을 나관중이 정리, 추가한 것처럼 본인의 영화도 수호지를 해석한 하나의 판본임을 알리려 한 듯하다. 기묘한 느낌을 자아내는 테마 음악과 맞물려 굉장히 그로테스크한 느낌마저 든다.
3. 가상의 중국
기괴한 느낌은 영화의 첫 시퀀스로 쭉 이어진다. 배에서 내린 병사들이 말을 타고 성채로 들어가는 모습을 카메라가 멀리서 망원렌즈로 찍은 화면이다. 영산은 음악도 없이 말의 동선만을 쫓는다. 그러는 동안 양산박 성채와 병력 규모가 프레임에 어쩔 도리 없이 노출된다. 꼭 청수만 스튜디오의 홍보 영상처럼 보인달까. 홍콩의 다른 영화사들은 이 장면에서 감탄과 질투를 동시에 느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규모로 승부 보는 장면은 50년대 할리우드 로마 에픽의 하위 호환에 불구하다. 그런 들 어떠하랴. 70년대 관객에게 중국 본토는 갈 수 없는 금단의 땅이었다. 관객들은 홍콩에서 찍은 장면들을 통해 광활한 본토를 상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4. 인물 소개
본격적인 영화의 시작은 양산박의 연회 장면이다. 장철 감독은 이를 핑계로 주요 등장인물을 하나씩 클로즈업 한다. 배우들이 처음 등장하면, 자막으로 배역과 연기자의 이름을 병기한다. 송강 역의 곡봉이 술을 들어 건배를 제의하면, 카메라가 자리를 옮겨 다니며 군사 오용 역 금봉(金峰 / Chin Feng), 임충 역의 악화(岳華 / Yueh Hua), 무송 역의 적룡 등을 비춘다. 이런 자막은 홍콩 영화의 오랜 전통이기도 하다. 지금은 좀처럼 사용되지 않는 방식이지만 <수호전>처럼 많은 캐릭터가 등장하는 영화에서 이보다 더 효율적인 소개방식은 없다!!
※ 2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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