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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봐서 나쁠 건 없는 영화(★★)

수호전(水滸傳 / The Water Magin) 1972년 - 3부 노준의의 불행은 끝이 없다

by homeostasis 2023.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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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대착오적 음악

시대극, 대하서사물에서 요구하는 영화 음악이 따로 있다. 스토리와 잘 묻어가면서 필요할 때 웅장한 스케일을 강조할 수 있어야 한다. 오케스트라 연주는 필수요, 그 시대 분위기를 잘 살릴 수 있는 전통 악기가 양념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수호전>의 음악은 정반대다. 

오프닝에 흐르는 <수호전> 테마는 스케일을 강조한 음악이지만 보통의 사극에서 들을 수 있는 사운드가 아니다. 말을 타고 달리는 장면에서 마카로니 웨스턴에서나 나올법한 스코어가 흐르고, 위기 상황일 때 전자 기타 연주가 흐른다. 인물들이 급박하게 움직일 때 리듬을 격하게 강조한 건반 연주, 주인공이 영웅적인 행동을 할 때 어김없이 이를 찬양하는 듯한 남녀 보컬의 허밍이 울려 퍼진다. 영화 속 시대와 따로 가는 음악도 음악이지만, 미키 마우징 수준으로 영화 속 상황과 일치 시킨다. 영화음악의 나쁜 사례로 꼽힐 만한데 묘하게 끌린다. 고전 소설의 스토리와 현대적 문법의 음악이 충돌할 때의 쾌감이 있다.

<수호전>의 음악은 약관의 진훈기(陳勳奇 / Frankie Chan Fan Kei)가 작업했다. 80년대 홍콩영화 팬들에겐 성룡과 절친한 액션 감독 겸 배우로 익숙하지만, 사실 쇼 브라더스 음악 스튜디오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배우, 감독으로 성공한 뒤 한동안 음악작업과 거리를 두고 있다 왕가위의 요청으로 오랜만에 컴백해 <중경삼림>, <타락천사>, 그리고 <동사서독>의 스코어를 만들었다.

 

2. 덫에 걸린 노준의

책사 오용은 노준의를 양산박으로 끌어 들이려고 야비한 계획을 세운다. 대역죄인으로 만들어 제 발로 찾아오게 만드는 전략이다. 그 첫번째 스탭으로 오용은 흑선풍 이규(번매생 / 番梅生 / Fan Mei Sheng)만을 데리고 대명부로 가서 이름 난 점쟁이인척 하여 노준의의 관심을 끈다. 여기서 우리는 책사 오용이 파트너로 이규를 선택한 데 주목해야 한다. 이규는 양산박에서도 가장 경솔하고 혈기왕성한 인물! 비밀 작전 같은 곳에 결단코 투입해선 안 되는 사람이다.  

노준의는 오용과 이규를 집으로 불러 길흉화복을 묻는다. 오용은 기다렸다는 듯이 점괘를 늘어 놓는데, '올해 큰 변고가 생기니 남쪽으로 가야 편안하다'는 내용이다. 노준의의 심복이자 머리 좋기로 유명한 연청은 '남쪽으로 가라'는 점괘를 듣고 점쟁이들의 정체를 바로 간파한다. 양산박은 지금 오용을 보내 노준의를 회유하는 중이다. 하지만 '옥기린' 노준의 입장에선 반역자들과 손 잡아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권세를 누리며 평안하게 살고 있는데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양산박에 들어가랴. 되려 반역자들과 있는 걸 누가 보기라도 하면 큰 화를 입을 수 있다. 연청을 시켜 오용과 이규를 가두는데, 이 과정에서 이규가 '내가 바로 흑선풍'이라고 벌컥 고함을 지른다. 이 저택에서 일하는 사람은 다 아는 일이 되어 버렸다. 집사 이고와 불륜 관계에 있던 부인은 이 참에 남편을 대역죄인으로 몰아 죽이자는 음모를 꾸민다. 

두 사람을 가둔 지 얼마나 됐을까? 고심 끝에 노준의와 연청은 양산박과 척을 질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오용과 이규를 풀어준다. 타이밍도 절묘하지, 하필 이때 관군이 들이 닥치고, 여기서 이규가 또 자기 이름을 고래고래 외치며('내가 흑선풍 이규다') 관군 몇을 때려 눕힌다. 노준의는 빼도 박도 못하게 됐다. 지금이라도 오용을 다시 붙잡아 직접 관아에 넘기면 오해를 풀 수 있다. 하지만 노준의, 그는 의협심 가득한 영웅이었다. 연청으로 하여금 오용과 이규가 무사히 대명부를 빠져나갈 수 있게 안내를 지시한 뒤 스스로 포승줄에 묶인다. 이 순간 어김없이 진훈기가 만든 영웅찬가가 흐르면서 노준의의 대장부다움을 칭송한다.

수호전의 노준의

 

3. 노준의의 계속된 불행

그래도 노준의는 평소 쌓아온 명예와 신망이 있어 괜찮을 줄 알았다. 일단 죄수가 되자 그동안 믿었던 세상 인심이 차갑게 돌변한다. 간수들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돈을 요구하고, 탐관오리 양중서는 역적과 내통한 혐의를 적용하려 하고, 믿었던 부인과 하인은 재산을 다 차지한 것도 모자라 간수를 매수해 틈만 나면 노준의를 해하려 하니 참담한 심정 감출 길이 없다.

이제부터 영화는 노준의의 거듭된 불행을 보여준다. 재수가 없다해도 이리 없을 수 없다. 노준의는 연청의 도움으로 탈옥을 시도하지만 감옥을 나가자마자 다시 붙들린다. '소선풍' 시진이 거액의 뇌물을 바친 덕에 간신히 사형은 면하지만 장 40대를 맞고 골병이 든다. 귀양길에서 연청이 간수를 죽이고 노준의를 빼내는데, 잠깐 말 구하러 간 사이 인근 주민의 신고로 또다시 체포된다. 두 번의 탈옥 시도에 관병 살인죄까지 더해 사형이 선고되니 대명부의 가장 핫 플레이스 한 복판에서 노준의의 공개처형이 결정된다.

※ 4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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